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버린 쓰레기에서 다른 사람들은 주요 주제들을 주워 모을 수 있을 것이다.”이 말은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가 동시대의 체코 작곡가 드보르작에 대해 한 말이다.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편집인인 발터 아벤트로트는 브람스의 이 말을‘부록과 보유(우리 나라에는‘쇼펜하우어 인생론’으로 알려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했다. 쇼펜하우어의 쓰레기에서 주제들을 주워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쇼펜하우어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니체이다. 1865년 22세의 젊은 니체는 한 고서점에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한다.  

이 책은 즉시 젊은 니체를 열광시킨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이런 말을 남겼다.“여기에는 각 행마다 좌절과 거부, 체념이 외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은, 아니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싶은 갈망이 덮쳐왔다.”니체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쇼펜하우어는 극단적인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는 주저(主著)인‘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는 물론‘부록과 보유’에서도 형이상학적 서술 대신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잠언(箴言)식의 서술 방법을 취했다. 그 결과‘인생론’은 그에게 대중적인 인기와 확고한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강단 철학 경시(輕視), 정상적 결혼 생활 거부, 은둔, 여성 혐오와 멸시 등 쇼펜하우어가 취한 삶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은행가였던 아버지(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 1747 - 1805) 덕에 부유하게 살았고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받은 유산으로 평생 풍족한 생활을 했다. 반면 당대의 유명 작가였던 어머니 요한나와는 불화했다. 이는 그를 여성 혐오와 멸시로 이끌었다. 결론은 무엇인가? 평생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영향은 긍정적이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버지가 물려준 경제적 풍요로움이 그를 무력한 권태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은 물론 부정적이었다. 쇼펜하우어는“아버지가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어머니는 즐겁게 지냈다. 그것이 여인들의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가 외도를 했지만 그로부터 여성 전체의 경향을 도출해낸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일반인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철학자는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어머니의 그런 면이 어머니 개인의 특성인지 어머니 家門의 특성인지 특정 지역 출신의 일반적인 경향인지를 따지지 않고 바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여성 일반에 대한 견해를 도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방식이 아니다. 만일 쇼펜하우어의 어머니가 헌신적이고 사랑스럽고 충실한 어머니였고 아내였다면 쇼펜하우어가 여성은 모두 천사라고 생각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지구상의 몇 명 가운데 한 사람임을 자처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한 칸트의 주저인‘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석판단과 종합판단 가운데 분석판단적 사유 즉 논리적 필연성에 입각한 사유(“경험해 보지 않아도 안다”)에 깊이 빠진 결과 사후적(事後的)으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판단을 정교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체에는 반드시 부피가 있기 때문에(부피 없는 물체가 없기 때문에)‘모든 물체는 부피를 갖는다.’는 문장은 참이고 경험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듯 모든 분석 명제는 참이지만 독단론에 빠질 수 있다.  

독단론이란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점이나 잘못된 점을 검토하지 않고 주관적 편견으로 어떤 판단을 주장하거나 긍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쇼펜하우어가 보인 여성에 대한 혐오와 멸시는 독단론(獨斷論)의 전형이다. 한편 쇼펜하우어는 피히테와 헤겔이 베를린 대학에서 당시의 철학을 주도하고 있을 때 같은 대학의 강사로 취직하지만 헤겔의 등살에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런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그의 철학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대학교수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평생 그를 무명 철학자로서 살게 했다. 이는 어머니와의 불화와 함께 쇼펜하우어의 삶을 결정지은 주요한 두 가지 사건이었다. 어머니와의 불화와 대학교수들과의 반목은 결국 쇼펜하우어 사상을 낳은 거름이 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플라톤 철학, 인도의 베단타 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칸트의 물 자체(物 自體)를 의지 자체로 해석하고 그것을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로 보고 그 맹목적 의지는 충족되지 않는 것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에 삶은 고통이라는 명제를 이끌어낸 것, 음악으로 대표되는 탁월한 예술에 힘입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기에 윤리의 차원이 필요하다고 본 것 등은 칸트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칸트는‘순수 이성’은 결코 영혼과 세계와 신을 인식할 수 없다고 보고 도덕적 요청에 의거해 신앙의 영역 즉‘실천 이성’의 영역을 개척한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가 자살을 찬양하는 듯한 글을 남겼음에도 70세가 넘도록 산 것은 어떤 위대한 인물도 초연한 적이 없었다는 러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볼프 슈나이더의‘만들어진 승리자들’에 의하면 쇼펜하우어의 우울증에는 자신이 독살되거나 산 채로 매장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볼프 슈나이더는 쇼펜하우어의‘부록과 보유’를 철학적 전문 용어를 포기한 책으로 몰아붙였지만 이는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동시대인들의 칭찬이 창녀와 같다면 후대의 칭찬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만 몸을 바치는“도도하고 까다로운 미인”이라 표현했다.(‘만들어진 승리자들‘ 534 페이지)  

보르헤스는 쇼펜하우어를 긍정적으로 본 대표적인 사람이다. 보르헤스는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인식했다는 말을 했다. 하나의 의지가 있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육화(肉化)하고 세계라는 표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에 의하면 쇼펜하우어는 붓다가 그랬듯 세계를 하나의 꿈<夢>으로 보았고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나<自我>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장 큰 착각으로 보았다. 거대한 환영(幻影: 마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목표였다는 말이 될 것인데 쇼펜하우어는 출가를 하지도 않았고 구도자처럼 살지도 않았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의 주된 특징은 비관론과 염세주의이다. 주관에 대한 강조도 그가 보인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행복은 주관적이며 주관적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변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持論)이다. 자아와 천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쇼펜하우어는 숙명론적이다. 혼란스러운 점도 거론해야 하겠다. 참된 자아가 행복에 가장 중요하다는 말(16 페이지), 건강이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21 페이지)은 모순적이며 자신에게 만족하고 스스로를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나의 소지품 전부를 내 몸 가까이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133 페이지)은 의미가 불명료하다.  

자존심과 허영심의 구분, 윤회와 재생의 구분,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이 세계가 가장 좋은 세계라고 한 라이프니츠에 대해 창조자는 세계 뿐 아니라 가능성 그 자체를 창조했다고 되받아친 것(330 페이지)은 날카롭고 명민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반면 여성은 언제나 남자의 감독을 받아야 하며 친모인데도 혼자 남으면 계모 근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흔하며 여성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여성은 철두철미하게 구제받을 수 없는 속물들이라고 한 것 등은 너무 지나치다. 쇼펜하우어 자신 이슬람교도와는 다른 점에서 자신의 관점이 편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흥미롭다.  

인생은 일종의 실망이며 사기이고 세상은 지옥이라는 말은 그의 비관주의와 염세주의를 잘 보여준다. 문체가 유연하고 나름의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었지만 전체적으로 편향적이고 주관적이다.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독서 대신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새겨들을 만하다.(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주변인들이 모두 무비판적인 독서를 한 사람들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독서는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독서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무비판적이고 비주체적인 수용이 나쁜 것인데 말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 그의 책은 그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더 자세히 앎으로써 그가 보인 불명료한 생각이나 편향적인 사고들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