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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선생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을 읽었다.
역사를 읽으면서 역사 이면의 역사. 즉, 사상의 역사가 궁금했고, 그것이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이었다.

선생은 역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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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나무로 치면 우듬지라고 했다. 어디로든 뻗겠지만, 어디로 뻗을지는 나무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모른다. 나무는 단지 에너지를 공급할 뿐이다. 역사도 늘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의도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운동하지만, 장차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떤 양태를 취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역사는 의식적 활동의 소산이면서 무의식에 가깝다"

현실과 생각은 서로 대응(correspondence)의 관계에 있으면서 각각의 전개과정은 일관성coherence의 논리에 따른다.
인쇄술의 발달로 성서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종교개혁이 앞당겨졌고, 성지탈환이라는 종교적 명제가 십자군 원정의 명분이 되었다.
--> 이것은 대응성의 사례로, 전자는 현실의 변화가 생각에 영향을 준 경우이고, 후자는 생각의 변화가 새로운 현실을 낳은 경우이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되었고, 스토아 철학이라는 지적 배경이 있었기에, 그리스도교가 성립할 수 있었다.
--> 이것은 일관성의 사례로, 전자는 현실의 역사에서 보는 일관성, 후자는 생각의 역사에서 보는 일관성이다.

이처럼 생각과 현실의 두 역사는 대응성을 중심으로 함께 어우러져 문명사를 이루지만, 일관성을 중심으로 보면 별개의 진행 과정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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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철학책을 완독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전까지 철학은 고리타분한 분야였고, 한번도 읽어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분야였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쉬운 책이다.
이미 동양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사기를 읽었고, 고우영의 18사략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이해한 상태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최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읽었다.
서양 중세와 근현대에도 대략적인 이해는 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의 역사에 관해서도 조선 중기 이후 개략적인 상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혔다.(배경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히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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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의미 있게 엮어 주는 날실이고, 역사는 허공에 떠도는 사변들을 현실로 풀어주는 씨실이다.

1. 스파르타여, 타락한 아테네를 구원하라!―플라톤의 이상 국가
스파르타 인들은 다른 그리스 인들보다 자신들이 뛰어난 이유가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 했다. 단지 싸움을 잘하고 용기가 있어서 잘난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웃이 스파르타를 잘못 본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 인 사이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을 추려내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라. 그는 마치 창던지기 명수가 그렇듯 깜짝 놀랄 만큼 짧고 압축된 말로 감동을 줄 것이다.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대화편 중에서-

