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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각자 다르겠지만 나에게 재즈는 신선하고 낯선 이국의 음악이다. 오래 전 이종학이란 분의‘재즈 속으로’를 읽었기에 찰리 파커, 빌 에반스, 마일즈 데이비스, 캐논볼 애덜리, 키스 자렛, 브랜포드 마샬리스, 쳇 베이커, 허비 행콕 등 시대나 스타일에서의 통일성과 상관 없는 일련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다. Curtis Fuller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Dave Brubeck Quartet의 Take Five 정도의 스텐다드 넘버 등을 예외적으로 즐길 정도로 재즈는 나에게 감상의 주 타겟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 재즈는 역사적 탄생 배경이 있는 장르이다. 내가 아는 한 재즈는 흑인의 블루스로부터 비롯된 장르로 인종차별과 노예노동 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세계 3대 재즈 디바의 하나로 불린 빌리 할러데이의 Strange Fruit만 하더라도 그런 배경을 알 수 있다. 이 곡은 흑인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린치를 가사화한 음악이다. 이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남쪽 지방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열렸네. 잎사귀와 뿌리에 흥건한 피, 검은 몸뚱이와 남풍을 받아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이는 1930년대 일상적이었던 흑인에 대한 백인의 린치에 근거한 가사이다. 이상한 열매들이란 매맞아 죽은 흑인의 처참한 시신을 말한다.

지난 2003년 번역, 출간된 에릭 홉스봄의‘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Uncommon People - Resistance Rebellion and Jazz: 원작 출간은 1999년)는 나로 하여금 재즈를 반역의 음악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공헌했다. 물론 기원이 그렇다 해도 늘 그런 점을 의식하며 재즈를 감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차(次)에 반역적 기원보다 재즈 아티스트들 개인의 고뇌와 기행(奇行), 무너지는 삶 속에서도 예술혼을 피워 올린 아름다운 면모를 배울 수 있을 좋은 책으로 여겨지는 책을 만났다. 바로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이란 책이다.

이 책은 우선 장르를 특정(特定)할 수 없는 책이다.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에세이 같고 전기(傳記) 같고 비평 같은 면모가 혼재해 사태를 복잡하게 인식하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이 책에서 다뤄진 아티스트들은 듀크 앨링턴, 해리 카니, 레스터 영, 텔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 벤 웹스터, 쳇 베이커, 아트 페퍼, 찰스 밍거스 등이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묘사가 서정적이고 유려하다는 점이다. 풍경 묘사는 뛰어나다.“그가 강 건너를 바라보자 마치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 하늘 위로 노란 갈색 구름이 하늘 위로 번지고 있었다.”같은 문장은 대표적이다.(물론‘하늘 위로‘란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간 것은 석연치 않다.)

번역자가 독특하고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한유주라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레스터 영이 군대에서 받은“약물 중독(마리화나, 바르비투르),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 그리고 떠돌이 생활로 인해 야기된 종합적인 정신병적 상태... 단순한 규율 부족 문제,”라는 진찰 기록을 요약하는 한 단어로 재즈라는 단어가 부가된 것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러나 아름다운‘은 불친절한 책이기도 하다. 사진들에 관한 노트, 그러나 아름다운 등의 메인 소제목들이 게시되었을 뿐 어떤 아티스트가 설명되는지 말하지 않고 ’그’라는 대명사로 시종한다.

물론 뒷 부분에 게시한 참고 자료라는 코너를 통해‘그러나 아름다운’이 다룬 아티스트들이 레스터 영에서 아트 페퍼, 듀크 앨링턴과 해리 카니 등에 이르는 아티스트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나‘당신’같은 대명사가 글읽기를 힘들게 한다. 당신이라는 대명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버드 파웰을 다룬 챕터이다.“버드? 버드....? 만약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이런 거라면 내가 당신 몫까지 이야기를 할게. 아마도 듣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언가를 배울지도 모르지, 아마도‘망각’이나‘통곡’,‘환각’,‘약간 미친 사내‘ 같은 곡들에서, 당신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낙관주의와 더불어 당신의 삶이 짊어져야 했던 모든 고통들을 다독여주는 방법을 배울지도 몰라.”(114 페이지)란 문장을 보면 당신이 버드 파웰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버드가 나타났고,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어. 전날 밤 당신은 그를 찾아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지. - 너도 알지, 버드, 넌 쓰레기가 아니야, 넌 나를 죽이지 않을 거야. 이봐, 넌 더는 쓰레기처럼 연주하지 않을 거야.”(119 페이지)란 문장에 나오는 당신은 버드가 아니다. 이 문장에서는 버드가 그로 지칭되는데 문제는 (114 페이지에서와 달리)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 말고도, 앞 문장에서는 버드를 당신이라 지칭했다가 이 문장에서는 버드를 그로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페이지(132 페이지)에서는 버드를 또 당신이라 지칭한다. 당신이라 했다가 그라고 했다가 또 당신이라 했다가....인 것이다.

