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 ~ )의 ‘뮤지코필리아’는 음악과 관련한 갖가지 진기한 현상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책에는 신경과 의사인 저자가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는 물론 저자 자신의 예사롭지 않은 음악적 체험들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벼락을 맞은 뒤 주체할 수 없는 음악 사랑에 빠진 것은 물론 머리 속에서 끊임 없이 새로운 곡들이 넘쳐난 정형외과의사, 음악 때문에 발작에 빠지거나 간질을 겪는 사람들, 음악 환청을 앓는 사람들, 실음악증, 뇌벌레 등의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 환청은 정상적이고 일관성 있고 고분고분한 음악적 심상(心象)과는 달리 음악을 듣는 듯 생생하고 망가진 음반이 뇌 속에서 저절로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처럼 들리는 증세이다. 저자가 앓는 뇌벌레는 음악의 특정 부분이 머릿 속에서 며칠이고 계속 울려대고, 신경과 의사로서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뇌파를 보고 나면 벽이나 천장이 온통 꾸불꾸불한 뇌파로 넘실대고,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나면 들판과 울타리와 나무가 일관된 흐름을 이루며 옆으로 지나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세로 나타나는 병이다.

 

마음 속으로 교향곡 전체를 듣는 아버지에는 못 미치지만 저자는 좋아하는 악보를 슬쩍 보거나 곡을 떠올리면 음악을 듣고 건반을 두드리는 손을 보고 그 과정을 몸소 느끼는 분이다. 음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운동 피질이 활성화하고 연주하는 행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청각피질이 활성화한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문 음악가의 경우 뇌의 양측 반구를 이어주는 연결부위인 뇌량(腦梁: corpur callaosum)이 일반인에 비해 크고 절대 음감이 있는 음악가의 경우 청각피질의 일부인 측두평면(planum temporale)이 비대칭적으로 확장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정말로 특이한 것은 신경계가 아니라 음악 자체인지 모른다고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단 음악 선율이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갖게 하는 경우나 리듬이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황홀경에 빠트리는 것, 그리고 음악이 파킨슨병 환자들을 유연하고 현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뇌의 이상으로 인해 음이 음으로 인식되지 않고 음악이 음악으로 경험되지 않는 것을 실음악증(失音樂症)이라 한다. 실음악증은 저자가 두 번이나 앓은 증상이라 한다. (저자에게는) 두통의 전조 증상으로 나타나는 실음악증은 음악이 불쾌한 금속음으로 들리는 증상이다. 나는 음악이 불쾌한 금속음으로 들리는 실음악증을 앓는 사람들을 보며 내게 남다른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을 아쉬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음악 감상 능력이 있음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질환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절대음감 인식 능력 결여는 슈만이나 바그너 같은 작곡가들에게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절대음감과 초기 시각장애의 연관성은 주목할만하다. 선천적 시각장애자나 어릴 때 시력을 잃은 아이들의 50%가 절대음감을 갖는 것이다. '뮤지코필리아‘에 소개된 여러 사례들을 음악 관련 질환들이 많은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뇌의 신비한 사례들을 드러내는 증거가 풍부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쪽 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을 잃은 것에 비유되는 스테레오로 듣는 능력의 상실은 음의 공간감, 부피, 풍성함, 울림 등을 듣지 못하는 것으로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하는 가짜 스테레오 역시 뇌의 신비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놀라운 적응 현상으로 어릴 때 한쪽 시력을 잃었지만 거리와 깊이를 매우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대표적이다.

 

윌슨은 멀쩡한 눈에 원근감을 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는 틱 증상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한쪽 청력을 잃은 요르겐센의 경우 멀쩡한 귀의 입체지각(立體知覺)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대뇌가소성(cerebral plasticity)의 힘이라 표현했다.

 

“모든 선율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되지 않으면 과거는 존재할 수 없고 예기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라는 빅토르 주커칸들의 ‘음악과 상짱을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노래와 연주, 지휘를 하는 한 사례자와 다르게 음악 수행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잊은 한 사례자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반면 좌반구가 대부분 손상되어 우반구의 언어 영역을 가동하는 것이 유일한 회복 방법인 환자에게 선율 억양 치료가 아주 적합하다는 사실과, 음악이 손상된 운동계를 활성화하는 촉매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투렛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 중 뛰어난 재즈연주자가 많다는 사실은 고통의 승화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중증 치매 환자들이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몸을 떤다는 사실 역시 희미하나마 감동과 희망을 준다.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는 뇌의 신비함과 음악의 힘,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은 저자의 낙천적이고도 성실한 마음 가짐이었다. 그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