제대로 된 적수는 증오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뛰어남 때문에 경탄을 불러 일으킨다.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장수는 상대편 전사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 되듯이..
스파르타에 패한 아테네. BC 404년.
스파르타에 대한 아테네 사람들의 태도는 극히 이중적이다.
군사훈련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군인의 나라,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의 질서 학교로 존경하기도 했다.
금욕과 절제에 바탕을 둔 스파르타의 강인한 무사 기질. 민주주의를 하여 입만 살아있는 나약한 폴리스.
민중을 교묘하게 사로잡은 페리클레스(BC 495?~429)가 죽은 뒤 아테네 민주주의는 중우 정치 그 자체였다.
재판장에는 법률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서 참가 수당을 받으려는 노인으로 채워지고, 민회는 조금이라도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 정책은 반대하였다. 미래상을 제시하는 정치가보다 사탕발림과 화려한 말솜씨로 대중을 속이는 사람들이 더 인정받곤 했다.
애국심에 불타는 일부 엘리트에게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체계적인 교육으로 절제와 금욕을 익힌 시민을 길러 내는 스파르타는 이들에게 개혁 모범 답안 그 자체였다.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아테네의 천민적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스파르타의 정체를 은근히 찬양하기까지 했다.
70에 독배를 마신 데에는 적국에 매료된 사회의 불순 세력이라는 혐의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아테네는 해상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스파르타는 농사를 주업으로 했던 나라다.
거래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상업이 발달한 덕택에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일찍 싹 텄다면, 지주들의 권위가 중요했던 스파르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귀족 중심의 정치를 했다. 시장이 중요한 아테네는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는 제국주의의 길을 간 반면, 농사꾼을 땅에 붙잡아 두어야 했던 스파르타는 철저히 폐쇄적이 되어간다.
BC 479.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친 그리스는 대국 페르시아를 무찌른다.(BC 6세기 후반.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여 약 2세기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지배했던 제국. BC 492년과 BC 480~479년 페르시아 전쟁을 했고, 모두 그리스의 승리로. 마라톤 전투도 이때 있었던 것)
싸움이 끝나자 리더 격인 아테네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진다. ’델로스 동맹’으로 그리스 공동 방위 체제를 만들고, 방위세로 엄청난 세금을 거두어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쓴다.
다른 국가들이 불만이 없을리 없다. 빈국이지만 강한 군대를 가진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맞선 국가들을 모아 또다른 골목대장이 되었다.
BC 431년 마침내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자웅을 겨루었다. 20년 이상 걸려 그리스의 자살이라고 불린 펠로폰네소스 전쟁(상업도시 코린트가 아테네의 압박을 받자 스파르타에 호소. 이것을 계기로 전쟁이 시작됨). 스파르타의 승리.
스파르타는 엄격한 군사 훈련을 바탕으로 공교육과 공동 식사 제도를 시행.(빈부의 차이 허용 않는 것)
생활에서는 겸손과 예절을 강조. 늘 침묵하고 핵심만 찔러 간략하게 말하라는 교육.
웅변을 가르치던 소피스타들은 스파르타에서 제일 먼저 추방되는 사람들이었다.
스파르타의 교육 목표는 야수처럼 건강한 신체를 지니고 공공장소에서는 겸손하며 예의 바를 뿐더러 정치에 대해서도 뭔가 좀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조국 아테네의 쇠락과 부패를 직접 목격한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 사회는 왠지 스파르타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 하다.
국가의 계급은 생산자(농민 등), 수호자(군인), 통치자(철인 왕)으로. 각각 절제, 용기, 지혜의 덕을 이루며 국가는 정의롭게 된다. 생산자는 절제의 덕, 수호자는 용기의 덕, 통치자는 지혜의 덕을 잘 구현.
검약과 절제를 몸에 익히고 참된 지혜를 갖춘 철학자를 양성하고 그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 이것이 플라톤이 바라는 이상국가다.
이같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은 2,500년 동안 서양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국의 신사 교육도 비슷하다. 욕구를 절제하고, 인내력을 기르며, 용기와 명예, 희생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은 지금도 엘리트 교육의 바탕이다.(이것이 인류 문명에 깊이 드리워진 스파르타의 흔적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현실은 추악한 면도 있다.
전사로서 엄격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의 노예를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노예 계층인 헤일로타이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이들을 죽이고 괴롭히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스파르타 인들은 싸움꾼이 되는 교육은 받았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철학자의 자질은 배우지 못했다.
아테네는 화려한 문화와 유산을 인류에게 남겨주었지만, 스파르타가 남긴 것은 스파르타 식이라는 강압적인 어감 외에 거의 없다.
그래서 스파르타는 아테네와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바로 그 순간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때 시장에서 칼을 뽑을 수 없는 일. 그들의 용맹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다.
막대한 부가 스파르타로 흘러들자, 스파르타는 곧 흔들리기 시작했다. 뇌물이 오가고, 남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음모가 판을 치고, 많은 시민이 재산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다.
거기다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 시민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들은 복잡한 국제 정세를 풀어 나갈 만한 능력이 없었다.
BC 399년, 또 다른 폴리스인 테베와의 전투에서 패한 아테네는 사라졌고, 그리스는 몰락하기 시작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은 우리 일상 속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엘리트주의와 평등주의, 우월한 자의 결단인지 민주적 절차를 거친 다수의 의견을 따를지...
질서와 절제는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금욕하고 자제해야 하는지 늘 생각해 보아야 한다.
B. Russell은 서양 철학사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이긴 사건은 나치 독일이 미국을 이긴 것과 같다고 한다.
강력하지만 무미건조한 생계형 국가, 방탕해 보이지만 풍요로운 미국 문화를 이겼다는 뜻.
스파르타나 나치 독일의 번영은 다른 민족에 대한 착취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해야.
스파르타가 찾은 이상 국가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극단의 이기심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백신이다. 그러나 치료제는 결코 일상의 식사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오래동안 비판을 받아 왔지만, 여전히 최선의 제도일 수밖에 없는지 공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 소크라테스의 논박술.
정작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을 펼친 적이 없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무지를 깨우쳐 준 것 뿐이다. 진리 앞에서 겸허해지도록 만든 게 그의 가르침의 전부였다. 자신을 진리를 낳는 산파라고 부르곤 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그렇게 하여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2. 그리스 웰빙 족의 이상과 꿈―아리스토텔레스
최선의 생활은 중용에 있다. 정치 또한 시민들의 생활이기에 정치 질서를 평가할 때도 생활을 가늠할 때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재산에 있어서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아닌 중간상태가 최선이다. 이런 사람이 이성을 잘 따른다.
따라서 중산 계급에 기초를 두고 있는 나라가 최선의 상태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철학은 고뇌의 학문이다.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철학자가 되곤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정의란 무엇인가.. 를 스스로 되묻게 된다는 뜻이다.
만사 오케이, 장미빛 인생인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인류역사상 철학자는 스산한 시대에 태어나 辛酸한 삶을 산 사람이 많다. 시대와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민감하면 고민이 많을 터이고, 그럴수록 쓸만한 해결책도 많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니, 철학자로서도 유명해 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세련된 옷 맵시, 유복한 가정, 자상한 남편, 훌륭한 가장으로 삶을 산다. 하지만 그리스 시민권자는 되지 못한다. 폐쇄적인 아테네의 시민권 정책으로. 마케도니아 태생.
문화적 자부심으로 가득한 아테네를 마케도니아가 힘으로 아테네를 압도하는 상황
알렉산드로스(BC 356~323)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BC 382~336)는 아테네를 천재와 노예의 잡동사니 정도로 여겼다.
학문과 문화는 물론 상업도 발달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리멸렬하고 사회 기강도 무너진 사회.
교육수준은 대단히 높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부했던 곳은 플라톤이 세운 유명한 학교 아카데메이아(Academeia)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는 리케이온이라 불린다). 주로 산술과 기하학을 가르쳤던 학교에서 그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스승 플라톤에게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코드와 기질, 자라난 환경이 달랐다.
아테네 명문가 출신인 플라톤은 타락한 아테네 민주 정치 때문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잃는 비극을 경험했고 비뚤어진 조국의 현실을 바로 잡겠다는 비분강개가 넘쳤다.
아테네의 이방인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몰락한 아테네의 현실을 탄식할 이유가 없었다. 아테네의 몰락도 그에게는 학문적 이유 때문에 관심있게 지켜보는 정도.
이런 견해 차이는 철학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상주의(idealism)이다. 그에게 현실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현실 너머에는 모든 게 완전한 세상, 곧 이데아(idea)의 세계가 있다. 누구나 현실을 이데아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혁명을 꿈꾸는 열혈남아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지극히 현실적. 이상만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증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 추상화(일반화)를 통해 병명을 알아내고, 원인을 짚어내는 치료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방법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관찰하여 원인과 변화의 목적을 밝히고 드러내는 과정.
그러니 이상주의자였던 스승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은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음에도 플라톤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
각각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뿌리가 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별이 시작된 순간(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두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답게 손가락이 하늘로 향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답게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다.)
BC 343년 마흔한 살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마케도니아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초빙되었던 것.
이미 알콜 중독기가 있었다던 되바라진 소년에게 아테네 유학생 출신의 대학자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분명치 않다.
’저는 권력이나 영토 확장보다 善에 대한 지식에서 남보다 뛰어나고 싶습니다. 라고말했다고 하지만, 이 말은 스승의 날에 쓰는 형식적인 감사의 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마흔 아홉살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학원을 열어 대성공을 거둔다.
알렉산드로스는 800탈란트의 돈을 지원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현대의 대학교수처럼 강의와 연구를 했다.
그의 연구는 매우 체계적이어서 개념, 범주, 본질처럼 지금도 쓰이는 학문 용어들이나 정치학, 윤리학 등 현대 학문의 구분도 그 원형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되었을 정도다.
--한 마리 제비가 몸을 몰고 오지는 않는다--
스승과 달리 철저히 관찰과 실험을 중시했다.
뇌는 피를 식히는 기관일 뿐, 생각은 심장이 한다. 쥐는 소금을 ？q기만 해도임신한다 등 기괴한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는 당시 관찰 수단이 보잘것없었던 탓일 뿐..
학문을 크게 이론학과 실천학으로 구분했다.
이론학은 세계의 본질과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물리학, 형이상학 등이 해당.
그는 세상살이가 책에 쓰인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치, 가정생활, 윤리 등의 문제를 실천학으로 분리했는데, 이 분야의 학문은 철학적 처세술에 가깝다.
그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무엇이 진정 행복해지는 길인지 확실히 알 수 없어, 대안적 방법을 가르쳤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라. 중용을 취하라는 얘기
행복한 삶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을 취하는 데서 얻어진다.
예컨데, 용기 있는 행동은 무모와 비겁을 피하는 데서 나오고, 절제 있는 생활은 낭비와 인색을 피하면 이룰 수 있다.
또한 중용의 길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중용을 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균형 감각’이란 중간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양극단을 오가면서 최적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끊임없는 과정.
세상을 사는 데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얻게 해주는 건 책밖에 없는 것 같다.-안철수-====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의 습관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하는 데 쓴 말이다. 지나치지 않게 살며 올바른 습성을 기를 것.
그는 독재 정권을 싫어했다. 적은 양의 물은 쉽게 썩지만, 많은 양의 물은 쉽게 썩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술자 자신보다 물건을 직접 쓰는 사람이 제품에 대한 평가를 잘 내리듯, 정치에 있어서도 정치 전문가보다는 일반 대중이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그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중간에서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찾았다. 민주주의의 최악은 어리석은 대중이 수를 앞세워 정치판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우정치. 실제 아테네가 이런 상황.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할 수 있는 대중이란 적어도 생계 문제에서 벗어나 초연하게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 곧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들 중산층이 통치하는 중산 정치라 주장했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숨을 거두자 아테네에서는 反 마케도니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안전할 리 없다.
철학자에게 단골로 씌워졌던 죄명, 곧 예전에 소크라테스도 뒤집어썼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는 대신, 아테네 시민들에게 다시금 철학을 욕되게 하는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탈출한다.
아테네에서 국외 추방은 피고가 택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비겁한 행동은 아니다.
극단을 피하는 중용의 철학자다운 선택이다.
-천 년을 지배한 철학-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방 이후 고대 그리스는 철저한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경제, 군사면에서 오래 전에 주도권을 잃었지만,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몰락한다. 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잊혀진다.
그를 되살린 것은 알렉산드로스가 개척한 동방에서였다.
유럽에서 이미 사라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랍 어로 번역되어 서아시아 쪽에서 활발히 연구되어 있었고, 5세기 무렵 서남아시아의 종교인 기독교 바람을 타고 유럽으로 역수입된다.
리케이온의 연구 분야는 생물학, 지리학,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하고, 중용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철학은 상식에 가깝다.
그런 그의 철학을 가톨릭 신분들은 신학과 결합시켰고, 거기에 어떤 학문적 공격도 무력화시키는 신학자들의 열정이 더해지면서 스콜라(scholar)라는 중세 특유의 신학 같은 철학이 탄생했다.
이후 근대 과학이 싹트기 시작한 1500년경까지 그에게 필적할 만한 대사상가는 출현하지 않았다.
기발한 발상은 쉽게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정작 수명이 긴 것은 상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철학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철학이 지극히 상식적이었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은 일상의 상식을 존중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인간도 복제하고 돼지의 장기도 인간에게 이식하려 한다. 공해, 유전자 조작 식품 등.. 경쟁과 효율을 거부하고 질 좋은 삶을 추구하는 웰빙 족의 출현.
상식이 통하는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덕이란 중용이다. 중용이란 과도와 부족 사이의 중간이다. 중용은 이 둘의 중간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덕 있고 선한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무슨 일에서나 중간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데 원의 중심을 찾아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화를 내거나 돈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정도로 마땅한 때에 그럴 만한 동기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고 돈을 쓰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중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먼저 양극단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중용을 택하는 일이 극히 어렵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악들 가운데 가장 적은 것을 취하는 방법이다.

