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언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비이다. 확률적으로 인간은 수억 분의 1의 게임에서 이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기적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게 신비한 존재인 인간이 태어난 곳은 너무 비우호적이다. 환경도 그렇고 우리 몸 자체가 진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릎 통증은 우리가 물고기에서 진화한 결과 치르는 대가(닐 슈빈의‘내 안의 물고기’281 페이지)이고 정맥류, 디스크, 요통, 척추관 협착증 등은 두 발로 걷게 된 결과라고 한다.(‘괴짜 생물 이야기’25 페이지)

 

그러나 어디 이것들 뿐이겠는가. 상기한 것들이 미치지 못하는 염색체의 결실(缺失). 전좌(轉座), 중복(重複) 등으로 인한 유전병을 보라. 저자에 의하면 노화의 원인에는 몇 가지 의견이 있다. 그 중 활성산소가 세포를 죽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과유불급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인 것은 산소만이 아니다.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적절히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항산화 물질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서 한동안 과일을 반찬으로 삼은 적이 있는데 그 음식에 항산화 물질이 많다고 하니 적당히, 라는 말의 의미가 심장(深長)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몸은 신비하다. 산소를 운반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위해서는 쓰지 않는 적혈구를 보라.(42 페이지) 적혈구가 자신을 위해 산소를 쓴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난감한 느낌이 든다. 저자는 끊임없는 생멸의 진실을 언급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는 적혈구가 300만개에 이른다고 한다.(40 페이지)‘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의 주역(主役)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현재의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lice)의 경우 DNA 분석 결과 약 200만년 전에 고릴라로부터 사람으로 옮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이후 그 놈들이 들끓는 것이 두려워 사람의 몸에서 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79 페이지) 털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반딧불이는 보통 딱정벌레 즉 갑충으로 불린다. 딱정벌레가 연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진화 생물학자인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1892 - 1964)이다.

 

그는“조물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그 양반, 딱정벌레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괴벽이 있었던 모양이야”라 대답했다고 한다. 홀데인의 말은 지구에서 제일 많은 존재가 곤충이고 곤충의 거의 3분의 1이 딱정벌레인 데서 나왔다. 그런가 하면 자웅동체임에도 반드시 짝짓기를 통해 정자를 서로 맞교환하며 난생하는 거머리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거머리는 자가수정하면 시원찮은 자식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었던 우생학의 도사라 풀이한다.(99 페이지)

 

저자의 글들에는 과도한 의미가 부여된 인간에 대해 정색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우리는 자연이 꼭 있어야 하지만 자연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글은 존재론적 위상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한다.‘생물물의 애옥살이’,‘생물의 죽살이’등의 책을 쓴 저자는 이번 책에서 참나무나 동백나무 등에 기생해 사는 겨우살이를 "어쨌든 힘들고 어렵게 부대끼며 애옥살이하는 것은 틀림없으렷다.”(168 페이지)란 문장으로 설명한다. 애옥살이는 가난에 쪼들려서 애를 써 가며 사는 살림살이를 뜻한다. 그런데 겨우살이와 나무는‘그 나무에는 그 겨우살이’하는 식으로 생태적 지위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악연도 정해진 운명(단짝)이 있으니 기이하다고 할 밖에.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진기한 사실들이 몇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세포 내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가 호기성 세균을 받아들인 결과물(공생의 결과물)이라면 엽록체는 단세포 남조류가 식물세포에 유입된 결과물(공생의 결과물)이라는 점. 꽃식물(현화식물)의 꽃, 뿌리, 과일, 씨앗, 껍질 등에서 얻는 고추, 마늘, 생강, 파, 양파, 부추, 후추 등의 양념거리들은 물질 대사의 결과 덤으로 생긴 2차 산물로 세포가 늙을수록 커지는 액포(液胞)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 노폐물(224 페이지)이라는 점 등...

 

액포는 동물의 신장(腎臟)에 해당하는 식물의 배설기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액포 속에 단풍의 아름다운 색깔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228 페이지) 전체 여섯 챕터 가운데 다섯 번째 챕터에 속한 식물의 소리 없는 전쟁, 타감 물질이란 글은 여러 면에서 송광일의‘기적의 채소’를 생각하게 한다.“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라는 첫 문장부터“식물이나 세균, 조류(藻類), 곰팡이는 하나같이 나름대로 다른 종에 해로운 물질을 분비하여 그것들의 생장, 발생, 생존을 못하게 구니 이를 타감작용이라”한다는 문장에 이르기까지...

 

나는 자연재배 농법에 대한 책인‘기적의 채소‘를 과학 분야로 분류했다. 이 책은 전압 이론이 독특한데 저자인 송광일 교수에 의하면 압력(壓力)이 낮은 미생물일수록 상호 견제와 경쟁이 심하고 그 결과가 상대를 죽이고 먹이를 독차지하기 독성물질을 뿌려댄다. 미생물이 독성물질을 만들어 뿌려대는 것이 바로 타감작용이다. 이 글은 다음에 나오는 미기후를 이용한 생물들의 지혜와 비교된다.

 

미기후(微氣候: microclimate)란 볕쬠이나 바람받이 등에 따른 기후의 차이를 이르는 말이다. 양지바른 밭두렁에 자못 찬 기운에 시푸르죽죽 검붉은 색을 한 핼쓱한 냉이, 민들레, 고들빼기 들도 이 미기후를 애써 이용하느라 하나 같이 땅바닥에 바싹 웅크린다.“(221 페이지)는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듯 식물들의 생존 전략은 타감작용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고 미기후를 이용하는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나무에서 방산(放散)되어 주위의 미생물 따위를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인 피톤치드는 타감작용에 쓰이는 대표적 화학 물질이다.

 

하지만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는 문장은 ”벗님네들이여, 정녕 삶이 버겁고 팍팍하여 힘겹고 지겹다 싶으면 겨울 밭가에 나가 보라, 끈질기고 웅숭깊은(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은) 생명들이 당신을 살갑게 맞이할 것이다. 조금만 힘을 내면 따스하고 포근한 봄이 어김없이 오고야 만다.“(222 페이지) 같은 글이다.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푸근한 인간미이다. 기이하고 오묘한 생물 이야기 곳곳에 스며든 그런 따뜻한 정서도 ’괴짜 생물 이야기‘를 빛내는 요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