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예린의‘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는 중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문자옥(文字獄)을 다룬 책이다. 문자옥은 권력과 글의 알력이 빚어낸 감옥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이 문인들을 억누르고 탄압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우리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꼽는다. 우리는‘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문자옥의 구도를 황제와 문인 또는 황제와 지식인 사이의 알력과 대결의 산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황제가 직접 문자옥 사건을 일으킨 경우도 있지만 신하들끼리 서로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황제를 움직여 정적을 제거하거나 고자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위를 하기도 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분서갱유(焚書坑儒)의 경우 진시황의 독자적 작품이 아니라 이사(李斯)라는 신하에 의해 건의된 사건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문인들은 본래 타협 할 줄 몰랐던 벽창호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오만(傲慢)하기도 했고 결함(缺陷)도 많았다.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해 경전이나 고전을 인용하기도 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거짓 글을 지어 황제에게 올리기도 했다.

 

물론 분서(焚書), 그리고 문인 탄압(彈壓)은 그 자체로 있어서는 안되는 불행한 사건이다. 조정(朝廷)은 상식과는 담을 쌓은 곳이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뛰어난 군자(君子)를 기용하고도 그들이 자신의 보좌를 노리지 않을까 의심하고 소인배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존재들이다.(118 페이지) 우리는 조선의 군왕이나 중국 역대의 황제들이 절대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알지만 오배(鰲拜)를 위시한 4명의 보정대신(輔政大臣)의 수중에 떨어진 강희제 치하의 청나라를 그린‘북경에서 점화된 천문학 논쟁’편에서 보듯 황제는 우명무실한 존재일 수도 있다.

 

최근‘시대를 뛰어넘는 권력의 법칙’이란 부제를 가진 책‘조선국왕 VS 중국황제’가 출간되었다. 법칙이라니 하는 말이지만 궁중이란 암투(暗鬪)와 파벌 다툼, 술수(術數)와 왜곡(歪曲), 조작(造作) 등이 법칙 같이 일어나던 곳이다. 즉 그것들은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였다. 궁중은 사리(私利)를 위해 사람을 해치고 모함(謀陷)하고 역사를 날조(捏造)하고 왜곡(歪曲)하던 곳이었다. 뒤틀리고 사악한 욕망이 횡행(橫行)하던 곳이었다. 직접 진두에 서서 말도 안되는 억지 논리와 꼬투리로 수많은 문인들과 조정 신하들을 죽이고 해치는 등 공포정치를 구사한 대표적인 황제는 명나라 개국조인 주원장이다. 그는 출신과 학벌에 대한 열등감에 기반한 어설픈 지식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역사를 입맛대로 요리했다는 평가를 받은 남송의 진회(秦檜)는 대표적인 간신(奸臣)이다. 일신의 영달이 아닌 대의를 위해 간언하고 충언했던 구양수(歐陽脩) 같은 문인은 의로운 문인의 예를 직접 보여준 경우이다. 오대시안(烏臺試案: 시안이란 詩가 빌미가 되어 죄를 받는 것을 말한다.) 사건 이후 정객들 사이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나 장애물 제거를 위해 사실 왜곡과 날조가 당연하게 벌어졌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최근 출간된 이덕일의‘조선 왕을 말하다’가 생각난다. 이 책에 의하면 조(祖)나 종(宗)이 아닌 군(君)으로 불리는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대파에 의해 정도 이상으로 왜곡된 채 알려진 억울한 임금이다. 중국 역사도 왜곡과 날조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문인들은 때로 강직한 기개로 죽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황제에게 상소하거나 의리를 따라 기꺼이 죽음을 감수했다. 하지만 억울하게 좌천당한 범중엄을 보고 구양수 홀로 분투했던 예에서 보듯 침묵하는 다수(多數)를 이루기도 했다. 반면 노래가 된 황제의 사랑이라는 장에서 보듯 황제 역시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던 존재였다. 나에게‘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권력과 글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권모술수(權謀術數)와 비열한 욕망, 암투와 죽음으로 물든 파란의 역사, 그리고 시서(詩書)의 힘이다. 신(神) 중심주의와 인간(人間) 중심주의가 그리 다를 것 없는 단일성과 전체성으로 규정 가능한 중심주의(상탈 무페,‘정치적인 것의 귀환’)인 것처럼 권력과 글 또는 황제와 문인의 대결 역시 별 다를 것 없는 구도로 보인다.

 

더욱이 자신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구족(九族), 권속(眷屬), 문하생(門下生), 옛 친구에 이르기까지 무려 173명”이 처형되는 데도 굽히지 않았던 방효유를 보면 선왕(先王)을 지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懷疑)스러울 뿐이다.“전통 사회에서 문사-관료(文士-官僚)들이나 사대부(士大夫)들, 선비들이 거대화한 구조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한 그 구조는 하늘 아래 우뚝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이정우 교수,‘인간의 얼굴’277 페이지)는 말을 기억하자.

 

이정우 교수는 중국 역사의 한 자락을 형성했던‘삼국지’의 수많은 영웅담들을 논하며 결국 짓밟히고 죽은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이었으며‘삼국지’의 수많은 영웅담들은 그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서 발생한 거품들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인간의 얼굴’279 페이지) 영웅담이라는 말을 의로운 일화(逸話)라는 말로 고쳐도 거품들이라 불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문자옥 사건을 성실히 파헤친 저자의 노고는 주목에 값한다.‘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는 많은 관련 책들을 찾아 읽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