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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고대 유럽과 중동의 역사를 배웠다. 중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종교가 로마 제국과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았다. 하지만 중간에 빈 고리가 있다. 바로 서유럽의 중세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를 통해 서유럽의 중세를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중해에 국한된 삶,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지중해를 둘러싼 이야기에 한정될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세는 종교가 지배하는 음침하고 음습한 세상이었다. 종교 재판과 마녀사냥, 장원제에 바탕을 둔 경제제도와 영주, 농도, 연금술 등, 어둡고 분명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강신주님의 '철학 vs 철학'이란 책에보면 서양의 중세에는 철학자가 거의 없다. 모든 생활과 학문이 종교에 바탕을 두었고,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한 시대였으니.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중세는 막연했다.

이 책을 통해, 서양의 중세가 어떠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비록 지중해에 면한 일부 지역이지만. 역시 중세의 삶은 팍팍한 것 같다. 어제(2011.8.21) SBS스페셜에 '대한민국 정의를 묻다' 가 방송되었다.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정의일 것이다. 또한 자유와 질서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삶, 정직한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것이 자유, 질서, 정의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서유럽의 중세는 많은 것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였다. 인간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 시대.

서유럽의 중세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서유럽과 서유럽 문명의 자손인 북아메리카 문명이 지배하는 시대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올바른 선택과 내일의 모습의 예측을 위해 서양문명의 중세를 아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을 통해 서구 문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 중세는 후세 학자들이 뭍인 명칭인데,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에서 제노바 출신의 이탈리아인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까지가 중세다.

===========내용 정리=============

정직하게 일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 인간의 노력을 지원해주는 신들에 대한 신앙심, 자기가 가진 재산을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안신감, 신변의 안전.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맞선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일신교였다.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37년의 치세 뒤에 세상을 떠난 것은 565년. 로마법 대전의 완성, 476년에 멸망한 서로마제국의 지배자가 된 북방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만이라도 탈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역사는 그를 재정복자라 부른다.(에스파냐와 프랑스, 영국에는 여전히 야만족이 눌러앉아 있는 상태였다.)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죽은 지 5년 후, 570년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613년 포교를 시작했고, 632년에 죽었다. 그런데 2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절반을 이슬람화했다. 예언자가 죽은 후 후계자가 된 칼리프가 통솔하는 시대에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635년 비잔티움제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듬에 반격에 나선 비잔티움제국의 정규군을 무찔러, 700년 동안 로마의 동쪽 요충이었던 시리아가 이슬람화 한다.

642년 알렉산드리아를 함락하여 이집트를 이슬람화한다. 698년 카르타고의 함락으로 북아프리카 전역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670년 북아프리카 최초의 아랍인 도시인 카이루안을 건설한다.

710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재패한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까지 이슬람화하려는 의욕적 시도는 유명한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크왕국에 저지당한다. 이는 유럽의 이슬람화를 막는 결정적 전투지만, 이슬람의 급격한 세력 확장 앞에서 속수무책의 무기력한 상태에 놓였던 당시 사람에겐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정도의 의미뿐이었다.

전에는 로마제국, 다음에는 비잔티움제국의 강적이었던 사산조 페르시아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멸망한다. 중동의 강국이 언제나 본거지로 삼았던 메소포타미아 지방,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드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도 이슬람화 한다. 이전의 크테시폰을 버리고, 40km떨어진 바그다드에 수도를 새로 건설한다. 그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비잔티움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

100년의 짧은 기간에 페르시아제국을 명망시키고,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이란 이름을 쓰는 비잔티움제국의 목구멍까지 바싹 다가갈 만큼 강대해진 것이다.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 -마키아 벨리-

아무리 옳은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라 해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으면 종교로서 성공하기 바랄 수 없다는 것.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종교가 기성의 세속 국가를 접수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는데 300년 걸렸지만, 이슬람교는 혜택을 받았다. 기독교는 국가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원수정 시대의 강대한 로마였지만, 이슬람교가 맞선 페르시아제국과 비잔티움제국은 힘이 약해져 있었다.(페르시아 제국은 북동쪽의 야만족과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쟁으로)

동방의 기독교는 교리 논쟁으로 분열하여, 교회 내부에서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비잔티움은 기독교 제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주교끼리 싸우자 일반 민중은 자기네 지도자가 적대관계에 있으니까 자기들끼리도 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 내부가 이렇게 분열한데다 관리의 부정부패와 무거운 세금. 악정 요인이 겹치면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절망한 인간은 쉽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를 찾는 법이다.

심원한 가르침은 마음속을 깨끗하게 해주고 죽은 뒤의 평온을 베풀어줄지 모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행동으로 몰고가는 힘은 주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현세적인 이점이 자칫하면 인간에게 결정적인 일보를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된다.

지중해. 자기네 앞길을 가로 막는 벽으로 보지 않고 자기네 앞에 열린 길로 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라센인. 아랍 민족 가운데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 사막의 배인 낙타를 타고 오가는 대상을 습격하여 짐을 빼앗거나 보호료라는 명목으로 통행료를 뜯어내는 것을 생업으로 삼기도 했지만, 로마제국 후기에는 로마군의 용병으로 참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다에 나가서 생활의 양식을 얻는 것은 교역이나 해적이다. 보존 방법이 건조나 소금절임밖에 없던 시대에 어업은 선택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대 로마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굴 양식도, 물고기를 산 채로 가두어두는 대규모의 활어조도 중세인은 모르고 지냈다. 기술이 잊혀진 것은 아니다. 차분히 자리를 잡고 맞붙을 필요가 있는 전형적인 산업이 농업인데, 농업의 중요한 조건은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는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이슬람교도에게는 국가나 민족이나 인종은 문제가 안 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슬람교를 믿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는 그러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해적업의 수익이 쏠쏠한 것을 보고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가혹한 환경에 사는 민족은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다.

어떤 사업이든 참가자 전원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가갛면 그 사업은 성공하고 오래 지속된다.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경우에는 성공하고 그 성공도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이 처음부터 충분히 기능을 발휘하는 예는 거의 없다.

