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슈만, 그리고 브람스. 낭만 시대의 이 세 거장들이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그 세 사람을 보며 스승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마음으로 사모했던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1833 - 1897)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슈만의 정신적 질환과 창조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그리고 브람스와 슈만이 사랑한 단 한명의 뮤즈로 주로 알려진데 비해 연주나 작곡 재능에 대해서는 덜 알려진 클라라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슈만이 앓았던 환청을 추리 기법으로 처리한 몰리 토고브(Morley Torgov)의 장편 ‘A장조의 살인’은 19세기 중반 독일의 음악계를 그려낸 세밀화(細密畵)이다. 이 작품에는 슈만, 쇼팽, 리스트, 바흐, 베토벤 등의 여러 작곡가들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그 중 한 사람인 로베르트 슈만(1810 - 1856)은 머리 속에서 A음이 끊임없이 들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작곡가로 등장한다. 이 고통 호소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슈만의 부탁을 받고 탐정(探偵)으로 나선 사람은 헤르만 프라이스 경위(警衛)이다. 미식(美食)과 와인, 아름다운 음악과 여자 친구에게 흠뻑 빠져 자유를 누리며 사는 40세의 독신남인 그는 피아노 연주법을 배우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슈만의 집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 - 1886)는 클라라가 연주한 피아노의 A음이 적어도 4분음 정도는 높게 설정되었다는 말을 던진다.

 

헤르만 프라이스는 슈만 전기를 집필중인 게오르크 아델만 기자를 만나 슈만의 첼로 협주곡 연주를 앞둔 헬레나 베커에게 작곡가 슈만의 삶에 대해 들려주기 위해서 슈만의 삶과 예술성에 대해 듣기를 원한다는 말을 한다. 한편 헤르만 프라이스는 슈만이 앓는 환청의 단서(端緖)를 잡기 위해 피아노 조율사(빌헬름 후퍼)와 슈만의 정신 치료 주치의(파울 뫼비우스)를 차례로 만난다. 음악 학자인 피터오스왈드에 의하면 슈만은 환청으로부터 많은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슈만을 돕던 그 환청은 슈만을 완전히 집어삼켜 천사의 음악으로, 그리고 악마의 음악으로, 마지막으로는 밤낮 끊이지 않고 견딜 수 없게 울려댄 끔찍한 A음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헤르만 프라이스는 조율사에게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도 어떤 음이 지속적으로 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정신 치료 주치의에게는 환청이 외부 요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그 두 사람 모두에게서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한다. 슈만은 활동적이며 대담하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존재를 뜻하는 플로레스탄과, 온화하고 내성적이며 생각이 깊은 존재를 뜻하는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필명이 상징하듯 양극(兩極)의 정신장애를 앓는다.

 

‘A장조의 살인’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살아 숨쉬는 듯 리얼하게 묘사된 19세기 중반 독일 음악계이다. 슈만은 멘델스존이 유언을 통해 자신에게 선물로 남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가 사라지자 아델만을 의심하며 악보를 되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게오르크 아델만이 의문의 타살을 당하자 헤르만 프라이스는 슈만이 진범일 것이라 확신한다. 헤르만 프라이스는 처음에는 슈만을 의심하다가 후에 조율사인 빌헬름 후퍼를 의심한다. 후퍼는 슈만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던 클라라 비크(클라라의 아버지)가 후퍼를 시켜 예민한 음감을 가진 슈만을 미치게 할 목적으로 피아노 음을 약간 틀리게 설정하게 했다는 자백을 하지만 아델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클라라는 경위에게 자신이 아델만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경위는 그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 클라라는 후퍼의 가방에서 소리굽쇠를 빼내 아델만의 몸 아래에 두어 경위로 하여금 상습범의 짓이라 믿게 하려 했다고 말한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슈만 역시 자신이 아델만을 죽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번에도 경위는 그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 클라라와 슈만의 덫에 결렸다는 생각 때문인지 경위는 문제의 그 소리굽쇠를 강에 던져 버린 뒤 아델만의 원고를 불태운다.

 

경위는 “어떤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을 한다. 경위는 사건에서 손을 뗀다. 그는 로베르트 슈만이야말로 풀리지 말아야 할 미스테리라는 말을 한다. 그 후 알려진 대로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가 차례로 유명(幽明)을 달리한다. 정신병원에서 자발적 기아(饑餓)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슈만으로부터 삶의 비극성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한편 가부장적 사회에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죽어간 아름다운 클라라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브람스 역시 고난의 인생 역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A장조의 살인’은 스릴과 예술적 분위기를 갖춘 흥미로운 소설이다. 하지만 범인 색출에 많은 장이 할애(割愛)된 반면 슈만의 곡들이 작곡된 배경이나 심리치료 과정에 대한 묘사가 없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독백 형식으로든 대화로든 슈만의 내면을 알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이스를 화자(話者)로 하기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해 슈만과 클라라 부부의 대화를 실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든다.

 

1860년대는 정신의학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시대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슈만의 정신 치료 주치의로 나오는 파울 뫼비우스는 요즘 수준에 비추어 보면 많이 미숙해 보인다. 지난 2008년 제작된 Helma Sanders-Brahms 감독의 독일 영화 ‘GeliebteClara’가 곧 개봉될 것이라 한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과 세 개의 로망스를 들으며 음미하던 찬란한 우수(憂愁), 그리고 비극적인 사랑(영화를 해설한 한 외국 사이트에서는 turbulent love라는 표현을 썼다.)을 영화를 통해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2010년 12월 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