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말기..

하나의 우주 속에서

또 하나의 소우주가 생성되고 있는 중이니.

이는 탄생의 신비라.

 

여불위는 매눈을 가졌다고 한다.

벌써 태기를 알아봤다.

이 애는 내 자식을 가졌다. 내 아이를 베었다.

여불위가 준 돈으로 졸부가 되어 사교계에 진출하여 각국의 귀족과 어울리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진나라 떨거지 왕족.

여불위의 저택에서 두 사람은 만난다.

참으로 좋은 집에서 살고 계십니다.

아닙니다. 나리의 진나라 궁성에 비하면 오두막이지요.

진나라 궁성??

조희더러 향주를 내오라 일러라.

연나라의 유명한 술이 한 병 들어왔습니다. 한 잔 시음하시며 잠시나마 타향살이의 시름을 떨쳐버리십시오.

술을 내 오는데, 왜 하필이면 색녀 조희에게 잔을 바치게 했을까..

이제 막 임신한 그녀에게..

그리고 왕족 떨거지는 여불위의 술수에 걸려들고 있었다.

(계급의 높낮이가 사람간의 관계,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역량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파악하고, 일의 진행과정을 이해하며,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왕족 떨거지는 조희가 마음에 든다.

괜찮은 가문의 조나라 여자올시다만, 갖고 싶으십니까?

조희는 사내를 바꾸게 되느데, 그 음탕한 체질 때문에 몹시 좋아하고 있었더란다.

 

여불위의 엄청난 투기 사업은 계속된다.

우선 진나라로 간다.

진나라 왕족 떨꺼지는 왕위 계승권 순위에서 아무리 잘 봐줘도 6~7위를 넘지 못한다.

더구나 먼 나라에 볼모로 버려져 있는 상태이니 희망은 전무하다. 그런데도 여불위는 그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안국군의 본처 회양 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으나.

집안의 첫째 여인이라 발언권도 ?째간다.

그리고부인은 언니의 말을 잘 들었다.

그런 사정을 다 꿰뚫어보고 있던 여불위다.

막강한 재력을 앞세워 우선 언니에게 접근한다.

일이 잘 풀려나갈 낌새가 보인다.

여불위는 온갖 보물을 바치며, 조나라에 있는 왕족 떨거지가 보냈다고 말한다.

하희가 낳은 그애가 왜 내게?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항시 너를 어머니처럼 그리워한다는구나.

그래요?

이 눈부시고 값진 보물들이 그 증거지 뭐냐?

여불위의 공작이 끈질기더니, 결국 화양 부인은 먼 타국에 버러져 있던 소실의 자식을 자기의 양자로 삼게 된다.

그러다가..

왕위 계승권 영순위의 태자가 죽는 일이 생긴다.

잘돼간다..

여불위는 쾌재를 불렀다. 죽은 태자 대신에 안국군이 태자로 승격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사위가 요렇게 잘 굴러주냐?

그러나 그때,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싸움에 일어나 떨거지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힘만 믿고 침략을 해와? 볼모를 죽이자. 죽여서 본때를 보이자.

빈틈없는 사업가 여불위.

미리미리 손을 써서 떨거지를 살린다.

극적으로 탈출해서 진나라로 돌아왔는데...

초나라 복장으로 갈아 입으십시오.

왠 초나라?

화양 부인, 즉 나리의 양모는 본시 초나라 분이십니다.

아하!

양모, 양자 결연 이후의 첫 대면에서 떨거지의 초나라 복장은 화양 부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만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항상 이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감격한 부인은 이인이라는 떨거지의 이름을 자초라고 바꿔준다.

우리 초나라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내가 샀던 상품이 점점 빛을 발하며 값이 오르고 있도다.

한편..

조나라에 남아 있던 색깔 있는 여자 조희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모자 역시 여불위의 보살핌으로 편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총명해서 벌써부터 떡잎이 보이고 있었다.

역시 볼모로 와 있던 연나라 태자와 소꼽친구로 지냈는데, 두 아이 모두 비범했다.

문제는 아이의 엄마. 조희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춘정에 못 이겨 몸부림 치고 있었던 것.

 

자초.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를 포위 공격해 볼모 떨거지를 죽일 뻔했던 사건. 즉, 한단의 싸움이 있는지도 6년이 지났다.

떨거지 자초는 고국 궁성에 돌아와 살 맛이 나고 있었다.

봉급도 받지 못해 쩔쩔매던 살림살이가, 지금은 물주 여불위가 대주는 막대한 재산이 있어 떵떵거리며 지낸다.

(왕족도 돈이 없으면 궁하게 살 수 밖에 없다.)

먼 나라에 인질로 끌려와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하던 자가

지금은 다른 왕자들과 겨루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세도를 누리게 되었다.

20며 명이나 되는 라이벌 속에 섞여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있는 터이다.

그러던 중에 할아버지 진 소왕께서 붕어하시고

진나라 왕위는 아버지 안국군이 물려받았다.

1년의 부상 기간을 지내신 뒤에 즉위식을 올리게 됩니다.

형님꼐서 살아 계셨다면 꿈도 꾸지 못할 왕위가 나에게 떨어지다니..

왕위를 이으셨으니 후계자를 생각해 두십시오.

아니. 벌써?

시작도 하기 전에 물려줄 놈부터 정하라는 거요?

화양 부인의 발언권은 막강하다고 했다.

내가 양자로 삼은 자초를 잘 아시지요?

당신의 애첩. 하희가 낳은 둘째 아들이요.

애첩은 무슨 애첩. 그 여자 옆에 가 본지 10년도 넘어.

자초는 멀고 먼 조나라에서 볼모러 버려졌던 아이에요. 그러나 됨됨이가 그토록 인간다울 수가 없어요. 한마디로 큰 그릇입니다.

그야. 내 자식이니까.

다른 아이들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만,아무래도 차조를 능가할 놈은 없더이다.

그래?

그래서 떨거지 자초가 후계자로 내정됐다.

착착... 계획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기회에 조나라에 두고온 처자 가솔을 데리고 오시지요/

그렇다. 조희, 그 뜨거운 애가 얼마나 나를 그리워할까..

그리고 내 아들, 그 놈도 몹시 똑똑하다던데..

....

당장 데려오도록 조취를 취합시다.

그래야지요.

허허.. 그게 당신 아들이라고? 잘못 알고 계십니다. 실은 내 자식이라오.

내가 누구요? 세상에 첫손가는 사업가 아니오?

우리는 투자를 할 때, 허술히 하지 않는다오. 세 겹 네 겹으로 뒷막음을 하지요.

 

조나라에 사신이 왔다.

진나라 왕명을 받들고 왔소이다.

안국군께서 왕위를 물려받으심을 경축하나이다.

그 안국군은 1년 뒤에 우리 진나라의 왕이 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부와 손자가 이 나라에 머물러 계심을 심히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떨거지의 자손이 지금은 초강대국의 당당한 직계 혈통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조나라는 앗, 뜨셔라. 무서운 나라의 귀한 자손을 얼른 내어드린다.

내일 일찍 출발하겠습니다.

오늘 떠나자.

예. 오늘요?

급하다.

어머님. 먼 길이 될 것입니다. 미리 충분한 휴식을 취해 두시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한시라도 빨리지키시어 행동하십시오. 어머니.

와.. 놀랐다. 얼마나 총명한 왕자님이시냐.. 겨우 일고여덟 나이에..

아 급하다 급해. 시간이 어이 이리 더딜꼬..

...

손자는 자기 장난감을 말끔히 정리하고, 어울려 지내던 이웃 소꼽친구들과도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연나라에서 와 있던 볼모, 태자 단과도 각별히 친했었다.

몸 성히 잘 지내거라. 우리 진나라는 먼 곳에 있다니 다시는 못 볼지 모르겠다.

너는 좋겠다. 나라가 강성해지니 풀려나는 것 아니냐..

다으에 커서 만나더라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자.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으로 알며 헤어졌었지..

 

조희는 시집 나라 진으로 왔는데, 그날부터 자초는 죽어났다.

더 자요..

일어나야지.

싫습니다. 더 자요. 해님이 중천까지 떴다. 기침하라.

일어나 할 일도 없잖아요. 더 자요..

어허. 거 참.

 

총기 있다. 이나라 왕족 대열에 섞여 큰 일을 할 놈이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단 한가지 걱정은 저 아이 생김새가 나를 담은 것이 알려지는 일이다.

1년이 지나 안국군이 탈상을 하고 즉위식을 가졌으니, 그가 효문왕이다.

그런데..

즉위식 사흘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그때에도 여불위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게다.

단독 투자했던 상품이 드디어 초강대국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와우이는 당연히 자초에게 계승되었다.

그가 장양왕이다.

 

과인이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던 처절한 시절에 대인께서는 나에게 황금과 백금을 주셨소이다.

그때, 우리는 약조를 했지요. 대사에 성공하면 몇천 곱절로 갚아주기로 말이오.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진나라 살림을 도맡아 주시오. 이 순간부터 그대는 승상이오.

하남, 낙양 땅 10만 호의 조세를 차지하시오.

...

드디어 떨거지는 왕이 되고, 그 떨거지를 샀던 여불위는 몇만 곱절로 재산을 불렸음은 물론, 일국의 승상이 된 것이다.

왕의 양모 화양 부인은 태후가 되고, 생모 하희도 하태후로 승격되어 좋게 되었는데

가장 사란난 여자는 뭐니뭐니 해도 조희 그녀이다.

왕비도 필요 없고 비단 옷, 맛있는 음식도 죄다 필요 없습니다.

안다. 알아. 그대의 체질을.

그러면 저를 혼자 자게 하지 말아요.

이건 뭐. 이런 난리가 없다.

본시 그런 여자임을 나는 알고 있지.

지금은 태자가 된 정. 몹시도 영민하던 그가 우울증에 걸렀나?

나이 열 살이 되었는데, 걸맞지 않게 말이 없고, 항상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 일쑤이다.