이슬람교는 기독교를 선행 종교로는 인정했지만, 참된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종교로서는 타락했다고 단정했다.

이슬람교는 이교도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여자 노예는 이슬람교로 개종을 강요했다.

자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통치자로서 실격이다. 도의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고, 절망한 사람들은 적의 품으로 달려가게 할지도 모른다.

착실히 전과를 쌓아올려 간다는 종합적 전략.

사라센인이 한 번 통렬한 타격을 받은 정도로 해적질을 단념할 리는 없다. 732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쳐들어간 알라의 전사들은 그들을 맞아 싸운 프랑크왕국 군대에게 푸아티에 근교에서 완패를 당했다. 덕분에 2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이슬람 세력도 피레네 산맥 남쪽에 머무는 것으로 참아야 했다.

하지만 육로를 이용한 유럽 정복을 일단 단념한 것은 바다를 통한 유럽 정복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기가 가진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욱 높이 향상하겠다는 의욕은 '중세 전기'에는 이슬람 쪽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다만 그 의욕을 해적질에 쏟아부은 것이 해적의 표적이 된 기독교 세계의 주민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절망한 시칠리아 총독은 튀니스의 태수를 돈으로 매수하여 평화를 사려고 했지만, 태수는 돈만 맏고 실행에 나서지 않았다. 이슬람교 본가 출신인 태수에게 해적업까지 통제받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적 내부도 완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몸값을 노리는 새로운 분야는 개인만 대상이 아니다. 도시 전체도 대상이 된다. 도시를 직접 공격하여 힘을 빼기보다, 주변을 노략질하여 도시가 비명을 지를 무렵, 철수를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 시라쿠사도 몸값을 치르고 해적에게 철수를 부탁했다. 세상 말세다. 이 시대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도 말세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기독교에는 종말사상이 있었다.

몸집은 작지만 거친 음식과 혹사를 견딜 수 있는 북아프리카산 말을 이용해 해적질에 가장 적합한 기습 전법을 구사한다.

해적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자위책. 망루 위에서 눈을 부릅뜨고 선박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심경. 사라센 탑(토레 사라체노)

800년. 그로부터 1200년이 지난 오늘날, 브뤼셀에 세워진 유럽연합 건물 가운데 '샤를마뉴(샤를 대제)'라고 이름이 있다.

800년 11월 중순,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은 대군과 함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간다. 그리스도 성탄절인 12월 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왕관을 받았다.

신성로마제국을 창설한 공식 이유는 기독교를 핵심으로 한 유럽의 대동단결이라는 새로운 시점에서 위대한 과거를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을 탄생시킨 진짜 이유는 비잔티움제국 황제가 같인 기독교도들이 사는 유럽을 방위하는 데 전혀 열의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토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왕이나 지방호족이 태반이었던 시대, 기독교 세계 전체의 지도자로서 일단 책임을 느끼는 것은 교황이었다.

비잔티움제국에는 황제가 있지만, 서방에는 없다. 로마 교황은 비잔티움제국 황제처럼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를 겸하는 존재가 이나었다. 독자적 군사력도 없었다.

교황은 성직자일 뿐 정치가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경우,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사정만 생각해서 자기한테 편리하도록 판단하기 쉽다.

교황은 비잔티움제국 황제의 대응이 미적지근하자, 이를 서방에 대한 방위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이런 기분일 때는 사소한 오해도 중요해지기 쉽다.

황제나 왕은 많은 부하가 따라주기 때문에 지위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이 떠나버리면 황제나 왕도 보통사람이 된다. 그래서 파문은 속계의 군주들에게 무서운 무기였지만, 비잔티움 제국 신하들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동로마제국 사람은 서로마제국을 경멸하고 얕보았고, 콘스탄티노플에도 주교가 있는데, 로마 주교에 불과한 교황이 그 상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비잔티움제국 황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로마 교황은 다른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교황은 군사력이 없기에, 우선 군사력을 갖고 있어야만 교황의 파트너가 될 자격이 있다.

비잔티움제국과의 관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면, 또는 이슬람 세력이 이렇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신성로마제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유럽의 기독교도인들이 이대로 내버려두면 조만간 유럽도 이슬람에게 먹힐 거라는 위기의식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700년에서 800년까지 1세기 동안 이슬람의 기세는 놀라웠다.

활력이 있어도 야만적이었던 아라비아 반도 사막 민족의 힘과 아랍에 정복당했지만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세련된 페르시아 문명의 행복한 결합이기도 했다.

이 시대 이슬람 세계가 도달한 문화와 문명의 수준은 놀랄 만큼 높았고, 같은 시대의 유럽보다 훨씬 우수했다.

이슬람은 군사력 뿐 아니라 문화와 문명의 힘도 함께 갖춘 존재였고, 큰 위협으로 보인 것도 당연했다.

로마제국 말기에 라인 강을 건너 갈리아에 침입한 북방 야만족의 하나에 불과했던 프랑크족이 400년 뒤인 중세 전기에는 유럽의 수호자 역할을 맡을 만큼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용맹하지만 잔인했고, 위생관념의 관점에서도 불결했다.

하지만 다른 야만족에 비하면 프랑크족은 다음과 같은 특질이 있다.

족장을 살해하는 권력투쟁은 있지만, 언제나 단결로 돌아가는 성향, 정복한 민족을 몰살하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그들과 융합하는 쪽으로 나갔다.

후세의 프랑스인은 정복한 계르만계 야만족과 그들에게 정복된 로마계 갈리아인의 융합이다.

732년 푸아티에 들판에서 이슬람 군대를 완패시킨 것은 샤를의 할아버지(샤를 마르텔)가 지휘한 프랑크족 대군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순수한 프랑크 병사의 비율은 달느 야만족 국가에 비해 낮았다.

샤를의 대에 이르면 이 프랑크족의 특질에 샤를 자신의 군사적 재능이 추가된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 자체가 샤를마뉴라는 뛰어난 재능이 이끌어야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또 오래 존속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였다.

