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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힘든 시기를 극복해낸 적이 있다. 같은 사람들끼리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고통, 번민의 시간에 사기를 읽으며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책꽃이를 정리하다 1997년 발행된 '한권으로 보는 사기'를 보았다. 한권으로 보는 사기라, 자세한 내용보다는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정리가 되어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며, 그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얻었다.

반복해서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은 과거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 그럴테다. 한 고조 유방이 중원을 차지한 후 흉노와의 문제가 그랬다. 흉노와의 문제에서 이릉 장군의 군대가 전멸했고, 그 문제에서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사기가 탄생하게 된다. 흉노와의 문제에서 장건은 서역을 원정하게 되고, 그것이 비단길, 초원길의 시작이 되며, 그 길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교류하게 된다. 무엇이든 자신이 아는 만큼, 관심을 가지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한 분야의 책을 몰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을 펼쳤다. 만화로 구성되어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사람은 활자로 인쇄된 책을 보면 좋겠지만, 당/송까지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한 번 훓어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빠르게 읽다보면 무언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 무능하거나 탐욕이 많은 혹은 잔인한 군주는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내용정리=====

반고 전설. 1만 8천년을 잠자다, 기지개를 켜고 우주와 천지를 창조한 반고. 우주의 질서를 만든 반고는 쓰러져서도 그의 입김으로 하늘의 구름을 만들고, 안간힘 써서 지른 고함은 뇌성벽력, 번갯부롤 되었다.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과 별로 변화되었다. 몸 속의 피는 큰 바다의 넓은 호수와 물, 뼈다귀는 산맥, 머리털, 겨드랑이 털은 삼림, 수목, 화초가 되었다. 그의 땀과 눈물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으니, 아침 이슬이라 한다.

여와 전설. 반고가 천지를 개벽시킨 후 여와라는 신이 땅에 내려와 누런 진흙을 한 덩어리 밎어 애를 만든다. 한 가닥 칡넝쿨을 잘라 그것으로 진흙을 휘갈겨대니 진흙 방울이 천지 사방으로 튀어.. 두루두루 퍼져 나간 그것이 죄다 인간이 되었다.

어느 날 물의 신 공공과 불의 신 축융 간에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는데, 공공인 제 성질을 못 참아 부주산을 박치기 했다. 그 충격으로 땅덩이가 왈칵 기울어지고 물이 들끓어 홍수가 나고 덩달아 흥분한 괴수들이 날뛰며 사람을 해쳤다.

여와는 물을 퍼내고 괴수를 퇴치시키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근본 대책으로 고장난 하늘 구멍에 오색 돌을 갈아 메우고, 기울어진 땅을 바로잡기 위해 바닷가로 가더니, 거북이를 불러내어 거북이의 네 다리를 몽땅 얻어, 그것으로 사방의 땅을 고여 바로 잡아놨다.

그러나 좀 서두르는 바람에 깔끔하게 고치지는 못했는지, 지금도 중국의 서북쪽은 높고 동남쪽은 우묵하게 낮게 되었다고.

사마천은 반고, 여와, 신예, 상아.. 그들은 가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스토리다. 고로 역사는 황제부터 기술해야 마땅하다. 흔히 말하는 삼황오제에서 삼황 부분은 잘라버리고 오제로부터 쓴다.

사마천은 왜 사기를 썼을까. 사마천의 집안은 대대로 태사령을 지낸 가문. 천문, 역법, 역사 등의 기록과 저술을 맡은 관직이다. 사마천은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많은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보았다. 36세 되던 해 부친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며, 유언을 남긴다. 역사를 기록해서 정리하는 대 사업을.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사마천은 더 많은 역사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해서 견문을 넓힌다. 태사령이 되어 정부가 보관하는 자료를 읽고, 한 무제 태초(기원전 141년)에 사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임금의 노여움을 사 사형수의 신세가 된다. 아버님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궁형을 선택한다. 당시 궁형으로 목숨을 부지한 자는 사람 축에 끼지 못했다. 상장군의 아들 진평이 사기꾼 패거리에 걸려 보증을 잘못 섰다가 죄인으로 몰린 일이 있었다. 진평은 스스로 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형을 거절하고 궁형을 자청했다. 그 후로 어디를 가나 진평은 사람들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받았다. 당대의 박사였던 간서 선생도 사형 집행 전 궁형으로 살아나는데, 구름처럼 몰려와 제자 되기를 간청하던 무리들이 하루 아침에 안개 걷히듯 사라져가고, 금값보다 무거웠던 그분의 저서는 개도 아니 물어가고.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반면 궁형을 거절하고 몸이 찢겨 죽은 살인법은 죽어서 때깔을 빛내고 있었다.

사마천은 고민한다. 깨끗이 죽자니 아버님의 유언이 걸리고 살아서 글을 쓰자니 궁형이 문제로다. 그래서 그 동안 배우고 외웠던 역사의 줄거리와 발로 뛰며 보고 알았던 현장들.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문장들. 결국 궁형을 택한다. 그리고 130권의 역사책을 쓰니, 바로 史記.

수인씨.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됨으로 인류 역사에 변혁이 생긴다.

복희씨. 사람 머리에 뱀의 몸. 목축과 사냥 기술을 발달시켜 준 것이 복희씨.