3. 로마 제국을 지탱한 국가 철학의 힘―스토아 철학
무엇이 일어나든 그 일은 우주가 시작된 이래 이미 준비되어 있었음을 기억하라. 나아가 여러 원인들이 서로 연관을 맺으며 옛날부터 그대 운명의 사소한 것까지 관여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철학이 국가를 만들다-
명문 집안의 가풍. 올곧은 어른이 있고, 윤리가 바로 서 있는 집안은 어떤 풍파에도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강했던 제국은 대개 뚜렷한 도덕적 기준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화의 뿌리를 내린 漢제국은 유교라는 굳건한 철학이 있었고, 조선에도 성리학이라는 윤리 질서가 있었다.
지성에는 그리스 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 인이나 게르만 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는 에트루리아 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 인보다 뒤떨어지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국가.
어떻게 로마가 세계사에 길이 남을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스토아 철학은 로마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 국가 철학이다시피 했던 사상이다.
로마 제국과 미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
다양한 인종, 문화가 섞여 있는 다민족 국가. 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재패했다. 미국이 1,2차 세계 대전으로 일류 국가로 발돋움 했듯이, 로마 또한 끊임없는 전쟁으로 성장 동력을 얻었다.
최고의 강대국이지만, 문화적 열등감이 있다. 미국은 맥도날드로 상징되는 자기네 문화를 유럽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으로 생각한다. 로마도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를 수용했다.
이들 두 나라의 국가 철학도 원래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魂의 뿌리가 유럽에서 시작된 청교도 정신이듯, 로마의 정신인 스토아 철학도 원래는 그리스 철학이다.
청교도 사상과 스토아 철학은 모두 소외된 자를 위한 사상이었다.
청교도 정신은 영국의 주류 교회에 반기를 들었던 아웃사이더의 철학이었듯, 스토아 철학도 몰락한 그리사의 암울한 분위기를 달래던 개인적인 철학이었다.
스토아 철학은 이 세상 일은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고, 노력해도 세상 만사는 이미 우주의 섭리(logus)에 따라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사에 맞서 마음을 다잡는 것 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네 뜻과는 상관없이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이미 정해졌던 일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신의 섭리, 곧 대자연의 순리를 깨우쳐 안다면 담담하고 냉철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성(logus)으로 우주의 섭리를 깨달아 안다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대담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아파테이아(부동심)의 경지.
이런 스토아 철학은 군인 정신과 맞닫는 부분이 있다.
로마 군단은 개인의 용맹보다 짜임새 있는 군진과 규율로 승부를 내던 군대. 로마병사 앞에 덩치 큰 게르만 야만족이 달려든다면..
스토아 철학은 말한다.
냉철하라. 이미 삶과 죽음은 신의 섭리로 정해져 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헛된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너의 앞에 놓인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 뿐이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로마인은 언제든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여겼으며, 더 이상 가망이 없으면 자결하는 것(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을 최고의 명예로 알았다.
이렇듯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결과에 초연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국가라면 어떤 고난 앞에서도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고대 사회에서 승자가 패자를 약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로마는 특이하게 승자의 권리를 유보할 줄 알았다. 점령한 뒤에도 적의 종교와 풍습을 그대로 인정했고, 로마에 복종하는 한, 지도자들의 권위도 인정해 주었다. 약간의 세금(10%세)을 내면 안전도 보장해주고, 사회 간접 자본도 확충했다.
로마인들이 관대한 이유는?
그들은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대자연 속에는 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진짜 법이 있다. 자연법이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는 자연의 섭리,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법.
자연법을 깨달을 수 있으면 인간은 누구나 법에 복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법이 적용되는 국가, 평등함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무엇보다 통치 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제일 중시하는 군주 국가가 가장 좋은 나라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현제의 시기. 도미티아누스(51~96)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 황제까지다. 스토아 철학이 가장 융성한 시기와 겹친다.
승자는 부드럽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며 여유로워야 한다.
사회 지도층의 엘리트주의가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사회의 통합을 해치기도 한다. 하층민이 따르기에는 사회적 윤리 잣대가 너무 높은 나머지, 하류층의 문화가 포기와 쾌락으로 흐르기 쉽다. 권력자는 속성상 민중의 인기를 외면할 수 없는 법. 엘리트 층의 엄한 윤리 의식도 시간이 흘러가면 대중의 입맛에 맞추느라 서서히 썩어 갈 수밖에 없다. 타락한 군중의 불만을 빵과 서커스로 달랬고,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계층간의 심각한 갈등 속에서 무너져간다.

