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과 의사인 마종기 시인의‘제3 강의실’을 읽으면 시인이“내게 술을 가르쳐주고, 다시 그 속에서 시를 써주고, 종교를 준, 내 미래의 친구들이 누워 있는 곳”이라 표현한 곳이 인체해부실습장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내게 죽음에 대한 인상을 구체적으로 심어준 첫 문학 작품이다.‘제3 강의실’과 함께‘조용한 개선’에 실린‘임종’이란 시를 통해“해부학에서 자연스런 생명을 배웠다.”고 말한 시인은 임종을 finale가 아니라 규정했다.

‘제3 강의실’의 주요 어휘중 하나인 미래의 친구들이란 구절이 나에게는‘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의 저자인 셔윈 눌랜드(1930 - )가 무전제로 쓴 영혼이라는 단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전자만으로도 아무것도 아니라 말한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의 말에서 유전자를 육체로 바꾸어 본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목격한 여러 유형의 죽음으로부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의 상세한 과정을 알고 나면 죽음의 공포를 벗어버릴 수 있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임상적인 의미의 죽음은 심장, 혈류, 호흡, 뇌 기능 등이 모두 멈춘 상태이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집필 동기와 무관하게 내가‘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고른 동기는 죽음에 대한 사색 거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것은 인체의 신비와 그 메커니즘을 알려는 의도와도 통하는 바이다. 저자는 우리가 대결해야 할 상대는 죽음이 아니라 질병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책에는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여러 다양한 질병들이 등장한다. 사실 육체란 신비하고 오묘한, 물질 이상의 존재이다. 알츠하이머에 대한 장(章)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여러 유형의 죽음으로부터 충격을 받았다고 했지만 먹는 방법은 물론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몸이 처한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고 죽어간 알츠하이머 환자 필 위트닝은 가장 충격적인 죽음 과정을 보여준 환자이다. 기억을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임을 감안하면 그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알츠하이머 - 이 병명은 1906년 독일의 정신의학자겸 신경병리학 권위자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 는 암이나 에이즈로 인한 죽음, 심근경색류의 갑작스런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을 안겨 주는 병이다. 특히 정확한 발병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점은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저자는 평화로운 죽음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평화로운 죽음이라니...나 역시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주변을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임을 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병마의 전술에 익숙해진다면 불필요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감수성과 수사(修辭)로 병마를 말하는 저자의 설명 방식은 상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독자들을 병마에 익숙하게 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리라. 저자가 에이즈를 은유라 말한 것을 보고 수잔 손탁의‘은유로서의 질병’을 뒤적이다가“암은 세포를 증식시키지만 에이즈는 세포를 죽인다.”는 글을 발견했다. 암과 에이즈라는 가장 파괴적인 두 질병이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것이다.

한편 저자에 의하면 에이즈 바이러스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에 훨씬 더 민감한 인체 시스템을 교묘히 역이용해 자신의 단백질 외피를 탄수화물로 코팅해 면역 체계를 교란시킨다. 이는 비자기관용을 교묘하게 이용해 공격을 피하는 암을 연상하게 한다. 셔윈 눌랜드가 에이즈와 그 환자들에 대해 내린 규정은 에이즈 환자를 낙인찍지 말 것을 주장한 수잔 손탁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 나는 저자의 이런 태도야말로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라 생각한다. 그의 그런 면모는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그릇된 것인지 알면서도 차마 환자로 하여금 희망을 뺏을 수 없어서라는 식의 태도를 갖는 것은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한 데서도 나타난다. 그래야만 환자와 가족이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영적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인간의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의 사랑이 있다고 한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소개한다. 한편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며 영원히 이 땅에 살기 위한 통과 의례라 규정하며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태도로 생을 일궈나갈 것을 주장한 저자의 견해는 성직자 같은 느낌을 준다.(저자는 불가지론자임에도 유대교 회당에 계속 출석하는 종교인이다.)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다운 웰빙이란 효과적이고 참된 죽음을 준비하는 웰 다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인체의 메커니즘을 다룬 다양한 관련 책들을 참조하며 죽음에 대해 숙고해 보고 싶은 마음을 다지며 책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