신농씨. 소 머리에 사람의 몸. 농경을 가르쳐 줌.

황제 헌원씨. 총명한 사람. 창과 방패를 말병. 작전술, 용병술을 연구해 가르친다. 이곳저곳에서 잦은 싸움을 벌이던 제후들이 차츰 헌원씨 밑으로 결속된다. 강한 세력은 다른 잔챙이 부스러기를 흡수하게 마련이다. 헌원은 왕이 되면서 화제라 일컬어진다. 황하의 누른빛 닮은 지도자란 뜻이다.

황제는 수상 교통을 일으키고, 옷을 만들고 누에치기를 가르쳤다. 십간 십이지를 제정, 역법을 만들고 수레 바퀴를 만든다. 황하 강변에서는 농사를 짓고, 양자강을 개발해 생활의 터전을 잡는다.

어질기는 하늘 같았고, 지혜는 신과 같았으며, 교만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태양처럼 따랐다. 요 임금은 순이라는 사람을 눈여겨보며 됨됨이를 살핀다.

순은 심성이 너무 착해 오히려 바보처럼 보이던 사람. 요 임근은 그런 순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다. 후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때, 너무 궁색해도 위신상 문제가 되므로 많은 보물을 미리미리 하사해줬다.

계모와 배다른 동생이 그 재산을 탐내어 순의 목숨을 노린다. 초가 지붕을 수리하라 하고선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지른다. '아차차. 어머니와 동생이 우연히 불을 질렀나?' 마침 우연히 가지고 있던 삿갓이 두 개 있으니, 우연히 낙하산으로 이용해서 살았습니다. '우연히 좋아한다'

우물 밑에 내려가 청소를 해라. 예. 공해에 찌들어서 물을 마실 수가 있어야지. 깨끗이 만들겠습니다. 옆의 우물과 통하고 있구만. 계모와 배다른 동생은 돌을 던져넣고 우물을 메운다. 이렇듯 노골적인 살인 행위에도 순은 순하기만 한 순디기였다.

요 임금은 대단히 만족한다. 선양의 의식으로 순이 천자가 된다.

이떄처럼 살기 좋은 세상은 없었다고 한다. 길 위에 현금 다발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 없고, 큰 소리치며 더불어 다투는 이 없다. 단 한 가지 근심이 있으니, 황하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그것이라.

그래서 다음 왕위는 치수를 잘하는 사람에게 간다.

우라는 사람은 황하를 다스리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황하의 치수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백성의 생활을 돕고자 했다. 집에도 들르지 않고 치수에 열중한다. 산을 깎고 제방을 막아 드디어 일을 성취시켜 모든 이에게 추앙을 받아 순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너무 고된 일을 해서 그랬던지 얼마 가지 않고 죽고 만다.

우왕은 죽으면서 백익에게 하나라 왕위를 물려줬는데, 백익은 우왕의 3년상을 마치고는 우왕의 아들 계에게 제위를 물려준 뒤, 기산에 숨었다는 설과, 계가 백익을 살해하고 스스로 통치권을 계승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거니와.

과정은 어찌 됐든지 간에 그때부터 자식이 왕위를 물려받는 제도가 생겼으니, 이를 세습이라 한다.

그후로는 세습제는 전통적으로 이어진다. 잘났거나 바보이거나 왕위가 이어진다.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는 4백여 년간 지속되다가 17대 걸왕 대에 이르러 멸망하게 되는데, 걸왕은 독재와 폭정을 쓰고, 향락을 일삼으며 전리품으로 얻었던 미녀 말희와의 지나친 애정 행각으로 나라를 망치게 된다.

하나라 말기에 궁전에 용이 나타난다. 용은 이상한 침을 줄줄 흘리더니 사라져버리고, 왕은 그 용의 침을 단단한 상자에 담아 절대로 열지 말고 자손 대대로 물려주라고 전한다. 상자는 뒤를 이은 은나라 5백 년, 다시 주나라 10대 여왕 330년. 도합 8백여 년 동안 뚜껑이 닫힌 채로 잊혀지게 된다.

갑골문자.

은나라는 수도 이름을 따라 상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은나라는 전설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상한 인연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용골이 있었는데, 거기엔 이상한 문자가 세겨져 있었다. 은나라의 역사가 적힌 갑골문자였던 것. 대대적 발굴 작업이 실시되고 은나라는 3천 년 전 496년간, 1대 탕왕으로부터 31대 주왕까지 이어졌던 실존국가로 밝혀졌다.

마지막 임금 주는 전형적인 폭군이라.. 사마천은 이렇게 적고 있다. '주왕은 두뇌 뛰어나고, 웅변의 대가다. 그 신하들이 어쭙잖은 이론을 내세웠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밝았으며, 재능과 체력이 남달랐다. 맹수를 맨 주먹으로 능히 잡았고, 용기 또한 대단했다. 다만 그 자질이 덕을 쌓는 데 힘쓰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어서 화를 자초하고 있었더니라'

은나라 서쪽에 자리한 제후 주. 당시 훌륭한 군주 창이 다스리며, 인근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되고 있었는데, 그는 근심이 많았다.