무슨 금심이 있어 저렇듯 항상 우울하실꼬? 엄마가 뜨거운 대신, 아드님이 차가운가?

너희들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조희.

여불위의 상품이 왕을 잡은 지 3년이 지났다.

왕자 정의 나이도 올해로 13세.

요즈음은 어떠신가. 변함없이 말이 없는가..

예. 대신 책과 가까이 지내십니다.

그건 좋은 일이다. 책이라면 어떤 종류의 문헌을 읽으시는가..

한비자의 개혁론을 즐겨 읽으십니다.

허어.. 그건 놀라운 일인걸.. 그 어려운 책을 가까이하신다..

그 즈음 여불위도 대단한 저서를 만들고 있었다.

막대한 자금을 풀어 수많은 석학을 동원시켜 백과사전을 만들게 했다.

(여불위. 권력, 재력이 있으니, 지력을 살 수 있다.. 물론 지력을 다스릴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완성된책을 여씨춘추라 이름지었다.

진나라 세력은 점점 강대해지는데, 그때 장양왕이 죽는다.

모르긴해도, 왕비 조희가 지나치게 보채어 왕의 기력을 쇠하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

왕위는 13세 된 아들 정이 물려 받는다.

열세 살이면 무엇을 알겠느냐.. 막중한 국정으로 내 어깨만 무겁게 생겼구나..

여불위는 권세를 한 손에 잡고 말았다.

벼슬은 승상보다도 한층 높은 상국이요.

칭호는 중보라 했으니, 왕의 아버지와 같다는 뜻인데, 실은 그가 친아버지 아니던가..

이런 것을 우리들 사업가 용어로는 완전 성공이라 하느니..

왕의 숨은 친아버지로, 왕의 등뒤에서 왕권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왕이 된 셈이다.

중원 7국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 진의 대왕.

처음에 한단에서 황금과 백금을투자하던 ?에는 나도 이렇게 크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운도 따라줬다는 이야기다.

자초를 양자로 삼았던 화양 부인도 잘되어 태후로 승격되었고, 친모 하희 또한 호강하며 여생을 즐겼는데...

단 한 사람.

자초의 부인이었던 과부 조희. 그녀 또한 태후가 되어 근엄해야 할 높으신 분인데.. 이거 야단났다.

왕인 정의 친어머니이며 초강대국 진나라의 국모인데, 나이는 아직 28세의 팽팽한 여자.

게다가 그녀의 이상 체질은 앞서 본 바 있어.. 그리고 전남편 여불위도 잘 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조희. 그녀의 고민..

시녀가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온지..

모른다니까..

시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을킨 듯해서 얼른 거짓말로 둘러댔다.

(윗 사람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면 위태롭다. 반대로 아랫사람의 속 마음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왕 때문에 걱정되어 그런다.

그런 일이라면 중보님이 계신데. 뭣을 또 걱정 하십니까..

중보라는 얘기만 들었는데도 조희의 온 몸에 경련이 일었다.

그렇구나. 그래. 중보님과 상의할 것이다. 태후의 명으로 부르노니 당장 중보님을 모셔오너라.

궁중 법도에서 태후가 밖의 남자를 후궁으로 호출한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지대사라해서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시오.. 호강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밤마다 같이 있어 주시기로 약속했잖아요.

떠들지 마라. 밖에서 듣겠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간혹은 야릇하게 비틀린 별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조희가 그런 축이었나 보다.

그녀로서는 실로 오래간만에 숨넘어가기 직전에 만난 사내였던 것이어서.

손깍지, 발깍지 끼고 놓아줄 수가 없었던 것.

아침에 들어갔던 상국께서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그 중차대한 국사를 겨우겨우 마쳤던지, 피곤한 발걸음으로 태후궁을 나서고 있었다나..

그런데, 거 참 이상도 한 것이

그 후부터

왠놈의 중차대한 국사가 그리도 연달아 생기는 것인지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상국이 호출되는 것이다.

여불위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보채는 조희가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덜머리 난다.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떳떳한 것이 되지 못하는 터이다. 한 사람은 이 나라 최고의 상국이며, 또 한 사람은 왕의 모친 아니신가..

더 이상 이런 관계로 뭉기적거리다가는 큰 코를 다치지. 발을 빼야 해. 조희 곁에서 떨어져야 해.

그러나..

뭔가 수를 내야지. 이러다가는 큰 낭패를 보고 말 것이야..

지겹다.

왜 그러고 있어요?

나는 이 나라의 상국이오. 그대는 왕의 친 어머니다.

그래서요?

신분을 생각해서라도 자중해야 할 것이야.

이봐요.

이 나라의 왕은 바로 우리들이 낳은 우리 아들이에요.

왕의 부모끼리 만나는데 뭐가 잘못인가요.. 어서 이리 오기나 해요.

정말 무슨 수를 써야지. 큰일 나겠군.

 

노애.

당시 진나라 수도 함양에 별난 놈이 하나 있었으니.

화류계에서 판을 치던 노애가 그놈이다.

그런데 노애라는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노대라고 불렀다.

큰 대자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

물론, 녀석의 허우대도 훤칠하게 크긴 컸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놈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그러나 결코 주리는 법이 없다.

삼시 세 때 식사 대접을 받고, 날마다 밤마다 술잔치 속에서 흥청거리며 살아가는데..

뒤를 대어주는 물주는 모두가 여인들이다.

비록 다리 밑 돌기둥 틈이 그의 집이지만, 마음만 내키면 뒷골목 어느 집 침대 위에서건 늘어지게 잘 수 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골라잡은 여인과 더불어.

놈은 유달리 큰 남근과 무지막지한 정력으로 화류계 밑바닥 인생들의 주인이다.

 

거저 이렇게 된 줄 알면 못써. 적어도 7년 반 동안이나 입산 수도하며 피나는 연마를 했던 거이다.

당나구 사부님에게 매 맞아가면서 겨우 완성시킨 예술품 아니가..

놈에게는 정말 놀랄 만한 특기가 있어 모든 한량들을 기죽이고 있었다.

놈은 스스로 굴대를 만들어 세워, 무거운 바퀴를 꿰어 돌렸는데,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자유자재로 그랬다고 한다.

바퀴 돌리기 한 번이면, 수십 금의 구경값이 들어와 노대는 그것으로 시정잡배들에게 한턱을 단단히 내곤 했다.

그래서 뒷골목 화류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고, 난잡한 생활, 그 숱한 간음질을 저지르면서도

그 동아리 사람들이 감싸주고 있어서

칼날 같은 법치 국가 진나라의 도성 안에서도 경치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런데.

거기서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그것이다.

식칼 같은 것으로 가슴과 배.. 그리고 국부를 마구 찔렀는데... 머리 끄덩이도 쥐어뜯겼구만..

살인범은 곧 잡혔다.

같은 동네 사는 여자가 죽였소.

왜 죽였대?

한 사내를 놓고 서로 좋아하다가 싸움이 붙은 모양이라..

그것이 발단이야?

살인범은 머리가 약간 이상하게 꼬인 여자였던 모양이다.

삼각 관계 치정 살인 사건은 대단한 흥밋거리가 되어 함양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더니. 급기야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이신 여불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그놈이 그토록이나 여심을 사로잡는 놈인가..

인간 말자들이 모여사는 음침한 골목 이야기올시다.

듣자하니 놈은 몹시 큰 양물을 달고 있다던데..

머리도 묶지 않고, 가슴도 풀어헤치고 다니는 막된 놈입니다.

무슨 수레바퀴 같은 것으로 재주를 피운다며..

말자 상것들의 난잡한 장난일 것입니다.

 

여불위. 이 사람 누구던가. 그 예리한 매눈은 보물을 알아보고 한번 머리를 굴리면 천하를 품는 귀신이라.

노예라는 자. 가서 구경하겠다.

궁궐의 상국이 직접 납시어. 빈민가 유곽의 뒷 골목 속에서 인간 말자 노대 상놈을 보시더니..

노대는 그 즉시 상궁국에서 비단옷 입고 수레 타는 팔자가 되었다.

 

간부간부.

빈민굴에서 말단의 홍등가, 뒷골목에서나 놀던 놈이 하루 아침에 궁궐의 높은 사람 행세를 하게 됐으니

매사가 서툴고 또 어려웠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노애에게 베풀어주는 여불위의 정성은 곰살궂은 것이다.

일류 재단사가 불려와 옷을 만드는데, 며칠인가를 끙끙거리더니 끝내는 상궁 앞에 나와 실토를 하고 말았다.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그분의 옷을 만들 수가 없나이다.

그 분의 옷걸이 생김새가 특이해서 비단옷을 맵시있게 걸칠 수가 없겠나이다.

좀더 자세히 얘기해봐라.

하체 부위에 느닷없이 돌출되어 있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어 비단자락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무자비하게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 그 몸에 맞도록 특이한 재단법으로 지어드려라.

그렇게 특이한 비단옷을 떨쳐 입고 노대란 녀석, 호강을 하는데.

사흘 걸러 한 번씩 궁궐 별전에서 벌이는 재주 공연이 유일한 밥값이다.

갈채와 더불어 그 소문도 널리 퍼져 나갔다.

어느 내시 한 놈은...

못 미겠네. 필시 야료가 있는 것이네. 수레 바퀴가 속이 텅 비어 허깨비처럼 가벼운 것일 거네.

그러나 직접 들어본 뒤, 진실을 알고나더니만, 자지러지며 까빡 죽고 말더라나..

여불위 상국부터 노대를 극진히 위하니,궁궐 안팎의 어느 누가 그분을 홀대할꼬..어느 누가 감히..

(권력자가 특정 개인을 높이면 그는 높아지고, 깔보면 모두 깔본다)

세상에 참 별일도 다 있지.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그 물건 하나가 유별나게 크다 해서 거들먹거리며 호강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

어쨌거나 물건은 이만저만 우람한 것이 아니어서 역사의 기록에도 남아 있거니와.

그러하니 그 뉴스가 얼마나 빠르게, 넓게,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겠는가...

