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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영혼의 존재, 심령주의, 영혼불멸 등은 논란이 많은 이슈이다. 논란이 많은 만큼 사정은 복잡하다. 불멸에 대한 꿈이 종교계에서 수용되고 있지만 일부 종교인들은 반대를 하고 있고,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표방하는 과학도 일관성과는 거리가 멀며 통일된 견해에 이르지 못한 것 등을 보라. 레닌의 사체를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한 장례위원회인 불멸화 위원회를 제목으로 정한 존 그레이(John Gray: 1948 - )의‘불멸화 위원회'는 종교와 과학, 정치를 아우르며 논란 많은 불멸이라는 이슈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존 그레이는 서구의 계몽주의는 끝나지 않은 기획이며 그 본질은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관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독특한 주장을 하는 사상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과 종교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화로 여겨졌던 구약의 창세기가 어떤 현상의 실제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오해받기 시작한 것은 근대 과학이 발흥하면서부터라고 저자는 운을 뗀다. 저자는 내세를 약속하지 않는 여러 유신론 분파가 제시한 내세의 양태가 천차만별이었다고 말한다. 진보나 목적 등의 개념이 포함되지 않았던 다윈 진화론이 인간을 진화의 정점으로 설정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영혼의 진화는 물론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닌 우주적 진보의 한 단계로 여기는 데에 동기로 작용했다. 이를 다윈 사상을 왜곡한 것이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이 스스로의 발견에 반하는 믿음이 완벽을 향해 진보해가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루는 주제의 특성상 논의가 꽤 복잡하지만“내세의 자아가 현세의 자아를 가지 자신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현세의 자아는 내세의 자아에 신경쓸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핵심적이고 정교하다. 회의주의 때문에 오히려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갖게 된 벨푸어의 경우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실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기대는 습관의 문제라는 귀납법의 기본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이끌어내는 것은 놀랍게 보인다. 저자는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감각에 의존하는 실증 방법론이라는 과학의 기초를 비판적으로 본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세상을 잘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격언 같은 진리를 언급한다.

불멸에 관한 종교적 신념은 물론 과학적 확신에 개인의 삶이 영향을 미쳤음을 저자는 증언한다. 심령주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우생학을 반영한다고 한다. 우생학자들은 결함 없는 인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고 심령학자들은 사후의 육신이 결함 없는 상태일 것이라 믿은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은 어떤 글쓰기나 행위도 마술적인 받아쓰기(자동기술: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나 쓰는 내용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누군가가 이끄는 듯한 상태로 글을 생산하는 것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불러주는 것을 포함한다.) 바깥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확신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SF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1866 - 1946)의 경우도 저자의 논의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과학자, 엔지니어 등 지적 소수가 진화를 통제하는 고삐를 쥐고 인간 종(種)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이 신과 같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SF에서 웰스는 그의 전망과 다르게 암울하고 희망없는 이야기를 했다. 과학을 주술의 일종으로 본 건신주의자(建神主義; God - builders)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을 요한다. 세속적 신비주의의 일종인 건신주의자들은 진정한 혁명가라면 인류의 신격화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죽음을 없애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이다. 인류를 재창조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생체실험을 지지하기까지 한 ’어머니‘의 작가 막심 고리끼가 대표적 건신주의자였다.

고리끼는 늘 러시아 농민들을 하등한 인간이라 생각했다. 이런 모습은 민중주의자의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레닌의 시신을 방부처리하려 한 레오니드 크라신은 고리끼처럼 죽은 자를 과학적으로 살려낼 수 있다고 믿은 건신주의자였다. 레닌의 묘는 정육면체 형태였다. 이는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었다. 특기할 것은 레닌의 묘가 위대함과 중요성의 측면에서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나 이슬람과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능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레닌은 물리적으로 되살아날 것으로 믿어졌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보는 것은 종교와 과학,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연관성이다. 공산주의의 목표는 죽음의 정복이라는 말을 한 21세기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로 프로하노프의 사례를 보라.

저자는 처음부터 볼셰비키는 영지주의(靈智主義)의 일종이었다고 말한다. 영지주의는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 이단세력으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볼셰비키의 행위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든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과학은 저온 동결로 사체를 보존하려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나 수백년 동안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진 후 냉동 상태에서 되살아나겠다는 사람들은 그런 후에 보게 될 수백년 이후의 사회가 냉동되었을 당시의 사회와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말을 한다. 개체가 성공적으로 냉동을 통해 깨어나더라도 평온한 삶을 누리기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과학은 가장 성공적일 때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왔고 또 그럴 것이다.

저자는 진보 개념은 종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앞서 말한 종교와 과학,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연관성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불멸화 위원회‘의 3부는 달콤한 필멸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불멸 추구에 대한 환상(幻想)을 깨는 글이다.“무엇이 살아남든 개인은 소멸”하며“죽음은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승리한다.”는 것이다.(25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불멸주의는 인간 소멸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런 소멸 과정보다 더 완전하게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기획이다. 이런 선언은 어떤 사상가도 제시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다. 단지 실패하는 것을 넘어 불멸이 아닌 소멸을 재촉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영원히 살고자 한 동물은 새로운 종을 창조하기 위해 진화 과정에 개입하다가 그 자신의 존재를 끝장내고 만다.”저자는 종교와 과학은 둘 다 문자 그대로의 용어로는 온전히 드러날 수 없는 실재에 대한 상상, 은유의 체계들이라고 말한다.(264 페이지) 그리고 종교처럼 과학도 초월하려는 노력이고 그 노력은 이 세계가 이해 불가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끝이 난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했듯 죽음은 걱정과 염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달콤한 필멸이라는 말은 헝가리인 시인 죄르지 팔루지의“필멸의 향기가 주는 즐거움’에서 유래한다.

저자는 팔루지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죽음을 각오함으로써 극복한 것“ 같다고 말한다.(271 페이지) ”불행히도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자아 이미지에 너무 들러 붙어 있어서 현재를 사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을 추구하면서 자기 자신이었다고 생각하는 상(象)을 미래에 투사하려“하며 ”기억에서 그림자 같은 분신이 불려”나오며“이 유령 자아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닌다.”는 저자의 말은 정치학자라기보다 종교철학자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족하다. 영원한 존재는 영원한 고요함일 뿐이다.

월러스 스티븐즈(Wallace Stevens: 1877 - 1955)는‘일요일 아침’이라는 시에서“낙원에는 죽음의 변화가 없을까?/ 무르익은 과일도 떨어지는 법이 없을까? 가지들도/ 늘 무겁게 그 완전한 하늘에 걸려 있을까?/ 변함 없이...”란 말을 했다. 스티븐즈의 시는 독자를 논리적 아포리아에 빠트린다. 무르익은 과일이 떨어진다면 죽음 또는 소멸의 존재로 인해 그곳은 낙원이 아니며 떨어지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풋과일과 익은 과일의 차이가 있을 수 없는 무변화의 죽은 공간(그레이의 용어로 영원한 고요 즉 정적靜寂의 공간)이 될 것이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내키지 않겠지만 불멸에 대한 망집(妄執)에서 깨어난다면 그리 손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