'천자가 너무 포악해. 인과 덕이 없고 백성 사랑할 줄 몰라'

천자는 두뇌가 명석해 하찮은 것들도 다 기억한다. 정확한 기억으로 주위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한다. 조세를 높이고 세금을 긁어 들인다. 제후들과 백성들이 죽을 맛이다. 감시원을 쫙 깔아서 불평 분자를 사정없이 잡아들여 죽였다.

주나라 창은 늘 걱정이 많던 터이다. 문왕의 셋째아들 단. 생각이 깊고도 깊은 사람이다.

반드시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대개의 경우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미모는 유전으로 자식에게 이어진다. 주나라 단이 데려온 여식도 미녀 엄마를 빼어 닮았다.

서너 살 때에는 보듬어주고 싶도록 귀엽더니, 7~8세 때에는 깨물어주고 싶도록 깜찍하고, 열 살쯤 되었을 때에는 그 뭐랄까..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한숨이 나오도록 형용할 수도 없는 재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단은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고귀한 사람을 만날 운명이다. 행동거지를 천박하게 가지지 마라. 웃을 때에는 작은 소리로. 걸음걸이. 음식 먹는 법. 대화하는 법. 가만히 한숨 토하는 교태. 오만한 태도와 귀인의 기품.

그녀의 이름은 달기.

단은 또 많은 첩자를 풀어 정보를 수집한다. 폭군 주왕에 관한 정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기쁠 때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역겨움은 무엇으로 푸는가?

특히 여인과 관계된 일거수일투족, 그런 것들을 알아내어, 그것을 달기에게 가르쳐 그녀의 몸 속에 배어들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

고고하고 표독하며, 뜨거운 동시에 얼음과 같다. 조용한 가운데 격동이 있으며, 아름다움 속에 잔학함이 깃들었다. 웃음으로 눈물을 떨구고, 애처로워서 사람을 죽인다. 달기는 그런 여인으로 성장했으니, 바로 주와는 완벽한 한 쌍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임무란 모르고 행하는 것이 쉬운 법입니다.

백이 숙제

작은 나라. 고죽국. 두 형도 쓸만하지만 막내가 제일 똑똑해. 그러던 고죽국의 왕이 죽었다. 나라는 의당 맏아들이 계승해야 한다. 그런데 맏아들 백이. '난 싫다' 선친께서는 막내아우 숙제에게 왕위를 주고 싶어하셨다. '형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나라를 맡아 이끌어 주십시오. 그건 내가 아니라 네가 할 일이다'

형과 막내는 왕좌를 양보하며 끝없이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이던가 맏형 백이는 보따리 싸들고 가출한다. 형이 떠난 것을 알자, 막내 숙제도 집을 나선다. 그래서 고죽국은 가운데 아들이 후사를 맡게 되었다.

달기에게 세뇌 교육을 시켜 보내고 단은 쉬지 않고 일한다. 그녀를 잃고 난 텅 빈 가슴을 메우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이번 계책은 어떤 것이냐? 유소씨가 은 주왕에게 바칠 올해의 세금을 우리가 대신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왜지?

물론 거짓말입니다.

.....

요소씨가 폭군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

작전은 주효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결코 잊지 않는 은 주왕의 누되 아니던가.

군사 몇만 명쯤 내보내 짓밟기란, 주왕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다. 또, 능히 그런 일을 해버린다는 것을 전례로 보아 알 수 있다.

유소씨의 나라에서는 온 백성이 전전긍긍 근심에 싸였는데, 주의 단이 기다리던 일이 바로 그것이라.

천자는 미녀를 중하게 여기는 심성이십니다. 귀국의 미녀 달기 한 명이면 능히 천만금의 조공으로도 얻지 못하는 기쁨을 천자께 드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달기는 그렇게 은의 주왕 곁으로 가게 된다.

달기가 태어나 성숙한 처녀로 익을 동안에 은 주왕의 포악성은 그만큼 더 짙어지고 여색을 탐하는 버릇은 나이와 더불어 깊은 골이 파이고 있었다.

나만큼 머리 좋은 자는 한 놈도 없다. 내 완력을 따르는 놈도 여태껏 못봤다. 도대체 나와 대등한 인간이 없다. 나는 외로운 인간인가?

그럴 때 달기와 만난다.

유소씨로부터 온 선물로 달기 등장.

유소씨, 심한 기근으로 조공을 올리지 못하더니, 스스로 큰 죄를 깨달아 대신 이 여인으로 조공을 삼아...

예쁘다. 데리고 있는 어느 애보다도 아름답구나

.....

몇 살이냐?

.....

여느 년들처럼 겁에 질려서 대답도 못하는군.

나이보다 먼저 이름을 물어주옵소서.

당돌한걸?

그래, 이름은?

달기입니다. 똑똑 떨어지는 물투를 은 주왕은 좋아했다. 달기의 말이 그랬다.

가무를 할 줄 아느냐?

춤을 잘 추고 비파를 압니다.

내숭을 떨지 않아 마음에 든다. 그럼, 노래도 부를 줄 아느냐?

....

노래를 부를 줄 아느냐고 물었다.

못 부릅니다.

솔직하군. 그럼 다른 무엇을 잘 하느냐? 좀 당찬 대답이 나와 주면 귀엽겠다.

당대에 적수가 없는 영웅 호걸을 곁에서 모시며 그분의 짝이 되는 일이라면 잘할 수 있습니다.

