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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함께 사유하기라는 과제가 그렇듯 우울할 때 니체를 읽고 도움을 얻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책 말미에 배치한 니체의 생애라는 글에서“그(니체)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 것은 독일어로 쓴 산문, 분절되고 색조(色調) 있고 선율이 아름답고 장난기 있는 산문.”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니체를 음악가로 보는 시각은 니체를 불교와 연관성이 있는 철학자로 보고 싶은 마음을 부추긴다. 우선 부정적인 시각: 최근 나온 ’붓다와 희생양‘이란 책은 니체의 불교관을 문제삼으며 불교의 무(無)에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있으며(205 페이지) 니체의 군주도덕으로 분류되는 불교는 많은 경우 제국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206 페이지)는 말을 했다.

긍정적인 시각; ’유럽의 붓다 니체‘에서 저자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는 니체 사상과 선불교(禪佛敎)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니체의 철학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다분히 함유하고 있거니와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가 본 니체와 선종(禪宗)은 순응주의에 대한 거부, 지성보다는 직관을, 진리보다는 가상과 예술을 더 선호한 것 등을 통해 유사성을 보인다. 극단적 대비가 문제로 부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부정적 유사성이든 긍정적 유사성이든 유사하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는 읽는 이의 몫이다. 니체 자체가 상당한 이슈 메이커이고 다의적(多義的) 철학자임을 감안하자.

니체의 사상에 근거해 제시한 것이지만 발타자르 토마스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이해하고, 작용하고, 전망하는 도식을 선보인다. 이는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불교의 4성제(聖諦)를 연상하게 한다. 고, 집, 멸, 도는 발병, 진단, 처방, 치유로 바꿔 부를 수 있는 개념어들이다. 한편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우울증이나 여타의 정신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길어 올리는 것은 불교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얻어내는 것과 닮았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진단하고 치료하고자 했다. 그런 그가 가르친 사상 중 하나는 고통과 쾌락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67 페이지) 에드워드 콘즈의 ’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를 보자. 콘즈는 이 책에서 불교를 심리학적 성향을 지닌 변증법적 실용주의로 규정했다. 이 책에서 콘즈는 쾌락은 모종의 조바심과 끈이 맺어져 있다는 말을 하며 불교도들은 그런 상황을 되짚어 오는 고통이라 부른다는 말을 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우울할 땐 니체‘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일들,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부여하는 의미까지 바꿀 수 있도록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위대한 철학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말을 한다. 진리와 이론이 아닌 일상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성과 실천적 성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가“오직 해석된 사실만이 존재할 따름“(’유고(遺稿)‘)이라 말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세계는 의미와 분리될 수 없으며 세계에는 의미가 무한히 넘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카오스(chaos)가 무질서(無秩序)가 아닌 무한 질서(無限秩序)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연상하게 하는 ’의미가 무한히 넘친다‘는 말은 니체가 허무(虛無)와 부정(否定)의 철학자가 아님을 알게 한다. 이런 사정은 불교가 니힐리스트의 종교가 아니라는 해석을 인용하게 한다.

일지(一指) 스님에 의하면 인간의 불안과 위기에 관한 불교의 통찰은 너무 치열(熾烈)하고 명료(明瞭)하기 때문에 니힐리즘이라 하기에는 너무 래디컬하며 붓다는 인간의 삶을 감동적으로 찬미하기까지 했다. 붓다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며 인간의 삶은 감미로운 것이라 말했다. 일지 스님은 붓다가 사성제의 설법에서 전개한 고(苦)의 진리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직시하라는 하나의 실천적 요청이었다고 말한다. 불안과 위기가 인생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다.(일지 스님 지음 ’붓다 해석 실천‘ 86, 87 페이지) 이 부분은 니체의 운명과 숙명의 사랑인 아모르 파티(amor fati: ’우울할 땐 니체‘168 페이지)를 연상하게 한다. 불교 학자 베르나르 포르 역시 불교는 모든 것이 無常(무상)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발타자르 토마스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니체가 공산주의의 유토피아나 기독교의 천국 등 이상(理想)을 설정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불교학자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는 붓다가 형이상학의 이론이 전혀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선험의 추론에 근거하며, 형이상학자들이 직접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식의 대상은 응당 어떠해야 한다고 미리 결정하려 한다는 요지로 형이상학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붓다는 무엇을 말했나‘ 226, 227 페이지) 전도(顚倒)된 인식 즉 노예의 도덕을 비판한 니체의 지혜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볼 것을 의미하는 불교의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상응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짚고 넘어가기 코너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종교적이건, 감정적이건 당신이 키우고 찬미하고 따르고 있는 이상(理想)이 있는가? 당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상은 당신이 현실을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가? 혹은 현실을 더 부정하게 만드는가? 당신은 이상으로 현실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이상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이상으로 당신에게 복수하려 하는가?”(113 페이지) 일지 스님이 말한 래디컬함을 연상하게 하는 이 질문은“고통(苦)은 그 자신에게 기인하는가? 고통은 다른 것에서 기인하는가? 고통은 자신과 다른 것 모두에서 기인하는가, 고통은 자신과 다른 어떤 것에서도 기인하지 않는가?”란 붓다의 질문과 형식면에서 상당히 닮았다.

