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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는 길고 오묘한 내력을 지녔다. 멀리 그노시스주의에서 프리메이슨, 피타고라스 학파와 퀘이커교도와 비기독교 종교인 마니교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도 신비주의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 실정이다. 버나드 맥긴의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 로렌츠 마티의 <신비주의자가 신발 끈을 묶는 방법>, 엄두섭의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 금인숙의 <신비주의>, 브루노 보르체르트의 <초월적 세계를 향한 관념의 역사>, 김영태의 <신비주의와 퀘이커 공동체>, 류금주의 <이용도의 신비주의와 한국교회> 등이 주목할 만한 책들이다. 눈에 띄는 점은 저자들마다 신비주의에 대해 각기 공유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루노 보르체르트에 의하면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만들어졌다. 이 말은 비밀의식(秘密儀式)과 깊은 관계가 있는 말이다.

류금주는 <이용도의 신비주의와 한국교회>에서 이용도목사를 한국 교회 최초의 신비주의자로 그렸다. 기독교에서 신비주의 논쟁이 주요 이단 논쟁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게가 작지 않은 규정임을 알 수 있다. <초월적 세계를 향한 관념의 역사>는 영지주의를 신비주의의 하나로 소개했다. 이 책은 성경을 신비주의의 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점은 특이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에는 스베덴보리가 소개되었고 <신비주의자가 신발 끈을 묶는 방법>에서는 바울이 신비주의자로 소개되었다. 바울이 신비주의의 한 형태인 영지주의자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잘 알려진 바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신비주의자가 신발 끈을 묶는 방법>의 메시지는 전혀 뜻밖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가 쓴 <예수는 신화다>에서 바울은 영지주의자란 이름을 얻었다. 박명룡목사는 <예수는 신화다>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 <예수는 신화가 아니다>를 저술했다. <사해사본의 진실>의 저자 마이클 베이전트는 한 번도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한 바울이 단지 광야에서 의사(疑似) 신비주의적인 체험만을 근거로 그만의 신학을 만들어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사실 바울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 영지주의자 논쟁의 한 가운데에 있는지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내 짧은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 한다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에 노출되었고, 고린도 후서 12장에 의하면 환상과 계시에 대해 이야기한 인물이다.

고린도 후서 12장에 기록된 바울의 체험이 환상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 확실하다면 왜 스베덴보리는 신비주의자라 불리고 바울은 아닌가, 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브루노 보르체르트에 의하면 영지주의자들(그노시스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선했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성경적 해석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내적인 자아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육체와 세상은 하나님이 아닌 열등한 다른 창조자의 작품이라고 믿었던 무리들이다. 이로써 나는 영지주의자들이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 이단으로 분류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울은 환희를 경험한 신비주의자였다.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더 강한 빛에 노출되어 눈이 멀었던 바울은 며칠이 지나 회복되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실신 상태에서 비록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고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바울은 환희적 경험 상태에서 경고를 보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해졌다. 바울이 많은 편지에서 설교했듯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신비주의적 특성을 지녔다. 그것은 육신적인 삶에서 정신적인 삶으로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육체를 개개인이 벗어야 하는 사악한 것으로 보았던 그노시스적 의미의 변화가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위해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의미의 변화였다. 바울과 요한은 사랑보다 위에 있다는 그노시스 즉 영지(靈智)를 배척했으며 육신은 악한 것이라는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으로 왔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브루노 보르체르트는 바울을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지만 신비주의의 한 유형인 영지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브루노 보르체르트는 종교의 근본적 의미는 모든 분쟁과 갈등이 사라진 우주적 차원에서의 화합과 통일, 모든 불안이 씻겨 나간 영원한 행복을 향한 인간의 열망 추구에서 찾아야 한다는 울레인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종교와 신비주의는 겹치는 면이 있다는 말을 했다.