국세조사가 보여주듯 고대 로마에는 정확한 기록을 중시하는 정신이 있지만, 그 정신이 부활하려면 정확한 기록이 없이는 장사도 번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르네상스 시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부활한 고대가 한 가지는 있다. 비누. 로마에 와서 비누로 씻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안 샤를이 프랑스로 돌아가 비누를 널리 보급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르세유는 고대부터 이어지는 비누와 세자의 산지로 유명한데, 마르세유 비누산업을 중흥시킨 사람은 샤를마뉴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어도 비누는 남지만, 지도자가 죽으면 그와 함께 죽는 것이 개인의 재능에 의존하여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조직의 숙명이다.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가 평화를 어지럽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명하고 실행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현실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다.

중세 사람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고난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신앙심이 아주 강했다. 그리고 종교 조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가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정보량이 많으면 그것을 토대로 내리는 판단도 정확해진다는 것은 오해다.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적더라도 그 의미를 신속,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지중해 건너편에는 이 10년 동안 서구에서의 움직임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

행동이 적극적이라는 것은 두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손에 들어오는 약간의 정보라도 그 중요성을 당장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창설은 서방의 기독교 세계가 비잔티움제국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따라서 기독교 세계의 동방과 서방이 함께 싸울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리라는 것.

아내를 빼앗긴 남편의 분노로 끝나지 않은 오모니사 사건.(시라쿠사에 부임한 에사르카가 에우헤미오의 아내인 오모니사를 자기 여자로 만든 사건) 이 사건으로 시칠리아 남자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가 비잔티움 제국을 배척하는 움직임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 해석은 역사가 우연에 좌우된다는 생각의 한 예처럼 보이지만, 그와 비슷한 다른 예와 마찬가지로, 이미 가득 고여 있던 물이 마지막 한 방울 때문에 넘쳐흐른 데 불과하지 않을까.

'에사르카'인 파라타가 그런 경솔한 짓을 하지 않았어도, 시칠리아인의 마음속에는 세금만 잔뜩 뜯어가고 사라센 해적으로부터 시칠리아릴 지키는 일에도 진심으로 나서지 않는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불만이 잔뜩 쌓여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짧은 기간에 단결하여 비잔티움제국 배척운동에 나설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법 전문가인 아사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군사적 전략에 따라 조직할 능력이 없다.

쉽사리 함락할 수 없는 시라쿠사를 시칠리아의 어디보다 먼저 공격했으니, 광신은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어 군사적 전략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좋은 사례다.

원시적이지만 공포는 최상의 전달 수단이기도 하다.

피사가 이슬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지도만 보아도 납득할 수 있다. 자국의 이익을 고려한 선택. 육상 전력이 될 수 있는 인구가 없으니 바다에서 활로를 찾고, 그래서 해양국가가 되는 것이다.

보니파초. 시칠리아로 가지 않고 단숨에 적의 본거지인 카이루안을 공격한다는 생각.

1천년 전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을 생각했을 것이다. 코끼리 부대까지 거느리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쳐들어온 한니발은 그후에도 연전연승하여 16년 동안이나 로마인의 악몽으로 남았다. 한니발을 무찌르기 위해 스키피오는 본국 카르타고를 공격한다. 이 전략은 보기좋게 성공하여 자마 회전에서 한니발을 무찌른 로마가 2차 포에니 전쟁의 승자가 된다.

행군하는 동안에도 노예들로부터 정보를 모으는 데 열심이었던 것은 보니파초가 칭찬받아도 좋은 점이다.

통일된 지휘 계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명령을 받을 사람이 확실치 않으면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하려 해도 그 명령을 지휘할 사람이 없다.

스키피오의 전략이 성공한 것은 상대 쪽에 병사를 통솔하는 천재인 한니발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스꽝스러운 측면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 세계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려면 소수가 가진 권위와 권력의 유효성을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다. 패배하면 권위에 흠이 생긴다. 따라서 한 번은 패했더라도 당장 그것을 만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은 '네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에수 그리스도의 말에 따라 성 베드로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은 성당으로 여겨진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마구간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이슬람교도의 말도 현실이 되었다.(로마를 침략한 이슬람 세력)

시칠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돗는 고대부터 줄곧 시라쿠사였다. 아테네가 원정의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얻고 싶어한 것은 시라쿠사였고, 통치조직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플라톤이 그 본보기를 보려고 찾아온 곳도 시라쿠사였다. 로마도 아르키메데스가 고안한 신병기 때문에 고전했지만, 시라쿠사를 함락하지 않는 한 시칠리아를 수중에 넣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점에서는 그리스인과 마찬가지였다.

전염병은 체력이 약해져 있을 때나 위생 상태가 최악인 경우에 사람을 덮친다.

공격하는 이슬람 쪽도 놀랄 만큼 필사적인 방어가 1년 동안이나 계속된 것은 팔레르모 시내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공포와 절망을 공유했기 떄문이다.

황제의 의혹은 전제군주국에는 반드시 있는 궁정의 음모꾼들에게 좋은 구실을 주었다. 사령탑인 황제가 이런 상태면, 안전을 보장하는 비잔티움제국의 해군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지휘계통이 확실치 않은 상태는 그들과 적대하는 쪽으로서는 곤란한 정황이다. 지휘계통이 명확하면 전략 전술도 그 지휘계통을 따를 테니까, 그것을 미리 예상하고, 간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같은 말이라도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목욕장도 그 중 하나다. 중세 유럽에서는 목욕을 중요시하지 않게 되었고, 목욕의 즐거움을 인간을 타락시키기 때문에 해롭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따금 위기에 직면했을 때의 대처법이라든가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있다. 그런 사람을 해적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다만 기독교도인 채로는 불편하니까 이슬람교로 개종시킬 필요가 있다. 책략을 써서 그 젊은이가 이슬람교도를 죽이게 한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이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죽이면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사형 뿐이다. 하지만 이슬람교도는 다른 이슬람 교도를 죽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정당방위가 인정된다. 이것이 유능한 기독교도를 해적으로 만드는 수법이었는데, 현대 국가의 첩보기관이 장기로 삼는 스파이 모집 방법과 비슷한 데가 있다.