은 주왕은 녹아나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던 여자다. 저것이 진짜 여자야. 잠잘 때의 그것은 어떠할꼬? 그것이 관건이라..

그날 밤 왕의 침전에서

은 주왕은 탄복, 감탄 그리고 격정을 느낀다.

다른 무엇보다도 너는 이것이 우수하구나. 너 같은 애를 어째서 지금에야 만났던고. 달기야. 달기야.

달기를 만난 은 주왕은 좀더 잔인한 행동을 즐기는 버릇이 붙는다.

저분은 눈초리가 싫어요.

그렇다. 나도 그렇다.

진상위의 눈을 제거하라.

달기는 미소짓고, 그래서 은 주왕은 유쾌해진다.

네가 낳은 아이도 너처럼 고울테지?

저는 생산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왜냐?

대왕님을 변함없이 모시기 위해서지요.

.....

임신도 하지 않고 해산도 하지 않은 몸 그대로를 언제나 드리고 싶습니다.

좋구나. 아주 좋다.

보십시오. 애를 가진 여인입니다.

저 몸은 그 속의 생김새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조개보자꾸나.

이제 궁금증이 풀렸느냐?

잘 봤습니다.

죽이 맞는 두 사람은 군주의 막강한 힘으로 밀어붙여 별스러운 것을 생각해내어서 그것을 실행한다.

酒池肉林. 술의 연못과 고기의 숲이다.

많은 남녀를 벌거벗겨 그곳에 풀언호고는 구경하며 좋아한다.

언젠가 야외에 나갔다 개천을 건너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물을 건너지 못해서 그런답니다.

물은 얕은데요?

예. 하지만, 늙은이의 다리 뼈에는 골수가 부족해 보통 물도 얼음처럼 시리답니다.

뼛속의 골수가 뭘까?

보자.

노인. 임금께 보여 드리시오.

(노인의 다리를 자리고 나서) 별것 아니로군. 네. 길을 떠난다.

달기는 이상한 것을 만들게 한다. 구리가 3천 근.

포락지형. 쇠기름을 발라 미끈거리는 구리 기둥에 밑에서는 석탄불을 지폈다.

사형수들 오너라. 기둥을 건너가면 죄를 사해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달기의 장난에 말려들어 그 몸을 불 속에서 태워버렸던가..

그런 짓거리들이 은 주왕의 눈에는 다 귀엽게 보이고, 그래서 온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왕에 대한 증오심이 끓기 시작한다.

은 주왕의 악정을 보다 못한 삼공 구후가 나선다.

아니 되십니다.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있습니다.

이봐. 이봐. 그 바보. 네깐 놈 대가리의 잔꾀보다는 내 두뇌가 월등 우수하다. 나는 너를 앞질러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단 말이다.

구주의 계속되는 충언은 은 주왕의 짜증을 유발시키는 것이어서 가차없이 사형 명령이 떨어진다.

또 한 사람의 삼공인 악후가 뛰어들어 말렸다.

그놈들 참으로 시끄럽구나. 두 개구리 다 죽여라.

무슨 짓인가? 두 충신의 살코기가 젓으로 담가져서 여러 제후들에게 하사품으로 전해진다.

임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인가?

공포심을 줘서 딴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일 것이다. 까불지들 말라는 공갈이겠지.

인육젓은 주나라에도 왔다. 그것을 받아든 창. 한없이 슬픈 얼굴이 되어 말문을 열지 못한다.

죽은 구후와 악후는 창의 붕우였는데, 이제 젓갈이 되어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다.

승후호라는 스파이가 그 자리에 있다가 은 주왕에게 고자질을 한다.

주의 서백 창이란 놈이 감히 내 처사에 불만이 있더란 말이지?

그 당장 유리라는 곳에 감금시키고 만다.

너무했다. 주나라 서백마저 벌을 주다니. 사형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네.

주나라 창에게는 한없는 동정이 쏠리고, 그와 비례한 미움이 은 주왕에게 간다.

유리에 갇힌 창은 행동거지를 극히 조심한다. 반항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미친 자의 노여움을 사게 되니까.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서 주나라를 지키고, 다시 천하를 바로잡아야 한다. 조용히 앉아 공부만 했다.

주나라 서백은 과연 성인이시다. 갇힌 몸으로도 학문에 정진하신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본받을 분이시다.

뭐야? 서백이 성인이라고?

은 주왕의 비위를 건드리고 말았다. 성인은 제 자식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더라. 어디 정말 성인인지 알아보리라.

인질이 되어 있던 맏아들 백읍고가 살해되어, 한 그릇의 곰탕이 만들어진다.

임금께서 특별히 내려주신 음식이다. 고맙게 받아 먹으라.

음식을 하사할 이유가 없다. 창은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쌍한 녀석)

그릇을 받아 큰절을 올린 후, 달게 마셔버렸다.

거 봐라. 성인은 무슨 놈의 성인. 제 새끼의 살을 좋아라 먹는 미물 아니냐.

.....

주나라의 번영을 위해, 아니 천하의 안녕을 위해.

창은 자기 아들의 고기를 마셔버린 것일 게다.

제왕세기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강태공

강상은 염제의 후손인데, 지금은 집안이 몰락해서 평민이 되었다. 동쪽 바닷가에 살며, 집은 가난하다.

