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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트로픽(holotropic) 요법은 LSD를 포함한 향정신성 물질의 사용이 의학적인 임상 실험에서조차 법적으로 금지됨에 따라 체내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는 격렬한 호흡, 감정과 기억 따위를 환기시키는 음악, 신체조절접 등을 병행해 비일상적 의식 상태를 유도하는 요법이다. 이 요법에 의해 이르게 되는 의식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경우에 따라 황홀경이나 천상의 지복감 등을 겪기도 하고 공포, 분노, 절망, 소모적 죄의식 등을 겪기도 한다. 이 의식 상태에서는 생물학적 탄생의 모든 단계 즉 태내의 기억부터 수정란에 해당하는 세포 수준의 기억까지 놀랄 만큼 상세하게 체험할 수 있다.

스타니슬라프 그로프는 지고한 창조적 지성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에 의하면 의식은 두뇌(라는 물질)의 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제 1 원리이며 현상계의 창조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말대로 의식이야말로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최고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다시 시작하는 신‘ 289 페이지)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의식은 우주 또는 창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그로프는 영적 체험과 현대 물리학의 부분적 유사성에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인과의 사슬을 따라 우주의 기원을 찾아 더듬어가는 동안에 무너져 버리는 에너지 보존 법칙 등 일상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이는 물리적인 세계에 비물리적 영향력이 있을 수 없다는 폐쇄성 원리는 에너지 보존이 자연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법칙이라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양자역학의 맥락 안에서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뇌의식과 과학‘ 242, 243 페이지)고 한 앨런 월리스(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불교 수행자 출신의 과학 저자)를 참조점으로 삼게 한다. 그로프는 모든 것이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최초의 원인들의 원인인 제 1의 동력은 무엇이며 에너지가 보존되어야 한다면 태초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고 묻는다. 그로프는 물질계는 절대의식의 창조물이며 개인의 정신, 우주의 일부분, 창조 원리 그 자체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없기 때문에 우리들 개개인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신성한 근원과 동일하다고 결론짓는다.

관건은 창조의 동기가 무엇인가, 이다. 창조의 큰 틀만이 제시된 채 세세한 부문은 창조주조차도 알 수 없는 무한한 조합과 배열의 우주적 게임(cosmic game)이 진행되고 있다는 가설과,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된 것이라는 가설이 맞서는 가운데 창조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은 흥미를 자극한다. 외로움, 유형의 물질계를 경험하려는 갈망, 지루함 등이 창조주의 창조 동기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창조의 대본과 동기가 어떻든 창조 원리와 과정은 수수께끼이다. 홀로트로픽 체험을 통해 우리는 삼라만상은 절대 의식에서 떨어져 나온 의식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그로프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들은 전체인 동시에 부분이며 자신을 다른 사물 또는 다른 사람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전체인 동시에 부분이라는 말은 고정된 정체성이 없는 창조자인 동시에 피조물이라는 말과 차원이 같다. 일체지향적 상태에서 보면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사는 이 세계는 궁극적 세계의 그림자 또는 환영(幻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체지향적 상태에서는 과거, 미래, 현재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이 체험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예상 밖의 의미심장한 우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홀로트로픽 체험에 의거하는 초개아(超個我: transpersonal) 심리학 진영에 의하면 존재는 절대의식의 환상적 모험 - 끝없는 우주의 춤사위, 흥미진진한 게임, 신성한 연극 - 이다. 그로프가 말한 대로 절대의식이 창조, 유지, 파괴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초월적 상태의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극복한다면 우주의 게임은 흥미진진한 유희적 게임이다. 그로프에 의하면 일체지향적 상태에서는 악의 기원과 본질, 악의 존재 이유, 창조라는 직물(織物) 속에서의 악의 역할 따위의 윤리적 의문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또한 대단히 집요하게 솟아난다.

어떻든 악은 필연적이다. 우주가 무에서 창조되었기에 우주 창조는 대칭적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반대편과 평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대칭은 우주의 가장 첫 순간에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수로 존재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로프는 우주의 어두운 면이 빛과 완전한 대비를 이루면서 우주극(宇宙劇)은 훨씬 깊어지고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이제 악은 창조의 불가결한 요소로까지 인식된다. 그러나 관건은 일상의 선악은 궁극적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체가 공(空)인 것이다. 하지만 일체지향적 관점은 냉소적 무관심을을 갖게 하거나 이기적 심성을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경외하게 하고 책임감 있는 관계를 맺게 한다는 것이 그로프의 주장이다.

그로프는 자기 자신을 우주의 힘에 희생당하는 무력한 존재로 보는지 아니면 우주의 힘과 함께 우리 삶의 시나리오를 써가는 공동 저자로 보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에서는 기쁨과 자유의 양이 엄청나게 늘기도 하고 고통의 수준이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선과 악이 대칭적이라면 초월성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인 탄생과 죽음, 성(性)은 서로 맞닿아 있다. 특기할 것은 탄생이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탄생 과정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위험한 사건인 것이다. 탄생의 위험과 고통,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러 느끼는 압도적 공포 등은 무의식에 각인되어 이후 삶에 영향을 미친다.(평화로운 출산의 필요성을 역설한 미셸 오당의 ’농부와 산과 의사‘를 보자.)