* 스토아 철학
인생이란 줄에 묶여 있는 개의 신세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게다가 삶은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키케로는 말한다. 인생이란 아무 쓸모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기간이 아니다.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는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황량해지지는 않는다. 대개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들 때문에 와해되고, 노인들에 의해 회복되었다. 나이 듦을 서글퍼 하지 말고 삶을 성찰하여 경륜을 쌓아라.
더구나 노년의 체력과 의욕 저하는 오히려 축복할 만한 일이다. 육체가 쇠약해진 만큼 몸에서 오는 강렬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노년에 소포클레스는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냐는 질문에, 무슨 끔찍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막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왔는데. 라고 말하며 기뻐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스토 철학자는 신산한 삶 속에서 항승 그 뒷면에 있는 긍정적인 면을 보게 해 준다.

4. 도덕과 의리는 한 제국의 뿌리―공자와 동중서
자공과 공자의 문답
정치란 무엇입니까.. 경제를 풍족히 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안보를, 다음은 경제를 버리라 한다. 예부터 죽음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백성들이 믿어 주지 않으면 나라도 있을 수 없다. -논어-
미국은 다양한 문화가 잡탕처럼 섞여 있는 끓는 솥이다. 하지만 원재료의 맛은 살아 있다.
중국은 이미 푹 고아진 상태의 솥이다.
그런 중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유교 사상이다.
유교는 중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일상의 뿌리가 되는 사상이다. 인과 예같은 복잡한 철학 개념은 몰라도, 인자하다, 예의 없다, 경우 없다 같은 말을 통해 유교 사상을 몸으로 자연스레 익혀 왔다.
이처럼 유교는 의식하지 않아도 동북아 사람 모두가 ？？유하고 있는 문화적 공기다.
유교는 처음부터 문화의 메이져는 아니었다.
통일 왕조인 周나라가 무너지고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이 찾아온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고뇌하는 지성인이 늘어나고 난세를 풀어 갈 해법을 제시하는 현인도 많이 출현하는 법.
힘과 법률로 모든 일을 풀어 보려 했던 한비,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해결책이라 말한 묵자.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 노자와 장자. 제자백가의 시대.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BC 551~479)도 유에 종사하던 가문 출신. 공자는 어려서부터 제사에 쓰는 그릇 등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공자는 예법뒤에 숨어 있는 도덕의 본질을 깨달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다. 仁과 禮가 그것이다.
仁이란 옳고 그름을 따져서 사람을 사랑함이다. 禮는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위치와 주제를 잘 파악함을 말한다.
어떻게 해야 춘추(전국)시대의 무너진 법도와 권위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공자는 윽박지름과 폭력으로는 결코 예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법, 윗 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인을 쌓고 예를 세운다면 아랫사람은 이를 흔쾌히 따를 것이다.
이런 공자의 주장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공자의 말은 실천 메뉴얼이 되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현실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법(살아남았기에 강자다!). 춘추 전국의 혼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강력한 군사력과 엄한 법을 강조하는 법가였다. 법가의 사상을 바탕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진 秦나라가 마침내 천하를 통일한다.
시황제(BC 259~210)는 법가 외의 모든 사상 관련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를 산채로 파묻는 분서갱유를 한다.
전쟁보다 더한 억압과 폭력을 견뎌내지 못한 백성에 의해 20년의 짧은 기간 후 진나라는 멸망한다.
그 후의 혼란은 항우와 유방. 초한전.
승자는 산을 뽑을 만한 괴력을 지닌 항우가 아니라 소탈함과 편안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방이었다.(역사란...)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전의 통치자들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방은 평화와 관용을 채택한다. 그는 평민 출신이다.
특유의 소탈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샀지만, 그것이 단점이 된다.
당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학파는 황로 사상. 청정무위. 억지로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고 쓸데없이 간섭하지 마라는 것.
그러나 홍로 사상은 국가를 이끄는 이념이 될 수 없다.
강제도 의무도 없는 국가가 가능할까.. 라는 문제 앞에 황로 사상은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의 사상이 주목받는다.
무력은 싸움할 때는 요긴한 수단이지만, 평화로울 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사회를 유지하려면 힘깨나 쓰는 사람보다 머리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공자의 사상은 4대가 흘러 무제(BC 156~87)때에 이르러 국가 철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동중서라는 걸출한 학자의손에 의해 가능했다.
동중서는 먼저 공자를 제국 통일을 이끌 문치의 창시자로 격상시켰다. 혼란기에는 무관의 제왕이었지만, 시대가 바뀐 것.
황제는 하늘의 아들로 높였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과 자연을 조화롭게 하는 게 황제의 역할이고, 그에게 감히 반항하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
통치자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아서 한없이 자애로워야 하며, 사사로이 백성의 자잘한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군주는 인품과 도덕으로 백성을 이끌되 돈이나 이익에 초연해야 한다는 것.
이로써 권력과 백성의 삶은 제자리를 찾았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강제하지 않아도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라.
이후 거의 모든 중국 왕조는 유학의 이념을 바탕에 깔게 되었고, 2000년의 세월속에 공자의 가르침은 자연스레 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절대 강자는 항상 절대 약점도 갖게 마련이다.
폐해는 실무적인 능력보다 인품과 조화를 강조하는 관료적인 분위기, 돈을 천하게 여기고 실용적인 관심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관행도 유교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임금에게 장사치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센 변화의 물결 앞에서 동북아시아의 문화 코드인 유교는 과언 어떻게 대처할까...