아내에게 면박을 받으면서도 노상 공부만 했다. 머리도 썩 좋아서 한 번 읽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다.

공부만하니, 아내의 불만은 쌓여가고, 살림은 찌들고.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공부를 한다.

아하. 그렇구나.

이 문장의 숨은 뜻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구나. 그래.

수수께끼로 묻혔던 세 권의 책이 스스르 풀려버린다.

세월은 좀더 흐르고, 가난도 똑같이 깊어서 마누라의 독기만이 잔뜩 익어간다.

아내는 떠나가고, 홀아비가 된 강상도 집을 나섰다.

주나라 신하들은 유리에 갇힌 서백 창을 구출하기 위해 국비를 아끼지 않았다.

견융국의 좋은 말과 유신에서 허리 잘룩하고 둔부 넉넉한 여자.

욕심 많고, 색을 밝히는 성미니까 효과가 있겠지.

미리 아랫것들로부터 뇌물로 삶아서 드디어 은 주왕의 회를 동하게 했다.

주왕은 달기와 더불어 좀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무를 만들고 있던 중이다.

서백 창은 유리에서 석방되어 은의 대궐이 있는 조가로 왔다.

특별히 용서하니, 네 고장으로 내려가 근신하라.

서백 창은 거기서 일생 일대의 승부수를 던진다.

대왕이시여. 신이 소유하고 있는 기름진 낙서의 땅을 모두 대왕께 드리겠나이다.

웬 떡?

제후들은 놀란다. 그것은 중원 첫째가는 알토란 땅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간청이 있사옵니다.

말하라.

포락의 형이라는 것을 폐지시켜 주십시오.

은 주왕의 두뇌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이놈 봐라. 자기 옥토를 주면서 구리 기둥 형벌을 없애달라고? 모든 제후들에게 성인 군자으 그릇을 보이기 위함일게다.

놈은 지금 인기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낙서의 땅은 너무도 탐이 나는 것이야.

그러마.

서백에게 그 계책을 준 것은 셋째아들 단이다.

형 발은 마음 내키지 않았던 듯 망설였다고 한다.

제후들의 마음을 사는 것도 중하지만, 그 곡창지대를 송두리째 주기는...

그때, 단은 이렇게 말했다.

형님. 뭘 그러십니까? 어차피 되돌아올 땅 아닙니까.

창은 살아서 돌아왔다.

전화위복입니다. 중원 천지에 지금 아버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은 주왕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온화한 정치를 펴서 사람들이 스스로 머리 숙이고 들어오려했다.

서북 오랑캐 견융을 토벌하고 밀수국과 기국을 합병. 지금의 서안 근처의 간신배 숭후호를 타도한다. 숭후호는 서백을 은 주왕에게 밀고했던 당사자. 그래서 모든 제후들이 속시원해했다.

살려준 서백 창이란 자, 세력을 너무 키우는데요?

킥. 나둬라. 제 새끼 고기를 먹던 바보 같은 놈이다.

듣자하니 숭후호를 짓밟고, 그가 살았던 풍읍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거 봐라. 내가 무서우니까 서쪽 끝으로 피해 간 것이니라.

주나라 사람에게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는데, 어느 현자가 나타나 나라를 크게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서백 창이 사냥을 하는데, 당시에는 떠나기 전에 어떤 짐승이 잡힐 것인가 점을 쳐보는 풍습이 있었다.

무엇이 잡힌다는가?

이상합니다. 범도 아니요, 곰도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용도 아니며. 인간이다.

...

인간이 잡힙니다. 즉, 사람입니다.

누구를 죽일 괘인가?

아니올시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습니다.

장차 패왕을 보좌할 인물입니다.

과연 그런 일이 생긴다.

그림같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노인이 누군가?

동쪽 바닷가에서 아내에게 구박받던 강상 노인이다. 80세 되던 강상은 능력을 인정받아 서백의 스승이 되어 나라 살림을 맡게 된다. 주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분이라 해서 태공망, 즉 강태공이란 이름이 붙는다.

오늘에는 낚시꾼의 대명사로도 쓰이는 말.

바늘없는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 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은 것이다.

강상을 얻은 주나라는 부강해진다.

서백의 온화한 인덕에 강상의 탁월한 정치 수완이 보태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깊은 곳에 숨은 단의 계책이 또 있었다.

은 주왕의 폭정은 점점 더 심해졌다. 만백성이 그를 원망하고 오히려 주나라 서백을 흠모했다. 그런데 서백이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위는 발에게 물려진다. 그가 주 무왕이다.

무왕은 태공망 강상을 사부로 모시고 나라 살림을 맡긴다. 아우 단은 계속해서 빈틈없는 보좌를 해서 국정을 다진다. 이제 우리는 하늘을 대신해서 폭군을 벌주려 한다. 백성을 괴롭히는 천자는 이미 천자가 아니다.

달기라는 여인의 농락에 빠져 스스로 하늘과의 인연을 끊었다. 우리는 궐기한다.

주의 무왕이 일어서자 동시에 8백 제후가 행동을 같이했다.

고죽국을 나와 방황하던 백이와 숙제 형제는 그런 일을 모르고 있었다.

작은 나라였지만 한 나라의 왕자가 거지가 되어 배를 곯는다.

