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작가 베빌라쿠아의 의문의 죽음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분적 진실, 기억과 관점의 제한성 또는 불완전성을 다룬 알베르토 망구엘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테라디요스라는 프랑스인 기자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만난 네명의 인물이 화자로 등장한다. 고인의 친구인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 아내 그라시엘라의 죽음으로 새로 만난 애인인 안드레아,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쿠바인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일명 돼지), 베빌라쿠아의 적(敵) 고로스티사 등등... 투신으로 죽음을 택한 베빌라쿠아에 대해 망구엘은 그의 추억들을 토대로 하나의 새로운 전기(傳記)를 만들려는 것은 쓸데없는 시도라며 테라디요스에게 단념을 권한다.(14 페이지).

 

 

우리는‘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를 보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어가 가진 문제와 인간의 분열성을 말해야 할까? 인간은 언어를 매개로 사유한다. 그런데 언어는 비유적 속성과 모호성을 지녔기에 실체를 정확히 지칭할 수 없다. 그런 언어로 사유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보는 한 진실은 담보할 수 없는 것일까? 본문에는 베빌라쿠아가 짰다가 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던 이야기라는 구절이 나온다.(23 페이지) 인간의 언어도 이처럼 짜였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한 끝에 나오는 구성물이다. 더구나 기억은 시간에 따라 왜곡, 변형되기 마련이다.(망구엘 역시 기억의 착종 또는 혼선을 이야기했다: 22 페이지)

 

 

네 명의 화자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나름으로는 각자의 진실된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베빌라쿠아에 대한 상대적 좌표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기에 전체적으로 실체는 미궁에 빠졌다고 해야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또는 앞서 말했듯 베빌라쿠아에 대한 상대적 좌표에 따라 진실을 다르게 볼 수 밖에 없음을 말한 소설이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다. 같은 물이라도 천상의 사람이 보면 유리로 장식된 보배로 보이고, 인간이 보면 마시는 물로 보이며, 물고기가 보면 사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가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일수사견을 생각하게 한다.

 

 

망구엘은 자신에게 드러난 베빌라쿠아의 삶이란 일종의 삶의 밑그림, 단장(斷章)들의 발췌본, 미완성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그를 우유부단하고 모호하고 무능력한 인물로 묘사한다.(92, 93 페이지) 베빌라쿠아가 자살한 것은 실제 주인은 따로 있는 ‘거짓말 예찬’이라는 원고가 안드레아에 의해 출판업자인 우르키에타에게 넘겨진 이후이다. 망구엘은“베빌라쿠아는 누구였던가? 분명하면서도 흐릿하고 환하면서도 어두운 이 모순적인 인물은 대체 누구였단 말인가?“란 말을 한다.

 

 

두 번째 화자인 안드레아는 베빌라쿠아를 천재적이고 매력적인 작가, 영악함도 갖춘 남자로 묘사한다. 안드레아가 베빌라쿠아가 소유하고 있었던 원고를 우르키에타에게 넘긴 것은 출판이 베빌라쿠아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테라디요스에게 진술을 마친 안드레아는“나중에 진실이 다르게 판명된다 해도 나로서는 전혀 상관없어. 테라디요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써, 그럼 시간이 말해줄 거야.”란 말을 한다. 세 번째 화자인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일명 돼지)는 베빌라쿠아를 이제는 사라진 순수했던 시절에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부르던 그런 사람이었다고 평한다.(231 페이지) 네 번째 화자인 고로스티사(이미 죽은 인물인 고로스티사는 유령이 되어 테라디요소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과거를 회고한다.)는 베빌라쿠아를 순결한 모습을 한 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비열한 남자로 그려낸다. 그에 따르면‘거짓말 예찬’은 볼품 없고 꾸밈이 많고 젠체하는, 특색 없는 책이다.

 

 

네 명의 화자로부터 이렇듯 상반되고 배치(背馳)되는 진술을 들은 테라디요스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어떤 것이 우리를 반영하고 또 어떤 것이 우리를 왜곡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베빌라쿠아에 대한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결심을 밝힌다. 테라디요스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통일된 이론이 양립불가능 하듯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론을 제안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자주 하는 비유이다.) 언어가 실체를 지칭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많은 말을 하는 해체비평가들처럼 망구엘은 베빌라쿠아에 대한 전기(傳記)를 만들려는 것은 쓸데없는 시도라는 말을 했으면서도 그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본질이 아닌 실존에, 객체가 아닌 사물을 보는 인간의 의식에 강조점을 두었다는 점에서‘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문제적이다.

 

 

그러나 진실은 포착 불가능하기에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인식 자체가 허구적이고 모순적이며 파편적인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거짓이 아니다. 테라디요스는 자신이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베빌라쿠아는 육신과 목소리와 존재를 얻고 베빌라쿠아의 독자, 기대에 찬 기록자인 자신(장 뤽 테라디요스)은 사라지게 된다는 말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망구엘이란 작가의 필력일 뿐인가?‘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이 밖에 여러 종교, 사상적 가치관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독재 정권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남긴 상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다른 역사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꼽히는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망구엘의 문학적 성향(포스트모더니스트인지 아닌지)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봉착한 아포리아는 다른 기회를 통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문제작(명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에게,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