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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커즈(crackers: 괴짜, 정신 사나운 사람)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대기만성형의 인물. 평생 열렬히 무신론을 유지했던 사람. 자신만만했던 회의주의자. 과학 때문에 신앙심을 잃었다는 사람. 물리학을 전공한 뒤 생물학으로 전향한 사람. 생물학을 양자적(量子的)으로 해석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물학에 뛰어 들어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 - )과 함께 DNA의 2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사람. 이상은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 - 2004)의 프로필이다.

'프랜시스 크릭‘은 ’붉은 여왕‘, ’본성과 양육‘ 등을 쓴 과학 저술가겸 과학자인 매트 리들리(Matt Ridley)가 쓴 프랜시스 크릭의 전기(傳記)이다. 프랜시스 크릭처럼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향한 사람으로 들 수 있는 사람은 ’0.1퍼센트의 차이‘를 쓴 베르트랑 조르당이다. 프랜시스 크릭은 노샘프턴 그래머 스쿨 재학 중이던 15세때 닐스 보어의 양자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주기율표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후에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에게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그것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한 이야기였다.

크릭과 왓슨이 발견한 DNA의 구조도 양자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양자론에서 에너지는 불연속적이다. 즉 양자 도약(quantum jump)을 하는데 낮은 에너지를 가져 안정적인 DNA 같은 유전 분자에 X선과 같은 강한 에너지를 쏘면 DNA의 구조가 바뀌어 돌연변이가 생긴다. 이런 설명이 바로 DNA의 구조를 양자론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크릭의 친구 가운데 수학자인 게오르그 크라이젤이 있었다. 크릭은 그로부터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매트 리들리는 크릭이 평범했기에 크게 성취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캐븐디시 연구소에서 일할 때 크릭은 이 얼마나 미친 듯한 탐구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었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크릭은 충격을 누그러 뜨릴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 제임스 왓슨은 1951년 9월 케임브리지에 도착해 프랜시스 크릭의 두번 째 아내인 오딜 크릭을 만났다. 그리고 3주 후에 캐븐디시에서 일하게 됨으로써 크릭을 만났다. 둘은 금방 의기투합했다. 왓슨 역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크릭과 왓슨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는 그 유명한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 - 1958)도 나온다. 뛰어난 X선 실험가이자 물리화학자인 로잘린드 프랭클린 이야기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매트 리들리는 프랭클린을 불행했다고 적었으며 프랭클린도 DNA가 나선형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의하면 1968년 왓슨이 출판한 ’이중나선’은 과학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두고 크릭조차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모리스 월킨스(Maurice Wilkins: 1916 - 2004)가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의 3차원 형태가 나타난 X선 사진의 결과를 몰래 복사해 가져갔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왓슨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마구 고동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크릭은 자서전인‘이 얼마나 미친 듯한 탐구인가(What Mad Pursuit: A Personal View of Scientific Discovery)에서 그 사진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후쿠오카 신이치는 그 말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모든 성과를 전부 기록한 상세 보고서를 작성해 영국의학연구소에 제출했고 이것이 peer viewer인 맥스 퍼디낸드 퍼루츠(Max Ferdinand Perutz: 1914 - 2002)에게 넘겨졌고 결국 크릭에게까지 넘겨졌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를 왓슨과 크릭이 교전국의 암호 해독표를 입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왓슨과 크릭의 업적은 즉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저자인 매트 리들리는 프랭클린의 불행은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도착하지 못한 게 아니라 1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크릭과 왓슨이 억세게 운이 좋았다. 그들은 아치에 쐐기 돌을 박아 넣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남의 십자말 풀이에서 최후의 단서를 알아낼 위치에 있었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크릭이 말년으로 갈수록 2중 나선의 발견자가 아니라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고 전하면서 크릭이 과학자는 반드시 최초의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발견자가 아니라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과, 과학자는 반드시 최초의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모순되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2중 나선이 크릭을 만들었다면 크릭이 유전 부호를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다. 7장 브레너편에 소개된 ’크릭의 논문 단백질 합성에 관하여’는 크릭의 천재적 직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물론 크릭도 실수는 했다. DNA가 RNA를 만들고 RNA가 단백질을 만든다는 중심 원리(central dogma)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크릭이라는 주장은 맞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 크릭이 성실하고 깔끔하게 직접 실험을 했고 모든 절차를 계획하고 모든 결과를 깔끔하게 기록했다는 말은 다소 의외이다.

8장 삼중 부호와 교회편은 크릭의 기독교 또는 교회 혐오가 잘 드러난 장이다. 과학 때문에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고 하지만 크릭의 태도는 환원주의적일 뿐이다. 환원주의적이라는 말을 범박하게 말하자면 편협되다는 말 정도가 될 것이다. 크릭은“최근 분자생물학은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을 사실상 지웠다. 세속의 종교들이 말하는 단순한 우화는 이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며 나는 기독교 신앙을 존중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스꽝스럽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종교적 감사기도를 대신할 새 기도문도 만들었다.‘오늘 이 자리에서 노동을 통해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동포 인류를 기억합시다.’라는...하지만 저자는 크릭의 인본주의가 크릭이 비판해 마지 않는 종교와 닮았다는 말을 한다.

크릭은 1963년 왜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 뿐 아니라 유전적 적합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의 출산을 억제하기 위해 곧 모종의 출산허가제나 세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크릭은 유전자 결정론과 지능 및 인종 논쟁에 지속적으로 살짝살짝 발을 담갔다고 한다. 크릭은 부족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쓸데 없이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임화를 해답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상당히 실망스러을 뿐이다. 크릭은 생물학적 환원주의자이고 유전자 결정론자이다. 크릭은 수정란에서 배아(胚芽)가 자라는 발생 과정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1971년 9월에는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을 주제로 한 학회에 참석했다.

크릭은 이런 말을 했다.“자연은 두 가지 언어를 고안했다. 하나는 복제에 알맞은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발현에 알맞은 언어이다. 자연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쓸 극도로 복잡한 기구를 고안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유전 부호이다.” 크릭은 우리의 공통 선조는 지구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우주에서 지구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일부러 지구로 보낸 것이라는 말이다. 크릭은 전방위적이었지만 너무 진지한 것이 결점으로 작용한 사람으로 기억될 만하다. 크릭은 평생 뇌에 관해 생각했다고 한다. 의식에 큰 관심을 지닌 크릭이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를 만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서 증례들을 듣고 온갖 가설들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크릭은‘놀라운 가설’이란 책에서 의식은 일부 뉴런들의 성질 그 자체라는 주장을 했다.(매트 리들리가 말했듯 누가 환원주의자가 아니랄까봐란 말을 하고 싶다.) 2001년 4월 전화 통화를 통해 결장암 진단을 통보 받은 크릭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1분쯤 허공을 응시하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의 질병은 우주의 한 가지 사실일 뿐이었다는 말을 했다. 독서를 따분하지 않게 한 리들리의 글솜씨는 높이 살만하다.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크릭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따라가는 재미가 컸다. 과학자들의 전기를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이 리들리의 공이라면 공이다. 유익한 독서였음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