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google발췌. 이효리님의 등산 모습)

언제부터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가끔 등산을 간다.

 

1998년 재수를 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대구의 앞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등산에 익숙하지 않아 등산로를 이탈했고, 가파른 능선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휴대전화(PCS)는 통화권이 좁았고, 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60도 이상의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왔고, 몇 바퀴를 구른 것 같았다. 그렇게 계곡으로 내려와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등산을 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2008년 병원 등반대회를 갔던 경험과 2009년 코스트O를 방문했던 기억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등산을 하면서 알록달록 등산복에 등산화, 배낭을 맨 사람들 중 비만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코스트O에서는 계산대에서 직원과 언성을 높이는 사람을 보았는데, 나의 상식으로는 직원이 무례하게 행동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쳤고, 상급 담당자를 오라가라 했다. 그런데 이분은 내가 본 사람들 중 상당한 비만 체형을 하고 있었다.(코스트O의 푸드 코트는 유명하죠.)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꾸준한 등산을 하는 것이 코스트O를 방문하는 것보다 건강에 좋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고, 간혹 등산을 했다. 등산을 몇 차례하면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수월하고 몸도 가뿐했다. 그렇게 가끔 등산을 한다.

 

산을 오르면 잡념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팔공산을 오를 때 맑은 날씨에 청량한 바람을 느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산에는 나무가 있을 곳에 나무가, 바위가 있을 곳에 바위가, 물이 있을 곳엔 물이 있다. 그 사이를 바람과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이 서로 어울려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은 그 사이를 잠시 다녀갈 뿐이다. 모두가 어울려 각자의 자리에 조화롭게 있는데,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생각은 선택에 관한 것이다.

 

2009년 토요일 오후 병원 외래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북한산을 넘어 집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3호선 불광역에서 내려 족두리봉을 올랐고, 반대편 국민대 쪽으로 가려 했다. 익숙한 산길은 아니지만, 아이폰의 지도와 나침반 서비스가 있으므로 쉽게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산 봉우리를 거쳐 갈림길이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계속 비가 올 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 하산을 하려했다. 그런데 아이폰의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못해, 나는 원래왔던 방향으로 훨씬 더 멀리 가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순간의 선택을 신중하게 잘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최근에 얻은 교훈은 같이 등산한 일행 중 한 명이 한 얘기다.

 

그는 3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사이로, 6시간 이상의 등산길에서 하산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등산은 오를 때는 괜찮은데, 오히려 하산이 더 힘든 것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각자의 인생에서 젊음은 산정상까지 쉽게 이끌어준다. 등산을 하면서 부상을 당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등산을 해야 하산할 때 부상의 위험이 적다. 이런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상에 도달하지 못할 뿐더러, 언젠가는 내려가야 하는 인생에서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이날 등산을 통해서는 몸도 건강해졌지만, 좋은 교훈도 얻었다.

아직까지 등산화 없이 운동화에 운동복으로 등산했는데, 이번 주엔 제대로 된 등산화를 신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