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옥심, 사회의 이익’이라는 부제가 붙은‘꿀벌의 우화’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에 앞서 경제학에 커다란 영향을 남기고 간 17세기 후반의 정신과 의사겸 철학자였던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1670 - 1733)의 대표작이다. 작품은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과 그 작품에 대한 산문적 해설로 이루어 졌다. 책이 ’꿀벌의 우화‘라는 제목을 가지게 된 것은 ’투덜대는 벌집‘ 부분에 벌이 나오기 때문인데 역자가 지적했듯 그 도입부 이후 벌 이야기가 나오지 않다가 마지막 부분에“별 몇 천 마리가... 사치를 피하고자 텅 빈 나무로 날아가서 만족과 정직으로 축복받게 되었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 작품이 벌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맨더빌에 의하면 ’오로지 착한 일이 좋기 때문에 말없이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적지 않게 뽐내는 증세가 있다.‘(139 페이지) 그리고 ’사치가 나라 전체의 부를 망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142 페이지)이며 ’절약은 헤픈 것과 탐욕의 중간이되 탐욕에 더 가까운 것이다.(156 페이지) 맨더빌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었지만 발설하기 쉽지 않은 생각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의 그런 주장은 절약이 부국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잘못된 것이라 본 대목(157 페이지)이나 사람들의 허영심을 요령껏 부추길 것을 주장하는 대목(159 페이지), 그리고 탐욕과 사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부와 보물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대목(160 페이지), 노동자들이 가난하고 무식해야 함을 역설한 대목(200 페이지) 등에서 잘 드러난다.  

맨더빌의 저서를 읽으며 맨더빌과 아담 스미스를 비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맨더빌과 아담 스미스의 공통점은 두 사람이 인간의 이기심에 맞춰 스스로 잘 운영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반면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을 제어할 장치를 고민했다면 맨더빌은 악덕과 부도덕을 사회 전체 이익의 뿌리로 보았다. 흔히 우리는 자유방임을 역설한 아담 스미스를 신자유주의의 시조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는“무능하고 부패하고 정보가 불충분한”(54 페이지)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과 비효율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정부의 개입 철회를 요청한 것이다. 스미스가 한 주장의 배경과 맥락은 무시한 채(또는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오직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결코 바른 자세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스미스가 주장한‘보이지 않는 손’이란 돈을 좀 더 많이 벌어보려는 욕심으로 생산자들이 서로 경쟁을 하는 과정에 바람직하지만 더딘 자율 조절 시스템이 작동해 국민들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에 비해 ‘보이지 않는 발’이란 기업이 경쟁을 회피하려는 강한 유혹에 빠져 특권이나 특혜를 통해 사익을 극대화하려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정전 교수는 경제학의 주요 이론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보이지 않는 발’을 압도할 때나 타당하며‘보이지 않는 발’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방임을 주장하고 시장 원리를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아담 스미스가 그토록 경계한 중상주의(重商主義)를 불러일으키는 짓이라는 말을 했다. 

 

경제학은 우울한 과학이기도 하지만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분파적 학문이다. 경제학이 편견과 당파적 이해관계로 얼룩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기심이 언제고 사회 전체 부(富)의 밑거름이 될 수 있겠는가, 란 점이다.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의 이익 추구가 무제한으로 치달을 경우 당연히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규제 철폐와 자율을 주장한다.(아담 스미스 시대의 정부도 경제에 무분별하고 비효율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새롭고 바른 감독과 규제이다.(역자인 최윤재 교수는‘보이지 않는 손’대신 정부의 섬섬옥수 또는 “솜씨 좋은 정치인의 손놀림”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59 페이지) 

특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가 맨더빌을 포함한 중상주의자들과 달리 생산자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 이익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62 페이지, 81 페이지:“신자유주의는 맨더빌의 중상주의(重商主義)와 놀랍도록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스미스는 물건 값이 올라 국제 경쟁에서 뒤지는 것을 높은 임금 탓이 아니라 높은 이윤 탓으로 보았으며(62 페이지) 부자의 사치를 경제에 해롭다고 보았다.(69 페이지) 또한 모든 사람을 교육시켜 깨우치는 것을 시민사회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보았다.(74 페이지)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아담 스미스의 사상이 친노동적이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맨더빌의 사상은 스미스의 사상과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맨더빌의 사상을 그것 하나만 놓고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는 악덕이야말로 우리를 사회적 동물로 만들어 주며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 사상가이다.(264 페이지) 노파심에서이겠지만 그는 악덕이 범죄로 이어질 경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1 페이지)‘꿀벌의 우화'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경제학에 많은 영향을 준 문학 작품이다. 그의 사상과 다른 사상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 보는 것은 후세의 독자인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이다. 맨더빌의 사상은 어쩌면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본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맨더빌의 선구적 가치는 인간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 있지만 거칠고 반노동적인 편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학적 비유로 가득한 300여년 전의 저서를 성실히 풀어서 설명해 준 번역자 최윤재 교수의 노고가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아담 스미스의 저서들을 본격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우리는“맨더빌의‘꿀벌의 우화’가 만든 세상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해 있다. 아담 스미스가 살아나 현재의 반노동적이고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 흐름을 보면 분명 이를 질타하는 새로운 경제 사상서를 쓰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을 위안 삼으며 글을 마친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역자(譯者)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