어쨌든 해적업도 산업화하면, 성공이냐 실패냐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해적업이 산업으로 성공하자, 다른 산업에 쏟는 관심과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북아프키라의 이슬람교도들은 해적업에 의지하는 생활방식으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긴 안목으로 보면 지중해 남쪽에 사는 사람들을 조금씩 좀먹는 요인이 된다.

풍요로운 배후지를 두고 압제에서 벗어나 있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뻔하다. 사실상 독립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행한 것은 모두 로마 시대부터 존재한 항구도시다. 가에타, 나폴리, 아말피가 해당된다.

물론 기독교 쪽에서 보면 그들을 비난할 수는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 세계의 적이니까. 하지만 그것을 비난한 사람들이 캄파이나 지방의 항구도시를 안전하기 지키기 위해 함대를 만들어서 출동한 것도 아니었다.

동맹관계는 언제나 힘이 더 강한 쪽의 의향에 좌우되는 법이다.

동맹관계를 깨면 그 다음이 큰 일이라고 상대방이 생각하지 않는 한, 외교관계의 지속은 보증할 수 없다.

5세기 중엽에 대거 침입해온 야만족을 피해 온통 바닷물로 가득한 석호에 주민공동체를 건설한 것이 베네치아공화국의 시초.

베네치아의 공식 지배자는 오랫동안 비잔티움제국이었지만, 제국의 서쪽 긑에 자리잡은 베네치아는 그 위치 덕분에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전제군주의 압제를 받지 않는 행운을 얻었다.

베네치아는 비잔티움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의 강대국이 되는 베네치아공화국을 해독하는 열쇠는 '국익 최우선'이다. 언제나 국익을 우선했다. 다른 나라 통치자가 신앙이나 명예욕으로 흥분한 상태가 되었을 때에도 베네치아 통치자들만은 그러지 않는다. 밉살스러울 정도의 현실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베네치아공화국이다.

시종일관 신중하고 끈질기게 일을 추진하는 방식

베네치아인은 패배를 직시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의지와 그것을 지속하는 인내력을 갖고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 일은 시내에 있는 사람들의 힘을 북돋워주었을 뿐 아니라, 그 소식은 순식간에 중부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다.

절망한 이슬람 병사들은 당시 그들 사이에 활용되었던 비둘기를 이용하여 팔레르모의 태수에게 구워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북아프리카의 신 이슬람 교도, 그런 그들이 권위와 권력을 잃을 수 있었다. 성전의 승패는 국내 안정의 열쇠이기도 했다.

사라센 해적에 대한 공포는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전달되는 세습의 감정이 되어 있었다.

성전을 이슬람 쪽에서는 지하드라고 부르고, 기독교 쪽에서는 구에라 산타라고 부른다.

선구자에게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경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라센 해적에게 공격당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수도원도 요새 같은 구조로 바뀌어 갔다. 기도하는 곳이어야 할 건물이 점점 군사적인 외관을 띠게 된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왜 일부러 저렇게 불편한 곳에 살고 있을까 생각할 뿐이지만, 중세 전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필사적이었다. 그때까지는 신앙심에 불타서 고독한 은둔생활을 원하는 사람만 산간 오지에 숨어 살았지만,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그런 곳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른 고립은 정신적인 면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자급자족한다면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생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낭비가 많은 생활이다.

다른 공동체는 다량으로 생산되니까 거기서 사면 되지만, 자급해야하기에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토의를 거친 뒤에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에서의 합의저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만 적합한 제도가 아닐까. 반대로 자신감을 잃고 도망쳐온 사람들은 누군가 한 사람이 판단을 내리고 그 사람의 명령에 따라 생활해야만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적은 힘만 많이 들고 이익은 없는 것을 싫어한다.

내용만 보면 사라센인과 맞서려는 황제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황제의 책무를 게을리한 사람이 내린 명령이다. 아마 명령은 지켜졌을 것이다. 하지만 수와 질은 비례하지 않았다.

인간은 생사의 경계에 서면 종교의 차이는 나중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다. 건전한 생활인인 이들은 신에게 평생을 바친 성직자가 아니었다.

서두르라고 재촉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무리를 강요했을 게 분명하다. 이것이 나중에 자파르에게 재앙을 가져오게 되지만...

팔레르모에 도착하자마자 암살당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자파르의 지위와 권력을 질투한 이슬람교도였을 거라고 기독교 쪽 기록은 추측하고 있다.

쇠퇴하고 있는 나라의 특징은 결정을 내리는 것도 늦지만, 결정한 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늦다는 점이다.

대포도 중세 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활용되었다.

시라쿠사(지중해의 진주라는 별명). 고대 그리스인의 식민도시로 태어나 아테네가 적대시했을 만큼 강국으로 번영을 누렸고, 플라톤이 찾아가고,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난 시라쿠사도 이슬람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스인 부대장. 최전선에서 싸우며, 이슬람군을 향해 '우리가 개라면 너희는 뭐냐고,' 그때마다 성난 사라센 병사들은 시라쿠사를 함락하면 너만은 특별대우를 해주겠다고 대꾸한다. 그리고 이 약속은 완벽하게 지켜졌다.

맨 마지막에 광장 중앙으로 끌려 나온다. 사라센인은 그를 땅에 반듯이 눕히고, 손과 발을 고정한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오리엔트식 엄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가죽을 벗긴다 해도 피부만 벗길 수는 없다. 피부는 살과 함께 벗겨진다. 드러낸 내장을 사라센 병사들은 창으로 찔렀을 뿐 아니라 창끝으로 꺼내 광장에 던졌다. 심장을 꺼낸 병사는 그것을 이로 물어 뜯었다고 뱉어냈다.

서방의 기독교 세계에서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누구 한 사람 움직이지 않았다.

사르데냐는 요트나 해수욕이 주된 즐거움이지만, 시칠리아에서는 지금도 각지에 남아 있는 2천여 년 전의 유적부터,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회, 시청, 궁전이나 별장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시칠리아는 역사가 두껍다.

