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주된 이유는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식도 배우고 관점(觀點)도 배우고 생각하는 방식과 책을 대하는 자세 등을 두루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움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런데 그 유익한 책 읽기에도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나 관점과 습관 등을 확인하는 데서 별로 나아가지 않는 읽기이다. 그것은 시야를 한정하고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대하며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권희정 님은 허두(虛頭)부터 남다른 공감을 하게 한다. 바로 고전(古典)을 통해 만난 선현(先賢)의 마음을 유추하고 짐작하는 데까지 나아간 읽기 내공(內攻)을 선보인 것이다. 그런 방식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저자의 능력은 어쩌면 내공보다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공감 능력 역시 다르게 보는 능력으로 환원(還元)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로버트 아우만(Robert Aumann) 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협조적 게임이론으로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정답과 달라도 상식 밖의 질문을 반기고, 정답이어도 상식 수준의 질문엔 질색한다고 한다. 뻔한 정답보다 색다른 오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보기 차원으로 논할 수 있는 개념은 니체가 발전시킨 관점주의이다. 니체는 세상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가공하고 고정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주장을 한 니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다르게 보기, 유연하게 사고하기 등이다. 권희정 님의 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결여(缺如)된 읽기는 설령 그것이 원전이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읽는 나만의 고유한 눈을 지녀야 한다는 점도 권희정 님으로부터 배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을 읽는 나만의 고유한 눈을 색다른 오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설령 자신의 고유한 눈이 색다른 오답일지라도 절차(切磋)와 조련(調練)을 거쳐 정답에 수렴하는 색다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고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살지는 않았다. 재작년 가을 열 명 남짓한 블로거들이 참여해 서울대 선정 고전 200편 가운데에서 자유롭게 읽고 리뷰를 써서 책으로 내자는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박제가의‘열하일기‘, 릴케의’말테의 수기‘,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헷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루소의 ’사회계약론‘,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홍대용의 ’의산문답‘ , 그리고 권희정 님의 책에도 나오는 박제가의 ’북학의‘,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등을 읽었다. 예정일을 많이 넘겼음에도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고전을 진지하게 읽은 것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두 번쯤 있기 마련인 고전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권희정 님은 36권의 고전을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다(’도둑맞은 미래‘, ’문명의 붕괴’등 수록),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국화와 칼’,‘이타적 유전자’등 수록), 문명은 진보하고 있는가?(‘창조자들’,‘객관성의 칼날’등 수록), 정치가 인간 사회를 바르게 이끌 수 있을까?(‘감시와 처벌’,‘유토피아’등 수록), 올바르게 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찾아서(‘니코마코스 윤리학’,‘장자’등 수록), 충돌인가, 공존인가(‘오리엔탈리즘’,‘야생의 사고’등 수록) 등의 여섯 챕터로 나누어 리뷰로 소개했다. 첫 번째 챕터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한 선구자적 인물들의 가치이다. 각각 과학적 엄밀함, 새로운 관점, 연구 태도, 관계적 사고 등 면에서 돋보이는 그들은 인간과 지구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진 분들이다. 특별히“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될 수도 창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챕터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는 인류 기원 및 정체성, 상대주의적 생활양식 등이 다루어진 흥미로운 챕터이다. 이 가운데 루스 베네딕트의‘국화와 칼’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베네딕트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쓴 이 책은 당사자들(일본 국민들, 일본을 방문했던 학자들) 이상으로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하는 예이다. 요한 하위징아의‘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대부분의 책들이 인간과 동물들의 차이를 밝히는 데서 출발한 것과 달리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아우른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설명에 따르면 놀이하는 인간은 질서를 따르며 질서를 창조한다고 한다. 하위징아가 말했듯 질서는 율동과 조화를 특징으로 갖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책 읽기는 나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에 대한 내적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유희(遊戱)이다. 하위징아는 놀이는 일상 생활에서 간주곡처럼 나타나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질서 잡힌 형식을 창조하려는 충동을 예술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세 번째 챕터에 나오는 사람들은 지적(知的) 거인들이다. 특히 ’객관성의 칼날‘을 쓴 찰스 길리스피는 인상적이다. 그는 진리만을 탐구하는 분석적 과학 철학의 형식주의와, 과학의 정치 사회적 배경만을 강조하는 사회 구성주의의 양 극단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객관성이란 기준점을 제시했다. 한편 나는 예전에 읽어 알고 있었지만 출처를 기억하지 못해 찾아 헤매던 ’천문학이 최초의 과학이 된 이유‘를 권희정 님 덕에 찾아냈다. 행운이라면 행운인 셈이다. 길리스피에 의하면 천문학이 가장 먼저 탁월한 학문이 된 것은 별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우울한 무의식에 주목했다면 ’존재의 심리학‘의 저자인 아브라함 매슬로는 건강하고 조화로운 인간적 특성에 주목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철학적 저서로 분류되어도 좋을 ’감시와 처벌‘을 쓴 푸코는 개성적이고 남다른 시각을 지닌 여러 학자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권희정 님은 푸코를“독특한 발상과 시각으로 기존의 사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대중에게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전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라 소개했다. 다섯 번째 챕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근본적인 생각 거리를 안겨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얻는 방법으로 이성(理性)에 따르는 덕(德) 있는 활동을 (할 것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덕은 인간의 기능을 가장 좋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형식주의와 구성주의라는 과학의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객관성이란 기준점을 제시한 찰스 길리스피의 문제의식과 (개인 심성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의식을 연결시켜 글을 써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섯 번재 챕터인 충돌인가, 공존인가에서 내 주의를 가장 많이 끈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는 독일 출신의 화가 한스 홀바인의 ’사절(使節)들‘이라는 그림이 언급되었다. 권희정 님은 이 그림에 나오는 오스만 풍의 양탄자가 당대 서양의 동방 취미를 나타낸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 그림에서 탁자 위의 항해용 도구들에 주목하고 길드로 조직되었던 다양한 작업장이 확장되어 실험실 같은 작업장을 포함하게 된 거대한 변화를 읽어냈다. 관점에 따라 다른 부분을 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사례가 한 대상에서 다른 곳에 주목한 차이가 낳은 결과라면 ’객관성의 칼날’을 통해 밝혀진 낭만주의와 과학의 다름은 한 분야에 의해 밀려난 다른 분야 사이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설명에 따르면 과학에서 밀려난 낭만주의는 내면 세계를 강조하는 예술에서 꽃을 피웠다. 요한 하위징아가 예술의 출발점을 질서 잡힌 형식을 창조하려는 충동으로 본 것과 달리 아르놀트 하우저는 예술은 주술적(呪術的)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두 경우 모두 옳겠지만 관건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권희정 님은 철학의 생명력과 고전의 위력에 대해 언급한다. 철학의 생명력이 확보되는 것은 시대의 고민을 해결할 처방전을 내놓을 때 (285 페이지)이고 고전의 위력이 증폭되는 것은 되새기고 곱씹을 때라는 것이다.(288 페이지) 잊지 말아야 할 진단이고 처방전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고전명작을 누구나 이미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이 없는 책이라고 정의했지만‘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고전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흥미롭고, 원전 읽기의 동인(動因)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