한편 "내적 신비주의와 외적인 정치 지향성의 차별을 없애려 했던 도로테 죌레박사는 신비주의의 역사는 하나님 사랑의 역사(The history of mysticism is a history of the love for God)이며 신비주의는 저항을 의미한다는 말을 했다. 사회학자 금인숙은 “우리 내면의 무한자, 즉 신 또는 빛과의 만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경험이다. 그 체험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체험이라는 핵심요소를 공유하는 모든 것을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신비주의는 이 세상을 도피하거나 이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요소를 항상 지녀왔“다는 말을 했다. <나는 신비주의자입니다>는 스베덴보리로 인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는 'My Religion‘이다. 'My Religion‘을 ’나는 신비주의자입니다‘라 한 이유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서일까? 물론 나는 헬렌 켈러를 신비주의자가 아닌 남다른 합리성을 갖춘 이성주의자로 본다. 때로 혁명가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헬렌 켈러는 조용한 내적 경로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영성, 사랑과 생명의 가치 등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한 사람이다.

헬렌 켈러는 “만일 바깥 세상을 이해하려는 수고를 하지 않은 채 신비적 감각만을 사용한다면 나의 발전은 좌절되고 내 주변의 모든 일은 뒤죽박죽이 될 것입니다.”란 말을 했다. 이 말만으로 모든 것을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헬렌 켈러는 이성적인 균형을 갖춘 인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신비주의자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신비 체험이란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오는 불가항력적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체 체험을 한 신비주의자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잘못이라 말할 수 있다. 엠마뉴엘 스베덴보리(1688~1772)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평을 듣고 있는 분이다. 그분은 18세기에 주로 활약했던 스웨덴 출신의 신학자이다. 물리학자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57세 때 영국 여행 도중 런던에서 '강력한 빛'에 노출된 후 영계(靈界)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강력한 빛이라는 말이 어느 면 바울의 ‘해보다 더 강한 빛’을 연상하게 한다.

신비적 경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신비주의자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물론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이단 정죄를 받았다. 스베덴보리는 물리적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경계는 투명하기 때문에 영혼을 보는 것이 인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의 그런 손쉬운 영혼 체험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天界秘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으로 탄생했다. 철학자 칸트는 스베덴보리의 체험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했다. 나는 칸트가 스베덴보리의 체험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박했다는 말을 했다. 아울러 종교와 신비주의는 일정 정도 속성을 공유한다는 말도 했다. 신비주의는 하나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생명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스베덴보리의 체험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박했던 칸트는 철학자이며 뉴턴의 역학을 <순수이성비판> 저술의 토대로 삼은 아마추어 물리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스베덴보리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물리학을 공부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理性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쓴 학자이기도 하다. 종교나 철학 뿐 아니라 자연 과학 영역에서도 신비주의와 관련된 일화는 많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은 그가 중세 신비주의의 전통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철학자 김영민은 뉴턴이 마지막 주술사(呪術師)라 불리는 이유는 개방과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지식 체계와 달리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병적으로 숨기려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병적으로 숨기려 했다는 말이 신비주의의 비밀의식(秘密儀式)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1646년 퀘이커의 창시자인 조지 폭스는 강렬한 신비적 경험을 한 후 모든 외적인 종교를 배척했다. 그는 인도자나 성경을 비롯한 모든 책의 도움도 없이 예수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독재와 전쟁을 반대했고 병역 의무도 거부했다. 퀘이커는 아미시, 메노나이트와 함께 병역 의무 면제를 허락받은 종교 단체이다.(퀘이커와 아미시가 병역의무 면제를 받은 것은 1869년이고 미국이 징병제를 폐지한 것은 1974년이다.) 나는 퀘이커가 병역 거부만큼이나 인도자 및 성경을 배제한 채 직접 예수를 만나려 하는 점 때문에 백안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비주의의 파격적인 면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도 않고 육체와 정신도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단 논쟁과 함께 신비주의 논쟁 역시 교파 이기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신비 체험을 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겪은 바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초기 기독교의 정전 선정 과정이 숱한 우여곡절과 알력의 소산임을 알고 있다. 오강남 교수는 ‘불교, 이웃 종교롤 읽다’에서 영매(靈媒), 육체 이탈, 점성술, 마술, 열광적 흥분, 신유 체험 등에 빠져드는 신비주의를 부정적 신비주의로 분류하는 독일의 사례를 언급했다. 물론 그들의 분류에 따르면 절대자와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는 긍정적 신비주의이다. 신비주의에 대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동시에 매력적인 견해는 ‘신비주의와 저항’이란 책을 통해 신비주의가 저항의 한 형태라고 규정한 도로테 죌레의 견해이다. 내적인 지향성과 외적인 지향성을 함께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규정은 신비주의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