19세기에 유럽 각국의 양갓집 자제들이 교양을 얻기 위해 남유럽을 여행하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는데, 시칠리아는 반드시 방문했지만, 사르데나까지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교황 요한네스 8세는 더욱 절망했다. 믿지도 않았던 비잔티움제국 황제에게까지 편지를 보냈다. 882년 교황 요한네스 8세가 죽었다. 민중의 비참한 처지에 눈물을 흘리고 지배자들의 이기심에 화를 내고 절망한지 10년 만의 죽음이다. 그것도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다. 누군가에게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에 맞서서 단결하기는커녕 기독교 국가들끼리 싸우는 데 정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가에타와 나폴리. 이 일대의 바닷가에 별장을 갖는 것이 높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던 키케로 시대의 로마인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부동산 가치도 달라진다.

평화는 안전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를 좁혀주는 효용성도 갖고 있다. 중세 전기는 고대보다 나중인데도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고대보다 훨씬 멀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교황 요한네스 10세는 십자군을 제창했다. 중세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었다. 비참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이 암흑시대에 믿고 의지할 것은 신밖에 없다. 요한네스 10세는 이슬람의 반달 깃발에 맞서서 십자기를 내걸었지만, 종교적 열정으로 흥분하지 않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것은 칭찬할 만하다.

가에타, 나폴리, 아말피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와 은밀한 교역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교황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교황은 이들 세 도시에 이슬람과의 통상협정을 파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쨌든 가릴리아노를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에 참가하라고 요구했다.

신중하게 굴다가 자연히 소멸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쇠는 뜨거울 때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교도의 내분. 다툼이 일어나면 북아프리카 각지에서 폭동이 연발하고, 그것이 일단락될 때까지 해적업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이 시기의 내분은 일단락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남부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해적들이 다가올 내습에 대비하여 방위체제를 확립하는 데 그 시간을 썼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목구멍만 넘어가면 뜨거움을 잊는다는 말대로, 기독교 세계는 다시 뿔뿔히 흩어졌다.

교황 요한네스 10세는 이런 시대를 10년이나 더 살다 928년 살해되었다. 교황은 누군가에게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중세(특히 전기)에는 교황 노릇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역사상의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수많은 사건이나 현상이 병행햐여 나아간다. 그것도 모든 사건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동시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은 먼저 일어나고, 어떤 일은 뒤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일직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채로 나간다. 이것이 역사 서술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사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만으로 역사를 서술하면 알기 쉬울지 모르지만 수험용 교과서가 되어버린다.

상상력이 풍부한 세공사라면 작은 다이아몬드나 루비를 주위에 배치하여 진주뿐이었던 목걸이에 변화를 줄 것이다. 그것도 다른 진주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나중에는 아무리 나쁜 사례로 여겨지게 되는 일이라도, 그것이 시작된 애초의 동기는 선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나중에 아무리 좋은 사례로 여기제 되는 일이라도 그것이 시작된 애초의 동기는 악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칭찬할 수는 없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관이 있는 곳이 멀수록 그 훈령을 받아 움직이는 사람의 재량권은 커지게 마련이다.

지배자가 전선에 병력을 투입하고 있는 틈에 후방에서 봉기하는 것은 피지배자들이 늘 쓰는 수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봉기도 거의 없었다. 순교자도 거의 없었다.

이슬람 쪽에서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방식으로 시칠리아를 다스렸다.

이슬람에는 원래 국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모두 포괄하는 이슬람의 집이라는 개념이 있다.

국가 개념이 없기에 곤란한 것이 있는데,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은 국민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국가가 일괄하여 대행하기 위한 비용이니까, 국가의 의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금의 의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시작되어 로마 제국에서 완성된 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국세를 징수할 수 없다.

이래서는 실제적인 면에서 곤란해진다. 국가 개념은 없어도 실제로 인간은 주민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란도 동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사유재산을 보유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자카트라는 이름으로 이슬람교도에게 부과되는 유일한 세금인데, 그 의미는 그리스/로마식 세금과는 다르다.

직역하면 '가난한 사람이 굶어죽는 것을 방치했을 때 유복한 사람이 느끼게 될 회한의 정을 씻기 위해' 지갑끈을 푸는 것이 자카트다. 따라서 부과되었기 때문에 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기부행위가 된다. 기독교 세계의 자선과 마찬가지다.

현대의 기독교 국가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 사업체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빈곤한 이슬람교도를 돕는 원조 단체가 테러리스트 집단과 관계가 있었다 해도 논리적으로는 불평할 수가 없다.

고대에는 넓고 얕게 였던 세제가 중세에는 좁고 깊게로 바뀌었다. 그것은 중세에는 성직자를 비롯한 면세 대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시칠리아의 아랍인들은 참으로 현실적인 지배 방식에 도달했다.

비잔티움제국의 압제를 싫어하여 페르시아로 도망간 그리스인을 통해 알게 된 철학, 천문학, 수학, 기하학, 의학을 모두 시칠리아에 이식했다. 자기 집이라 생각하니, 그 집을 쾌적하게 꾸미는 데 열성을 쏟았다.

아랍 세계의 선물은 아라비아 숫자를 기독교 세계에 도입한 것이다. 아라비아인이 인도에서 배운 이 형식의 숫자는 그들을 통해 지중해 서부에 전해졌고, 지금도 전 세계에 아라비아 숫자라 불리며 계속 사용된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노예로 삼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19세기에 접어든 뒤의 이야기다.

해적을 막아야 할 필요성 때문에 해군력을 갖춘 해양국가로 성장해갔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시칠리아에서 아랍-이슬람의 지배는 200년 동안 계속된 뒤에 끝났다. 1072년 노르만인이 시칠리아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새 지배자가 된 노르만 기사들의 수는 적었다. 수가 적다는 사실이 그들을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기독교도인 노르만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 두에도 시칠리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노르만 지배자들은 이슬람교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요한 원정만 여덟 차례를 헤아리는 십자군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교도를 죽이지 않고 성지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사람이 노르만 왕조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했던 프리드리히 2세다. 이 사람은 노르만과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은 시칠리아였다. 문명사가인 부르크하르트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경계를 초월했다고 평한 인물인데, 중세 후기의 지중해 세계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도 이 사람이 통치하고 있던 시기의 팔레르모에서 점화되었다.