발타자르 토마스는“삶을 긍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니체의 운명애에 대해 설명을 더한다. 이 부분에 관해 이 세상이 아름답고 감미롭다는 붓다의 언설(言說)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특정 감정이 일어나는 조건을 분석, 관찰함으로써 비로소 그 같은 감정의 세계는 유위제법(有爲諸法)에 의해 조작된 세계로서, 항구적이지 않고 실체적인 것도 아니기에 진실로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판단(慧)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지적(권오민 지음 ’아비달마 불교‘ 80 페이지)을 통해 효과적이고 지혜로운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붓다의 견해는“모든 추한 것에 대한 아니오가 아니라 모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예에 뿌리를 두는 긍정의 윤리를 창출”한 니체의 역할(’우울할 땐 니체‘ 111 페이지)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니체는 파괴 없이는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부정(否定)과 마찬가지로 수동성도 비난하지 않았다.(174 페이지)

발타자르 토마스는 수치스럽고 비열한 부정을 숨기고 있는 긍정도 있음을 주지시킨다.(175 페이지) 인도철학자 이거룡은 ’아름다운 파괴‘에서 파괴를 생명이 거듭나는 비밀이라 말한 바 있다. 이거룡에 의하면 인도인들은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林捿期), 유행기(遊行期)등 삶의 네 단계를 설정했다. 그들은 체념을 초월로 통하는 길목으로 보았거니와 무조건적인 체념이 아닌 가능한 것을 포기하는 체념으로 보았다. 파괴, 부정, 포기의 의미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하나로 수렴하는 모습이 보인다. 석가모니 붓다의 출가(出家)를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이라 칭한 서양 불교학자들의 명명(命名)을 기억하자.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철학자를“끊임없이 특별한 일들을 체험하고, 보고, 듣고, 불신하고, 희망하고 꿈꾸는 사람”이며“번개 같은 생각을 잉태하는 뇌우(雷雨)”이며“숙명적으로 주위에 쿵쾅거리고 우르렁대고 철썩이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만드는 인간”으로 보았다.(하인츠 슐라퍼 지음 ’니체의 문체‘ 171 페이지에서 재인용)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니체는 중도적(中道的)이다. 심리학자 루네 요한슨은“모든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한 극단(極端)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이다. 여래(如來: 여래는 붓다의 열 가지 호칭 중 하나이다.)는 그 어느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말로 중도를 말한다.(’불교 심리학‘ 36 페이지) 발타자르 토마스는“종교는 우리에게 현실은 일시적인 가상(假象)에 불과한 반면 순전히 허구적인 세계가 절대적 진리라고 가르친다. 종교적 거짓은 현실의 체계적 전도(顚倒)에 의해 성립한다.”고 말한다.(269 페이지) 그런데 불교는 현실을 일시적인 가상이라 가르치지 않는다. 아니 바른 불교적 가르침은 현실이 일시적인 가상이라 말하지 않으며, 허구의 세계를 절대적 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의 환영론(幻影論)은 고절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의미가 항상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라면 거짓, 오류, 환상은 인간 활동의 일부를 이룬다. 삶을 그럴 때에만 의미작용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271 페이지) 이는 깨달음이 현실을 떠난 별도의 차원에 있지 않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비교할 여지를 준다. 불교는 우주의 기원과 범위, 영혼 또는 자아의 본성, 성자(聖者)의 사후 상태에 속하는 질문을 형이상학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는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의 말(’붓다는 무엇을 말했나‘231 페이지)을 되짚어 보자. 붓다는 ”이 세상에서 격정에 사로잡혀, 해방되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빠진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흐르는 강물처럼 거듭해서 태어나고 늙어갈 수 밖에 없구나“란 게송(偈頌)을 남겼다. 이는 ”니체에게 있어서 모든 반시대성은 금욕(禁慾)을 전제로 한다. 그에게 금욕은 정체성의 근본 조건“(’니체의 문체‘ 261 페이지)이라는 변학수 교수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칼루파하나는 ”영혼은 몸과 같은가?”,“영혼은 몸과 다른가?”란 두 질문이 모두 붓다에 의해 형이상학에 속하는 질문이라는 이유로 답변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칼루파하나는 요한슨(’불교 심리학‘의 저자)이 붓다가 아라한(초기불교의 수행자 가운데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 온갖 번뇌를 끊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바로 깨달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성자를 이른다. 붓다는 아라한이지만 아라한이 곧 붓다는 아니다.)의 사후(死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의 문제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붓다는 무엇을 말했나‘ 132, 133 페이지)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가 세계를 예술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9272 페이지) 이 말은 신선하다. 앞서 ’붓다와 희생양’의 저자가 불교의 무(無)에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는데 발타자르 토마스는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서 유래한 도취, 성적 환희, 자유분방, 음악의 리듬 등이 가져다주는 엑스터시라는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황홀의 경험은 쾌락과 고통이 근본적으로 통합된다는 니체의 직관을 입증해준다고 말한다.(276 페이지) 쾌락과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적 의미의 되짚어 오는 고통의 맥락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하나의 문제의식하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세계는 일시적인 겉모습에 불과하고 진정한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노래한다고 말한다.(288 페이지) 그런데 내가 이해한 불교는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불교에 자신감을 마련해주는 것은“오직 해석된 사실만이 존재할 따름“이라는 니체의 말이고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상기(上記)한 여러 저자들이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찬양했다. 발타자르 토마스에 의하면 영원회귀는 ”우리에게 마지막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가르치고 매번의 개별 행위는 비록 무의미하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되돌아옴을 가르친다.”(294 페이지)고 말한다. 그리고“나의 행위는 영원한 반복이라는 관념에 의해 무한정 증폭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고유한 보상이고 처벌”(295 페이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원회귀의 관념이“우리에게 창의적 존재가 되라고 강요하는 채찍처럼 작용한다.”(295 페이지)는 사실이다.“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296 페이지)이고 ”영원회귀의 관념은 우리를 시간과 화해하게 한다.“(297 페이지) 니체는 ”존재의 특성에서 생성(生成)을 포착하기“를 ”최고의 힘을 향한 의지.“(’유고(遺稿)‘)라고 규정했다.(298 페이지) 그런 한편 니체는 ”나는 내 인생이 반복하길 원하지 않는다.”(’유고(遺稿)‘)는 말을 했다.(303 페이지) 발타자르 토마스는 이를 전하며“우리는 아직 영원회귀의 시험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303 페이지) 발타자르 토마스는“니체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인간은 자기 현실에서 도망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현실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초함을 보이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306 페이지)