* 순자.
종교나 사상에는 항상 주류에 맞서는 이단이 있는 법. 공자의 제자중 주류는 맹자. 공맹 사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다.
반면 순자는 이단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보았으니.. 하늘은 사람이 춥다고 해서 추위를 거두지 않으니, 험한 세상 제대로 살려면 나무를 먹줄로 그은 직선에 맞추어 깎듯 인간 본성을 예의에 맞게 끊임없이 다잡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순자와 맹자의 차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유사한 면이 있다.
도덕이 먼저 자리 잡은 뒤라야 법질서가 올곧게 설 수 있다고 주장한 게 맹자라면, 법으로 엄정하게 다스려야 도덕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순자.
순자가 유교의 주류로 자리 잡았으면 인품과 덕망의 강조보다는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으로 유가의 무게 중심이 더 쏠렸을 것이다.
그러나 법을 강조했던 나라치고 독재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이는 드물다. 순자의 사상은 한비 등 법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들은 유가 본래의 목적인 도덕은 사라지고, 엄정한 법만 남았다.
법가의 나라 진을 대신한 한이 공맹의 손을 들어준 순간, 순자는 유가의 이단자 그룹으로 전락해버렸다.
이처럼 정치에서의 성패는 사상의 흥망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5. 은둔의 철학인가, 통치의 철학인가―노자
세상에 道가 통할 때는 달리는 말도 밭갈이에 쓰지만, 도가 없으면 새끼 밴 말들도 전쟁터에 끌려 나간다. -노자 <도덕경>-

-전쟁과 함께 시작된 위대한 철학-
인류 문명은 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했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일반화된 것은 1차 세계 대전 때 군용으로 널리 쓰이고 나서부터. 인터넷도 미국 국방성의 연락 체계로 개발된 것.
과거부터 큰 전쟁이 한 번 일어나면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속속 탄생했다.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다.
사람들은 목숨걸고 살 방도를 찾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서 평화로울 때는 꿈도 못 꿨던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지곤 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상은 보통 혼란한 시기에 생겨난다.
춘추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전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이때 탄생한 사상은 삶의 정곡을 정확히 찌르며, 정교한 논변을 펼쳤다. 지금까지도 동양 문명을 지탱하는 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다.(유럽과 이슬람,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문명은 세계의 3대 메이져 문명이라 생각한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
유가는 지배층의 사상. 도가는 민중의 사상.
도교로 세속화된 도가의 사상은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占집 문화로 남아 있다.
노장 사상은 자연 친화적이다.
핵심 사상인 道는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과 다르지 않다. 자연의 길. 인간에게도 마찬가지.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말고 순리대로 산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고.. 억지로 하지 말고 흘러가듯 살아라.
===========예전 헝글 1005님께서 했던 말이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습니다. 살면서 욕심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스스로 참기 힘든 상황에서 자주 떠올리는 말입니다.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다투지 않고 옆으로 비껴 흐르고,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우고나서야 다시 흐르며, 스스로를 낮춰 위로 오르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고 했습니다. 말은 쉬운데 실천은 얼마나 어렵던지...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지요. 특히 상대가 내 가치와 진정성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관계가 옆으로 새어 나갈 때는 속이 참 많이 상하죠. 그래도 좋은 마음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구덩이를 다 채운 물이 결국 그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 넘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보듯, 결국 시간이 지나면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 봅니다.============
혼란한 시대는 평온한 마을을 가만 나두지 않는다. 보호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젊은이와 물자, 세금을 거둬간다. 깡패와 유사하다.
노자는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은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이라고 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은둔의 철학에서 통치의 철학으로-
도덕경은 당시 지배층들에게 정치 실전 가이드처럼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1973년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마왕두이라는 무덤에서 노자의 도덕경이 발견되었다.
실제 도덕경 내용의 상당수는 통치술과 군사학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정치가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가깝게 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지만, 백성들은 모두 자신이 한 일이라 말한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무위자연의 가르침은 이런 식의 통치 철학으로 거듭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하라-
노자는 통치자들에게 나누고 베풀 것을 강조했다. 자신을 낮추고 베풀어 백성들이 스스로 따르게 만들라는 뜻.
’하늘의 도리는 여유가 있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더해 준다. 사람의 도리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데서 덜어서 여유 있는 쪽에 더한다.... 그러나 오직 도를 이룬 사람은 여유 있음에도 (덜어 내어) 하늘의 도리를 따른다. 성인은 무엇을 하든 소유하지 않고...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하라. 통제와 착취가 적은 곳에는 백성들이 모여들고, 충분한 자유가 주어지면 자율이 지배하는 법이다.
한나라 황제를 중심으로 통일. 무제는 유학을 국교로 삼았다. 공자는 나라를 가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백성은 아버지를 따르듯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임금은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에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방 귀족들이 이런 임금의 독재를 순순히 따를 리 없다. 유가에 대항하는 그들의 사상적 배경은 노자에 뿌리를 둔 황로학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노자의 주장을 따라.. 임금은 억지로 나서려 하지 말고 귀족들의 지배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주장.
역사는 돌고 돌게 마련이다.
동북아의 주류 사상인 유가는 이제 누적된 모순으로 쇄한다. 유가 특유의 위계 강조와 경직된 도덕 윤리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정체를 가져왔다.
반대로 노장의 가르침은 인기를 얻고 있다.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강제가 먹히지 않고 시민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현상, 근엄한 조직의 논리보다 소규모의 인간적인 커뮤니티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모습.
부드럽게 흐르는 물처럼...