서백 창이 다스리는 주나라. 인과 덕, 의리, 인자한 마음까지 있다고 듣고 거지 형제가 풍읍에 도착하니 서백 창은 이미 죽은 뒤. 그의 아들 발이 무왕이 되어 천자인 은 주왕을 토벌하러 가는 중.

이럴 수가 있는가?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천자는 천자님이다.

신하가 왕을 토벌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말립시다.

아버님 장례도 마치지 않고 싸움을 일으킵니까? 신하인 제후로서 천자를 시해할 작정입니까?

감히 뛰어들어 왕의 말고삐를 잡은 행위는 물론, 감히 소리쳐 왕을 나무라는 말투는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마땅했을 떠.

군사 태공망이 칼 든 병사를 제지했다.

나둬. 저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

.....

요순시대의 법도는 어디로 갔는가. 포악한 세상이 되고 말았구나...

그때, 무왕을 응원한 제후가 8백이나 되었다지만, 은 주왕의 토벌은 뒤로 미뤄진다.

이길 공산은 7~8할이다. 완전한 승산이 있기 전에는 싸움을 피한다.

어쨌거나 5백년간이나 이어온 왕조 이닙니까.

들고일어났던 제후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일단 철수했다.

그런데, 모두가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는 얼마가지 않아서 스스로 찾아오게 된다.

비간은 은 주왕의 숙부되는 사람으로, 은나라 최고의 인격자로 알려져 있었다.

폭군은 숙부를 해치고 만다.

죄도 없이 무참히 살해된 비간의 사건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공분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불길은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입니다. 이제 완전한 시기가 온 것입니다.

이날을 누구보다도 고대하던 사람은 주공, 즉 단 그사람이며, 고대했다기보다는 만들었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주 무왕의 군사는 천하의 세를 등에 업고 짧은 전쟁에서 쉽게 이기고 만다.

중국 2대 왕조 은(상). 그렇게 멸망한다.

벌레 같은 인간들이 감히 나에게 항거한다. 바보 같은 모들, 힘도 없는 것들이 감히 나를 이기려고 한다.

쫓긴 몸이 되어버린 은 주왕은 보물 창고 녹대로 올라간다.

그때까지 긁어모았던 온갖 보물을 타고 앉아 마지막 술을 마시며 스스로 분사하고 만다.

네깟 놈들에게 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불나라로 가는 것이다.

왕의 시체를 찾은 반란군. 이번 전쟁에는 당당한 명분을 세워야 합니다.

찬탈이 아니고 하늘을 대신하여 벌을 주는 것이므로 거기에 맞는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무왕이 손수 활을 잡아 시체를 벌준다.

첫번째 화살, 하늘을 거역한 죄를 다스리는 금시.

두번째 화살, 나라를 망하게 한 죄를 다스리는 은시.

세번째 화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죄를 다스리는 동시.

황월, 천자의 이름으로 국적을 벌주는 금도끼.

새까맣게 타버린 은 주왕의 시체는 그 목이 잘려 백기를 단 창 끝에 찍혀 효수된다.

의식대로 처벌을 준 형님은 천자가 된 것입니다.

암.

그런데 혁명 공약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음을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달기라는 여인의 농락에 빠져 스스로 하늘과의 인연을 끊었다.-

달기.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이 일을 이루어낸 일등 공신 아닌가.

주공 단을 만난 달기는 태연했다.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만... 시키신 일을 마쳤습니다. 훌륭히 성공했지요?

얘가... 얘가... 처음부터 내 심중을 알고 있었던 거야.

처단하라......

무왕은 달기의 몸에도 3발의 화살을 쏘고, 그 머리는 역시 백기를 단 창에 꿰어 폭군과 나란히 효시했다.

불식주속

고죽국의 두 거지 왕자는 끝없이 울었다. 죽은 은 주왕이 가엾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요, 순의 이상향은 사라져가고

사나워지는 현실이 슬퍼서 펑펑 흘리는 그런 눈물이다.

아무리 악독하고 아무리 포악했어도 천자는 천자였더니라.

저는 결단코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은 먹지 않겠습니다. 나도 그렇다.

형재는 배를 곯는다.

여기도 주나라 땅. 여기도 주나라, 또 여기도..

할 수 없다 수양산에 올라가자. 고사리나 캐어 먹자.

이 사람들에겐 배고픔보다 잘못된 세상이 더 아팠을 게다.

백이 숙제의 대목에서 사마천은 회의른 느꼈던지 아래와 같은 느낌을 적어놓고 있다.

살인 강도 도척이란 놈은 잘 먹고 잘 살아 제 명을 다하고, 의인 형제는 수양산 깊은 골에서 굶어 죽었다.

생각이 몹시도 헷갈린다. 하늘의 뜻이란 과연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금의환향한 강태공. 노인답게 의젓한 표정이었지만, 마음속에는 감개가 무량하고 있었을 게야.

지지리도 가난하고 배고팠지. 그러나 공부만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화

대륙의 3번째 왕조 주의 초대왕 무왕. 몇 해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 뒤를 이은 태자가 성왕인데, 나이가 어려 주공 단이 섭정을 한다

저 능구렁이가 말아먹는 것 아닐까? 워낙 음흉해서 말이지. 달기 작전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새로 이룩한 나라의 그 어렵고 복잡한 정사를 깔끔히 처리해 나가더니 7년 뒤 성왕이 어른이 되자,

깨끗이 실권을 인계하고 물러나 앉았다.