편안히 자고 싶으면, 해군력을 사용해서라도 제해권을 손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쇠퇴기에 접어들면 정확한 정보 수집조차 할 수 없게된다는 것.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지 1천 년째 되는 해에 신의 심판이 내린다는 생각이 있다.

피해자가 중요 인물이면 사건이 되고, 그래야만 비로서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알밤을 쏟아부으며, 내년 봄에 루미(이탈리아 거주 기독교도)들이 사는 곳에 이만한 수의 사라센인이 밀어닥칠 거요.

교황 베네딕토 8세는 안색 하나 변치 않았다. 시중에게 귀엣말을 하고, 그 시종이 가져온 커다란 자루에 든 것을 사절 앞에 쏟아놓으며 말했다. 자루에는 수많은 밀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네 주인에게 전해라. 이만한 수의 루미가 무세토와 그 부하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중세에는 교황도 배짱이 없이는 해낼 수 없었다.

지배권은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 주어야만 비로소 유지할 수 있다.

원한을 계속 품고 있으면 과거에만 생각이 쏠리기 쉬워서, 현재나 미래의 가능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런 종류의 원한에 방해받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에는 카이사르의 관용이라 불린 관용에 입각한 통치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도가 왕으로서 시칠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슬람교도는 냉대를 받기보다 오히려 중용되고 있었다.

왕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하루에 다섯 번인 예배시각이 오면 왕에게 엉덩이를 돌리고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래서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도 기독교도를 잘못된 신앙의 소유자로 단정하고 성전에 나설 대의명분을 찾지 못하지는 않았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도 완고한데다 교황권을 남용했기 때문에 평판 좋은 성직자는 아니었다. 카노사의 굴욕은 중세 유럽을 뒤흔든 교황과 황제의 투쟁을 상징하는 사건인데, 그 사건의 한쪽 주인공이 바로 그레고리우스 7세다. 교황은 자기한테 반대한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한다. 파문이 세속 군주에 대한 강력한 무기일 수 있는 것은 파문당한 군주에게 기독교도인 신하들은 복종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지에 빠진 하인리하는 눈이 내리 퍼붓는 카노사 성 밖에 사흘 동안이나 서 있었고, 그제서야 교황은 파문을 풀어주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역사 교과서에는 교황의 권력을 최고로 발휘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래서 성인의 반열에도 올랐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파문이 해제되지마자 공세로 전환한 하인리히에게 계속 쫓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탄젤로 성으로 도마쳐 들어간 것도 황제 휘하의 독일 병사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이인데도 내분이 끊이지 않은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마찬가지였다.

연속성은 힘이다.

정직하기만 해서는 외교를 할 수 없다.

자국과 직접 관계없는 일에 관연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인간은 제 가슴에 강하게 호소하지 않는 일에는 동정하기는 할망정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결국 교황의 호소에 응한 것은 자신들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나라였다.

이슬람의 반격에 지도자 역할을 맡은 것은 이슬람과 교역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을 더 잘 알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해양도시국가였다.

통상관계는 어느 한쪽이 자신들에게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면 다소 충돌이 있어도 계속 진행되는 법이다.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막민족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그것밖에는 생계수단이 없는 그들 사회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아말피, 피사, 제노바는 대두하고 쇠퇴해간 순서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나라가 베네치아였던 것은 베네치아가 다른 어느 해양도시국가보다도 충실하고 믿을 만한 하급 선원을 항상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조직 만들기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세에 노예를 갤리선의 노잡이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 해적질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 마찬가지다.

베네치아가 특별히 이기주의자였기 때문은 아니다. 이슬람 세계를 고역하고 거기에 붙잡혀 있던 기독교도들을 구출하고 해적질은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수장한테서 받아낸 정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베네치아인의 현실주의가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해적은 만만찮은 상대는 공격하지 않는다.(자기들보다 약한 자만 공격한다)

1차 십자군의 성지 탈환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세기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들의 해상 보급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상 전력은 프랑스와 독일, 영국이 주로 담당했지만, 이탈리아 해상 전력의 지원은 지원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설 만큼 중요했다.

사회적 지위는 높았지만, 계약이란 이쪽이 지키지 않으면 상대도 지키지 않는다는 초보적인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십자군은 종교적 열정의 그늘에 숨어 있던 영토 확장의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

1212년 4차 십자군과는 다른 이유로 십자군의 수치로 여겨지는 소년 십자군이 성지로 떠나려 했다. 광신적인 설교자의 선동에 넘어간 소년 소녀들이 유럽 전역에서 마르세유에 모였지만, 악질적인 선주에게 속아 북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도중에 침몰한 배와 운명을 같이한 것이다.

5차 십자군은 독일인과 노르만의 피를 이어받은 시칠리아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2세가 몇 번이나 연기한 끝에 1227년 실현된다.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도가 공존한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슬람 세계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었다.

이슬람과 합의하여 기독교도들의 자유로운 성지 순례는 확보되었지만, 이교도인 이슬람교도를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 적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이 십자군은 온갖 비난을 받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 그리스도의 적이라 불린다. 이 협정은 10년간 지속된다.

십자군은 신이 그것을 바라고 계신다는 외침으로 시작되어 끝났다.

인간이란 좋든 나쁘든 현실적인 것보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것에 더 가슴이 뜨거워지는 법이다. 중세인의 신앙심이 강했기 때문에 십자군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신앙심이 향하는 곳은 성지여야 했다. 성지 탈환을 목표로 내 걸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 시간을 끌어들였고, 대중운동이 되었다.

