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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흔 셋에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의 6주기의 해이다. 1930년대의 경상도 산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 분은 완고하게 가부장적이셨고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셨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셨다. 직업 군인(軍人)이셨기에 사회에 대해서는 서투셨고 가족에 대해서는 무뚝뚝하셨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분의 사후 1년인 지난 2007년 11월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서 열린 위령자 성월 추모 예배가 떠오른다.

추모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내 마음은 많이 무거웠다. 미움과 죄스러움이 각각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죄스러움은 다름 아닌 건강으로 인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몸이 아픈 아들에게 어떻게 한 마디 걱정도 표하지 않으셨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는 마음의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답을 하셨다. 나는 그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툰 아버지가 사셨던 삶의 방식이었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과 의미를 찾아 다녔다.

주로 책을 통해 찾으려 한 끝에 얻은 결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미령의‘그리운 아버지의 술냄새‘란 책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거대한 벽이나 든든한 기둥이기보다 아내와 자식에 대해 알뜰한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으로 마음껏 충족시켜주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남자로 묘사한 이미령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이미령의 책은 라훌라라는 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야소다라라는 한 여인의 남편이었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색 거리를 준다.

그런 큰 스승을 다시 만난다면 분명 큰 복일 것이다. 김윤옥의 ’내 영혼의 스승, 아버지‘라는 책은 그 실마리를 잡게 해준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 몇 년이 되지 않은 1950년대 후반 똑같이 재혼(再婚)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윤옥은 줄곧 가난과 병약(病弱), 중층으로 얽힌 가족사로 인해 긴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다. 김윤옥은 아버지 인산으로부터“엄마 자식이 아니라 내 인연으로 온 내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고 마음이 지독히 여렸지만 어머니의 탐욕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정이 떨어질 정도로 바른 소리를 했다.

이 부분이 김윤옥의 삶에서 아주 특별하고 인상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 역시 담고 있는 그 삶에 대해 김윤옥은 세상에 나와 특별히 할 일이 있기에 자신이 아버지의 연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며 어머니에 대해서는 더 큰 차원의 효도를 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신의(神醫)로 불렸던 그녀의 아버지 인산(仁山) 김일훈(1909 - 1992) 선생은 죽염(竹鹽)을 발명해 숱한 사람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분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1 ~ 3회 굽는 죽염의 시초는 선생의 조부인 김면섭이란 분이지만 9회 죽염의 기원은 인산 선생이시다.(’내 영혼의 스승, 아버지‘ 201 페이지)

죽염은 소금을 그대로 먹으면 안 되는 시절이 곧 올 것이라는 선생의 선견지명에 따라 만들어진 신비한 물질이다. 불교에 관심이 많은 내게 딸 김윤옥이 전한 아버지 인산 선생의 고도의 수행승 같은 삶은 진기하게 읽힌다. 아픈 몸 때문에 오랜 시행착오의 시간을 보낸 내게 희망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인산 선생이 만든 죽염과, 죽염과 함께 해야 완전해지는 쑥뜸이다. 죽(竹)이라는 글자가 말해주듯 죽염은 대나무 통에 담아 굽는다. 소금에 죽력(竹瀝: 솜대의 신선한 줄기를 불에 구워서 받은 액즙)이 스미게 하기 위해서이다.

김영희 약사는 죽염에는 동양의 음양오행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 무쇠솥(金), 대나무(木), 천일염(水), 송진불(火), 황토(土)가 그것이다. 김윤옥에 의하면 죽염을 구울 때 신묘장구대다라니와 불설소재길상다라니를 염송(念誦)한다고 한다. 기법보다 마음과 정성이 우선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지만 불교적 인연의 산물인듯 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점은 쑥뜸에 대해서도 하나인 듯 그대로이다. 만드는 자세가 수행을 닮았으니 뜸을 뜨거나 죽염을 먹는 행위 역시 그래야 한다.

호사를 누리고 싶어하는 자식들을 너무나 고생만 시켰기에 대가를 몸으로 치르고 갈 것이란 선생의 말씀과, 아버지의 육신을 고통스럽게 해드린 대가로 호사를 누렸다는 딸 김윤옥의 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는 ’내 영혼의 스승, 아버지‘를 통해 인산의학과 불교가 한 뿌리임을 알았다. 불교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을 연상시키는 인산선생의 대답은 특히 그렇다. 선생은 당신에게 배우기 위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다른 답을 하셨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이해능력에 따라 설법하는 대기설법인 셈이다. 김윤옥은 좋은 것은 갖고 싶어 하면서도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공짜를 바라는 심사라고 말한다. 이 역시 수행 차원에서 읽히는 대목인 동시에 김윤옥의 아버지 인산 선생의 지론(持論)과도 통한다. 죽염 특히 아홉 번 굽는 죽염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녕 수행자를 닮았다. 특별한 사명에 대한 자각이 있고 자비심이 있고 고행을 각오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김윤옥은 죽염을 굽는 사람은 수행자의 마음과 자세로 구워야 한다고 가르친 인산 선생의 말씀을 들려준다.

경남 함양(咸陽)은 인산가의 본거지이다. 김윤옥은 자신들이 함양을 택한 것은 지명대로 볕이 골고루 다 비치는 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함(咸)이란 글자는 다 함이라는 뜻 말고도 짤 함, 소금기 함이라는 뜻이 있는 글자이다. 죽염의 근원지로 안성맞춤이 아닌가 싶다. 김윤옥은 인산 선생은 자비심이 있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불(佛)이었지만 욕심이 차 있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불<火>이었다고 말한다. 김윤옥의 책은 아버지에 대해 별 감흥이 없는 나조차 아버지를 그리고 아프게 회상하게 할 만큼 파급력이 강하다.

나는 인산 선생의 자식 사랑을 대하며 아픈 나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자식을 넘어 이웃 그리고 더 크게는 세상을 향한 사랑을 보인 인산 선생으로부터 수행자를 보았다. 내가 선생 정확하게는 인산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건강 때문이고 건강을 좋게 해주는 죽염 때문이다. 하지만 죽염에 깃든 정성과 자비(慈悲)의 부성(父性)은 물질 이상의 마음에 근거를 둔 것이다. 김윤옥이 행한 인산 선생에 대한 추모는 나에게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여겨진다.

인산 선생의 큰 아들인 김윤우 선생에 의하면 죽염은 한쪽은 뚫리고 한쪽은 막히도록 마디와 마디 사이를 차례로 자른 3년 이상 된 왕대나무통 안에 서해안 천일염을 잘 다져 넣고 심산 속의 거름기 없는 진흙(황토)으로 입구를 봉한 후 소나무 장작 등으로 불을 때되 대나무가 타는 불 위에 송진을 뿌려가면서 극도의 고열로써 아홉 번 구워낸 것을 말한다.

혈압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소금은 미네랄이 없는 정제염(精製鹽)이나 암염(巖鹽)일 뿐 죽염은 오히려 건강에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신비의 물질이다.(함경식, 정종희, 양호철 지음 ’소금, 이야기‘ 59 페이지) 소금에 관한 이런 진실은 참된 가르침을 가려내야 하는 세간(世間)의 메타포로도 읽힌다. 쑥뜸<直接灸>을 뜨며 들었던 무아(無我)의 경지에 대해 말씀하신 옛 스승이 생각난다. 스승을 생각하면 늘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영혼의 스승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