* 노자.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내용.
공자가 노자에게 예에 대해 묻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녔지만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인다고 들었소. 부디 당신의 교만과 욕망, 위선과 야심을 버리시오. 내가 그대에게 해 줄 말은 이것 뿐이오’

6. 춘추 전국의 혼란을 잠재우다―상앙과 한비
내가 하,은,주 삼대를 예로 들어 군주의 도를 설득하였지만, 주군은 조급하기만 했다.
그건 너무 멀어서 기다릴 수 없소. 현명한 군주는 자기 대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원한다오
어떻게 훌륭한 왕으로 이름을 날릴 때까지 수천 년을 기다리란 말이오..
그래서 내가 강국지술, 즉 부국강병의 방법을 아뢰었더니, 그때서야 주군이 크게 기뻐하시었다. -사마천 <사기> 상앙이 발탁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느 순간 생겨난 스파르타식 학원은 인기가 지속된다. 민주 국가에서 돈 주고 매 맞으며 배우는 이 희한한 광경은 해외 토픽감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강력한 질서와 규율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특히 마음은 분명한데, 느슨한 생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 국민도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독재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지만, 무지막지한 추진력이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커 가는데 발판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형벌로 형벌을 없애다-
법가의 성공 사례는 진나라. 대륙 서북에 있는 변방국가였다.
상앙은 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 효공이 발굴한 인재다.
이목지신이라는 상앙의 일화를 보자.
10미터 남짓한 나무 하나를 도성 남문 앞에 세워 두고 공고를 붙인다. 이 나무를 옮기는 자는 상금 10금을 주겠다. 아무도 하지 않자 상금을 올린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 사람이 나무를 옮기자 상앙은 두말없이 그에게 상금을 주었다.
이는 공표된 법령은 반드시 지킨다는 국가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한 상앙의 이벤트였다.
황제가 될 태자가 법을 어기자, 그 스승에게 경(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을 쳐 버렸다. 태자가 또 잘못을 저지르자 이번에는 스승의 코를 베어 버렸다.
상앙은 형벌이 결국 형벌을 없앤다는 강한 신념으로 경죄 중벌의 원칙에 따라 사소한 일에도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상앙이 집권한지 10년도 안되어 진나라는 도적이 사라졌고, 땅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안정되었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그러나 부국강병은 엄격한 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앙은 변볍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춘추 전국 시대의 농업 생산력은 지금과 비교해보면 형편없다. 씨앗을 한 가마니 뿌려도 수확하는 양은 세 가마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백성의 고단한 삶.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마라는 구호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했던 상앙의 변법.
상앙은 어진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그 마음을 베풀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어질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말을 남겼다.
-작은 나무도 높은 언덕에 서 있으면 깊이 볼 수 있다.-
100년 후 상앙의 개혁은 한비(BC 280~233)가 이어받는다. 한비는 진시황의 통치 철학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국가 운영의 세가지 축으로 법과 세, 술을 내세운다.
무릇 재능이 있어도 권세와 지위가 없다면 현명하더라도 어리석은 자를 제어할 수 없다. 그래서 한 자밖에 안 되는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서 있으면 천 길 계곡도 내려다볼 수 있다. 이는 나무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서 있는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세는 군주의 절대 권력. 이 말은 법과 정부가 제대로 서 있으면 왕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통치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법가에는 왕의 도덕성을 중시하지 않았다. 왕이 덕을 갖추어도 신하들이 스스로 복종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하를 복종시키는 방법으로 술을 제시한다. 술은 벼슬을 주고 빼앗으며 상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신하를 길들이는 기술.
인과 예에 의한 왕도 정치 등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품성들을 강조한 유가와 달리, 법가는 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았다.
-화려한 성장과 비참한 몰락-
그러나 법가 사상가들의 말년은 거의 좋지 못했다. 상앙은 그를 밀어주던 개혁 군주 효공이 사망하자 사지가 찢겨 죽었고, 한비는 그를 견제하던 재상 이사의 모함에 걸려 옥에서 죽었다. 법가를 채택한 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진나라는 20년을 버티지 못했다.
법가를 택한 사람은 왜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개발 독재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풍요로워지면 인간다운 삶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일방적인 강요, 내핍은 통하지 않는다.
적의 위협을 과장하고 검약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은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개발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 공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 한계를 놓쳐서도 안 된다. 상앙과 한비의 나라인 진나라의 화려한 성장과 비참한 몰락은 우리에게 뼈아픈 가르침을 준다.

* 한비
역사는 진화하므로 시대의 과제에 대해서는 환경과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내세워야 한다.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하고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수주대토의 일화로 일러준다.
宋나라의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토끼 한 마리가 달려와 나무 그루터기에 와서 부딪혀 죽었다. 운좋게 토끼를 사냥한 농부는 농사 대신 다음 토끼를 기다린다. 토끼가 부딪힌 것은 우연이다. 모든 토끼가 그렇게 바보같지는 않다.
옛것이 현실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수주대토는 대책 없이 옛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빗대는 고사성어.

