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독문학) 박사 하인츠 슐라퍼의‘니체의 문체’는 니체 이해에 필요한 최적의 책이다. 문체는 문장이나 담화의 양식, 특정 작가에 고유한 표현상의 특징 등을 의미하는데 나는 지난 해 말 나온 김영민 교수의‘당신들의 기독교‘를 읽고 해당 책을 저자 특유의 스타일과 독특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는 책으로 규정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오히려 스타일과 문체에 대해 효과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김영민 교수가 ’지식인과 심층근대화’(1999년 출간)에서“학자라면 자신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 서구에서는 상식인 것이 왜 우리에게는 아직도 금기인가.”(30 페이지)란 말을 한 것을 감안하면 그의 책을 저자 특유의 스타일과 독특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는 책으로 규정한 것은 당사자에게는 찬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당신들의 기독교‘ 이전의 일이지만 김 교수에게“실질과 내용”보다는“문체와 어조(語調)”의 힘에 기대고 있다는 비판이 가해졌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해당 문제를 입체적으로 인식하도록 이끄는 면이 있다. 문체나 어조에 공을 들이는 것이 실질과 내용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해당 비판자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실은 독특한 문체와 어조를 불편해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해석학적(解釋學的)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의 선이해(先理解) 차원의 진술일 수 있지만 나는 문체는 내용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내용 이상의 실체라고 생각한다.(선이해가 있다는 말은 해석 대상에 대해 분석 이전부터 자기만의 관념이나 기준 등을 가진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의 ’니체의 문체‘ 읽기는 믿음을 확증하는 절차이다. 하지만 초점이 설득력을 보증하는 객관적 해명 여부에 두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저자인 하인츠 슐라퍼는 어떤 말을 하는가. 그는“니체의 견해가 아닌 그의 문체를 무엇보다 먼저 연구해 본다면 그의 의도를 왜곡할 일이 없을 것.”(22 페이지)이며“그저 문장을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체를 사용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그 글의 특별한 내용과 관계 없이 그가 충분한 정신과 주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21 페이지)고 말한다. 슐라퍼가 말하는 것은 내용과 분리해 문체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니체는“스타일 자체를 깊이 고민“했고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스타일의 가능성을 가“진  철학자이다.(고병권 지음‘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87, 388 페이지)한 철학자이다. 논문, 에세이, 시(詩), 희곡, 서평, 설교, 아포리즘 등 니체가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형식들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니체는 또한 혁명과 전쟁, 혁신과 파멸, 해방과 폭력 등 20 세기의 목소리를 감지해 그 시대상에 합당한 형식을 선보였다. 실제로 니체는‘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챕터인‘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에서 ”모든 글 중에서 나는 다만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나태한 자세로 독서하는 사람을 미워한다....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그 글이 읽히기를 바랄 뿐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 내가 만일 신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춤출 줄 아는 신뿐일 것.“(1992년 출간 홍신문화사 刊 사순옥 번역 47, 48, 49 페이지)이란 말을 했다.

춤이라는 말이 인상적인데 슐라퍼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니체는 자신의 문체를 ”춤“으로, ”모든 종류의 대칭인 유희.“로 표현했고 독자에 대해서는 ”텍스트에 몸을 맡겨야만“ 한다고 말했다.(40 페이지) 슐라퍼는 자신의 책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 니체의 문체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니체가 감춘 의도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그것은 텍스트에 담기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 비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생략한 것들, 불연속과 갭 등을 재발견하는 징후적 독해를 의미한다. 슐라퍼에 의하면 니체는 스타카토, 루바토, 리듬의 연속(이상 음악 용어) 등을 사용하는 데 능했고 쉼표, 느낌표, 마침표, 물음표, 콜론, 하이픈, 공란(空欄), 말없음표 등을 사용하는 데 의도적이었고 산문에 리듬, 울림, 이미지 등 시적 언어를 도입했다.

주목할 것은 니체도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서정시가 되어버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시(詩)에 대한 힐난을 거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니체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 대해 아직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슐라퍼는 물론 이 고백을 야심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슐라퍼는 니체의 의도는 문자에서 다시 소리가 울리도록 하는 시적, 음악적 의도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106 페이지) 니체는 생생한 순간이 지나고 대부분 저자가 고인이 된 이후에 글을 대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러나 결국은 자신을 위해 리듬, 운율, 시적 형식 등으로 글의 (일반적인) 약점을 보완했으니 현명한 사람이었다.

슐라퍼가 말했듯 니체의 모순적이고 비약적이고 대립적인 요소들은 응집력 있는 논문을 쓸 때 방해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 철학의 깊이가 아닌 문체적 표면을 고찰하려는 사람은 어떤 법칙을 발견할 것이다. 슐라퍼는 니체가 자신의 글을 행위라고 해석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행위는 말의 황홀경이라는 설명을 더한다. 니체는 동사의 미래형이 아직은 생각한 미래가 온다는 사실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미래 서술을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다.(217 페이지) 미래만이 나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미래만이 나의 것이라는 식으로 예언자의 확실성을 갖추어 말한 것이다. 슐라퍼에 의하면 문체에는 비판과 충고, 애호와 혐오만이 있을 뿐이고 문체는 문체 그 자체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고귀하다. 니체의 문체/ 스타일은 한 시대사조를 만들었다.(247 페이지)

또한 니체가 죽은 후 그의 문체와 고지(高地)라는 공간상을 사람들은 다른 개인들, 대상들, 강령들에 인용했다. 고트프리트 벤, 토마스 만 등은 ”독일 산문에 감수성, 예술적 경쾌함, 아름다움, 날카로움, 음악성, 리듬, 정열을 부여”한 니체로부터 받은 영향을 작품화한 대표적인 독일 작가들이다. ’니체의 문체‘가 니체의 문체를 집중 분석한 첫 책이 아닌가 싶거니와 지금껏 철학자들이나 문학가들이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실은 많이 알려졌지만 문체, 리듬적 요소, 감수성 등을 본받은 사상가, 문학인들이 집중 거론된 것은 진지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로부터 그렇게 영향을 받은 문인들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