다시 봤는걸? 의심했던 우리가 나빴네.

10대 여왕은 돈이 궁했다. 조공의 액수를 좀 올려야겠다. 새로운 세원을 연구 개발하라.

세금 징수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귀재가 있습니다. 이공이란 사람입니다.

월급을 겁나게 요구할테지?

월급이 아무리 많아봤자 한 사람 몫입니다. 세금은 온 천지에서 거둬들이는 것이고요.

산에서 나무하지 마라.

사냥하지 마라.

가랑잎 긁지 마라.

버섯 따지 말라.

약초 캐지 말라. .....

그럼 세금을 내고 일을 하라. 여기 적힌 대로다.

어쭈 반항을 해?

이번엔 공포 정치를 편다. 찍 소리만 해도 찍어라.

백성의 불만이 많습니다. 선정을 베푸십시오.

지금 잘 되어가고 있소. 물처럼 잔잔하지 않소?

맞습니다. 백성은 마치 물과도 같습니다. 제대로 흘러가게 물길을 터줘야 합니다. 대왕께서는 그 물을 억지로 가둬놓고 있습니다. 그 둑이 터지는 날엔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여왕이 코웃음쳤더니 방류가 되지 않던 물은 수위 이상으로 올라가버려 둑은 터져버리고 만다.

민중 봉기는 무서운 힘이다. 왕은 뭣 빠지게 도망가서 먼먼 땅 체 지방에 숨어서는 돌아오지를 못한다.

궁궐에 쳐들어온 백성들은 기물과 집기를 철저히 부수고 아주 가루를 만들어버리고 만다.

==> 사마천의 사기에는 그 사건 이후부터의 중국 역사 연대는 일목요연, 정확하게 기록되고 있거니와 그 전의 역사에는 연대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당시 화가 난 백성들이 불을 질러 사료가 소실된 것.

인격자 소공. 깊은 시름에 잠기더니

자기 아들에게 태자의 옷을 입혀 군중에게 내어줬다. 바꿔치기를 한 것인데, 물론 끌려나간 소공의 아들은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다.

천자가 도망가고 궁궐이 비었다. 강력한 제후 위무궁 공백의 이름은 화라고 했다.

우리들이 임시로 정치를 해나가야 하겠소이다. 지혜를 모읍시다.

왕이 없는 동안 대신들이 모여 나라를 이끌어 갔다. 공화국이니, 공화제도 등의 말은 그때부터 유래된 것이다.

어쨌든 궤짝을 열어 용의 침을 꺼냈던 여왕은 도망지 체 땅에서 14년간을 숨어 있다가 거기서 죽고 말았다.

백성의 감정도 이미 가라 앉아 있었으므로, 소공이 양심 선언을 했다.

실은 내 아들과 바꿔치기를 했소. 그러니까 이분은 내 아들이 아니고 태자님이시오.

새로 왕위를 이으니 그가 선왕이고, 그 선왕이 46년 동안 해먹고 죽으면서 뒤를 아들에게 전하니 그가 유왕인데

주색잡기에만 능하고 성질은 난폭해서 옛날 달기와 놀아나다 나라를 망친 은 주왕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니

어쩐지 주나라도 망조가 드는 느낌이다.

포사

산뽕나무 활

대나무 전통

나라 망한다 쾅

폭삭 망한다 찍

동여는 너무 기승스럽게 퍼지고 있는 것이어서

드디어 정부에서 가만 두지 못하기에 이른다.

부르지 말라고 하면 입술이 더 간지러워요.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대나무로 만든 전통이 나라를 망친다는 뜻.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함은 물론, 예방차원에서 산뽕나무로 만든 활을 모두 수거해 불태워 버릴 것. 대나무로 만든 전통도 씨를 말릴 것.

산뽕나무 활의 제조를 금지시킨다.

그러던 어느날 환갑을 바라보던 궁녀(용의 침이 변한 도롱뇽이 몸에 들어갔던 궁녀). 50년 만의 해산.

성문 밖 10리허, 후미진 밭두렁에 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에도 비정한 모정은 있었던 것이라.

산골 동네의 부부는 새로 공포도니 산뽕나무 활, 대나무 전통 휴대 금지법을 몰랐던 것.

갑자기 쫓기는 몸이 되과 말았는데, 쫓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산뽕나무 활, 대나무 전통, 나라망한다, 폭삭 망한다.

요상한 동요의 의미는 바로 이 부부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으랴?

부부는 버려진 아기 하나를 발견한다. 그 아이가 천 년 전 하나라 말기에 나타났던 용이 흘린 침이며, 그 침이 다시 도마뱀으로 변해 일곱 살 소녀의 몸에 숨어 50년간이나 수태되었다가 나라를 폭삭 망치기 위해 태어난 계집아이라는 것은 더더구나 몰랐다.

주 유왕은 니나노 기질이 투철했다.

신후의 딸을 정비삼아 의구라는 아들까지 낳았으면서도 항시 젊고 예쁜 여자만 보면 겔금겔금 하더란다.