또 한 번 중채다한 국사가 있던 날.

조희가 물었다.

요즈음 굉장한 자가 있다던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내 두 팔로도 쳐들기 어려운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한 꼬챙이로 꿰어 들고는 수천, 수만 차례를 빙글빙글 돌리데그려.

한데. 자네가 왜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는가..

한 번 데려와 볼까나..

실없수..

실없어?

여기가 어디유? 궁궐하고도 깊고 깊은 국몬의 내궁이유. 외간 남자는 얼씬도 못하는 곳 아니요. 당치도 않게끔 데리고 오겠다니.

그래 그게 실없는 소리 아니면 뭔가요?

조희는 이미 노대라는 놈에게 ?을 ?앗겼어..

노대...

그 노대가 모종의 함정에 걸려들게 된다.

정랑. 담을 넘어와줘요. 뒷문을 열어 드릴까..

댁은 뉘슈?

누구긴 누구겠어요. 그대를 그리워하는 여자일 뿐이지요.

이런 일로 잔뼈가 굵은 놈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쫓아나와 손을 잡고 이끌어들이게 되어 있는데, 이 여자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노?

거기 왠 놈이냐..

꼼짝 마라.

어떤 놈이기에 감히 내궁의 침소에 들어와 기웃거리느냐..

나요.. 나.

나요.. 나?

개처럼 매를 맞아가며 오랏줄에 묶이고 말았다.

이 자식 겁도 없구나. 금남 구역에 벌거벗고 들어와? 호색한 같으니라고.

태후 마마 강간 미수범이 되고 말았던 것인데, 그게 바로 여불위의 계교이다.

고약한 놈이로다. 일껏 뒤를 봐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그런 엄청난 죄를 지어?

어쩌다 요렇게 꼬여들고 말았지?

강간을 꾀했던 자에게 내려지는 진나라 국법은 바로 거세형이다.

옥에 같힌 노대가 형을 받던 날, 함양의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는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랬다.

그런데. 그 때에도 발 빠른 여불위는 여러 가지로 조처를 취하고 있었다.

심복 한 놈을 시켜 도살장에서 수컷 당나귀의 생식기를 구해 오도록 한 뒤,

노대의 형 집행장으로 직접 나갔다.

자네가 칼잡이냐..

일도양단합니다.

십만 금이다. 어디 먼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팔자 고친 그자는 그 당장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너는 형을 받은 듯이 엄살을 부려라.

??. 크다고 뻐기더니 아예 병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군. 안됐어. 그러게 그저 보통대로 생겨야 해..

상국 여불위는 특명을 내린다.

소행으로 봐서는 버리고 싶다면, 인생이 가여워서 다시 특채를 하겠다.

사내 구실을 못하는 병신이 되었다면, 태후의 대궐에 들어가 열심히 이을 해서 죗값을 덜도록 해라.

내시로 위장한 노내는 멀쩡한 몸으로 조희의 궁궐로 들어가고 여불위는 그때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 중차대한 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정말 그랬다. 그날 이후로는 상국 여불위를 불러들이는 일은 결코 없었는데..

그 대신 조희 태후 마마와 내시 노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루 세 끼 식사와 사이사이에 술과 안주가 들어갈 뿐

두 사람은 침소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반 년이 흘렀는데, 조희 태후 마마가 이거 야단났다.

내가 그대의 아이를 베었다.

당시에는 임신이 되었다 하면 열 달을 채워 낳을 수밖에 없던 그러한 시절이어서

궁한 대로 꾀를 생각해 내었던 모양이라.

진왕 정에게 어머니 조희로부터 사람이 와 알리기를..

태후 마마의 건강이 나빠, 점을 쳐 본즉, 궁중의 요사한 기운이 태후의 몸을 침범했다 하나이다.

이곳에서부터 200리 밖으로 가서 휴양을 해야만 안전할 것이라는 점괘였나이다.

그리하라.

왕의 허락을 받은 조희 태후는 2백리 떨어진 옹 땅의 옛 궁궐로 가서, 그곳에서 몰래 아기를 낳았는데, 노대를 데리고 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함양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살자. 그럽죠.

그대와 함께 있으니 이 세상에서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

1년 이상 눌러앉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훌쩍 장성해서 이제 군주의 위엄을 갖추고 있던 진왕 정.

몸소 2백 기 길 대정궁으로 납시었는데, 소식을 들은 조희와 노대는 몹시 바빴다.

준비했던 밀실에 두 아이를 감추고 시치미를 뗀다.

왕이 도착했다.

건강은 좋으십니까?

환관 노대의 희생적인 보살핌과 이곳 기후 덕분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노대를 칭찬했다.

가짜 내시 노대는 왕명으로 장신후에 봉해지고, 엄청난 녹봉을 받게 된다.

거리의 부랑자가 가장 존귀한 자리에 올라 호강하게 되어다.

권세와 부를 거머쥐고 태후 마마 치마포겡 숨은 그에게 벼슬이라도 한 자리 얻고 싶은 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뇌물을 바치고 있어서 재산은 점점 더 늘어났다.(권력. 인사권과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있다.)

노대가 부리는 집안의 하인만 해도 수천 명이라고 했다.

급기야 엉뚱한 꿈까지 품게 되었던 모양이다.

 

왕명.

기원전 238년. 진왕 정이 왕위에 오른 지 9년째 되던 해.

13세의 어린 나이로 진나라 왕이 되더니, 이제 20세가 넘은 청년이 되었따. 그래서 전례에 따라 왕의 성년식이 거행된다.

식은 모친이 계신 대정궁에서 거행하리라.

왕을 모신 문무백관이 모두 떨쳐 나오시니, 노대와 조희는 또 한 번 바쁘게 움직여 그들의 두 아들을 숨겨야 했다.

궁궐 전체가 흥겨운 분위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가짜 내시 노대도 많이 마시고 취해 있었다.

궁궐 전체가 흥겨운 분위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가짜 내시 노대도 많이 마시고 취해 있었다.

원래 군자는 바둑 훈수를 아니 하는 겁니다.

이놈이.

뭐요? 놈..

그 동안 허파가 부풀대로 부푼 노대다. ?마침 얼큰히 취했던 터라 말이 막 나왔다.

대왕의 계부이신 이 몸이 네깐 놈에게 놈이라 한들 뭣이 이상하단 말이냐..

대신은 기가 막혔다.

어이구 .. 내 가슴아..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런 망나니 같은 놈이... 어이구. 기막혀.

젊은 왕의 시선에 불쾌한 대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 날카로움을 누가 따르랴..

저자를 불러오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대로 말해봐라.

대왕과 독대하고 앉았으니, 처음부터 주눅이 들었다.

진왕 정의 그 무서운 눈빛은 상대의 넋을 ?앗고 있었다.

노대는 환관이 아닌 멀쩡한 호색한이요, 조희 태후 마마와 아이까지 둘씩이나 낳았다는 사실을 죄다 털어놓고 말았다.

일이 터진 것을 알자, 노대는 오히려 반항을 꾀한다.

자기가 기르던 사병들을 끌어모아 왕에게 달려들었으나,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신중한 진왕 정은 침착하게 대처, 수비병을 지휘하더니 노대를 사로잡았다.

벗겨보아라. 정말 환관인지 확인해보자.

꽁꽁 묶인 노대의 아랫도리가 내려지자, 거기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입을 벌리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진왕 정도 놀랐다지만, 노대는 그 자리에서 사형을 당하고 심복들도 깡그리 멸족을 당했는데, 그 수가 2백 명을 넘었다고 했다.

밀실을 뒤져 악의 씨를 찾아내라.

조희가 울면서 애원했으나, 왕의 노여움은 불길 같았다.

부끄럽고 추잡하오.

드디어 밀실에서 끌러나온 두 아이는 포대 속에 넣어지고, 포대는 왕명에 따라 무수한 몽둥이 찜질로 이상한 형태로 변하고 말았다.

저 걸레를 낳은 여인은 비좁은 역화궁 뒷방에 감금시킨다.

이렇게 더러운 일이 일어난 원인은 그자에게 있다. 여불위.

 

선왕 때부터 상국이란 권좌에 앉아 매양 거추장스럽던 여불위를 진왕 정은 이 기회에 없애버리고 싶었을 터.

국모를 가두는 것은 천륜에 어긋난다는 신하들의 청원.

태후 마마에 대한 처사를 말리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젊은 피가 새시대를 표현한다)

아니 되옵니다. 왕의 모친을 감금시킴은 지나친 처사이옵니다.

저자를 죽여라.

왕의 뜻을 돌려보려던 신하는 살아 남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그 수가 스물일곱이요, 시체는 손도 대지 말라는 엄명이 있어서

궁궐 뛰뜰의 층계 아래 그대로 쌓여 썩어갔다고 한다.

 

살부.

이제 남은 것은 그자뿐이다.

거짓으로 속여서 가짜 환관을 내궁에 배치시킨 행위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 않느냐..

그러나 문신후 여불위는 국부입니다. 이 나라의 상국입니다.

가짜 환관 노애를 왜 만들었더냐. 그 원인을 생각해봐라.

죽여 마땅하나니..

비록 다소의 잘못이 있다 하나, 그 대신 나라를 일으킨 큰 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신후는 선대의 공로자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왕의 마음을 한 번 아프게 한 죄가 있으면 벌 받아 마땅하나니..

여불위의 상국 벼슬을 박탈한다.

하남 낭걍으로 내려가 근신하라.

네가.. 나를... 네가... 나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시고. 자식처럼 키워준 은혜를 잊으시다니.. 너무 하십니다. 너무 잔인하십니다. 그러나 참으십시오. 왕도 후회하실 날이 올 겁니다.

네가... 나를...

낙양으로 밀려나 백두가 되었으나, 워낙 천하에 알려졌던 권세가 여불위 아니던가..

모든 제후들이 앞을 다투어 낙양으로 왕래하며 교분을 두텁게 했다.

저희 나라로 와서 승상이 되어주십시오. 제가 먼저 부탁들 드렸던 바있소.

