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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를 넘어서’의 저자인 고미송님은 채식주의자이고 여성주의자이며 수행자이다. 이 세 가지 정체성이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닌지 확언할 수 없지만 꽤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한때(2007년 1월 ~ 2009년 6월) 채식주의자로 살았고(물론 지금은 고미송님처럼 의도적으로 육식을 하지는 않고 상황에 처했을 때 걸리는 마음 없이 적당량을 먹으려 한다.) 집단이기주의를 넘어선 대의명분에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여성주의에 호의적이고 남방불교의 수행(위빠사나: vipassana)에 참여했었던 나에게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채식주의와 관련해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구제역이나 광우병 파동 등이다. 저자도 언급했듯 광우병 위험이 고조되자 촛불집회가 열렸고 참가자들이 내건 구호들 중에 “우리는 살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에 장애로 작용하는 광우병이 만연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런 구호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고 싶은 것은 소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농촌에 살기에 농장들을 둘러볼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바는 농가의 사육 환경이 반환경적이고 동물들에게는 너무나 반생명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2010년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진행된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 인체 감염을 우려해 참여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유사한 이기주의를 느꼈다.(그들이 참여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물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의미이다.) 오직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은 사람만 살면 그만이라는 광우병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의식과 다르지 않다. 나는 고기로부터 느끼는 맛은 대부분 양념이나 조미료, 부대 재료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식물성 단백질 10여 kg을 투입해야 동물성 단백질 1kg을 얻을 수 있는 비효율성과, 육식이 건강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해명하는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蛋白質)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마치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방(脂肪)을 무조건 해롭다고 보는 편견을 닮았다.(박민선, 장소영 지음 ‘오일(Oil) 혁명‘ 참조) ’값싸고 안전하고 질좋은 고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전술했듯 고미송님은 채식주의자이고 여성주의자이고 수행자이다. 그의 그런 정체성은 책의 구성을 채식주의자의 관점에서(1부), 여성주의자의 관점에서(2부), 수행자의 관점에서(3부)로 정한 것으로도 드러난다. 대형 서점의 서가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동물 애호와 동물권, 그리고 채식주의에 대해 역설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동물해방’(윤리학자 피터 싱어), ‘생추어리농장’(sanctuary: 지성소, 금렵구역 - 진 바우어), ‘육식의 종말’(화학자 제레미 리프킨), ‘동물권리선언’(진화생물학자 마크 베코프) 등...

하지만 고미송님은 육식은 잘못이고 채식은 올바르다는 관점을 교조주의적 사고라고 단언할 만큼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식생활에서 단지 육류를 빼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조화와 상생의 원리와 효율적 공생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라는 주문(注文)을 통해서도 그의 합리성과 포괄적 시각은 드러난다. 저자의 진단대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다른 존재들을 발 딛고서 그들에게 빚지면서 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희생이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육식을 하고 싶으면 하되 자신의 그 마음을 바라보고 욕망을 성찰하자는 주장과 상통한다.(이 부분은 페미니스트는 채식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의 글을 통해 "선택은 각자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으로 다시 확인된다.: 11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뿌리가 같다.(저자는 포르노와 성매매, 성산업은 여성을 동물 취급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해야 할 곳은 여기이다. 억압을 가져오는 인식과 태도는 다양한 맥락들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나 인간이 이기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도구화하고 착취하는 과정에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체계와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는 저자의 말은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뿌리가 같다는 지적과 차원이 같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저자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지만 동물의 소비는 불편해 하지 않는 여성주의자들을 문제시 한다.

저자의 논리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동물과 식물의 차이에 대한 육식주의자들의 위선과 2중적 태도 등의 허위의식을 겨눈다. 육식 금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 육식과, 여성 억압에 대한 허위의식을 일깨우는 저자의 글은 그만큼 근본적이다. 저자는 평등은 합리적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적 공감의 문제임을 역설하고 동물 애호 또는 동물 해방 선언주의자들의 논리에 포함된 차별적인 문제의식(편리한 만큼만 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지적한다. '채식주의를 넘어서'는 고미송님의 이전 책인 '그대가 보는 적(敵)은 그대 자신에 불과하다'(불교적 관점에서 본 여성주의 인식론이라는 부제가 달린)를 이해하기 위해 고른 책이다.

불교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채식주의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저자가 불교 이론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는데 채식주의가 불교 인식론에 비해 비근한 주제이지만 치밀하고 정교한 저자의 논리는 쉬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만큼 나에게는 훈련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내 입장에서 '채식주의를 넘어서'의 하이라이트는 3부(불교수행자의 관점에서)이다. 3부는 분량면에서도 1, 2부에 비해 많고 내용도 채식주의를 넘어서 채식하기, 낙태문제에 대한 불교적 성찰, 수행자의 관점에서 본 사회참여 등 충분히 숙고해야 할 이슈들로 채워졌다.

저자는 채식을 고수하다가 일체의 상(相)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스승의 권유를 받아들여 육식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기 먹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다수의 수행자들과 스승이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형식의 걸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가 육식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는 마음을 고수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의 육식 습관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과거에 대한 집착이고 그렇게 과거와 싸우는 한 미래에 대한 창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같은 차원에서 일체가 자신의 업식(業識)의 작용이자 자신의 마음의 나툼이라는 의미에서 피해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용서할 게 없는 사람은 비난할 게 없고 그럴 때에 비로소 순수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저자는 관성적(慣性的)인 자기합리화 역시 경계한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살생(육식)을 하게 된 사람이 간절하게 상대를 천도(遷度)하는 마음을 내는 것과 순전히 입맛 때문에 끼니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이 그 고기를 천도시킨다는 논리에 기대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를 위해 죽이지 않은 고기”라는 개념은 가축을 직접 죽여서 먹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인과의 간접성을 전제로 타협을 한 차선책이라 말하며 현시대에서는 내가 먹으면 곧 나를 위해 죽인 고기가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불교 계율에는 자기를 위해 죽이지 않은 고기는 먹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 자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동물 사랑에 있어서 채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한편 나는 경직되고 닫힌 마음으로 채식하는 사람보다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육식하는 사람이 낫다고 말하는 저자에게서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합리성의 한 사례를 보았다. 저자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마음 없는 채식을 하기를 즉 채식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당부한다. 낙태와 육식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저자가 한 “남성의 성욕이 더 왕성하다고 판단했다면 남성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性에 대한 설법과 몸가짐을 단속하는 계율을 더 많이 양산했어야 하지 않을까.”란 말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이는 남자인 나에게도 통쾌하게 여겨지는 말이다.)

마지막 장(7장)인 수행자의 관점에서 본 사회참여를 통해 수행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불교적 사회참여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 저자는 반야의 지혜를 언급한다. 반야사상이란 일체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임을 알려주는 지혜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딱 그만큼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고, 세상(대상)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만 정말로 바뀔 수 있는 것 같다."(203 페이지) 이는 나로 하여금 채식주의에 대한 가르침을 포괄하는 불교 인식론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게 한 '채식주의를 넘어서'의 결론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고 읽다 놓아둔 '그대가 보는 敵은 그대 자신에 불과하다'를 다시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