7. 무지한 십자군, 형제에게 칼을 겨누다―십자군 전쟁
세상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한편은 머리를 가졌으나 종교가 없고, 종교가 있는 자들은 머리가 없다. -십자군 전쟁 직전 아랍의 시인 아불 알라 알 마리-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십자군 전쟁은 두 문명 사이에 일어난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신이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로 보느냐, 단순히 선지자로 보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무슬림은 기독교도를 성서의 백성이라 여겼고, 이슬람/기독교 모두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다.
십자군 전쟁 당시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한 탓이 있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은 기독교 세계의 동쪽 끝 나라.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중앙아시에에서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셀주크 투르크 족이 11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여 비잔틴 제국을 위협한다. 이에 비잔틴 제국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절박해진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 가톨릭에 도움을 청한다.
정치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단순히 자기 나라를 도와달라고 해서 주변국의 도움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교도의 침략으로 기독교 국가가 위험에 놓여있으니 같은 종교를 믿는 나라가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무슬림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별로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무슬림은 기독교도들이 성지 순례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로마 교회의 생각은 달랐다. 교황 입장에서 비잔틴 황제의 요청은 둘 도 없는 정치적 호재였다.
유럽의 골치거리인 전투집단을 신을 위해 싸운다는 고결한 명목으로 해결하려 했다.
유럽에는 잦은 전쟁으로 기사들이 넘쳐났는데, 이들은 툭하면 폭력으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기사들은 정신을 갈고 닦으면 용기와 힘이 약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의 예식은 폭력적이었으며, 기사 자격을 수여하는 사람은 칼등으로 있는 힘을 다해 신입 기사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켰다고 한다.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한다. 이교도와 전쟁을 치르는 이상,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회가 지휘를 맡는 게 마땅하다. 끊임없이 교황에게 기어오르는 왕들을 부하로 삼아 이교도와 전쟁을 한다면 누가 윗사람인지 명확해진다.
이들에게 철저한 준비는 오히려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징표처럼 여겨졌다.
약탈자 집단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피해는 기독교를 믿는 민간인이었다.
십자군은 금융에 밝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빚을 진 사람은 채무를 덜기 위해, 군주는 그들의 재산을 가로챌 목적으로 유대인을 죽였다.
십자군이 1차 원정에 성공할 수 있는 데는 이슬람의 무지와 분열이 큰 역할을 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처음부터 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만들어 갔다.
심지어 4차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을 치기는 거녕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해 멸망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많은 유럽인은 비잔틴 제국이 로마 가톨릭이 아닌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다는 이유로 십자군에 갈채를 보낸다.
십자군은 분명 사상 운동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상보다 큰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 대항해 시대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유럽 국가들은 자신을 새로운 십자군으로 여겼다.
반면 이슬람에서 십자군은 20세기에 접어들 때까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슬림은 프랑크 족의 침입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탄생,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거치면서 이슬람 국가들은 십자군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된다.
분열된 이슬람 국가들과 그 틈을 노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 700년 전과 상황은 유사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십자군 전쟁은 교회가 저지른 죄악의 하나라고 정식으로 참회했다.
완벽한 이상은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는 절대적인 선도 악도 없다. 나는 선하고 상대는 없어져야 할 악이라는 생각은 세계를 끝없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을 뿐이다.

*십자군 전쟁이 남긴 것.
십자군 전쟁 결과 유럽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전사하여 수가 줄었다. 이는 왕권의 강화로 이어져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반면 잇따른 원정 실패로 교황의 권위는 크게 떨어진다.
1309년 교황이 프랑스 왕에게 쫓겨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는 일까지 생긴다. 그 후 로마 교회는 이전의 권력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은 문화와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성서의 권위에 눌려 학문 발전이 정체되어 있던 유럽에 비해 훨씬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수 많은 선진 문물이 전쟁과 함께 아랍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대수학(algebra), 알콜(alcool), 설탕(sugar) 등의 말들은 모두 아랍어에서 왔다.
특히 철학적으로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에서 잊혀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전쟁과 함께 다시 유럽으로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으해 체계적으로 기독교 신학에 녹아 들어, 이후 교회의 위상과 체계를 재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8. 아리스토텔레스 쇼크, 암흑시대를 흔들다―토마스 아퀴나스
나는 이제 더 이상 쓸 수가 업삳. (내가 한 신비한 체험에 비하면) 지금까지 써 온 모든 것은 한갓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신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한 후 토마스 아퀴나스가 비서에게 전한 말-

-아퀴나스, 기독교 논쟁을 종식시키다.-
예수의 언행을 기록한 신약 성서는 원래 헬라어로 쓰여 있다. 헬라어는 그리스 어의 다른 말이다.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문법과 단어로 이루어진 것이 헬라어다.
예수의 말씀이 왜 이같이 수준 낮은 언어로 적었을까.. 그 이유는 예수의 가르침이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하려다보니 그렇다.
예수의 가르침은 아주 간단한 단어와 쉬운 비유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려운 논리보다 더 크고 깊은 울림을 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제국의 종교로 인정한다. 그 뒤 유럽 1000년의 역사는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교회를 뜻하는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Catholou에서 왔다.
하지만 기독교는 성장통이 심했다. 마니교, 이슬람교 등의 외부의 적, 안에는 교파들 간에 목숨을 건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투쟁은 창조의 아버지다. 초기에 조악했던 기독교 철학은 갈등과 경쟁을 겪으면서 점차 세련된 이론으로 다듬어 졌다. 그리고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예수의 가르침을 정교한 이론 체계로 정립해 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장 중요한 이론가다.
기독교는 구원과 내세를 강조하는 사상이다. 세속적인 논리는 결국 거룩한 믿음 앞에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는 이데아계이며, 지금 세상은 불완전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플라톤 사상은 기독교에 딱 맞는 철학이다.
그러나 정교한 논리의 뒷받침 없이 이성으로 신적 인 세계, 이데아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그러니 논리를 접고 일단 믿어라. 믿으면 그 때부터 천국의 논리가 이해 될 것이다. 성서에 계시된 말씀은 무조건적으로 믿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라는 주장만 되풀이 해서 다른 종교와의 싸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11세기 유럽인은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왕국과의 전쟁과 십자군 원정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미개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거리가 오물과 악취로 가득했던 중세 유럽 도시와 달리, 이슬람이 지배하던 코르도바(에스파냐 남부에 위치한 도시) 같은 도시는 수많은 공중 목욕탕과 인공 분수, 깔끔한 정원에 난방시설까지 완비된 집들이 즐비했다.
천문학, 수학, 기술 수준도 유럽보다 한 수 위였다.
아랍에는 유럽인들이 잊고 지냈던 한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신앙과 이성은 신에게 가는 서로 다른 길-
일상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기존의 믿음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도 천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세계에 대해 철저하게 이성으로 따져 묻는 것은 신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오히려 논리적인 사유는 신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되면 신앙과 이성은 대립되기보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가 된다.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신에 대해 캐묻고 더 많이 알게 되면, 믿음은 오히려 강해진다.
믿습니다. 식의 묻지마 신학을 냉철한 교리가 보완해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성은 비로소 신앙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210년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1366년 전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아야만 신학 교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공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사상이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등 이교도와의 전쟁, 교황과 왕 사이의 투쟁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무엇보다 현실을 보는 냉정한 눈이 필요했다.
논리학의 창시자이자 자연 과학, 정치학의 선구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둘을 모두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중세의 분위기는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며, 말 한마디 잘못으로 죽을 수 있는 분위기다.
스콜라 철학의 왕 토마스 아퀴나스는 황소고집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독서가이자 논쟁가였다. 1252년 파리 대학의 신학과 교수로 초빙. 당시 대학교육은 대부분 토론식으로 이루어졌다.
사상의 전쟁터였던 파리 대학에서 그는 두드러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그는 치밀하고 냉철한 논리로 상대 교파의 대표를 격파했다.
게다가 신생 수도 단체, 게다가 새로운 사상을 들고 나온 교파는 자칫 이단으로 몰리기 쉽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냉엄한 논리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다시 정립했다.
이교도 대전, 신학 대전.. 아퀴나스는 가톨릭이 보편적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더구나 그는 균형 감각이 뛰어났다. 교황과 황제의 권력 투쟁을 중용에 가까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결국 국가와 교회는 대립한다기보다 신을 향해 가는 서로 다른 두 길을 뿐이라는 것이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이슬람 사회에 많은 빚을 졌다. 아랍 세계는 연금술, 수학 등 선진 문물을 유럽에 전해주었다.
반변 이슬람에서 성숙시킨 문명의 씨앗은 고대 그리스에서 왔다.
서구와 이슬람 문명은 이처럼 역사 속에서 문화 자원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도 유럽에서 싹 텄지만, 이를 1000년 가까이 보존하고 연구한 문명은 이슬람이었다.
그리고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의 기독교 교회를 변화시켰다.

