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삶

눈을 닫고 코와 입을 막고 생각해보자.(웹툰 이끼의 표지를 떠올려도 좋다.) 양심에 내 삶의 조각이 온전히 모여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렇습니까. 대다수의 사람이 마구 엉킨 실타래를 차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거기에 다시 나의 흔적이 얽혀 있다. 여기저기에서 나의 이미지가 다르고,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그러다가도 '집'에 들어올 때 나는 다시 하나가 된다. 어릴 적부터 지녔던 물건과 함께 있는 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마음을 그러모운다. 나도 나도 모두 나다. 아, 나였구나.

 

 

양심에게 물어봤다. A와 B가 모두 나였습니까. 모두 한편으로 왜곡된 것이 아닙니까. 울고 싶을 때 웃고, 다시 한번 더 웃는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었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때로는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데 울고 있는 웃음이었습니까. 문지기처럼 '집'에 들어서는 A와 B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답변이 하나가 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었고, 본심을 드러내고 마음이 편할 때 나오는 맑은 웃음을 내기까지 편집된 삶을 살아야 했다. 삶의 조각에 구겨진 퍼즐이 꽤 많았다. 물에 젖고 불에 그을린 형편없는 퍼즐은 다시 빳빳해지기까지 마음의 짐이 되었다.  

 

 

양심이 고백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타인의 반응을 꽤 민감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한다고 생각하는 재기발랄한 도끼병과는 다르게 사소한 행동에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을지를 도끼병처럼 기웃거리곤 했다. 몇 번씩 같은 순간을 되감기하며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때까지. 타인이 쌓는 나에 대한 '편집'을 이겨내지 못했다. 조금 더 깊숙히 파고 들었을 때 모든 근원이 자신감부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한 숨 마음을 놓았다. 이제 그 자신감을 두드려 깨우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해답을 찾으면서 나는 조금씩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인정하고 부족할 때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계획을 세웠고 실천했다. 그리고 꾸준히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갔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했지만 그 시선에 담담해지는 법도 알아갔다. 불안한 마음을 쫓아 들어 온 말을 그에 대한 나의 말로 되받아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A와 B가 화해를 하는 시점은. 이제 어디서나 나는 나였고 그간 외면했던 편린을 다시 줍기 시작했다. 모두 나의 조각이었다, 하며 소중하게.

 

 

 

 

 

 

 

 

편집된 죽음

소설에서 '편집된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한 마디로 회심의 작품을 '표절'작로 오해받아 죽게된 한 작가의 삶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니콜라 파브리로 항상 태양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인정받는 작가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그의 뒤에 니콜라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드워드 램이 있다. 니콜라가 태양이라면 에드워드는 그에 대한 열등감으로 태양이 사라진 밤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달과 같다. 작가라는 같은 길을 걷기를 원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니콜라와 인정받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관계는 미묘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낸 니콜라와 달리 에드워드는 그를 질투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 또한 그는 세상에서 인정받은 니콜라를 증오하면서도 부러워한다. 에드워드의 동경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광기가 서려있다. 그 모든 것이 니콜라의 '탓'이 되었을 때 이 작품은 스릴러로써의 진면을 발휘한다.

 

 

오랜 세월을 친구로 지내 온 그들에게 니콜라의 신작 '사랑해야 한다'는 큰 전환점이 된다. 바로 에드워드가 자신의 여자였던 야스미나가 자신때문이 아니라 친구였던 니콜라때문에 죽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이야기가 니콜라의 소설 '사랑해야 한다'에 담겼다. 출간되자 마자 갖은 호평을 받은 '사랑해야 한다'는 폭발한 화산구처럼 돌변한 에드워드의 완전범죄로 단숨에 표절작으로 변한다. 세간의 이슈는 저자인 니콜라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에드워드의 완전범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를 표절작으로 기억할 것인데, 그야말로 니콜라는 편집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니콜라는 대담한(혹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표절작가다.

 

 

니콜라 파브리는 죽음으로 삶이 편집되었다. 삶이 편집되는 지점에서 진실은 함구되었으며 증명하지 못하는 한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삶의 편집은 오해로 남았다. 타인은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에 중점을 두게 되고 더이상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다. 왜곡된 진실은 그 어떤 벽보다 단단하게 쌓이고 그 즈음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 소설의 선악구도는 그들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아리송하게 그려지는데 독자는 실제적으로 악인 에드워드의 시선으로 시종일관 소설을 보게 됨으로써 오히려 그를 동정하게 된다. 또한 권선징악의 법칙은 단번에 깨어져 악의 승리(에드워드의 승리)로 끝난다. 복수의 통쾌한 승리는 독자에게 잇따른 쾌감까지 전해준다. 그야말로 한쪽 말만 듣고 반쪽짜리 시선으로 소설을 읽게 된다. 에드워드의 시선을 따르면서 볼 수 있는 한쪽짜리 벽면이 이 작품의 다른 묘미다. 그가 자신의 심리를 풀어내는 과정은 이 작품을 또 하나의 스릴러로 이끌어 주었다.  

  

편집된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