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은 문예평론가인 이토 우지다카가 2010년 백수(白壽: 99세)를 맞이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의 독특한 수업을 집중 소개한 책이다. 얼마나 독특한 것이기에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한 권의 소설을 3년에 걸쳐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는 미독(味讀)이기에 가능했다. 수업 방식 자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수업이 낳은 성과이다. 선생에게서 배운 학생들은 모두 로맨티스트가 되었고 여유로운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무대는 고베시 인근의 나다 중고등학교였고 교재는 나카 간스케의‘은수저’란 소설이었다.

 

선생의 수업이 인상적인 것은 현대는 속도와 성과를 신앙처럼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1940년 이후 40년에 걸친 시기였지만 선생이 거행한 수업은 혁명적이라 불리기에 족하다. 지금처럼 속도를 신앙처럼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 1930년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선생의 수업이 혁명적인 것은 변함이 없다. 선생은 지금도‘은수저’를 요즘 학생들에게 맞는 교재로 바꾸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통해 선생의 이름을 처음 들었지만 17 세기 일본 막부의 천주교 탄압을 소재로 한‘침묵’의 저자 엔도 슈사쿠에 대해 가르쳤다는 선생의 이력은 오랜 구면인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저자 이토 우지다카는“속독으로는 결코 익힐 수 없는 하시모토 선생의 미독의 비법”이란 말을 한다. 하시모토식 수업의 핵심은 소설에 나오는 대로 학생들로 하여금 과자를 직접 맛보게 하고 연을 만들어 날리게 하고 축홍(丑紅)이라는 말에 대해서 가지를 펼치는 설명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주인공의 견문과 감정을 직접 체험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고, 배경 지식과 관련 어휘를 풍부히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단순한 정보 습득은 속독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물론‘은수저’는 어린 학생들에게 평생 잊어서는 안 되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과 감수성을 전하려는 선생의 취지에 맞게 선택된 소설이다.

 

눈에 띄는 설명은 선생의 수업은 단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학 연구가가 섬세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형태에 가까웠다는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고 선생이 올랐던 언덕을 오르기도 한다. 이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소설 속 장면을 따르게 한 것을 연상시킨다. 두 개의 추체험(追體驗: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이 하나로 읽히는 순간이다. 또한 선생의 수업은 자신의 선생으로부터 배운 바를 실행한 것이니 대물림인 셈이다. 하시모토 선생의 수업은 몇 가지 인연 또는 계기의 만남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것은 보기 드물게 교사에게 완전 재량권을 부여한 학교와 하시모토의 재능과 열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무언가 이루어내야 했던 시대적 요청 등이다.

 

1968년에 입학한 한 학생은“‘은수저’인쇄물에는 옆길로 빠지는 재미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이때다 하고 학생들을 다른 세계로 유혹합니다...”란 말을 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수업에서 옆길로 빠진 곳은 일본의 전기전승,‘아라비안나이트‘, 시(時)의 우주, 중국의 병법 등이었으니 획기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신문에 연재되어 제목이 없는 ’은수저‘의 각 장에 제목을 붙이게 한 것도 그렇다. 이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들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회상해 수필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고 관련 노트를 문집으로 엮는 데로까지 나아갔다. 물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조별 토론 학습과 공동 작업 학습이지만 그 다양성과 깊이야말로 최고의 빛이 아닐 수 없다.

 

선생과 학생이 이루어낸 성과가 기적의 수업으로 불리는 것은 단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격려하고 진심으로 교감한 선생과 학생들의 관계는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의 생생한 사례이다. 선생의 수업은 감수성, 비판적 안목, 여유, 지적 욕구 등 서로 무관한 듯한 항목들을 함께 담보한 수업으로 평가받아야 옳다. 선생의 수업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궁리(窮理: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의 사례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선생에게서 배운 학생들이 사회의 주요 부분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은 우리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진경(眞境: 본바탕을 가장 잘 나타낸 참다운 경지)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 책이다. 그 느낌은 은수저 4기 가이도 유이치(변호사)가 한 말을 통해 왔다. 가이도 유이치의 말은 비전공 분야로 특화해 갈 때 집중해서 파고드는 방법과 공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 진짜 공부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 가슴 뭉클한 만남을 나는 얻고 배웠다. 그런데 일흔을 넘겨 학교를 떠나며 선생이 한 “하루 종일 무료하게 지낼 겁니다.”라는 말에 왠일인지 가슴이 찡하다. 하시모토 다케시를 달인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