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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에 대한 책을 연이어 두 권 읽었다. 향정신성 약물은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히피와 반문화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문명 밖으로’ 317, 318 페이지) 히피들은 그저 약물을 사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지배 문화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활용했다(‘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125 페이지) 히피들은 주로 LSD(lysergic acid diethlamide) 같은 특정 약물들을 흡입했는데 특정 약물이 기계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항상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경험자들은 흡입자의 감정 상태나 주변 환경 등이 약물의 효과를 대단히 다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반문화 운동의 상징인 히피(hippie) 운동은 1960년대에 일어난 운동으로 2011년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히피는 우선 약물을 연상하게 하지만 나에게는 꽃을 연상하게 하고 꽃은 나비를 연상하게 한다. Scott McKenzie의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라는 가사가 빛나는 San Francisco라는 노래 때문일 것이다.

내릴 곳을 찾던 나비가 특정 꽃을 찾아 내리듯 나는 샤먼 앱트 러셀(Sharman Apt Russell)의 ‘꽃의 유혹’을 선택했다. 자연 자원 보존학을 전공한 저자는 히피이며 범신론자이다.(우리 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범신론자로서의 나의 삶이라는 부제가 붙은 'Standing in the Light‘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매우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라는 점이다. 그는 우리 나라에는 '나비에 사로잡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An obsession with butteries’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샤먼 앱트 러셀에게서 침팬지 연구에 일생을 바친 제인 구달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각자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계기는 달리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꽃의 유혹’에 나오는 내용 때문이다. 저자는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그렇게 달콤한 향기를 풍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180 페이지) 요체는 세상의 모든 차이는 이름이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꽃의 유혹’은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읽는 것이다. 나는 염명순시인의 ‘까페 아르뷔스뜨’라는 시를 좋아한다. 이 시에 나오는 “늪지의 달개비꽃처럼 줄기를/ 누르면 진한 보라색 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저녁에 비/ 가 잦은 지중해성 기후의 이끼 낀 기억은 금세 웅덩이에 고/ 이고 우산 꽃에 잠시 눈물처럼 맺히는 것들...”이라는 시구 때문이다.

그리고 달개비꽃이라는 이름이 서정적이고 운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안 것은 10년이나 되었지만 ‘꽃의 유혹’이라는 작품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던 달개비꽃의 아름다움과 진한 보라색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 ‘꽃의 유혹’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해 준 것이다. ‘꽃의 유혹’이 달개비꽃의 아름다움과 달개비꽃이라는 이름이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 것이다.

저자는 할머니가 아흔 한 살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저자의 아버지 묘에는 천수국을, 저자의 할아버지의 묘에는 흰 국화를 늘 꽂아 두는 것을 보고 자란 분이다. 저자의 내공은 대단하다. 막힘 없는 필치가 저자의 전방위적 지식을 증거한다. 박쥐가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동식물 다섯 종’에 뽑혔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은 나는 첫 번째 독서때에는 치지 않은 박쥐에 대한 밑줄을 이번에는 쳤다. 박쥐는 곤충의 개체를 통제하는 역할도 하며, 식물의 수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꽃은 흡수한 파장의 색깔은 저장하고 반사한 파장의 색깔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흰꽃은 휜 색소를 지녀서가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공기층이 가득찬 꽃잎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저자에게 처음 배웠지만 지금도 새롭다.

‘꽃의 유혹’은 이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수려한 필치가 돋보이지만 새롭고 교육적이다. 대표적으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챕터를 들 수 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한 개의 유전자나 세포의 변화에서 시작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진화(進化)를 아주 작은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유기체에게 변화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고 말한다.(69 페이지) ‘꽃의 유혹’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꽃의 신비를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어떤 종은 두 가지 다른 꽃을 피운다. 하나는 이종교배하는 꽃이고 하나는 자가수정하는 꽃이다. 이른봄이 되면 제비꽃이 삼림지대를 덮는다. 그 중에서 수분(受粉)에 실패한 제비꽃은 뒤늦게 결코 개화하지 않으며 거의 땅 위로 올라오지 않는 두 번째 초록 꽃봉오리를 만든다. 보이지 않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 꽃봉오리는 스스로 수정한다”는 문장은 안타까움과 의지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상습적으로 자가수정하는 꽃들이 있는데 그들은 크기도 작고 색이나 향기도 미미하다고 한다. 유전적으로 균일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식물학자 차윤정씨가 민들레는 미혼모라는 말을 했는데 본문에서는 단성 생식 또는 처녀 잉태라고 규정되었다. 이는 한 단계 나아간 자가수정이다.

꽃들은 동물보다 착한 존재인 것만도 아니고 난폭한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점잖은 것들도 한순간에 난폭해지기도 해 아스클레피아스 시리아카라는 꽃은 자신을 찾아온 호박벌의 다리를 찢을 정도로 악착 같기도 하다고 저자는 전한다. 다른 꽃을 가장(假裝)하는 것을 베이츠 의태(擬態)라고 하고 상호 도움이 되는 의태를 뮐러 의태라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은 유전자 변형 식품(GMO)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면서도 보라색 카네이션이나 파란 장미에 대해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변혁에만 관심이 있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은 현세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꽃을 유전공학적으로 변형시키고 개량하는 것을 꽃을 통제하는 것이라 말하고 꽃 입장에서는 꽃이 빠른 속도로 자신의 비밀을 포기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가슴이 텅 비어 가고 있다는 저의 심정이 이해된다. 으아리는 현실감 없는 몽상적 기질의 사람들에 효과를 발휘하고 인동은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에 효과를 발휘하고 생밤나무는 반복강박증을 보이는 여성에 효과를 발휘하고 제비꽃, 봉선화, 히더꽃은 고독을 어루만지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꽃의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벌거벗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깨 위에, 우리의 배 위에, 우리의 넓적 다리 위에 꽃잎이 떨어지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 벌거벗고 누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처의 아름다움을 헤치고 벌거벗은 채 걸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화려한 색채를 헤치고 벌거벗은 채 걸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채로운 향기를 헤치고 벌거벗은 채 걸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섹스와 죽음을 헤치고 벌거벗은 채 걸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피부로 직접 저 아름다움을 느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꽃가루의 행로를 따라 걸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방에 만발한 꽃들 사이로...” 우리에게는 꽃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챕터에서 나온 이 말들은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이다. 우리는 꽃으로부터 억척스런 생존의 법칙을 배우지만 이 메시지는 이상주의적이다. 저자의 긴 행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