진왕 정은 발끈했다.

두고 볼 수 없다.

왕의 친서거 내려갔는데..

내용은 이렇다.

그대 여불위, 진나라에 무슨 공이 있기에

하남 낙양 10만호의 식읍을 받고 있는가?

그대 여불위, 진나라와 무슨 친족 관계가 있기에

중보라 일컫는가.

가속과 더불어 촉 땅에 들어가 거기서 지내라.

편지를 읽은 여불위..

한때 온 천하를 품었던 절대 권력자.

조나라의 인질을 주워 선견지명으로 투자를 해서

보기 좋게 성공하더니,

그래서 왕보다도 알찬 실리를 얻더니...

이 수모가 뭣인가.. 내 자식에게 당하는 이 능멸이 뭣인가..

가만히 독주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마천은 사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에게 아무리 좋은 두뇌와 재주가 있더라도

진실됨이 없으면 다 소용 없나니. 여불위가 그런 사람이다.

 

한비자.

젊고 패기만만한 왕은 그때부터 스스로 나라를 다스려 나간다.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목표로 한다. 껄렁한 나라들을 통폐합해서 강력한 국가를 이룩할 것이다. 모든 사업에는 한비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삼아 그 이론대로 실행하겠다.

진왕 정이 흠모하는 한비자는 순자를 사사한 사람인데, 불행하게도 말더듬이였다.

그는 글을 써서 자기의 사상을 책으로 남겨 놓았다.

진왕 정은 일찍이 그 책을 탐독한 바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는 값싼 이상주의는 금물이다.

철저한 법치에 기초를 둔 실천주의가 으뜸이라."

그럴 즈음, 사람 하나를 얻는다.

이사라고 합니다. 본시 한비자하고는 같은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했습니다.

그거 좋구나.

지금 진나라는 강성하고 대왕께서는 현명하십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다른 6국은 쇠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좋습니다. 전국시대 2백여 년간 엎치락뒤치락하던 이 대륙을 하나로 통일시키십시오.

그놈. 내뜻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도다.

지도를 보십시오. 가장 가까운 것이 한나라입니다. 그다음 위나라, 조나라. 이것들은 원래 같은 나라에서 쪼개진 놈들입니다.

정복군의 첫번째 목표가 한나라임을 이미 과인은 정해둔 작전이다.

진왕 정과 이사의 뜻은 언제나 일치했다.

명콤비가 그런 것일 게다.

한나라에서는 정보를 입수하고 화들짝 놀란다.

궁리 궁리 끝에 생각해냈다는 비결이 하나 있었다.

듣기로 진왕 정은, 우리나라 사람 한비의 저서를 즐겨 읽는다고 했다.

그 책을 애독함은 책의 저자도 흠모하고 있다는 얘기이니..

한비. 어서 진나라로 가서 알랑방귀를 뀌어다오.

한비는 정말 진나라로 파견되고 있었다.

진나라에서는 한비자의 저자 한비가 오고 있답니다.

한비 같은 탁월한 인물이 있는 까닭에 과인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한나라를 먼저 없애버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쨌거나 한비는 진왕 정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대의 저서는 참으로 훌륭하오. 지금도 읽고 있거니와 이미 전문을 외우고 있소..

탁월한 사상과 번뜩이는 계책으로 과인을 도와주오. 높은 직책으로 그대를 대우하겠소.

한비는 진나라 승상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뭔가..

한참 뜨기 시작하던 이사가 주먹을 쥐었다.

한비에게 높은 벼슬을 주면 안 됩니다. 그 자는 한나라 사람입니다. 모든 국책을 한나라에만 유리하게 행할 것입니다.

그 또한 그렇구나. 일단 보류시켜 두자.

등용하려던 계획을 진왕 정은 잠시 보류했을 뿐인데, 이사는 아예 독약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한비는 진나라 옥중에서 죽었다.

아까운 인물이 죽었구나. 그러나 됐다. 사람은 죽어 없어졌으나, 그의 사상과 국책은 내가 가지리로다.

 

진왕 정 17년(BC 230) 한나라 멸망한다.

기원전 228년 조나라 멸망. 기원전 225년 위나라 멸망.

6국 중에서 3국이 망했다.

도대체 진나라가 저렇듯 강대해진 이유가 뭐야?

일찍이 상앙이란 자가 실행한 개혁법에 뿌리를 둔 정치제도.

한비의 실리주의를 과감히 도입한 결단성.

상대적으로다른 6국이 부패한 정치 체제로 스스로 쇠약해졌기 때문이야.

강력한 군주. 진왕 정의 능력도 있었다.

 

秦나나라는 정말 무시무시한 초강대국으로 팽창하고 있었다.

3晉(조, 한, 위)이 망하고 연, 제, 초 세나라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연나라에서 붙들려 와있던 볼모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볼모는 연나라 태자 단, 어린 시절에는 진왕 정과 소꿉친구였던 사이.

나는 놈에게 인간적으로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놈인 줄도 모르고 나 홀로 우정을 간직하고 살아왔지 뭐냐.

속은 것이다. 나는 놈에게 속은 것이다.

인간 같지 않은 자. 침략자의 근성을 타고난 위험한 놈.

자기 나라 연으로 도망가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진왕 정.. 뭐라고? 연나라 볼모가 도망갔다고..

놔둬라. 볼모로 있거나 도망갔거나 이제 곧 망해서 죽어버릴 종족 떨거지들 아니냐..

그러시다면 다음번 공격 목표는 연나라입니까..

그러기에는 남쪽의 초나라가 꺼림칙하자. 등뒤의 초나라부터 없앤 뒤에 마음 놓고 연과 제를 가지러 가자.

그것이 순서에 합당합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강국 초나라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초를 없애는 것이 사실상 성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초나라를 쳐서 이기자면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보내야 할까..

60만 대군이 필요할 것입니다.

젊은 장군 이신이 불끈한다.

무슨 60만 씩이나.. 20만이면 족합니다.북 한 번 치면 끝내줄 수 있습니다.

좋다. 그대. 이신.

20만을 줄 터이니 즉각 출병해서 초나라를 가져오도록 하라.

이신은 위풍도 당당히 떠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쉽지 않았다.

초나라에는 항연이란 명장이 있었는데, 그는 선조 대대로 초나라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아오던 장군가의 자손이다.

나라의 위기를 맞아 초나라 사람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항연 장군 밑에 굳게 뭉친 병사들은 목숨 걸고 용감히 싸워, 진나라 침략군에 대항했다.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진나라 장수 이신은 패장이 되고 말았다.

못 돌아가겠네. 나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겠네.

그래서 편지만 갔다.

계획대로 착착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던 통일 사업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역시. 노장은 노장이시군..

진왕 정은 왕전 장군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더란다.

새로 60만 대군을 편성해 장군께 드리겠소. 초나라로 출정해 주시오.

진나라 병력의 대부분이 왕전의 수하에 들었다.

싸움터로 나가는 왕전 장군이 이상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앙망하건데... 싸움에 이기고 돌아와 늙은 몸을 쉴 수 있도록 넓은 전택과 영지를 내려주옵소서.

승리만 하고 오시오. 그만한 것즘 못 드리겠소?

아니. 지금 약속해 주시고 문서로 남겨주십시오.

....

전투에 임한 장수가 왠 땅 욕심을 그리 내시오.

신은 이미 늙었으므로 노후를 생각 아니 할 수가 없소이다.

초나라 군사와 대치하고도 왕전은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전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부관들이 물어대지.. 장군님 좀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모르는 소리 마라.

대왕님의 마음을 편케 해드리기 위해 떼를 쓰고 있는 것 아니냐..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생각해보려무나. 지금 진나라의 병력은 모두 내 손 안에 들어와 있어서 힘으로 나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는 땅뙈기나 애걸하는 늙은 장수. 다른 뜻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대왕님께 보여 주고 있는 것 아니냐..

과연.. 그렇군요..

싸움은 지구전이 될 것이다. 지구전이란 왕왕 군주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야.

잘 알겠습니다.

초나라는 이번에는 항연 장군이 사령관이 되어 침략군과 맞서고 있었다.

초군의 사기는 대단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얻었던 승리감 떄문일 게다.

 

왕 장군님, 안 싸우십니까?

지구전이라고 하지 않더냐..

우리는 60만 대군입니다.

60만이니까 참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쉬고 있다가 단 한 번에 이기는 전투가 바로 실리전이라는 것이네.

진나라 군사들도 그랬지만, 초나라 군사들도 전의가 팽배해 있었는데,

진나라 총사령관 왕전 장군은 전군에 특명을 내려 휴식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초나라 장수 항연. 적장의 의도를 알았다. 우리로 하여금 지치게 한 뒤에 기습하려는 실리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김빼기 작전.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방법은 있다. 동쪽으로 멀리 후퇴해 놈들의 병참선을 길게 늘려준다.

그렇군요. 군량 수송에 애 좀 먹게 해 줍시다.

기를 뽑고 후퇴한다. 후퇴를 할 때가 가장 위험하니나..

추격병을 특별히 주의하도록.

저봐요. 놈들이 견디다 못해 후퇴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아니다. 지금은 적들도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을 게다.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닐까요..

칼날같이 조심스럽던 초군들인데,,

1백여 리를 이동해도 아무 일이 없다.

추격병은 없다. 공연히 긴장했네. 편히 가세.

항연 장군이 마음을 놓는 순간, 왕전의 기습 공격은 번개처럼 시작됐던 것.

거기에 초군은 일격에 전멸을 당하고 사령관 항연 장군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초나라 사람들은 오래 뒤까지 믿지 않았다고 하니, 그만큼 대단한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기원전 223년 초나라 멸망.

 

번어기.

진나라 장수 중에 번어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성질이 매양 강직했다.

남에게 해될 일을 삼가고 언행을 바로 하는 대신 고집이 대단했다.

어느 날. 진왕 정이 사사로운 일로 번어기와 언쟁을 벌였는데, 번어기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왕에게 질 줄을 몰랐다.