신후는 고사리 캐다 굶어죽은 백이의 후손이다. 정비는 양갓집 따님답게 유왕의 바람기와 술타령을 여러 차례 간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먹고 마시고 계집질 파고 그래서 늦잠만 자고...

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 부상자, 이재민이 속출하였지만, 유왕은 아랑곳없이 파티만 벌였다.

포 지방에서 부탁의 말씀이 올라왔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생산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답니다. 금년 공물을 외상으로 달아 달라는 애원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을 것 아니냐?

그러시면 미녀를 말씀하시는...

쉿. 본처가 들을라.

웃기네. 언제 본처 눈치보며 사셨나?

세금 대신 여자를 바치게 된 포나라에서는 방방곡곡을 뒤져 그럴듯한 미녀를 찾았는데...

바로 포사였다.

천년 묵은 용의 침이 정액이요, 검은 도마뱀이 정충이며, 50년 동안 수태되었다

산뽕나무 활, 대나무 전통의 산골 부부의 손을 거쳐 포나라 땅에 남몰래 장성한 포사.

바로 나라 망한다 쾅. 폭삭 망한다 찍의 살을 타고난 여인.

다른 아홉 명의 처녀와 함께 주나라 궁궐로 들어간 순간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때부터 생겨났을 것이라.

숙명의 만남이여. 비극의 각본이여.

유왕은 포사에게 빠져버렸다.

포사는 웃지 않는 여인이었다. 웃을 일이 없다고 했다.

비단을 바리로 들어녛고 그것을 찢게 하면 포사의 입술이 조금 웃는다.

그것도 웃는 입술이며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냐면서 무수한 비단을 찢는다.

봉화대라는 것. 이리의 똥을 말려 저장했다가 적국의 침입이 있을 경우 불을 지피면 그 연기를 보고 제후들이 달려오게 되어 있다. 왜 이리의 똥이냐면, 이리의 똥은 어느 땔감보다 연기가 잘 솟고, 비에 젖어도 잘 타느니라.

의문이 많은 사람은 아는 것도 많아지나니.

연기를 보면 정말 먼 곳의 제후들이 달려 오나요?

이리하여 시작된 봉화 놀이.

먼길을 달려온 제후는 왕과 포사의 놀이라는 것을 알고 허탈해한다.

그것을 본 포사는 입술이 열리고, 웃는다.

그 뒤에도 몇 차례인가 더 헛봉화가 오르고, 그때마다 번번이 속은 제후들은 분개했는데, 웃는 포사를 본 유왕은 그저 좋을 뿐이다.

왕후 신비는 폐비가 되고, 태자 의구도 미역국을 먹었다. 대신 포사가 낳은 백복이 태자로 임명된다.

양반댁 신후가 이를 갈았겠지. 그럴 즈음 의구가 외가댁 나라에 나타난다.

신후는 결심한다.

못난 사위놈. 아무리 천자라고 하지만, 사위는 사위다. 버릇을 고쳐주리라.

서북쪽 깡패 오랑캐 견융의 군사를 좀 빌려 혼을 내 주겠다.

우리 군주의 버릇을 고치는 데 오랑캐를 부른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딱 한 번뿐임을 전제로 한다.

대륙의 수도 호경에 간다고 했더니 오랑캐들은 흥분했다.

이번에도 봉화가 올랐다. 봉화에 응하는 제후가 있을까??

견융은 무자비했다. 변방의 깡촌놈들이 문화국의 수도에 들어오니, 보는 것마다 탐 내고, 먹는 것마다 감칠맛이라. 여자도 그렇다.

견융의 괴수는 신후의 작전을 무시하고 궁성으로 진격했다.

유왕은 운이 나빴다.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안심하는 순간 괴수와 마주치게 된다.

단 한 차례의 칼질로 유왕의 허리가 끊어졌다고 적혀 있다.

포사가 낳은 태자 백복 역시 견융의 칼에 죽고.

누가 견융 부대를 궁궐로 가라고 했더냐?

명령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갔습니다.

엉뚱한 결과를 보고 신후는 낙심한다. 한차례 소동으로 혼미한 왕에게 경각심을 일으켜드리려고 했을 뿐.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인데.

누가 제 사위를 죽이고 싶겠는가?

그러나 견융의 생각은 달랐다.

호경이 좁다 하고 흔들고 다니며, 떠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후는 후회막급. 야만족을 끌어들였던 내가 불찰이지.

밖으로부터 화를 불러들였군.

신후는 밀서를 여러 장 썼다. 여러 방면의 제후국으로 보내는 호소문이 그것이다.

또 한바탕 싸움이 있은 뒤 간신히 견융을 제 영토로 쫓아버렸다.

또 공화 체제로 다스릴까요?

아니지요. 어엿이 태자께서 계시지 않소?

원래 태자로 책봉되었다 날아온 돌 포사의 아들에 의해 쫓겨났던 의구에게 왕위가 계승된다. 13대 평왕.

그 뒤로도 왕위는 계승되지만, 주나라 실세의 왕은 13대로 끝나는 셈.

한 번 서울 맛을 봤던 견융 촌놈들은 병든 늙은 사자의 약점을 알았던지 시도 때도 없이 변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오랑캐에 쫓겨가면서도 명분만은 크게 내세웠다. 그렇게 낙양으로 천도한다. 동쪽으로 천도하여 그때부터 동주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