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는 초기 불교, 유식 불교, 선불교, 서양철학, 심리학, 생물학에서 바라본 욕망론이다. 운주사에서 나온 책으로 나에게 이런 유형의 책은 두 번째이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불교학자, 면역학자, 철학자, 생물학자, 과학기술사학자가 불교와 진화론의 관계를 규명한 책(’붓다와 다윈이 만난다면’)을 접한 바 있다.
정준영님은 욕망의 다양한 의미에서 불교는 재가불자에게 모든 욕망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욕망을 금할 것을 권했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물론 욕망은 열반을 지향하는 데에 있어서는 장애이다. 중요한 것은 성인(聖人; 아라한 - 최고의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은 선정(禪定) 상태가 아니어도 욕망이 생기지 않는데 비해 범부는 물론 성인의 가장 아래 단계인 수다원(예류: 일곱 번 다시 태어난다고 함)도 선정에 들어야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망 극복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지만 달리 보면 수행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초기 불교에서 욕망은 수행을 통해 제거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이다. 초기 불교에서 까마와 라가라는 단어는 괴로움의 원인을 지칭하고 찬다와 딴하라는 단어는 괴로움의 원인도 되고 삶의 동력을 지칭한다.
선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욕망의 장에서 한자경님은 욕망과 집착에 물든 행위는 업(業)으로서 선업이든 악업이든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한편 업은 욕계의 윤회를 불러온다. 불교는 삶 자체가 고통이기에 삶의 동력인 욕망을 고통의 뿌리로 간주한다. 범부는 느낌이 일어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 업을 짓고 수행자는 탐진의 욕망을 멸함으로써 느낌에 이끌리지 않고 업을 짓지 않는다.
욕계를 욕망의 싸움터라 규정한 한자경님의 안내를 따라가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욕망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자기 발현욕구로만 보는 것은 다소 무차별적으로 보인다. 욕계를 싸움터 일색으로 보는 것도 아쉽다. 다만 우리가 애써 얻으려는 즐거움도 결국은 근본적 고통 중의 짧은 휴식 같은 것이라 본 것은 인상적이고 운명과 고통, 욕망을 긍정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이기고 아파하고 목숨이 다 하면 죽고 그러면서 또 다시 태어나도 좋다고 생을 긍정하는 긍정적 허무주의를 인간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보다 높은 차원의 긍정적 정신과 더 깊은 차원의 진리의 해명을 불교적 정신이라 규정한 것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선불교의 입장에서 욕망을 규명한 이덕진님은 욕망의 바다에서 유영하기란 글을 통해 불교란 깨어있음을 전제로 욕망을 긍정하는 시스템이란 말을 했다. 신비주의나 초월주의, 눈 앞의 세계를 뛰어넘거나 부정하는 탈속적이거나 초인적인 수행보다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일상의 삶이 곧 진정한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의 활동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욕망하고 경험하며 제어하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 의하면 선불교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욕망을 본다. 다만 무한 욕망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자본주의를 고려한다면 성찰적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선, 나아가서 불교가 욕망으로 대표되는 세속의 체제(자본주의)와 힘으로 경쟁하는 것은 즉 체제를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선은 어두운 것이라 본 필자의 견해는 솔직하게 보인다. 선불교는 사실의 세계가 아닌 경지의 세계를 표방한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만족이란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고 아직 새로운 욕망이 나타나 우리를 시달리게 하기 전의 중립 상태라는 말(이 말은 우리가 애써 얻으려는 즐거움도 결국은 근본적 고통 중의 짧은 휴식 같은 것이라는 한자경님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로 첫발을 내딛은 박찬국님은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넘어서라는 글에서 다양한 철학의 흐름에 드러난 욕망의 성격을 해명했다.
필자에 의하면 니체는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넘어선 철학자이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실현되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니체가 추구하는 힘에의 의지는 건강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형태의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에로스에게 독을 먹였다. 그것 때문에 에로스는 죽지는 않았지만 음란하게 변했다.”는 니체의 말은 니체가 극단을 혐오했음을 알게 해준다. 필자는 니체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귀족적인 덕(德)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본문에 따르면 니체가 긍정했던 디오니소스신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관용의 정신에게 드러난 아름답고 성스러운 전체성으로 이 세계에 대한 이름이며 그러한 정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니체의 이 사상은 번뇌가 곧 열반이라는 선불교의 사상과 통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니체는 불교를 현실도피적인 종교로 보았지만 선불교는 불교와 반대된다고 보았다. 이는 이덕진님의 생각(“불교란 깨어있음을 전제로 욕망을 긍정하는 시스템”)과도 통한다.
