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책 표지를 보고 "환상이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통로일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과연 표지부터 남달랐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작가의 말에 걸맞은 환상과 신비, 기괴함 등의 코드를 표현한 이야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가미’나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단편 모음집이기에 책을 읽기 전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을 해야 했다.  

 

우리가 환상적이거나 신비한 작품을 읽을 때 힘이 드는 것은 낯선 예측 불허의 상황을 현실과 연결시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의는 아니지만’은 낯선 만큼 집중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품이다.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고르라면 나는 마치...같은 이야기와 어떤 자장가, 곤충도감을 들 것이다.  

마치...같은 이야기는 식량을 놓고 내전(內戰)을 치른 여파로 붕괴한 경제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유는 물론 은유, 환유, 제유 등 비실용적이고 모호한 언어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비유금지법을 발효시킨 S市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표면적인 설명과 달리 시장(市長)이 비유금지법을 생각해낸 실제 동기는 자신이 ‘피지올로고스’나 ‘산해경’ 등 기괴한 동물들을 다룬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는 미무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때문이었다.  

고립된 섬 같은 폐쇄 도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주세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비유금지법은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연상하게 한다.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생각한 이유는 시(詩)가 이성보다 열등한 감성에 호소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기에 마치...같은 이야기에 시인이 등장한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S市를 떠났다가 5년 만에 돌아온 그 시인은 점이지대(漸移地帶) 같은 술집에서 언어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마치...같은 이야기는 얼핏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역시 S市 사람들이 그랬듯 ‘저 미무르 같은’ 또는 ‘미무르만도 못한‘ 같은 말을 한 경험이 있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경제가 명분으로 내세워지는 것을 늘 보아 오기에 리얼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어떤 자장가는 석사 논문을 대필해 주고 생활비를 버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주제를 결정하는 데에만 삼년이 걸렸을 정도로 형이상학적이고 신성한 꿈을 꾸는 여자가 정작 자기 논문은 쓰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논문 대필을 해야 하는 이야기인 어떤 자장가는 고통스런 현실을 환기시킨다. 아이가 젖먹이일 때는 하루 두 시간 이상 잔 적이 없는 데다가 논문을 쓰기 위해 며칠씩 잠을 못 자는 등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여자는 통 잠을 자지 않고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오븐에 넣고 굽고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마치...같은 이야기, 어떤 자장가 외에 ‘고의는 아니지만’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도 기괴한 상상력으로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어린 학생이 담임에게 두들겨 맞은 뒤 재봉틀로 뭐든지 꿰매준다는 가게에 들어가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세포들을 꿰매는 이야기인 재봉틀 여인, 새떼가 사람을 공격해 죽을 때까지 뜯어먹는 이야기인 조장기(鳥葬記), 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순간 그 호르몬을 먹고 몸속의 곤충이 급성장하여 숙주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나오게 되는 일을 겪는 성폭력범의 이야기를 그린 곤충 도감 등등...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세계가 리얼한 현실임을 알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