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애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 볕 두어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장석주. 느림과 비움의 미학

내가 원하는 삶. 행복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촘촘히 보내 내 삶을 만들기에 가장 행복하다. 그것이 얼굴로 표현된다.  보통 3~4시 기상. 저녁은 5시에 먹고 8시에 잔다. 일어나 책읽고 원고, 6시에 아침 먹기. 근처 산책. 오전에 책 읽고 원고 쓰기. 읽는 책은 광범위. 음악, 미술, 문화, 역사, 천체, 양자역학, 추상수학, 요리에 관한 만화까지 포함. 세상의 모든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다. 읽고나면 무엇이 남는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콩나물 시루. 물을 주면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해 저자와 대화를 나눈다. 내용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기억에 대한 강박증이 독서에 방해된다. 오히려 버리려 한다. 읽고 나서 잊어버리려 한다. 대신 읽는 동안 빠져서 읽으려 한다. 

책장을 덮음과 동시에 내용이 날아가서, 한동안 독서하면서 고통을 받았는데, 장석주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얼굴이 가벼워진다. 과거에는 나쁜 기억력에 괴롭고 자학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기억에서 자유로울 때, 망각은 내용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다. 재생산하는 하나의 출발점이다. 

장석주는 왜 장자와 치열한 대화를 했는가... 
시골로 내려간 이유는...1993년 13년간 한 출판사 정리. 7년간 책 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40이후 자연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20여년 전 출판사로 돈 벌때 아무 생각하지 않고 시골에 땅을 구입. 시골에 내려갈 때 돈 하나 없이 땅만 있었다. 농협 방문하여 상황을 설명하여 대출로 집을 지었고, 최근 빚을 갚았다. 그 과정엔 수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통이 있었다. 성공의 정점에 서 있을 때도 내면에 알 수 없는 불안, 끝없는 타인에 대한 적의가 있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 성공의 정점에서도 텅빈 것 같았다. 누려야 할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일에 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었다. 내적 자아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속도로 살아가는 현대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그래서 노자와 장자를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노자 장자는 무위자연 사상. 무궁무진한 뜻이 있다. 내안의 분노를 덜어내고, 타인에 대한  관용과 연민을 갖는 데 장자만큼, 노자의 도덕경 만큼 좋은 책이 없다. 끊임없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동양의 최고 고전인 장자, 도덕경을 집었다.  장자는 부자의 사상과 다르다. 배운 것조차 잊고, 물질이란 것도 자기를 해치지 않게 되는 수준에서 도가 된다는 말. 장자는 고루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책. 이야기, 우화로 구성. 유머가 풍부한 사람. 철학적 개그맨. 

쓸모없음에 쓸모를 구하라. 쓸모없다고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버려진 나무가 천년 고목이 된다. 속도의 시대에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데, 장자는 쓸모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지은 사람.  빠름과 느림,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큰 것과 작은 것, 죽음과 삶. 그것이 다르지 않다. 경계없이 넘나들어라. 쓸모있음에 집착해 쓸모있음의 노예가 된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쓸모없음을 구하라. 쓸모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작은 것에 집착한다. 보이는 것에. 이런 것의 경계를 뛰어넘어라. 얽매이지 마라. 

나를 채우고 있으면 다른 것을 채울 수 없다. 채우기 위해선 먼저 비워야 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명상. 명상은 눈을 감고 앉은 채 마음의 것을 비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목전의 필요에 급급해하지 않는다. 필요에 묶여, 끈임없이 쫓아가는 삶. 끈을 놓으면 무중력 상태가 되고 편안해 진다. 마음이 편하면 몸도 편하고 생활에도 변화가 생긴다. 소유하면 집착, 불안이 생긴다. 가난 때문에 죽기보다, 가난에 대한 근심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 적게 가져도 마음의 부자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누군가를 도우면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행복 호르몬이 뇌에서 활성화 된다. 

성공과 극단적 바닥까지 경험. 고통스런 하루하루. 지금 이순간, 오늘 나의 고통은 하지 않아도 될 고통과 고민. 나머지 30%는 과거와 미래의 것. 1년만 지나면 기억하지 못한다. 즉, 불필요한 고민을 한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다. 모든 것을 경계없이 하나로 보았기 때문. 부인이 죽었을 때 노래를 부르는 장자. 사람들은 장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장자는 ’원래 있던 편안한 곳으로 갔는데, 우리는 삶으로 오기 전 원래 죽음이란 비존재였다. 그곳으로 갔기에, 슬퍼할 까닭이 없다.’ 고향으로 갔는데 슬퍼할 이유가 없다. 호접몽.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다. 당시 장자의 별명이 호접선생. 낮잠을 자다 나비가 되어 꽃과 꽃 사이에 꿀을 채취하는 나비가 되었다. 꿈에서 깼는데, 나비인지 자기인지 구별이 안 된다. 

장자가 바란 인간상은 眞人. 참된 사람. . 같이 있으면 기쁨을 주는 사람. 비록 외모는 흉칙해도.  자기의 형상에 대한 갈등이나 괴로움이 없는 사람. 남을 행복하게 하고, 부족한 것에 대한 컴플랙스가 없는 사람. 멀쩡한 나무는 사람들이 베어간다. 비움과 채움의 경계없이 살았던 장자. 비움을 능동적으로 실천하자. 욕망의 크기를 줄이고, 자기의 것을 베푸는 삶.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나온다. 행복 호르몬을 맛보는 삶. 욕망,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는 삶보다, 비움의 평화, 고요를 느껴봄이 . 

숨쉬는 일에 씩씩하게. 더 많이 산길, 논길을 두 다리로 걸었으면 좋겠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 건강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