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은 자신의 아내를 가짜라 믿는 50대의 정신과 의사인 레오를 다룬 소설이다. 도플러 효과, 평행 우주, 팽창하는 우주, 카그라스 증후군, 분열형 성격 장애 등의 용어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우리를 이끄는 곳은 낯선 사유의 세계이다.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아내를 가짜라 믿는 정신과 의사인 레오가 진짜 아내를 찾아 나서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주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레오가 도플러 효과를 응용해 자신이 아내 레마를 향해 움직일 때 레마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레마들의 빈도수는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 생각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별의 시차도 모르는 채 위치를 가늠하려 하거나 어떤 물체의 속도와 방향도 모르는 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자신인지 그 물체인지도 모르는 채 그 물체의 실제 진동수를 측정하려는 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등의 내용은 소설 읽는 맛을 더하는 부분들이다.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은 자신의 부모나 배우자가 사기꾼이거나 가짜 또는 복제 인간이라 믿는 정신과적 증상이다.

 

레오의 사유는 관념적이고 유희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그것은 레마가 자신이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평행 세계에서 다른 레오와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오는 '그 여자'를 레마를 사칭한 여자, 도플갱어, 레마를 닮은 여자, 레마 역할을 맡은 여자, 가짜 레마, 레마 대리자,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 가짜 짝 등 다채로운 이름으로 부른다. 레오는 마침내 레마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

 

레오의 이상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용어는 카그라스 증후군이라는 말이지만 평행 우주론이나 플라톤의 이데아론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평행 우주론은 우주가 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서로 다른 우주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한편 이데아론은 우리가 보는 세계를 영원한 실재인 이데아의 그림자로 보는 이론이다. 두 이론 모두 현상 너머의 다른 세계를 상정하는 이론이다.

 

레오는 레마의 엄마와 레마의 만남을 통해 두 사람 사이가 모녀 관계임이 밝혀졌는데도 레마가 진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소설의 중간에 이르러서야 레마에 대한 의심을 털어놓는다. 그런 레오를 우리는 어떤 유형의 인물이라 불러야 할까? 비현실적일망정 성찰적이며 과학 이론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사유 유형을 보이는 사람이 아닐지?

 

진짜 레마가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는 레오는 자신이 수수께끼이거나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나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짜 레마가 사라졌다고만 생각하던 레오는 가짜 레마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가 진짜 레마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레오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레마 뿐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어딘가에 있는 진짜 레마를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하는 레오를 보며 대기불안정은 결국 레오의 정서적 불안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레오가 설정한 삶의 목적은 불안정할망정 충분히 의미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인식의 왜곡이 존재하지 않을 때보다 왜곡이 존재할 때 더 많고 더 좋은 데이터를 얻는다"(71 페이지)는 말이다. 기상 이론과 정신의학적 지식의 틀 위에 사랑이라는 개인사를 담아낸 '대기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