당신이란 대명사는 벤 웹스터를 다룬 챕터에서도 나온다. 벤을 그라 칭한 이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는“당신은 그의 음악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169 페이지)란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그는 벤 웹스터인데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그러나 아름다운‘에서) 처음 불린 버드 파웰인가? 당신이 누구인지 헤아려야 하는 이런 일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 게다가 ”그는 그가”(196 페이지)란 문장,“그는 자신이”(200 페이지)라는 문장,“그가 그 자신을”(212 페이지)이라는 문장이 자아내는 어수선함과 비통일성은 너무 혼란스럽다.(원문이 그런 것인지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그를 듣는 것은 다리를 벌린 채 누워 그녀로부터 차갑게 빠져나가는 그의 성기를 감각하는 것과 같았고, 그녀는 갑자기 문득, 그의 연주가 부드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했다.”(212 페이지)는 문장을 보자. 여러 설명을 할 것 없이 이는 (원문에 없지만) “그녀에게 있어”라는 문장을 덧붙여“그녀에게 있어 그를 듣는 것은 다리를 벌리고 누운 자신으로부터 차갑게 빠져나가는 그의 성기를 감각하는 것과 같았고, 그녀는 갑자기 문득, 그의 연주가 부드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했다.”로 고쳐야 자연스럽고 이해하기도 편한 문장이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참 많다.“그들로 인해 지쳐 나가떨어진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호크는 화가 난 채로 무대에서 내려왔고, 그의 색소폰을 자동차 뒷좌석에 집어던지고는 그날 밤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동안 내내 그것을 불어댔다.”(31 페이지)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오역(誤譯)으로 인해 빚어진 혼선이다. 설령 오역이 아니라 해도 (자동차 뒷좌석에 집어던졌다는) 색소폰을 다시 집어들었다는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불었다는 것이 불친절하고, 가장 기이한 것은 운전을 하면서 어떻게 색소폰을 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윗 번역 문장의 원문은“Hawk walked off the stand, threw his horn in the back of his car, and gunned it all the way to St. Louis for that nights gig,“이다. 번역자는 gun이라는 동사에 항공기나 차 따위의 속도를 갑자기 올리다, 엔진을 고속 회전시키다란 뜻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 같다. 전편을 일관하는 여러 오역 가운데 가장 어이없는 것은 ”결국 같은 날 호크가 찾아왔다.“(30 페이지)란 문장이다. 원문이 Hawk went the same way eventually.인 이 문장은 ”결국 호크도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맞이했다.)“ 정도로 옮겨야 옳다.(같은 날이라는 문장으로 번역했으니 하는 말이지만 원문에 same이란 형용사 뒤에 날을 뜻하는 day란 단어가 없는데 같은 날이라고 번역한 이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 way를 day로 잘못 본 것일까?)

그리고 ”기차 여행에서 가장 훌륭한 점이란, 한 번 기차에 오르고 나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고 싶은 곳까지 단순하게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149 페이지)란 문장에서 기차 여행을 항해로 표현한 것은 항해란 말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감. 또는 그런 과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하기도 하니 무방하다고 해야 할까? 이 밖에“무슨 말을 하던지”(57 페이지)는 무슨 말을 하든지의,“기차를 세 대나 놓쳤다”(149 페이지)는 석 대의,“그러나 그는 바로 그 장식적인 부분들이 다리를 떠받치는 힘 그 자체에 녹아들게 함으로서”(80 페이지)는 함으로써의,“파괴해야 할런지도“(300 페이지)는 할는지의, ”쿼텟를 위한”(316 페이지)은 쿼텟을 위한의,“공을 당지지“(321 페이지)는 ”던지지“의 오기이다.

그리고‘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7번 열정‘(293 페이지)이란 표현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op 57로,”재즈에 관해 쓰여진 모든..“(300 페이지)은 ”재즈에 관해 쓰인 모든”으로 써야 자연스럽다. 제프 다이어는“공연 그 자체가 비평“(295 페이지)이며 ”재즈에 관해 쓰여진 모든 글들은, 뮤지션들의 회고록이나 올드 재즈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을 제외하면, 재즈라는 위대한 음악적 유산에 하찮은 흠집만을 낸 채 길을 잃은 것처럼 보“(300 페이지)이며 ”재즈는 여전히 은둔의 형식“(300 페이지)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들이 담긴 ’전통, 영향, 그리고 혁신‘이란 제목의 후기에서 무엇보다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은 ”재즈는 반드시 연대기적으로 감상해야만 한다.“(334, 335 페이지)와 ”우리는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지만 말고 강의 기원을 추적해야 한다.“(335 페이지)란 글이다.

다이어의 말은 시대나 스타일에서의 통일성과 상관 없는 일련의 재즈 아티스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정식으로 재즈 감상에 입문할 것을 권유하는 말로 들린다. 다이어는 재즈에 관한 최신 레이블인 ECM 레이블의 대표 아티스트인 키스 자렛을 극찬한다. My Song으로 유명한 키스 자렛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프랑스 모음곡 등 바흐의 넘버들을 연주(녹음)하기도 한 아티스트이다.(자렛은 ECM 레이블을 통해 바흐 뿐 아니라 쇼스타코비치, 핸델, 아르보 페르트 등의 음악을 녹음했다.) ’그러나 아름다운‘이란 말은 마약, 술, 광기, 기행 등으로 얼룩진 재즈 아티스트들의 삶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이어의 글을 무엇이라 말할까? ’그리고 아름다운‘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