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 교수가 지은 ‘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윤리 이야기’는 자음과 모음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의 61번째 시리즈로 심오한 스피노자 사상 가운데 윤리에 관한 부분만을 골라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이다. 책은 초등학생 화자(話者)의 누나가 화자(話者)가 겪은 사소한 일상을 스피노자 이론으로 분석, 설명해 나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스피노자(1632 - 1677)는 신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존재가 아니며 인격신과 천사는 상상의 산물이고 영혼은 불멸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용어 가운데 하나인 코나투스는 자기의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그의 이론에서 욕망과 충동은 구별된다. 욕망은 의식적인 노력이고 충동은 무의식적인 노력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유대, 기독교의 신은 이성적으로 신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든 개념에 불과하다. 그는 신을 자연으로 정의했다.

 

일본의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에밀 샤르티에를 통해 정리한 스피노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노여움이나 슬픔 등에 사로잡혔을 때 데카르트는 그것들을 의지로써 극복하려했던 데 비해, 스피노자는 이성이나 의지 등으로 감정을 극복할 수는 없고 자신이 왜 노여워하는지, 왜 슬픈 것인지 생각하는 동안만은 정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지난 2월 21일은 바루흐 스피노자(1632 - 1677)가 46세를 일기로 타계한 날이다. 스피노자를 보면 수도자 같은 삶이 연상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불교적 지평에서 새롭게 읽어낸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피노자와 붓다’라는 책만 보더라도 스피노자와 불교의 접점을 찾는 것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수많은 도덕 철학자들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이성으로 욕망이라는 감정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윤리 이야기‘ 108 페이지)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성의 역할은 욕망을 억압하거나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성공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윤리 이야기‘ 108 페이지)

 

나는 이런 점은 탐심과 욕망, 잡념, 후회하는 마음 등을 없애려 하지 않고 바라봄으로써 고요한 상태에 드는 것을 지향하는 위빠사나 수행과 닮은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스피노자의 행복관과도 상응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행복은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이해하고 기쁨으로 바꾸는 데 있다.

 

이어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인과관계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들이 그들 스스로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유인은 어느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다.... 자유인은 가능한 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미움, 분노, 경멸 등을 사랑이나 관용으로 보상하려고 노력한다.”(‘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윤리 이야기‘ 124 페이지)

 

감정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의 인도를 받으며 자신의 존재 역량을 가능한 한 최대치로 끌어올린 인간을 자유인이라 부른 스피노자는 인격신개념을 배제하고 신 즉 자연이라는 등식을 세운 사람이다. 그리고 신은 믿음이나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 보았다. 스피노자는 어떤 종교인보다도 더 덕스럽고 종교적이라 말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그런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통해 설정한 목표는 감정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신을 인식함으로써 자유인으로 기쁘게 사는 것이다.(‘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윤리 이야기‘ 143 페이지) 늘 그렇지만 스피노자는 역시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할 철학자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2011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