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무슨 증상이라도 되는 양 심각함을 느끼는 나는 프랑스 문학자인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는다. 내가 소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소설이 지닌 낯설게 하기 요법(療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낯설게 하기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해 스토리를 일부러 낯설게 재배열하거나 끝까지 긴장감과 호기심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원인보다 결과를 먼저 배치하는 등 시간 순서를 흐트려 놓는 문학 기법의 하나이다.

 

예전 나는 의도적으로 날씨 이야기도 빼고 안부도 묻지 않는 거두절미(去頭截尾) 스타일의 편지를 써서 호감을 받곤 했었다. 이 역시 낯설게 하기의 한 예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낯설게 재배열되고 교란된 시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뿐 아니라 단선적인 서사 구조와 전형적인 인물이 사라진 빈터는 참 당혹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소설처럼’을 번역한 이정임님은 누보로망 이후 프랑스 현대 소설은 누가 누가 더 독자를 헷갈리고 곤혹스럽게 만드는지 시합이라도 하고 있는 듯 하다는 말을 했다. 우리 나라 소설도 프랑스의 그런 점을 어느 정도는 나눠 가진 듯 싶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자 중에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이란 여성 학자가 있다. 그 분은 감성적 울림이 살아 있는 글을 쓰기로 유명한 분으로 ‘우리를 둘러싼 바다’ 같은 작품은 그런 글쓰기의 두드러진 사례로 꼽힐 만하다. ‘침묵의 봄’도 시적인 산문과 정확한 과학 지식이 결합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 물질을 남용하면 봄이 되어도 새는 울지 않고 꽃은 피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침묵의 봄’이라는 이름 자체가 얼마나 서정적인가. 이 이름을 다시 생각하며 나는 올 초 읽은 리브카 갈첸의 장편 소설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2011년 1월 출간)을 생각한다. 나는 그 두 작품명을 멋진 이름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본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과학도 무엇을 쓰느냐 만큼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그런데 소설은 낯설게 쓰는 것이 불편해 친근감을 못 느끼고 과학책은 쓰는 방법이 달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차별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앞서 말한 과학책이 다르게 쓰였다는 것은 표현이 섬세하고 서정적이라는 의미일 뿐 소설처럼 낯설게 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모든 낯설게 하기를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물체를 그 사물이 어울리지 않는 이색적인 곳에 배치시켜 무의식적 해방을 의도하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부터 나는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미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보다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예전 한 블로거는 내가 쓴 어떤 글에 압축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료하게 드러내 주기에 시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오히려 압축이 혼란을 주어 읽지 않는다는 답글을 달았다. 그 블로거는 소설보다 실제 세상을 논증하는 책을 읽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했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 읽기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일임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 책에는 책에 대한 열 가지 권리가 언급되어 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 뛰며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등등... 시사하는 바가 큰 이 독서 에세이에서 저자는 독서는 능동적이고 즐거운 경험임을 주장한다.

 

앞에서 내가 한 말을 정리하자면 압축적인 기법의 작품이라 해도 소설은 불편한데 비해 시는 읽기를 유인하고, 낯설게 하기 작품이라 해도 미술은 문제 되지 않고 소설은 거리끼는 것이다. ‘소설처럼’에 나오는 권리 중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책(소설)을 읽을 때 상상이 극에 달해 온 신경이 떨려 오고 심장이 달아오르며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가운데 주인공의 세계에 완전 동화되어 어처구니 없게도 대뇌마저 (잠시나마) 일상과 소설의 세계를 혼동하기에 이르는 증상이다. 저자는 이를 권리라 했지만 나는 적당한 시간에 현실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치유를 선물로 받을 계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보바리즘은 세상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한 권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고 던져 버릴 만한 이유는 무려 36,000 가지나 된다. 이 이야기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읽다가 던져 둔 소설 책이 꽤 많다. 비소설도 어느 정도 있다. 이 실패한 경험은 상처가 아니지만 내가 참을성이 없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게 한다. 책을 다시 읽으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책과의 해후가 이루어지는 경우와 실패를 재경험하는 경우로 나뉜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최수철의 중편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하루’를 읽는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인가. 흩어지고 와해되고 무슨 얘기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내용을 더듬다가 문득 제목을 본다. 무정부주의자라니.. 일목요연한 내용을 간추리려 하지 말고 쓰여진 방식을 보자. 23개의 짧은 글들이 모였는데 제각각 서술방식과 시점이 다르다.” 이 분의 설명이 아니어도 불편하고 어려운 소설은 참 많다. ‘소설처럼’에 나오는 열 가지 책에 대한 권리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읽어야 하는 스무 가지의 이유도 제시했다. 책읽기는 즐거운 경험이며 능동적 행위라는 말과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 스무 가지 이유를 제시한 저자가 책을 읽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결국 책을 읽지 않을 권리를 말한 부분의 결론부에서 책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그보다 더한 고독은 없을만큼 절대적인 고독이자 크나큰 슬픔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책 읽기는 우리를 짐승이나 야만인, 일자무식의 무뢰한, 광포한 광신도, 자기도취에 빠진 독재자. 탐욕스러운 배금주의자들과 구별짓는다. 책은 기필코 읽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스무 가지의 이유 중 나와 관련해 의미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이다. 채현선의 ’마리 오 정원‘은 최근 나온 소설들 중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마리 오 정원‘은 실연의 상처로 아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마리’라는 주술사의 힘을 빌려 복수를 하려고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신비한 씨앗과 함께 남자와 관련된 물건, 상처받은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아 화분에 심고, 세 차례에 걸친 주술 의식을 통해 식물이 자라 꽃이 피면 남자가 죽게 되는 복수를 꿈꾸지만 고통을 원망으로, 원망을 복수로 되갚으려 했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주술사 마리를 통해 마음속에 엉켜 있던 응어리들을 하나씩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고 천천히 치유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여자의 복수를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받고 천천히 치유되는 것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본다. 치유는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 작품을 읽게 되기까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