건방진 놈 아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왕의 자존심이 심하게 상했을 터이다.

왕은 번어기의 일족을 깡그리 죽이고 말았는데, 정작 당사자 번어기만은 잽싸게 몸을 빼어 달아나고 말았다.

왕명을 거역한 놈이다. 현상수배하라. 놈을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천 금의 상금과 1만 호의 영지를 하사하리라.

잡자. 번어기만 잡으면 팔자 고친다.

쫓기는 신세가 된 번어기는 고달팠을 것인데, 몸 고달픔보다도 마음이 더 아팠을 게다.

사사로운 논쟁으로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버린 신세도 억울하지만, 무참히 도륙을 당한 처자식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눈에서는 불똥과 더불어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너 이놈.. 야수보다도 못한 잔인한 놈.

나도 네놈의 목숨을 끊어줄 테다. 죽여버리겠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 쫓기는 몸은 멀리 북녘의 연나라까지 오게 되고 말았다.

연나라 수도 계성은 오늘날의 북경이다.

번어기는 망명을 요청하고 진으로부터 한 발 먼저 탈출해 와 있던 태자 단은 기꺼이 그를 품어줬다.

가신들이 반대했을 테제. 위험합니다.

저자는 진왕 정이 현상을 걸고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저런 사람을 받아 주면 진나라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안다.

알면서도 위험을 자초하십니까..

이 먼 곳까지 흘러온 것도 모든 사람들이 꺼리고 받아주지 않아다는 증거입니다.

연나라 태자 단은 다정다감한 사람. 나를 믿고 찾아온 분이시다. 어찌 돌려보내겠느냐..

저택을 따로 마련해주고 불편 없이 살게 해줬다.

진왕 정의 야욕은 온 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놈은 우리 연나라도 삼키려는 은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는 진나라를 대적할 힘이 없다고 하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나라를 빼앗겨야 하는가..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제후국의 멸망을 막기 위해..

진왕 정 그자를 없애야 할 것인데..

다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

그래서 태자 단의 근심은 깊은 것이다.

 

형가.

제나라 사람으로 당시 천하의 검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지만, 칼솜씨를 숨기고 살았다.

노구천이라는 칼의 귀재도 형가의 친구인데, 지금은 말다툼 끝에 서먹해서 서로 만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개 잡는 직업으로 자신을 숨기고 시장 바닥에서 몸을 굴리며 살아가는데, 소리를 잘 켜는 거리의 악사와 어울려 날마다 술만 푸고 있었다.

그러나.

현자 전광 선생만은 형가의 진의를 알고 있었지.

주 천자가 점지해주셨던 태고의 국가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말세올시다. 출세 그까짓 것 뜻이 없고, 검술 부질없습니다.

형가 그대의 뜻이 과연 나와 같으니..

전광 선생도 암자에 들어가 숨어버렸는데, 어느 날이던가 태자 단이 몸소 그 암자에 찾아왔다.

진나라의 침략은 이제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연나라의 국력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건데 진나라의 침략 야욕은 진왕 정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야망일진대..

먼저 진왕 정을 없애서 전화를 막는 방법이 있을 듯도 합니다.

선생께서는 부디 밝은 계책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자객을 보낸다. 그뜻이오니까?

전광 선생은 그 자리에서 형가를 추천한다.

겉보기와 다른 사람이오.

내가 형가를 마나서 태자님을 찾아뵈라고 말해주겠소.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알아야 하는 극비올시다.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비밀을 지키라고? 그렇다면 내 입을 믿지 못하시나는 뜻인가..

진나라 왕을 암살할 계획을 짜고 있는 모양인데, 이 사람들의 행동을 보라.

전광 선생이 형가에게 태자의 계획을 말해주고,

가서 만나뵙겠는가?

형가는 반식경이나 땅만 내려다보고 있더니..

만나보겠소.

자객이 되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럼 됐네.

이는 국가지대사이며 극비 중의 극비이다. 태자와 자네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라.

그럴테지요.

태자께 가서 이르게나. 비밀을 알고 있는 입 중에 전광의 것은 영원히 닫혔다고 말이네.

노인은 스스로 목을 쳐서 그 입을 봉하고 말았다.

형가가 그 이야기를 태자에게 알렸더니, 태자는 울면서 고마워하더라지.

그러한 전광 선생께서 추천해준 당신이니, 나는 그대를 굳게 믿겠소.

태자꼐서는 제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대저 일국의 왕을 죽이는 일이라면 세 가지쯤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습니다.

첫 째. 왕의 몸 가까이 접근하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그럴듯한 미끼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왕 앞에 나가서도 흔들리지 않는 배포와 기백이 필요합니다.

셋쨰, 한 번 찔러 끝낼 수 있는 명검이 있어야 합니다.

비수라면 1백 금을 주고 마련해둔 명검 상절이 있습니다. 그 날에 맹독을 발라뒀구요.

왕의 몸에 다가갈 수 있는 미끼는 있습니까?

제가 요구하면 주시겠습니까..

어떤 것이지요?

연나라 곡창 지대의 비밀 군사 지도. 그리고 번어기의 목입니다.

그 정도의 미끼가 아니면 그자의 곁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배포의 기백은 이미 형가의 몸 소겡 들어 있소이다.

지도라면 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번어기의 목. 그건 안 되겠습니다.

나를 믿고 찾아와 의탁한 사람을 어떻게 해친단 말이오..

그럼 내가 가서 물어보지요..

형가. 번어기를 찾아가더니.. 암살 계획의 자초지종을 말해줬다.

놈을 죽이는 일인데, 그 무엇이 아까우리오.. 당장애라도 가져 가십시오.

그럼 들어온 김에 아예 지금 가져갈까요?

그러시구료.

형가는 번어기의 목을 얻었다.

소금에 절여 두십시오.

태자 단은 그때도 몹시 울었다고 했다.

미끼는 훌륭하고 비수는 예리하군요. 이제 떄를 기다려 함양으로 떠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형가인데, 노래만 부를 뿐. 길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길이니, 쉽게 떠날 수가 없겠지.

그러나 진나라 공포의 먹구름은 시시각각 동진해오고 있는 기미여서

연나라 사람들은 자꾸 불안해지고 있었다.

태자 단의 조바심이야 말로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

오늘이라도 진군이 국경을 넘어온다는 급보가 들어올 것 같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이 연나라의 끝장 아닌가.

 

아직 준비가 아니 되셨습니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구천이란 벗입니다. 천군만마 앞에서도 태연히 웃을 수 있는 담력을 가졌지요. 부사로 삼아 같이 가려고 합니다.

....

그런 뒤에도 여러 날이 지나갔다. 노구천은 오지 않고, 태자의 조바심은 이제 끓어 넘치고 있었다.

이 사람을 보아 주십시오. 담대하기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살인을 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부사로 삼으시면 어떻겠습니까.

.... 나라를 걸고 행하는 거사에 요 따위 아이를 데리고 갈라십니까..

부사 자격이 있을 것 같아서요.

이 대륙의 역사를 바꾸는 큰일입니다. 꼭 필요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주이니, 태사께서는 좀 더 참아주십시오.

형가는 불쾌했다.

이미 목숨 따위는 버리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완전한 성공을 위해서 서먹한 처지가 된 옛 친구마저 불러들이고 있는 중인데, 태자는 아이놈을 데리고 어서 어서 떠나라고 독촉이다.

태자 단은 그만큼 심중이 다급해서 그럴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해 드리자.

 

노구천.

과묵하기가 바위와도 같다. 노구천은 담대하기가 사자와도 같다.

노구천은 검술에서 달인의 경지에 섰다.

 

진나라 병력이 북상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태자 단은 이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형가의 부름을 받고 달려오던 노구천은 범람한 제수에 발이 묶여, 미투리 신고 있던 그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대지.

 

날이 밝았다.

연나라 비밀 지도와 소금에 절인 번어기의 머리가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날은 서리 비슷한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고했다.

정사 형가, 부사 진무양. 이제 살아서는 두 번 다시 이곳 땅을 밟지 못할 사신들이다.

그래서 떠나보내는 사람들도 허옇게 상복을 지어 입고, 강변까지 따라나가 환송연을 베풀어줬다.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날 떄까지 기다리겠소이다. 그러지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나누는 대화들이다.

고점리가 축을 치며 작별을 서러워했다.

형가의 자작시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강물도 차구나.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형가는 술잔을 던지고 배에 오르더니, 단 한 번도 뒤돌아보는 일 없이

차가운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고 했다.

다정다감한 태자 다은 그때도 펑펑 울었을 테고, 고점리의 축 소리는 안개 속을 지나 강심의 형가위 귀에 들려쓸 것이다.

 

형가는 멀고 먼 진나라 수도 함양에 나타난다.

우선 몽가라는 대신을 만났다.

당신은 연나라의 정식 사신이오?

아닙니다. 은밀히 만나뵙고 상금을 타려는 밀사올시다.

우리 나라 대왕님은 아무도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대왕꼐서 몹시 기뻐하실 선물이 두 가지씩이나 있는 걸요.

그게 뭡니까.

연나라 독항 지방의 기밀 지도와 번어기의 목..

그래요??

진왕 정은 생각보다 쉽게 알현을 허락해줫다.

역시 그만한 값이 나가는 미끼 때문이었을게다.

그때쯤 진나라 국왕의 위엄은 국력과 맞먹게 대단한 것으로 부풀려지고있어서

나이 어린 진무양은 처음부터 기가 꺾이고 말았다.

바보 같으니.

부사의 걸음걸이가 왜 그러하냐.. 비틀거리고있네.

통촉하옵소서. 연나라의 북녘 오랑캐가 대왕님의 어전에 처음으로 나와 두려움에 떨려서 그러하옵니다.

부사 대신 소신아 두 가지 물품을 모아 대왕께 바치도록 윤허하여 주옵소서.

진무양은 단 아래 주저앉아버리고, 형가 혼자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유유하기가 청풍과도 같았다.

진나라의 국법은 까다롭고 또한 철저히 지켜지던 터이다.