니체는 모든 도덕 규범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필자는 서양 철학의 전통에는 금욕주의적인 철학을 넘어서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길을 고민해온 면면한 철학적인 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욕망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에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괴로움의 뿌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의 말이다. 니체의 불교 및 선불교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권석만님의 욕망의 자각과 조절이라는 글은 심리학적 관점으로 본 욕망관이다. 필자는 인간에게는 야생마 같은 욕망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조절기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이 역시 앞서 언급된 필자들의 견해와 일치한다. 인간의 욕망은 조절되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저자는 자기 조절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과도한 욕망은 고통의 뿌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한다. 문제는 과도한 욕망을 넘어선 충족 불가능한 욕망이다.
필자의 진단 중 적극적으로 수용할 만한 것은 붓다가 벗어난 것은 생로병사가 아니라 생로병사의 고통이라는 말이다.(288 페이지) 필자에 의하면 행동 치료는 구체적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정서중심 치료는 부정적 정서의 표출과 정화에 초점을 맞춘다. 인지치료는 부정적 생각과 역기능적 신념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정신역동적 치료는 무의식적 갈등과 통찰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치료적 입장을 취하든 심리치료자들은 욕망의 발산과 억제 사이의 균형적 조절을 중시하면서 내담자의 자기 조절 능력을 함양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290 페이지) 필자에 의하면 불교는 욕망을 억제하는 금욕적인 종교가 아니라 인지적 성찰을 통해 욕망과 고통을 극복하는 철저한 자기 조절 지향의 종교이다. 욕망이라는 주제가 워낙 불교적이어서 그런지 욕망을 논하는 사이 사이에 거론된 불교론들이 내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생물학의 욕망 이해편에서 우희종님은 각 생명체나 생태계 모두는 욕망 그 자체라는 말을 했다. 그에 의하면 자기란 신경계에 의존해 나타나는 정신적 자기와 면역계로 표현되는 신체적 자기로 구성된다. 필자의 말 가운데 유전자는 모든 생명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위 환경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말은 ‘생명과학과 선’이나 ‘붓다와 다윈이 만난다면’을 통해 발표된 필자의 논의와 상통하는, 중요하면서도 간과되기 쉬운 진술이다.
생명체란 유전자의 영속적 모습의 단면에 불과하다는 사회생물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반복은 차이를 수반한다.(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보라.) 동물이나 사람에게서 개체 고유성이라는 기능을 담당하는 물질은 MHC(major histocompatability complex)라는 세포 표면 단백질이며 주요 조직 적합성 항원은 여러 유전자로 구성된 polygenic한 구성을 보이며 같은 종 내에서도 매우 다양한 대립형질을 가지고 있기에 다형성(polymorphism)도 지니고 있다는 말(312 페이지)은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 ‘0.1퍼센트의 차이’, ‘ 생명과학의 기초 DNA를 통해 익힌 것들이기에 반가운 마음이 크다.
우희종님의 논의는 각 개체의 신체적 고유성은 외부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논의로까지 이어진다.(필자도 언급했지만 이는 가소성이라는 개념과 관계있다.) 필자는 개체고유성으로서의 욕망은 탄생과 소멸을 향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벡터적 욕망(언젠가는 죽어야 함)이고 생명체의 근원으로서의 욕망은 방향성을 지니지 않은 스칼라적 욕망이라 말한다.(320 페이지)
필자에 의하면 욕망이 쾌락과 고통의 통합체인 것은 고통이 가해졌을 때 신경계에서 이에 상응하는 편안함을 준비해두기 때문이 아니라 즉 유물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 물질화를 통해 나타난 개체적 욕망은 벡터적 욕망이기에 대상이 전제되어 있고 대상과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통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에 의하면 인간은 욕망에 중독된 존재이다.
인간의 욕망은 종양화(transformation: 형질변환)를 거쳐 암적 상태가 된 욕망(cancerous desire)이다. 인간의 욕망은 지극한 복잡계적 욕망으로 발현된다. 들뢰즈의 욕망 이론에 지지를 보내는 필자에 의하면 들뢰즈의 욕망은 스칼라적이며 다양한 개체화를 이룰 수 있는 생성의 근원이 되는 욕망이다.(328 페이지) 그러나 스칼라적 욕망과 벡터적 욕망은 원래 둘이 아니기에 어떻게 전개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앞선 필자들의 논의와도 상통한다.
우희종님의 글은 현대철학 그 중에서도 들뢰즈의 철학을 다시 공부하게 한다.(키스 안셀 피어슨의 ‘싹트는 생명‘, 닉 레인의 ’생명의 도약‘을 읽을 필요가 있다.)(현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이정우님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필자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주위와 단절)과 자기중앙적인 욕망(관계 속에 있되 언제나 풍요로운)을 나눈다.
필자는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다는 불교적 표현이란 동물의 삶을 고통으로 본 결과 나온 표현이라 본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욕망은 본래 자기중앙적이라 한다. 이는 삼독심(貪慾, 嗔恚, 癡心)이라는 욕망 그대로가 보리심이라는 선가의 관점과 비교해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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