납치당한 불행한 사람을 탈환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면 일시적으로 십자군이 되겠지만, 연속적인 십자군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자신감은 배의 수가 아니라, 배의 조종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인은 이 능력이 완전히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해양도시국가가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조인을 거부한 것은 십자군 정신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리품 분배에서 혼자만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본심을 드러내면 외교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정직하기만 해서는 외교를 할 수 없다.

경제는 거기에 종사하는 개인의 재량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베네치아. 늦게 시작해도 철저하게 하는 나라.

중국인이 발명해놓고도 잊고 있었던 나침반을 아랍 상인을 통해 중근동에 전해진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에.

나침반을 소형으로 만들고 다시 휴대용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아말피의 상인.

종이, 유리, 인쇄술도 베네치아인이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베네치아에서 기업화 되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지 20년도 지나기 전에 베네치아인은 출판업에 나선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베네치아는 유럽 제일의 출판왕국이 된다.

로마숫자에 비해 아라비아숫자는 쓸 때 잘못을 저지를 위험이 적다. 그리고 '0'이라는 개념도 있다. 이것을 유럽에 들여온 것은 피사의 교역상인이지만, 이 편리한 숫자는 당장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고 베네치아에서는 아이들한테 이것을 가르치는 학교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아라비아 숫자가 보급되자 피아세어 피렌체로 가는 길에 있는 프라토라는 도시의 상인이 부기도 발명했다. 그러자 당장 여기에 주목한 베네치아인은 그것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복식부기로 완성시키기까지 했다.

복식부기가 된 뒤 비로소 많은 지역에 퍼져 있는 판매망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항해에는 해도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아무도 의심치 않는 사실이지만, 이것을 발명한 사람도 이탈리아인은 아니다. 하지만 더 정확하고 더 세밀하고 종이 한 장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은 해도로 발전시킨 것은 피사의 선원들이었다.

중세 말기에서 르네상스, 근세에 접어드는 동안 선원들은 베네치아제 해도가 없으면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다. 전체와 함께 그 일부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지도와 해도가 최상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해상법은 먼 훗날까지 세계 각국 해상법의 본보기가 된만큼, 미세한 부분까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가장 완벽한 것은 베네치아공화국의 해상법인데, 선박의 크기에서부터 화물의 품목과 중량, 운송료, 정박료는 물론 배와 항해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베네치아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정부의 규제가 너무 심하지 않나 하고 놀랄 것이다.

선주, 선장, 상급선원에서 노잡이에 이르기까지 권리와 의무가 명기되어 있는 것은 물론, 대우나 그밖의 이유로 불만이 있더라도 항해 중에 파업을 하는 것은 직무유기로 간주하여 엄금하지만, 항해가 끝난 뒤 해상재판소에 제소할 권리는 인정되어 있다.

이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법기관인 해상재판소는 항해 경험이 풍부한 제3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 시민들 가운데 바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국가의 키를 쥐고 있는 원로원 의원도 젊은 시절에는 상선의 키를 잡은 선원이었다.

해상법이 이렇게 정비되면, 당연한 귀결로 해상보험도 정비된다. 선원을 보호하고 싶으면 그 의무를 지는 선주를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교역하는 북 아프리카와는 무역 불균형이 생긴다.

금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은이나 구리에 비해 보존도가 훨씬 우수하기 때문이다.

금화는 값이 비싸서 시장에서 평소에 쓰이는 통화는 아니지만, 금화를 발행하는 나라의 경제력에 대한 신용도를 보여주는 척도 구실은 한다.

금은 소량이라면 어디서나 캘 수 있지만, 대량의 금은 낙타 등에 실려 사하라 사막을 거너너오는 아프리카의 금밖에 없었다.

중세는 그 아프리카산 금이 유럽에 들어오지 않게 된 시대였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권에 속하게 된 이후 유럽 통화는 모두 은화뿐이다.

샤를마뉴는 유럽을 널리 영유하고, 신성로마제국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위대한 샤를이라 불렸지만, 그의 이름으로 주조된 통화는 은화였다. 로마 교황청에서 발행한 통화도 은화다.

이 시대에 신용도가 높은 금화는 이슬람 세계가 발행하는 디나르 금화밖에 없다. 우상을 싫어하는 이슬람이 금화 표면에 새긴 것은 아랍 문자로 쓴 코란 구절뿐이다. 그 유럽에 13세기를 경계로 금화가 들어온 것이다.

베네치아의 '두카토'는 순도가 0.997인 24금이다. 이 무게와 순도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공화국을 명망시킨 1797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신용도가 높고 항상성도 갖추고 있어서 경제 진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금화는 역시 경제 입국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발행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묘지에서 발굴된 인골을 조사해보면 중세 전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체격이 갑자기 왜소해졌다가 중세 후기에 접어든 뒤에 고대 로마 시대의 수준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금화가 돌아온 시대와 겹치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지력 --> 경제력 --> 생활수준)

통화란 그것만으로 고립하여 존재하는 사료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여러 사실이나 현상과 결부되어 있는 사료다. 따라서 통화는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사회의 무역불균형을 시정한 것은 사하라의 금이었다.

팍스는 타국의 군대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로마인은 생각했다. 도적, 산적, 해적 같은 인간 사회의 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해주지 않으면 사회의 평화도 개인의 안전도 달성할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물산이 자유롭게 유통되어야만 제국 전체의 경제력도 향상되고 생활수준도 높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팍스(평화)였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해적업이 이미 사회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해적질을 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으니까 폐업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어디를 누구를 표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있었다.

계몽적인 전제군주는 일반 서민의 안전에도 신경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영주들에게 농민이나 어민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말이나 소보다도 못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위도 없고 몸값도 치를 수 없는 일반 서민의 참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혹한 운명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은 역시 명기해둘 필요가 있다. 중세 기독교의 영향력(정신적 구속력)은 르네상스나 계몽주의를 거쳐온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했다.

일신교에서 개종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이슬람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배신자로 여겨졌지만, 기독교 세계에서는 배신자로 여겨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1232년 로마교황청에 종교재판소가 설립된다. 이것은 신자의 신앙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가름하는 곳이고, 이교도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것은 나중에 에스파냐와 북유럽에서 불을 뿜게 된 이단재판과 마녀재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숙명이었다.

