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면역(免疫)이란 말은 실은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이다. 면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고른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에 의하면 면역은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자연 치유 능력을 의미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나에게 면역은 참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슈이고 더 갖추어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물론 하기와라 기요후미의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은 면역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면역 시스템 내지 구조를 해명한 책이다. 그럼에도 그림과 간결한 요점 정리식의 편집 방향이 면역을 꽤 재미있게 느끼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그럼 면역의 가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에 대해 공격하지 않는 것과,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해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 면역 시스템은 나를 공격하기도 하고 나 아닌 다른 것을 공격하지 않기도 한다. 전자를 자기/자가 면역 질환(自己/自家 免疫 疾患)이라 하고 후자를 비자기 관용(非自己 寬容)이라 한다.(면역 반응이 어떤 성분에 대해 감히 반응하지 않는 것을 면역관용이라 한다.) 우리는 비자기 관용 때문에 모태에서 무사히 열 달을 보낼 수 있다.(산모 입장에서 보면 태아는 자기가 아닌 존재이다. 임신 유지 또는 태아의 생명 유지는 기적이라 할 만하다. 면역계는 자기 면역 질환을 예방하는 3단계의 차단막이 있다. 그런 엄격한 차단막을 뚫고 자기면역 질환이 일어나기는 아주 어렵다. 그렇지만 전무하지 않고 가끔 일어난다. 우리가 음식이라는 면역적 의미의 이물질을 매일 아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면역 관용 덕분이다.)

 

암세포란 비자기 관용이 교묘히 악용당한 결과이다. 우리의 무사한 출생과 암세포가 비자기 관용이라는 뿌리를 공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면역학에서 보는 나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역동적인 어떤 것이다. 나를 공격하지 않고 몸 안에 침투한 나 아닌 다른 것을 공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런 구별이 가능한 것은 주요 조직 적합 유전자라 불리는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때문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 몸과 면역 시스템은 상당히 정교한 체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정교한 면역 시스템이 속수무책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현상은 에이즈 때문에 생긴다. 그 이유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면역의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헬퍼 T(helper T) 세포를 살해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은 어려운 개념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해 설명하기에 쉽고 친근하다. 예컨대 그는 DNA를 테이프에, 유전자를 녹음된 내용에, 염색체를 테이프와 같은 DNA를 콤팩트에 담아 단백질로 보관한 것 즉 카세트 테이프에, 게놈을 카세트 테이프 전집에 비유한다. 유전자는 세포 속의 핵이라는 도서관과 같은 장소에 보존되어 있다. 어떤 세포가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도서관(핵) 안에서 필요한 설계정보(유전자)만을 복사해(복사) 그 복사본(mRNA라는 끈 모양의 분자)을 도서관 밖으로 운반한다. 그리고 그 복사본을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든다.(번역) 이와 같은 과정을 유전자 발현이라 한다.

 

우리가 한 번 걸린 질병에 두 번 걸리지 않는 이유는 두 번째로 침입한 병원 미생물(病源 微生物)을 면역 기억세포가 신속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기 바이러스는 겉옷에 해당하는 표면 단백질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기 때문에 기억세포가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감기에 걸리고 또 걸리는 이유이다. 자기 면역 질환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것은 세포 자살이라 불리는 아포토시스(apoptosis)이다. 이것은 세포끼리 상호 작용해 스스로 죽어버리는 메커니즘이다. 나에게 반응하는 미숙 T세포는 바로 이 아포토시스에 의해 선별적으로 제거된다.

 

(아포토시스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기능장애를 말아포토시스malapoptosis라 부른다. 반면 아포토시스의 기능항진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의 원인이 된다. 세포가 너무 오래 살아 생기는 병의 대표적인 경우가 암이다. 암세포는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분열하고 증식하는 막가파 세포이다. 세포 분열에 박차를 가하는 단백질이 브레이크를 거는 단백질보다 우세해지면 세포는 이상 증식하게 된다. 이 이상 증식은 유전자가 상처를 입어 이상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암세포는 아기 흉내를 내고 담당 세포의 공격을 피해나간다.)

 

나에 반응하는 T(Tthymus: 흉선)세포나 B(Bone marrow: 골수)세포 가운데 어릴 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있다. 이때 자가 면역 질환이 발생한다. 자가 면역 질환이 일어나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면역 반응에 브레이크를 거는 서프레서 T 세포((suppressor: 억제 T 세포)의 활동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자기 면역 질환의 하나인 류마티즘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류마티즘을 자가 면역 질환이 아니라 만성염증이나 종양과 같은 질환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자가 면역 질환이면서 류머티즘성 질환이 아닌 병 가운데 다발성 경화증이 있다.

 

면역 시스템은 참 신비하고 정교하다.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을 읽으며 느낀 것은 바로 그 면역 시스템을 총괄하는 생명의 신비이다. 면역이 단지 면역에 그치지 않고 생명의 신비와 연결되는 현상을 하기와라 기요후미가 증거한 것이다. 그의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은 한 번 읽고 놓을 책이 아니라 두고 두고 참조할 책이다. 생명과 생물학, 그리고 면역학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음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