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인들은 누구나 분열된 존재들이다. 점차 심화해가는 자본주의 경쟁 체제하에서 순수함을 유지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듯 하다. 조작된 욕망과 거짓 욕망의 주체이며 전통과 근대, 탈근대적 요소가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삶의 양태는 말 그대로 분열적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엄마는 괴로워’를 읽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엄마들이 자녀들을 자본주의 경쟁에서 앞서가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과, 자녀들의 고유한 세계를 인정하고 보살펴야 하는 당위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내가 처한 여건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학부모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의 삼촌으로서 공부에 짓눌릴 아이의 미래를 염려했지만 엄마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한 것이다. 평소 교육학이나 자녀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다가 몇 권의 관련 책을 읽고 선물을 하기도 했다. 조카를 계기로 아이 엄마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그 어려움이란 자녀교육의 몫이 엄마들에게 집중되는 현실 속에서 경쟁에 충실할 것인지 보살핌과 소통에 충실할 것인지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엄마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은 어려움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엄마는 괴로워’를 선택한 것은 여성학을 전공한 학부모(엄마) 저자의 지혜를 배우고 싶어서였고 아이의 신통치 못한 성적 앞에서 성적 올리기에 매달리기보다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를 연구하는 쪽을 택한 저자로부터 설득력 있는 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여성학에 호의적인 입장에서 저자가 어떤 책들을 참고했는지도 궁금했다. 부르디외, 가라타니 고진, 쥴리아 크리스테바, 낸시 폴브레 등의 전문가들과 기호이론, 신자유주의, 젠더이론, 아비투스 이론, 가부장제, 가치이론 등 전문적 개념들이 녹아든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아비투스란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안한 것으로 사회구조와 인간의 행위성을 매개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개인적 선택이나 취향으로 보는 행동들이 사실은 무의식에 반영된 사회구조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슴‘의 저자인 낸시 폴브레를 간접적으로마나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유쾌함과 행운은 진보에 대한 믿음이 증가한 근대 사회에서 사람마저 조작과 제조의 대상이 된 현실로 인해 빛이 바랜 우울한 유쾌함이었고 우울한 행운이었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채근(採根)이 엄마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이지만 순수하게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배적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비투스 개념 하나만으로도 아이와 엄마 사이의 역동적인 또는 복합적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괴로워‘에는 엄마가 맞닥뜨리거나 만들어내는 여러 문제가 망라되어 있다. 물론 맞닥뜨리는 문제가 압도적이다.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비생산적이라는 인식에 힘을 잃고 젠더 구조의 강제력에 좌우되어 일과 아이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아이를 택한 것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관리하는 엄마 vs 보살피는 엄마 사이에서, 그리고 투자냐 사랑이냐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 문제적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엄마는 괴로워’에 나오는 엄마들은 하나 같이 저자와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분들 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분은 건축사 출신의 다희氏였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킨 다희씨는 아이는 독립된 개체이지 자신의 종속물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아이는 엄마의 분신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더 많은 엄마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기적인 욕심으로 변질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사회적 배치를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들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산성의 의미를 생명과 사랑을 포함하는 것으로 개정해나가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물론 사회의 여러 분야가 함께 어우러져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에 힘이 붙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