우두머리의 지속적인 지원약속은 강력한 후원자를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도사 마타가 생각하고 실행한 전략-우선 보여주고, 자금을 모으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전략-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 역사가 십자군으로 대표되었던 이 시대, 기독교도 구출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 활동도 궤도에 올랐다. 마타의 전술은 교묘했다. 왕이나 유력한 군주의 원조에 의지할 뿐 아니라, '풀뿌리'라고 해도 좋은 원조도 가볍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늘이 부러져 쓸모가 없어진 나침반, 휴대용이라도 지름이 10센티미터는 되는 나침반을 교회마다 하나씩 놓아두게 했다. 미사가 끝난 뒤 신자들은 그 나침반 안에 은화나 동전을 넣는다. 금세 사라지기 쉬운 동정심을 계속 상기시기키 위한 방책이기도 했다.

영국인이 원리 원칙을 좋아하는 것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향인 모양이지만...

부가가치가 붙으면 상품가격도 비싸지는 것은 시장의 논리지만, 노예를 팔았을 때도 그 가격의 1/5가 수장의 주머니에 들어오기 때문에 기독교도 노예를 되살 때도 그 값의 1/5가 수장에게 들어오도록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이슬람 세계와 교역할 때 철칙으로 삼은 것이 돈은 정확하게 빨리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의술이 앞선 지방은 뜻밖에도 사라센 해적에게 다른 어디보다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던 남이탈리아였다.

의학은 사이언스다. 종교의 영향이 지나치게 강하면 본래의 형태로 성장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은 내부의 후원이 아무리 강력해도 외부 이질분자의 자극이 없는 곳에서는 생겨나지 않았다.

살레르노 의학교도 시칠리아-아랍 양식이 꽃을 피운 지중해 세계의 기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각지에서 싹튼 이런 기적이 조금씩 모여 급류로 변해간 것이 중세의 막을 내리게 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이 아니었을까.

역사는 일렬횡대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플러스에는 반드시 마이너스도 따라다닌다.

동시에 기독교도를 납치하면 반드시 돈을 벌 수 있고 노예로 부릴 수 없는 사람도 돈벌이가 된다는 생각을 북아프라카 해적에게 심어주었다.

그 결과 해적들의 습격은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었다. 서유럽의 해군력이 이슬람의 해군력보다 우세해졌는데도 해적의 출물이 끊이지 않았던 요인은 여기에 있었다. 빼앗을 만한 물건이 없어도 상관없다. 사람을 납치해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돈벌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순은 선의에서 출발한 모든 활동에 따라다니는 요소다. 따라서 문제는 그런 모순이 있어도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아닌가 뿐이다.

이슬람교도는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이었지만, 동시대의 기독교도도 오른손에 칼, 왼손엔 성경이었다.

노예를 감시하는 무어인들은 이유도 없어-아니, 그들에게는 '신앙심도 없는 개자식'이라는 훌륭한 이유가 있었지만-툭하면 기독교도를 후려갈기고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이슬람 해적은 공해상에서 약탈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 것 같다.

놀라스코는 한눈에 테레사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귀족의 딸로 왕비가 될 여자라는 것을 알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도 때로는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체 눈감아준다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1270년 프랑스 왕 루이가 이끈 7차 십자군의 목적지가 중근동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튀니스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는데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은 여전히 기독교도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슬람교도는 타고난 이슬람교도에게 배교자라고 불리면서 열등감을 버리지 못했고, 이슬람교도보다 훨씬 가혹하게 기독교도를 다루면 개종자의 불명예를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때의 수장도 그런 사람이어서, 허가를 내주기는 했지만, 그 허가를 취소할 이유도 찾고 있었다.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 힘을 준 것이다.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 비틀거리면서라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드로는 이 유대교도에게 참을성있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려주었다. 이스마일은 완전히 감복하여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스마일의 집에서 일하고 있던 무어인이 이미 모든 것을 수장에게 일러바쳤다. 이슬람 땅에서는 설령 상대가 유대교도라 해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수장은 금지령을 어긴 죄로 기사에게 화형을 선고했다.

막상 출항할 때가 되자 귀향한 뒤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갈 일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두 기사도 여자를 놓아둔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북아프리카에서 기독교도를 구출하는 활동에서 여자를 데리고 돌아가는 데 성공한 예는 별로 없었다.

구출 활동에 익숙해진 항구도시들의 수장 중에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많았다.

수도회나 기사단의 활동에 따라다니고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표면화한 해이기도 했다.

해적은 몸값 벌이라는 업종의 효용성에 눈을 떠서 수비가 허술한 지역을 골라 해적질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 몸값을 내고 되산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의 적인 이슬람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붓을 휘두르고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 도전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시대에도 지중해를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건너편에는 목욕장이 있고, 쇠사슬에 묶여 강제노동에 끌려 나가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뜻이다.

기사단의 마지막 구출행은 서기 1779년에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계몽주의 시대가 되었어도 구출되어야 할 기독교도 노예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유명한 인사는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다. 이 사람은 서기 1571년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을 쓸 수 없게되었지만, 고향인 에스파냐로 돌아가는 길에 해적에게 붙잡혀 알제의 목욕장에서 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아직 스물여덟 살이었던 세르반테스는 한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쇠사슬로 묶인 요주의 죄수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자유를 되찿을 수 있었던 것은 구출수도회가 되산 노예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그 후에 씌어졌으니까, 세계문학사를 장식하는 세르반테스도 당시에는 무명의 가련한 사람에 불과했다. 즉, 수도회와 기사단이 구출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서민이었다.

로마식 목욕장은 모든 면에서 조직이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시설이다.

오늘날 지중해에 해적이 출몰하지 않는다.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은 뒤부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인이 인권선언에 위배되는 해적업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외치고 알제리를 정복한 것은 아니다. 자국의 식민지로 삼기 위해 정복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북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뒤에야 비로소 지중해가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