앞서 니체 자체가 상당한 이슈 메이커이고 다의적(多義的) 철학자라는 말을 했지만 발타자르 토마스는“자주 그렇듯이 니체는 자기 철학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요동(搖動)을 통해 자신의 과도함을 깨닫고 자신이 말한 지적 성실성에 의해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재차 질문하기를 요구하는 정직함을 드러낸다.”(313 페이지)고 말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니체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그가 이 책의 인용문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니체를 버리고 우리 자신을 찾을 시간이 되었다.”(315 페이지)고 말한다. 인용문이란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에서 말한 다음의 구절이다.“당신은 아직도 당신 자신을 찾지 못했다. 대신에 당신은 나를 발견했다. 믿는 자들은 모두 다 이렇게 된다. 그래서 믿음은 그토록 가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나를 버리고 당신을 찾으라고 명령한다. 당신이 나를 완전히 부인할 때 비로소 내가 되돌아올 것이다.”

니체의 주문(注文)은 말하는 주체가 자신이어서 붓다와 조사(祖師)를 극복하고 지양(止揚)하라는 선불교의 살불살조(殺佛殺祖)와 격이 다른 듯 하지만 그렇게 극복하고 지양하라는 대상 속에 말하는 주체인 스승 자신도 포함될 것이기에 무리가 없다. 김상환 교수가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에서 ”구조주의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가 역사의 무대로 함께 들어설 수 있는 장소를 열어놓았다. 그러나 거꾸고 말할 수도 있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는 그 무대의 급진성을 비로소 깨닫게 해준 주인공들“이라는 말로 제시한 니체를 통한 세계 이해는 니체를 창조적으로 응용한 한 모범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