왕이 계시는 단상에는 어느 누구도 무기를 휴대하지 못하도록 못박혀 있었다.

형가는 그 법을 역이용하려는 참이다.

번어기의 얼굴입니다. 확인하여 주옵소서.

과연 그러하다.

연나라 독항지방의 기밀 지도입니다. 암모문으로 적혀 있나이다.

....

허락하신다면 대왕님께 일일이 해독해드릴까 합니다.

올라오라.

진무양의 비명만 없었더라면, 지도 속에 감췄던 비수 상절을 꺼내 왕의 가슴을 찌르려던 형가의 계획은 아무 막힘 없이 성공했을 것이다.

부사의 행동이 의심스럽다. 정사. 그대도 내려가라.

그럴 수가 없다.

첫 번째 공격은 진왕 정의 옷깃만 잘랐다.

왕 역시도 몸이 날랬던 사람. 두 번째 칼날은 허리를 굽혀 피했다.

너무도 급박한 상황에서 허리에 차고있던 장검을 생각해내고 칼자루를 잡았으나

다급한 김에 그랬던지 장검은 칼집에서 나와주지를 않는다.

드디어 기회를 잡은 형가가 회심의 일격을 가했는데,

시의가 던진 약주머니가 날아들며 왕의 목숨을 구했다.

왕이 부르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전상에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진나라의 국법.

설사 어명이 있었더라도 무사들이 올라갈 여유도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호녀 오랑캐 여인 하나 있다가 소리를 질러 아뢴다.

칼을 등에 지고 뽑으사이다.

등에 지고... 그렇구나.

긴 칼을 등에 지고 힘주어 뽑았더니 드디어 칼집에서 나와줬다.

자객은 웃으면서 죽어갔고, 진왕 정도 웃으면서 여유 있는 농담을 하고 있었더란다.

수염 기른 이후로 처음 혼이 났네.

 

천하통일.

형가의 시체는 전상에서 끌려 내려가 무사들의 난도질에 의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변하고

단 아래 주저앉았던 진무양도 그렇게 됐다.

연나라 놈들이 감히 내 목숨을 앗으려 들었다.

전군을 몰아 북진하리라.

여부가 있습니까.. 지당하신 처사이옵니다.

약주머니를 던졌던 시의는 대단한 녹봉을 받고, 소리 질러 장검을 뽑도록 도와줬던 호녀도 왕의 사랑을 받았다.

그날 밤, 침실로 불려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는데, 그 호녀는 열 달 뒤에 사내 아이를 낳았다.

일설에 의하면

진시황 뒤를 이은 2세 황제 호해가 그 아이였다고도 하거니와...

어쨌든 좋은 빌미를 잡은 진나라는 총동원령을 내려 연나라를 침공한다.

강대국의 침략 앞에 약체 연나라의 방어선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아...

왕은 멀리 요동 땅까지 도망가야만 했다.

동행하고 있던 태자 단은 그때도 몹시 울고 있었단다.

진나라의 추적은 집요해서, 요동 끝까지 쫓긴 연나라 왕은 다급했다.

이는 태자가 한 일을 잊지 않고 노여움을 품은 탓이다.

사죄의 뜻으로 태자의 목을 보내며 용서를 빌었으나, 그건 연 왕의 계산 착오.

누가 이 따위 너절한 대가리를 얻겠다더냐..

과인의 목적은 이 대륙의 통일에 있는 것이야.

끝도 없이 쫓기던 연 왕은 압록강 근처에서 잡힌 몸이 되고,

그래서 진왕 정 25년(기원전 222년) 연나라 멸망.

일찍이 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소공 석에게 떼어줬던 나라가 8백여 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제나라 하나 뿐인가.

제나라는 태공망 여상을 시조로 하고 있는데, 그 후손의 마지막 임금은 굶어서 죽는다.

진왕 정에게 공 땅으로 쫓겨가 좁은 집에 갇혀 살더니, 어느 폭설이 분분한 겨울날, 양식이 떨어져 아사하고 말았다.

진왕 정 26년(기원전 221년) 제나라 멸망.

 

시황제.

13세에 왕위에 오르더니. 22세에 성인식을 치르며 국권을 장악. 대륙 통일의 웅지를 남몰래 불태웠다.

다른 6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부로가 17년 만에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되니, 진 나라 왕 영정의 나이 39세.

나는 왕이 아니다. 왕이란 뭐냐..

대륙이 조각조각 깨어져 쓸모없는 거울처럼 갈라졌을 때, 그 쪼가리 땅을 하나씩 맡아 다스리던 조무래기 인간의 대명사가 왕이다.

하나로 통일된 거대한 국가의 주인은 그렇게 하찮은 명칭으로 불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대륙이 여러 나라로 갈라지기 이전 하나의 왕조이던 때, 당시의 훌륭한 지도자들을 가리켜 우리는 삼황오제라 하느니.

그 황과 제를 다 합쳐서 바로 나를 지칭하는 말로 정한다.

나는 최초의 황제이므로 앞에 시작한다는 뜻의 시始자를 붙여 시황제라 칭하고, 뒤를 이을 황제에게는 2세 황제, 3세 황제... 이어가게 하리라.

그리고 새로운 제도를 수없이 만들어 발표, 시행한다.

이제 더 이상의 전쟁은 있을 필요가 없다 해서

천하의 무기란 무기는 모두 거두어서 함양으로 납품하라 명령이시다.

온 천지에 못았으니, 무기는 산더머치럼 쌓였는데...

진시황은 그것을 녹여 열두 개 동인을 만들어 함양 궁성 북문 앞에 세웠는데, 동인 하나의 무게가 24만 근이나 나갔다는 것 아닌가.

창칼을 손에 잡고 있으면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법이다.

주나라는 왕의 일족과 공신들에게 땅을 베어 나눠주어 봉건제를 채택했던 까닭에, 오랜 세월이 흐르며 서로가 반목하게 되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이다.

통일 진나라는 중앙집권제를 써서 짐이 스스로 강력히 다스려 나가겠다.

따라서 군현제를 실시한다.

 

진시황이 실시한 개혁은 여러 가지다.

우선 서로 달랐던 문자를 진나라 체제로 통일시켰다.

또한 화폐의 통일.

마차 수레 바퀴의 통일(각 제후국의 수레바퀴는 축의 길이가 제각각이라 통행에 불편이 있었다.)

 

따라서 대륙의 도로도 새롭게 열어 함양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깔았는데

그 폭이 50보, 도로 양쪽으로 10미터 간격으로 소나무 가로수를 심게 했다.

도량형의 통일로 산업을 육성시켰다.

전국에 운하 사업을 벌여 상업이 크게 일어나고, 그 유명한 만리장성도 이때 완성되었던 축조물이다.

 

고점리.

6국이 망하기 전

모든 제후국에서 한결같이 탐내던 보물이 있으니, 완벽의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화씨의 벽.

화씨의 벽을 갈고 쪼아서 짐의 도장을 만들도록 하라.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목걸이. 옥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을 해야 보물.

대대로 물려줄 국가의 옥새를 만들어 거기에 여덟 글자를 새겼다.

수명우천 기수영창.

짐이 시황제가 됨은 하늘의 명이시며, 영원히 영원히 번영한다는 뜻이다.

옥새를 탕탕 눌러치는 황제에게는 살 맛이 낫겠지만, 멸망한 6국의 왕족, 귀족, 백성들은 이를 갈고 있었을 게다.

지금까지 서쪽 변두리에 사는 촌것쯤으로 알고 있던 진나라에게 선조 대대로 이어받던 나라를 잃은 것 아닌가..

촌것들은 험악한 군인을 보내서 생소한 일들을 억지로 시키며 탄압하는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점령군.

땅 넓은 줄도 모르는 진나라 군바리들.

아무리 말단 병사라도 천둥 벌거숭이로 날뛰며 생사여탈권을 가졌다.

진나라 통치는 억세고, 최고 통수자는 바로 진시황이다.

맏아들 부소는 성정이 밝고 어질어 매양 근심이 많았다.

아바마마. 선정을 베푸십시오. 백성의 원망을 살까 두렵습니다.

원망하는 자들은 제거하면 된다.

학정으로 잘된 왕은 없습니다. 굽어 살피옵소소.

거. 참.. 짜증나게 구는구나.

지금 몽염 장군은 북녘에 올라가 장성 쌓는 일에 분주하다. 너는 나를 대신해서 그리로 나가 공사 감독의 중책을 맡아다오.

정말 중책을 주시는 건가. 귀찮아서 쫓아버리시는 건가?

 

천하의 주인이된 진시황.

오랑캐를 싫어해서 만리장성을 쌓게 하고

호화 궁궐을 신축하고, 크고 작은 토목 공사를 벌이는데,

황제의 권위를 앞세워 모든 백성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기 시작한다.

특히, 망한 6국의 백성들은 더더욱 그랬다.

숨어 살던 고점리.

처박아뒀던 축을 꺼내 먼지를 털더니, 청아한 음률로 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운 소리를 내는 축쟁이는 처음 들었어.

고점리는 자기 실력을 일부러 널리 알리고 있었던 것.

일찍이 형가의 암살 사건 당시 고점리도 일당으로 지목되어 체포령이 떨어져 있었던 것.

축을 잘 친다는 그놈이 혹시 고점리 아닐까..

당장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의 계획대로 축쟁이는 체포되어 황제 앞으로 끌려간다.

당장 능지처참함이 마땅한 일이로되, 네놈의 축 솜씨가 높다하니 어디 그 소리 한번 들어볼까 한다.

온 정성과 가지고 있던 실력을 죄다 짜낸 탄주에 황제는 감탄한다.

죽일 놈이로되 네 제주가 아까우니....

두 눈을 뽑는 것으로 사형을 대신해주고, 궁중 악사로 특채가 된다.

친구 형가여. 그대의 복수가 눈에 보인다.

형가여, 놈은 비단 그대만의 원수가 아니네.