그로프는 윤회는 분명한 경험적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윤회는 서양 과학과 그리스도교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보기 드문 주제 중 하나이다. 그로프는 궁극적으로는 창조 원리 그 자체만이 참된 실재라고 말한다. 윤회가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와 윤회를 부인할 수 없는 세계는 둘 다 개체적 경험들이 뭉쳐져 빚어낸 가상 현실이라는 그로프의 말은 주의를 요한다. 그로프에 의하면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시나리오들이 우주극 안에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주심(宇宙心)의 신성한 연극 속에서 그것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프는 윤회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언급한다. 동일한 개체가 삶과 죽음, 재탄생을 반복, 순환한다는 해석(보편적 윤회관), 온갖 차원 속에 존재하는 분리된 개체들을 (힌두교의 브라흐만 같은) 거대한 하나의 존재가 무한히 변용한 결과로 보는 해석(이런 관점에 의거하면 지난 전생 체험들은 환영幻影의 또 다른 수준이다.), 서로 다른 시대에 환생한 각각의 삶들 사이에는 어떤 참된 연속성도 없다고 보는 해석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해석들은 윤회를 설명하는 여러 해석들 가운데 일부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윤회에 대한 세 가지 접근 방식은 체험될 수 있는 현실인 동시에 우주의 설계도에 대한 우리의 통찰 수준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 해석은 윤회 현상에서 개별 의식체나 신(神)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존재인 대령(大靈: oversoul)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환생하는 것은 개별 의식체가 아니라 대령이다. 일체지향적 체험으로 얻는 정보들은 일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일체지향적 상태에서 정신의 무의식적 역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로프는 출산시 겪는 생명의 위협과 고통, 질식 등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 안에 엄청난 불안과 지독한 공격성을 축적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보고(報告)는 인간의 공격성, 광기, 살육의 만행 등이 어린 시절의 개인적 경험에서 기인한다는 심리학 및 정신의학자들의 진단을 무화시키기에 족하다.

정치나 군사 지도자들이 전쟁과 혁명기에 연설한 내용들과 전단 및 풍자 만화들이 일체지향적 세션을 통해 체험한 생물학적 탄생과 관련된 다채로운 이미지, 은유들과 겹친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로프는 공격성이 우리의 본성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한 본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장막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일체지향적 체험을 통한 진지한 내적 탐구는 공격성과 파괴 성향을 눈에 띄게 줄여주고 관용과 연민을 길러주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다른 종(種)에 대한 공감과 생태적 민감성도 크게 높여준다.

그로프는 물질 우주가 기계적 구조물이 아니라 절대 의식이 창조한 가상 현실이자 무한히 복잡한 경험들이 빚어내는 춤이라는 통찰은 우리에게 어떤 실질적인 결론을 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절대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존재와 분화되지 않은 일체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대안(代案)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우주적 힘의 거대한 충돌 속에 태풍의 눈처럼 평화로운 차원이 존재할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서로 대립하는 힘들로 짜인 우주라는 직물 속에서 만족에 이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로프가 제시하는 것은 집단 무의식에서 길어올린 깊은 지혜와 물질계의 실용적 지식이 빚어낸 창조적 결합에 근거한 내적 탐구이다,

그로프는 진화론자들이 전제하는 맹목적인 물리력보다 신성한 존재에 의한 창조가 덜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그로프에 의하면 진화론자들은 생명이 어떻게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과학은 물질의 작용으로 의식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밑그림을 타당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의식을 뇌라는 물질의 산물로 보는 것은 TV 프로그램을 TV 수상기의 산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TV 수상기는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방송 내용을 전달할 뿐이다. 인간의 의식은 뇌가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해낸다.

그로프는 과학과 과학주의, 종교와 영성의 구분을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학은 영적 차원을 인정하지 않지만 영적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프는 초월적 세계를 깊이 체험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유물론적 과학관에 동의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신의학에서도 시행되었던 일체지향적 체험은 프로이트에 의해 담화(談話)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로프는 일체지향적 체험론이 과학의 발견이 아닌 그 발견에서 부적절하게 추론된 철학적 결론들과 모순된다고 말한다. 켄 윌버가 ’코스믹 게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을 했다는 사실은 흥미와 궁금증을 자아낸다.‘코스믹 게임‘에 대한 윌버의 날카로눈 공격이 특정 책에 담긴 것은 아니다. 후에 ’코스믹 게임‘에 실린 내용들에 대한 공격이 미국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를 통해 발표되어 논박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로프는 윌버의 비판을 매우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나의 다음 리뷰는 윌버의 책에 대한 리뷰가 될 것이다. 윌버가 그로프의 견해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이 특정 책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윌버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쟁점이 부각될 것이라 생각한다. ’코스믹 게임‘은 내가 읽은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그로프의 책이다. 지난 해 1월 81세 생일을 맞은 그로프는 ’Healing Our Deepest Wounds: The Holotropic Paradigm Shift‘라는 책을 출간했다.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조만간 이뤄지지 않는다면 원본을 읽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체지향적 체험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에는 논의도 미미하고 방법론 등 여러 면에서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기에 그로프의 견해는 참조점 이상은 아닌 것이 아쉽다.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그로프 박사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