외국의 한 작은 도시를 여행하다가 중력을 거스르는 지역을 만났다는 한 작가의 단편을 읽었다. 작가노트란에 그가 털어 놓은 것은 다른 사람들은 그곳으로 뛰어내렸지만 아무도 추락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이 추락하고 말았다는 꿈 이야기이다. 묘한 것은 그 작품에 대해“우주의 혼돈 속에서 삶의 진수를 건져올릴 수 있다면,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진실의 그림자라도 흘낏 보게 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은 언제나 이러한 불가능한 꿈 주변을 맴돈다.”는 한 평론가의 말이다.(‘제 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수록 손보미 소설‘폭우’및 작가노트“중력을 넘어서”와 이소연 해설‘세속의 예언과 성취’)

여기서 꿈이란 말은 중의적(重義的)으로 쓰였다. 밤에 자면서 꾸는 꿈과 포부나 일생의 계획 같은 것을 아울러 이르는. 잘 알려졌듯‘장자’의 제물편에는 장주가 나비 꿈을 꾼 호접몽 이야기가 나온다. 혼몽 중의 장주는 자기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지 못한다. 깨어난 장주는 삶은 일장춘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자의 사유는 세상을 환영(幻影)이라는 뜻에서 마야라 부르는 불교와도 맥을 같이 한다. 불교에서 세상을 마야라 부르는 것은 세상을 거대한 꿈 같은 것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꿈이란 말과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연결짓는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뇌과학의 결여라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잠을 자는 동안 원초아에 대한 자아의 억제가 느슨해지는 바람에 받아들일 수 없는 본능적 욕망들이 솟아오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마음이 정교한 노력을 한 결과 나타나는 영상 같은 것을 꿈이라 말한 프로이트의 정의는 잘못인 셈이다. 해몽 전문가인 홍순래박사의‘꿈이란 무엇인가’는 표지에 무지개 사진이 있는 것이 눈에 띄는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꿈이라고 하면 프로이트를 떠올릴 줄은 알아도 평생을 예지적인 꿈 연구에 몸바쳐 오신 고(故) 한건덕 선생님의 존재 자체는 모르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는 마음을 내보였다. 내게는 꿈을 억압된 무의식의 언어로 설명한 프로이트에게 뇌과학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학자가 같은 서양인이라는 사실이 단서처럼 여겨진다. 꿈이 억압된 무의식의 언어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냥 바로 예지적 성격의 영상 같은 것이라 하면 좋겠지만 꿈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설명한 서양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몸이 휴식을 취하느라 더 이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필요가 없을 때 뇌는 다른 중요한 과제에 마음껏 몰두하게 되는데 꿈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사실 감각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각성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각 정보들을 꿈을 통해 살려내는 뇌의 활동은 신비의 극치이다. 사실 꿈이 신비한 것은 꿈이 예지적 성격의 영상이어서가 아니라 감각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감각 정보들을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신비하면서도 기이한 면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꿈이 기이한 것은 잠을 잘 때 외부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므로 신경망들이 다양하게 연결되고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전혀 보지 못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활동하던 뇌가 청각이든 시각이든 더 이상 정상적인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면 자체적으로 자극을 만들어 음악 환청을 만들어 내는 것과 메커니즘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꿈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꿈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꿈을 통해 심신을 치유하고 기억을 정리하고 영감을 받고 계시를 받는다. 프로이트의 꿈 이론이 뇌과학의 결여라는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무의식의 언어에 관심이 있다.

마찬가지로 예지적 성격의 꿈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정작 관심을 두는 꿈은 억압된 무의식의 언어로서의 그것도 아니고 예지적 성격의 그것도 아니다. 꿈을 자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경험을 평균 수준 이상 기억하며 자주 공상에 빠지고 창조적인 분야 특히 시각 예술에 흥미를 느낀다고 한다. 나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다. 어쩌면 정상적으로 꾸지만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의 1% 정도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꿈을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사람들이다.

나는 시각 예술보다 청각 예술에 관심이 많고 소설에 몰입하지도 못한다. 설명에 의하면 소설에 빠진 사람들은 꿈꾸는 사람의 정신 상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꿈을 많이 꾸는 사람과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의 연관성이 보고되기도 했다.‘꿈이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꿈을 무지개에 비유한다. 다양한 색상,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차원, 곧 사라지는 것으로 인해 그런 비유가 등장했으리라. 저자는 자신의 꿈을 가장 잘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 말한다. 꿈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바로 자신의 신성(神性)의 정신능력인 잠재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를 꿈의 상징기법으로 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또한 꿈은 반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국문학자인 저자가 각종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뇌과학을 섭렵하고 프로이트, 라깡 등의 무의식 이론 등도 참고하는 것은 대단한 노력으로 보인다. 상상력이 빈곤하고 예지적 꿈과는 거리가 먼 나는 꿈을 통해 영감(靈感)의 계시를 받은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 종교인들이 부럽다. 더 많은 소설을 읽고 영화에 취미를 들여 빠져든다면 신비한 꿈을 꿀 수 있을까?‘꿈이란 무엇인가’는 신은 하늘나라에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 정확히는 뇌 속에 있다“(”뇌의 작품.“이라)고 말하는‘신의 뇌(God's Brain)’같은 책과 비교하며 읽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