온 천하 모든 중생 공동의 원수가 아니겠는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남모래 기다리던 고점리에게 드디어 기회가 주어진다.

내일 궁정 파티에서 그대가 첫번째 연주자로 뽑혔다.

바깥 손님들도 많이 오실 터이니, 한번 실력 발휘를 해보라고.

봉급을 모아 장만해뒀던 연장을 드디어 사용할 때가 왔다네. 형가.

납 조각을 끓여 녹이더니... 뭣 하는 짓인가.

축 속에 부어 가득 메우고 있다.

밤새 식히고 나서 아침이 되어 그것을 들어보며 홀로 좋아한다.

던지기도 딱 좋은 무게야. 모서리에 맞으면 사람의 두개골쯤은 쉽게 빠개질 거네.

일찌감치 연회장아 나타나 옥좌 근처에 자리잡고 앉았다.

진시황이 앉을 옥좌의 방향을 세심히 가늠하고 있었다.

드디어

향연이 시작되어서..

납으로 속을 채운 축이 울어줄 리가 없다.

....

어쨰 머뭇거리시오. 어서 축을 치시오.

이 몸은 황제님의 악사요. 황제님을 위하여 축을 치는 것이 지상의 임무인 까닭에 황제님의 명이 있기 전에는 치지 않습니다.

껄껄.. 그래 알았다. 어서 치려무느.

저 목소리, 왼편으로 나의 무릎 비스듬히 머리 한 뼘 위.

그러나 고점리. 방향 계산이 틀리고 있었다.

병풍 곁에 걸린 구리 징이 떨판 구실을 하여 황제의 음성을 되받았기 때문일 게다.

받으시오.

고점리는 현장에서 목이 달아나고, 진시황제.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눈먼 머저리까지 내 목숨을 가지겠다고 덤벼들어..

그때부터 황제의 경호는 가일층 철저해지고.

누구보다도 황제 자신이 몸을 사리는 습관이 체질화되었는데, 그건 거의 병적이라 했다.

 

분서.

세월이 많이 지났다.

진시황의 열여덟번째 아들이 벌써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그는 형가 사건이 있던 날, 황제를 모시고 잤던 호녀가 낳은 아들. 그래서 이름도 호해다.

호해의 가정교사. 환관 조고.

환관은 남성을 잘라버린 내시를 말한다. 그 뭣도 없는 조고는 대단히 엉큼하고 욕심 또한 거대했다.

 

궁중 파티가 열리는 날.

술이란 인간사 같아서 오래 묵을수록 진가가 있는 거지요.

저놈 보게...

당신 지금 뭣을 빗대놓고 불평을 하고 있는 거지?

승상께선 왠 언성을 그리 높이시오?

당신 지금 개혁 정책을 비방하고 있었잖아. 뭐야.. 인간사도 오래 묵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황제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있던 이사..

좀더 철저한 방법으로 먼지를 털어버리겠다.

망한 6국의 노털들이 찍소리도 못하도록 강력한 법을 만든다.

진나라 이외의 역사 서적은 모두 불살라 버릴 것.

옛 시서를 입에 담는 자 사형.

옛것이 옳다는 놈, 현재를 비판하는 놈, 일족을 멸한다. 단. 의학서적과 농사에 관한 책, 점치는 책만은 예외로 한다.

전국에서 귀한 죽간을 모아, 태웠다.

 

갱유.

뜻있는 학자들은 얼마나 통탄했을까..

책이라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들어 모시고, 함부로 다루지도 못하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대할 것이며,

어떤 경우라도 흙 위에 놓지 말아야 하고

몽매간이라도 그 위로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쓰레기처럼 모아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유생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진나라의 처사를 미워하고 있었다.

꽁생원들이 꽁했겠지.. 그러면 그러라지.

천하를 손아귀 속에 움켜잡은 진시황이다.

하늘 아래, 땅 위에 그를 대적할 인간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점점 교만해지더니.. 인간이 넘봐서는 안 될 경지까지 침범했다.

짐은 영원히 살고 싶다.

죽은 뒤에 황제는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따위의 헛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단 말이다.

짐이 마음먹어서 아니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원히 사는 것. 그것도 실천에 옮겨봐라.

그때부터

사기꾼들이 꼬이게 된다.

어떤 계획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해보자.

동방으로 쭈욱 가면 봉래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불로초가 있고 불사약도 널려 있답니다.

솔깃..

그러나 금강산은 멀고도 먼 곳에 있습니다.

금강.. 봉래산이라더니..

서복이라는 자가 진시황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 건 올렸다.

3천 명의 동남동녀와 어마어마한 노자를 태나 줄행랑을 친 것이다.

나이 어린 애들은 왜 데라간다는 거야?

저것들이 늙어서야 돌아오게 될 정도로 먼 길이다. 그거지.

막대한 예산을 똑 따먹고 가더니, 서복은 영영 돌아올 줄을 모른다.

천하의 시황제도 사기를 맞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히 그랬다.

인간이 영원토록 살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성을 잃은 까닭일까..

어떤 자는 묵직한 예산을 받아쥐고 도망가면서 악담까지 해쌨다.

예랑.. 바보 천치같은 놈아.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더냐.. 옛날 신예의 마누라. 상아년도 욕심을 부리다 달 속의 두꺼비가 된 걸 모르느냐..

하긴. 그런 일을 적어놓은 책을 네놈이 몽땅 불살랐으니. 네가 알지 못하고 무식함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진시황은 불같이 노했다.

그 논조로 미뤄보건데, 범인은 유생놈들과 한통속이다. 철저히 조사해 남은 잔당을 색출하라.

유생 학자들이 곤욕을 치르게 된다.

바른 대로 고백하며 석방시켜주마..

이렇게 굴비 엮듯이 유생을 잡는다.

460명. 지각 변동에 의해 푹 꺼진 땅이 있는데, 460명 전원을 그 속에 뭍고 흙으로 덮었다.

 

장량.

말년에 진시황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내 손으로 통일한 천하를 두루 돌아보며..

경치가 그럴듯한 장소마다 굽어본 뒤, 자신의 겅덕비를 세우고, 비문에는 천하통일의 눈부신 업적을 적어 아로새기게 했다.

진시황의 호화로운 행차로 순행길을 지날 때마다

망국 6국의 지사들은 이를 갈며 눈을 흘기고 있었다.

최후의 결전에서 전사했던 초나라 장수 항연의 후예 중 항우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 또한 진시황의 행차를 보며

암살을 생각한다.

장량이란 나그네가 있다. 옛날 망하기 전의 한 나라에서 대단한 귀족으로 이름 날리던 명가의 자손이다.

이제 떠돌아다니는 거지 신세가 되었으나, 기필코 옛 조국의 부흥을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무감을 품고 있었다.

진시황의 두 번째 동진 순행.

장량은 행차 중의 황제를 기습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목격자들로부터 들어서 정황을 파악한다.

행차의 옆구리를 기습하는 방법. 네 마리의 말이 끄는 4륜거. 마차는 비교적 지붕이 가볍고 약하다.

결론은 단 하나. 일백 근쯤 나가는 돌이나 나무 기둥을 호위선 밖에서 던져 마차를 일격에 박살내는 방법.

그러단 장량의 눈에 샛별처럼 빛을 내며 번쩍이게 되는 일이 생긴다.

장량은 사나이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창해군의 수하에서 막일을 하던 일위역사라고 적혀 있다.

장량의 구변이 좋았던지, 아니면 역사 쪽이 또라이였던지..

날이면 날마다 철추 던지는 연습을 한다.

철추의 무게근 120근이라 했으니, 오늘날 30kg가량. 무게는 공중을 날아가는 거리에 비례해 기하급수의 중량을 더하는 법이다.

드디어 진시황의 행차를 노리고 두 사람은 박랑사 숲 속에 숨었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마차만 노려 박살내어라. 그런데..

이런 일을 사전에 예측하고 있었던지, 진시황도 머리를 굴려 놓고 있었다.

똑같은 마차가 세 대씩이나 됩니다.

철 추는 단 하나. 따라서 공격 기회는 단 한번.

가운데.

겨냥은 성공했다. 그리고 비거리와 철추의 무게 계산도 정확해서 마차는 박살이 났는데..

다만 그 안에 있다가 즉사하길 바랐던 진시황제의 머리가 세번째 마차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황석 노인.

실패한 킬러는 쪽이 팔렸다.

귀족 출신의 의사 장량은 심중이 비참했다.

허겁지겁 줄행랑을 쳐온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화가 나는 일은 자기의 판단 착오로 인해 일을 그르쳤다는 사실이다.

가운데 마차는 너무 평범한 수.

조심성 있는 자라면 선두 마차에는 타지 않을 것이다.

바보. 바보.

어째서 세번째 마차를 점찍지 못했던가....

스스로 머리를 떄려가며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지났다.

심신에 힘이 빠져 멍하니 있었는데, 그때 야릇한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된다.

노인이 장량에게 신발을 주워오라고 계속 말한다.

이는 장난도 아니고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닐 것이다. 뭔가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행동일진대...

다리 밑으로 다시 내려가 물 속을 뒤져 노인의 신발을 찾아온 장량.

노인은 장량에게 책을 준다.

책을 열심히 공부해, 천자를 도와 드려라.

한 권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아든 장량이 노인에게 큰 절을 한 뒤,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더라는 유명한 이야기.

황석공 노인이 주고 간 책은 다름 아닌 태공병법.

일찍이 주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던 제나라 시조. 강태공이 써서 남긴 병법 비서.

장량은 한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된다. 태공병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여산릉.

1974년. 서울 광화문에 세종문화회관을 세우기 위해 한창 정지 작업이 시작되던 해.

같은 해, 중국 서안 동쪽 임동에서도 땅을 파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날이 가물어 사람들이 동원되어 우물을 파던 중이다.

사암지대였는데, 단단한 물건이 찍혔다. 다들 자리를 옮길 생각을 하는데, 국수집 곽 노인이 고집을 부려 계속 파내려 가더니..

사람의 머리가 보인다.

흙으로 만든 사람.

