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검열(檢閱)과 관련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뜻 밖에도(?) 소설 그 중에서도 중편인 최윤의‘회색 눈사람’이다. 1992년에 출간된‘회색 눈사람’은 5년 이상 지하 운동을 해온 문화혁명회라는 조직이 사라지기 3개월 전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 강하원이라는 여자 대학생의 회고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개인적 서정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매일 저녁 알 수 없는 열기에 젖어 낡은 인쇄소에 모여 반정부 메시지를 담은 유인물을 만들고 알렉세이 아스타체프의 ’폭력의 시학: 무명 아나키스트의 전기‘ 등의 책을 읽으며 시대를 보낸 강하원의 이야기인 ’회색 눈사람‘은“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는 인상적인 문장도 문장이지만 폭압적인 시대에 피어난 잔잔한 개인적 서정을 아프고 리얼하게 그려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물론 폭압적 권력에 본격적으로 맞선 내용을 담은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검열과, 그에 대응해 은밀히 지하 모임 활동을 한 운동권 학생들의 아우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만수 교수의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를 읽으며 ’회색 눈사람‘을 떠올린 것은 바로 아우라라는 개념이 이끈 상상 때문이다. 태초부터 있어 왔다는 유구(悠久)한 검열의 역사, 중세의 종교 검열, 근대의 국가 검열, 현대의 자본 검열 등 다양한 검열 주체들과 그에 얽힌 복잡한 양상을 세밀하게 분석한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에서 저자는 광주 비디오(1980년 5월 18일)나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 테이프의 복사본이 오히려 진본이 가진 아우라를 전도(顚倒)시켰다는 말을 한다. 불편함과 조악함, 그리고 위험함 속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결과이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했듯 그 이후 노래건 영상이건 책이건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면 수용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진본성의 아우라가 부활했다. 이는 결국 자본의 검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34 페이지) 검열은 자신의 존재를 은폐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는 은폐적 검열이라는 말로 수식 가능한 말이다. 은폐적 검열이란 말이 검열을 자행하는 사람들과 관계된 개념이라면 내부적 검열이란 말은 내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검열 기준에 맞춰 스스로 알아서 자체 검열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일상적으로 확대된다면 숨막히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일전에 니체가 부채 인간이라는 개념을 예리하게 드러낸 책을 읽고 놀라움을 느꼈는데 니체의 개념에 의거해 검열자는 노예이고 피검열자는 삶의 주인이라는 개념이 도출되는 것을 보고 같은 차원의 놀라움을 느꼈음을 고백해야겠다.(19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자국과 식민지 조선을 각각 내지(內地)와 외지(外地)로 구분한 일본제국주의의 행태가 21세기인 현재 변형된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미국에 들어간다는 말을 보라. 이는 단지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상정하는 변방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제인 것이다. 자본의 검열은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파급력을 행사하지만 국가의 검열은 다양한 논란을 낳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종교는 어떤가. 내 경우 블로그에 대형 교회 목사의 망언과 과도한 사치를 문제삼은 기사를 인용해 내 의견을 붙인 글을 올린 적이 두 차례 있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해당 교회로부터 글의 삭제를 요구하는 글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블로그 운영자가 이미 해당 글을 블로그 주인인 나만 볼 수 있게 설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에는 국가 검열과 자본 권력 외에 종교 검열도 상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니 그간 대형 교회들이 보여온 맹목적인 자기 변호와,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자신들의 목사를 무조건적으로 변호하는 모습은 그들을 종교 권력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저자는 종교가 검열 권력이 될 때 신앙심 때문에 더욱 철저해지고 강력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다면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98 페이지) 그런데 저자는 (허울 뿐이지만)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처벌하는 보안법보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이로운 주장은 모조리 금지되어야 한다는 대중들(네티즌)의 댓글을 더 가혹하고 불합리하다고 규정하며 이는 보안법 자체보다 오랫동안 우리의 내면에 각인된 집단 무의식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예라고 말한다.

 

내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검열의 또 다른 기능인 다른 생각의 여지를 차단하는 세뇌는 대중 또는 국민의 내면에 작용한다는 점이다.(122 페이지) ’경향신문,’‘한겨레신문‘ 등 진보적 언론들조차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 게재를 거부한 것은 자본 검열에 얽힌 우리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이고 씁쓸한 진실은 연결점이 없는 노무현 정권과 현 정권이 삼성에 의해 공히 좌지우지되었었다는 점에 있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를 체결한 것이 삼성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른 것이고 현 정권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삼성의 작품이었다고 한다.(119, 120 페이지)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 게재 불발 사건은 자본 검열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예이다. 그런데 이보다 히틀러가 초국적 자본인 모건 - 록펠러 연합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사실(히로세 다카시의 ’억만장자는 할리우드를 망친다‘ 참조)이 내게는 더 근원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자본이 조정하는 정권, 자본이 장악하는 담론장, 그리고 그것들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잘 살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뿌리 뽑지 않는 한 히틀러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이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불온이 없는 상식은 부패하며 상식이 없는 불온은 위태하다(187 페이지)는 문장 역시 묵직하게 다가온다. 불온은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상식의 건강성을 높이는 영양제이다.(188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불온에 대한 처벌의 목소리만 드높은 나라에서는 상식이라는 이름의 독재, 대중이 자행하는 검열이 판을 친다.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를 읽으면 소크라테스, 예수, 간디, 밀턴, 단테,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브루노, 토머스 모어, 존 로크, 스피노자, 볼테르, 하이네, 톨스토이, 마르크스, 루소, 토마스 페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검열의 희생자라는 사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사이버 망명이라는 것이 유행했다는 사실, 사라져 버린 중세적 세계에 대한 집착을 조롱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종교 검열의 관계, 검열을 피하기 위한 중국 작가 루신魯迅의 대응책이 200개 이상의 필명을 낳았다는 사실 등을 두루 알 수 있다.

 

이 중 자신의 저작권을 러시아 인민들에게 돌려준 톨스토이는 돋보인다. 톨스토이는 훌륭한 작품성과 카피레프트적 정신을 두루 가졌던 작가인 셈이다.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톨스토이는 지적 재산권의 배타적 보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저자에 의하면 정보접근권 차단 또는 지적 재산권의 과잉 보장은 광의(廣義)의 검열이며 훨씬 더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검열이다.(270 페이지) ”지적 재산권의 과잉 보장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계급에 따라 차별화함으로써 가난한 자의 머리를 빈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적 재산권의 과잉 보장은 검열로 이어진다. 저자에 의하면 ”발화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발화자에게 정보가 입수되는 것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정보독점은 단순한 검열보다 더 위험하다.”(281 페이지)

 

권력은 정보 독점에서 나온다. ’부족한 대로, 지금 여기에서 연대를’이란 글에서 저자는 싸움이 어려운 것은 적(敵)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 말한다.“우리의 일상 자체가 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으로 일상은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시 구조를 재생산“(302 페이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구조를 바꾸는 일 역시 우리의 각성에서 시작되며 자질구레한 실천들에서 힘을 얻는다.“(302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검열의 단짝은 감시이다. 하지만 검열의 그림자는 금서(禁書)라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삶 속의 문학, 독자 속의 비평’,‘삶 속의 비평’등의 문학 평론집을 쓴 저자에게 금서에 관한 책을 기대한다. 문학적 비평안(批評眼)이 멋지게 발휘된 책을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