한동안 야단법석이 벌어지며 시끄러웠다.

고고학자들이 동원되어 조사를 했더니..

2천 년 동안이나 땅속에 숨겨져 있던 진시황의 배총이라.

처음엔 한두 개뿐인 줄 알았는데, 고구마처럼 줄줄 나오는데, 오와 열을 딱딱 맞추고 섰더라는 거야.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출토되고 있으니,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임동의 드넓은 평야가 모두 사각사각한 사암지대여서 그런 지하 공사가 가능했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진시황은 왕위에 오르는 즉시, 자신의 거대한 무덤 공사를 기획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왜냐하면 우선 수천 명의 인원이 몇 년인지도 모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지질 조사를 벌여야만 했을 것이며

드디어 임동의 사암지대를 발견. 땅파기 공사부터 착수했을 터인데..

엄청난 규모. 높이 116m, 주위 길이 2.5km, 사방이 각각 60m.

사후의 세계에서도 시황제를 그대로 해먹겠다는 욕심으로

어머어마한 평수와 온갖 사치, 그리고 수천 명의 호위 군관들을 만들게 했다는 것 아닌가..

흙으로 빚은 시황제의 근위병은 표정이 제각각이며, 완전 무장한 병사, 군부, 전차를 끄는 말과 마부 등. 6천 점이 넘는다.

황제의 시신을 모신 관은 구리를 부어 만들었다고 하며, 능묘 안에는 궁전, 누각, 회랑 등등이 갖추어져 있고

돔식 천장에는 보석과 진주를 박아 만든 일월성진이 반짝이고

고래 기름의 등잔은 영원한 조명 횃불. 잡상인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한 자동식 화살 장치.

어렵고 고달픈 공사에 동원됐던 인부들은 능묘 완성과 더불어 깡그리 순장되었다.

능묘 입구는 쓱싹 지워져 비밀에 부쳐지고,

마지막까지 남아 수고했던 책임자와 병졸들은 2세 황제 호해가 베푼 위로연에서

한 잔씩 받아 마신 하사주의 술잔을 떨구며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아서

능묘의 비밀이 2천 년이나 묻혀 있었다는 것 아닐까???

 

여산릉에 동원된 75만, 만리장성 30만, 영남개발/도로공사 50만, 아방궁 70만..

엄청난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 세금을 안 내면 가차없이 죽이는 형벌.

백성들은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

천하가 통일되면 전쟁이 없어져 살기 좋을 줄만 알았더니....

 

흉몽.

대륙을 통일하고 황제를 자칭했던 강철 사나이. 진시황.

미신은 몹시도 믿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폐하의 적수는 호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자세히 논해봐라. 호가 무엇이며 적수가 또 무엇을 뜻함이냐..

글쎄.. 점괘가 그러하옵니다.

태앙이 떨어지는 꿈.

푸른 옷 입은 동자가 나타나 품에 안은 태양. 그런데 이번엔 붉은 옷 입은 동자가 나타나 내 것을 가져간다며 다툰다.

푸른 옷 입은 동자는 힘이 좋았다. 그 대신 붉은 옷 동자는 끈기가 있었다. 무수히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붙들고 매달리더니

태양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더란다.

빛나는 태양은 권위를 상징한다. 즉, 통일 대륙의 주인임을 의미.

붉은 옷을 입은 놈이 자신의 권위를 가져간다.

그 놈을 찾기 우해 황제는 다시 여행을 떠난다.

전국 방방곡곡에 통일 진나라의 업적을 돌에 새겨 남김으로 짐의 권위를 지키라라.

떠나던 날, 열여덟번째 아들 호해가 나서며 동행을 간청했다.

아바마마를 모시며 주유천하를 하고 싶나이다.

환관 조고가 나서며, 바늘이 가시는 길에 실도 가는 법이요. 호해의 스승 자격을 빌미로 따라 나섰다.

승상 이사는 본시부터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게 되어 있던 터.

시황제 37년(기원전 210년)

그는 함양 궁성을 떠났는데, 그것이 인생 마지막 이별이다.

옛 기록을 보면.. 황제 일행은 11월에 운몽에 도착, 멀리 구의산을 바라보며 순 임금께 제사 올린 후 양자강을 타고 내려가다

회계산에 올라 우왕을 제사 지내고 공덕비를 세우다.

일행은 오 지방을 지나, 해안을 끼고 북상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다에 큰 고기가 있어 선약을 가지러 봉래산으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나이다.

황제께서는 동해로 나가는 사람들은 큰 고기를 잡는 도구를 휴대하도록 특명을 내리시다.

일행이 북상하여 영선산에 당도.

다시 평원진에 도착했을 때, 황제꼐서 병석에 눕게 되시다.

여행 일정이 좀 지나쳤나 봅니다. 휴식을 취하면 곧 완쾌되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황제의 병은 오래 끌면서 좋아질 줄을 몰랐다.

그때부터

환관 조고의 두뇌가 바빠진다.

자고로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종신 자식이라아먄 자식다운 자식이며, 결국 그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하더이다.

네가 황제가 되면 나는 황제의 스승이 되지 않겠느냐..

영원히 죽지 않겠다던 진시황도 드디어 종말을 예지하게 되었다.

여러 아들 중 맏아이며 성정이 맑고 밝은 부소에게 황제의 위를 물려준다. 부소의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

옥새가 찍힌 진짜 문서는 중거부령 조고가 맡았다.

 

유조.

진시황에게는 20명이 넘는 아들이 있았다.

저마다 야심만만하며 따로따로 추종세력을 가지고 있는 터이다.

그래서 황제의 죽음은 발표가 보류된다.

권력 쟁탈을 향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황제의 명이시다. 여행을 중단하고 함양으로 돌아간다.

일행은 그날 출발해서 서쪽으로향했다.

황제께 드릴 저녁 음식을 준비하라.

삼시 세 때 황제의 수라상은 어김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간다.

그날 받아야 할 결재 서류에는 조고가 찍은 옥새가 선명하다.

비밀은 우리 셋만이 알고 있소. 철저히 지켜져야 하오.

여부가 있나요..

함양에 귀환해서 절차대로 권좌를 승계하기 전에 이 일이 알려지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죽게 될 테니까 말이오.

잘 알고 있다니까요.

황제의 유서는 만리장성의 현장으로 보냈겠지요..

그걸.. 아직은....

!!!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맏아들 부소로 하여금 함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시오.

지금이라도 날랜 말을 띄워서 문서를 보내시오.

승상.. 좀 깊이 생각해 보시지요.

무엇을 생각하라는 말이오?

황제께는 여러 분의 공자가 계십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요?

우리는 지금 호해 공자님과 동거동락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우선 황제의 유서부터 발송하시오.

승상.. 지금 사정으로 보아 승상과 제가 뜻만 맞추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권좌를 물려줄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신하가 그런 말을 해도 된단 말이냐..

승상..

그대는 제자리로 돌아가라. 나는 주상의 조서대로 시행할 뿐이다.

승상.. 승상..

준마 다섯 필을 준비하라.

승상...

조고, 유서나 내놓으시오.

만리장성 현장의 부소는 몽염 장군과 10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함께 일하며 지금 대단한 단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왠 군소리를 이다지도 끈질기게 하고 있는 거요..

부소가 권좌를 물려받으면 제일 먼저 행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선 몽염 장군을 승상 자리에 앉히는 일일 것입니다.

그야 황제 의사대로겠지.

그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이냐. 긴긴 10년 동안의 세월, 승상으로 있으면서 자기를 외지에 처박아두고 고생을 시켰던 전임 승상, 즉 이사 그대를 잡아들여 눈을 뽑고, 사지를 잘라 복수하는 일이 아니겠나요?

.....

사람이 대인으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몽매한 고집으로 파멸을 당하느냐, 아니면 냉철한 결단으로 국가와 가문을 번성시키느냐..

일국의 승상께서는 어느 길을 택하시려요? 현명하신 승상..

......

살아 남아 나라를 더욱 굳건히 지키는 일이 돌아가신 주상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길이 아니겠나요?

우리의 2세 황제는 우리 곁에 계십니다.

아아.. 하늘의 운명은 이런 것인가...

 

양피지에 적었던 황제의 진짜 유서는 불에 타서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새로 적은 가짜 문서에 옥새가 찍히고 있었다.

일각을 헛되이 하는 일 없이 부소와 몽념에게 전달하라.

말은 있는 힘을 다해 북으로 뻗은 황제 도로 위를 내닫고 있었다.

함양으로 가는 황제의 행렬.

때는 7월의 한 여름. 마차에 누운 시신은 당장 썩으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조고의 꾀.

황제의 망이시다. 모든 마차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한 섬씩 싣도록 하라.

돌아가 중신들에게 나눠줄 선물이시다.

그래서 송장 냄새는 숨겨지고, 대신 비릿한 생선 악취가 풀풀 풍기는 황제의 행렬이 굽이굽이 수도 함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만 대군을 이끌고 국가 최고의 중책 임무를 수행 중이던 몽염 장군과 감독 부소 공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황제의 조서가 당도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공자. 함양으로 올라가 봅시다. 뭔가 음모가 있을 것입니다.

...

공자..

아버님의 명을 거역하면 불충자가 되나니...

아닙니다. 여기엔 뭔가 하자가 있습니다.

하자?

공자로 태어난 인생부터가 하자 아니곘는가.

부소는 효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명을 받들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몽염 장군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결을 뒤로 미뤘으나..

결국 호해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죽기 직전에..

내가 충성을 다하고 아무 잘못도 없이 은공을 받지 못할망정 죄인으로 죽어야 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장성을 쌓느라고 요동에서 임조까지 무려 1만 리가 넘는 산의 지맥을 끊은 것이 한둘이겠는가.

바로 그것이 나의 죄이다.

호해는 시황제의 유언에 따라 2세 황제르 등극한다.

부소는 일찌감치 보내버렸지만, 20명이 넘는 다른 놈들이 우쭐거리며 덤벼들거야. 지금부터 그놈들을 싸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