* 학자 중의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끊임없는 논쟁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사상은 한 명의 독창적인 사상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철학보다 파급력이 크다. 계속된 공격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세우는 사상이 설득력이 있다는 반증. 공격과 방어 가운데 이론의 오류를 수정해가며 더욱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강한 승부사적 기질과 초인적 지구력이 없었다면 방대한 분량의 이교도 대전과 신학 대전은 출산하기 어려웠다.
황소고집이 어울리는 우직한 학자다.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그를 잔치에 초대했다.
왕 곁에 앉는 은전이 베풀어졌지만, 떠들썩한 잔치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탁자를 꽝 내리치더니 그렇다. 이것으로 마니교는 끝났다고 외쳤다.
옆에 있는 수도원장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워 주고 나서야 그는 사색에서 벗어나 눈앞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퀴나스의 뛰어난 집중력을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대건설 사장일 당시, 운전기사가 문을 열고 10분동안 기다리도록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안하무인 혹은 경우없음을 비난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머리속으로 치열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무언가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은 다르다.
이랬던 그도 말년에 신을 깨닫는 신비 체험을 한 후로, 자신의 지식은 지푸라기보다 못하다고 고백하고 집필을 중단한다. 이후 명상과 기도 속에서 삶을 보내다 숨을 거둔다.

9. 조선왕조 500년의 힘―주자학
이렇게 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주자 여섯살 때 효경을 읽고 나무에 이 문구를 새기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vs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민주 공화국과 사회주의 국가. 이 두 단어는 우리가 왜 남북으로 갈라졌는지, 그동안 목숨 건 체제 경쟁을 벌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한 마디로 설명해준다.
국가 정체성은 우리 생활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역사를 설명할 때도 국가 정체성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언제 전쟁을 했는지, 무역은 누구와 했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무만 볼 뿐.. 숲은 볼 수 없다.
한 시대, 한 나라를 지배했던 국가 이념을 먼저 알고 나면 그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진 사대부의 통치 매뉴얼-
고려는 족벌 세습 경영의 폐해가 갈 때까지 간 상황. 세습 귀족들이 주요 관직을 돌려가며 맡았고, 기득권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 어떤 개혁도 먹혀들지 않았다.
신진사대부는 과거로 실력을 인정받아 당당하게 관직에 들어온 사람이다. 이들이 보았던 유교 경전은 논어, 대학, 중용, 맹자에 담긴 공자의 가르침을 시험 범위로 하였다.
유학의 기본이 되는 인자함과 예의바름을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왕도정치의 이념.
부패한 귀족은 이들의 진출을 막았고, 신진 사대부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쿠데타를 성공한다.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
주자학이란... 한마디로 주자가 새롭게 해석한 유학이다.
공자와 맹자의 말씀은 자신을 누르고 예의에 맞게 행동하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늘 배려하라 처럼 소박한 가르침이었다. 주자는 이를 철학적으로 훨씬 세련되게 다듬었다. 태극이론, 음양, 이기, 심성론 등 어려운 용어가 나온다. 자연과학과 심리학의 도움으로 도덕 이론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였다는 정도로 이해하자.
위기지학 : 공부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데 있지,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다.
격물치지 : 인격 수양을 위해 먼저 사물을 연구하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무엇이 진정 옳은지 그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신진 사대부들이 우월한 자들임을 보여주는 핵심 이론이다.)
신진사대부가 명나라를 칠 수 없는 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대의에 어긋남을 내세운다.
주자학 세계에서 자유와 평등은 방종과 무절서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도덕과 예절에 따라 질서가 잡혀 있어야 한다. 윗 사람의 권위가 서 있어야 가정이 안정되듯, 세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위계가 잡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자학의 이름은 성문의 이름을 정하는 데도 반영된다. 동대문 : 흥仁문, 서대문 : 돈義문, 남대문 : 숭禮,문, 북대문 : 홍智문, 그 문을 열고 닫게 하던 종이 있는 자리가 보信각이다.
인의예지신. 이는 곧 유교의 생활 원리인 오상(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조선의 사대부는 권력의 정당성이 학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통해 마음을 수양하지 못한 군주는 왕다운 왕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왕의 일과 중 상당 부분은 독서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고, 경연(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연하는 일) 등에서 자신의 학식을 끊임없이 신하들에게 입증해야 했다.
사람됨의 도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 이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수양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의 권력은 왕과 신하 간의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 속에서 유지 되었다.
-타락하는 이상, 왕조의 붕괴-
그러나 주자학은 통치 철학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니, 학문과 인격 수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주자학적 태도는 소모적인 당파싸움의 원인이 되곤했다. 정책대결보다 명분 싸움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학의 지식이란 엄밀히 말해서, 지도자의 품성에 대한 것이지 일상 실무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정책적인 실수를 했다는 것보다 인격이나 예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더 큰 공격거리가 되곤 했다.
게다가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위기지학의 이념은 시간이 갈수록 화석처럼 굳어 갔다.
유학의 수많은 명분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제사 등 예식도 본래의 순수한 뜻을 잃어버리고 양반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그래서 백성을 옥죄기 위한 명분이 되어 버렸다.
왕권과 臣權의 조화라는 정치 구조도, 조선 후기에 와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몇몇 소수 가문이 권력을 틀어쥐고 세도 정치를 펴는 가운데, 위기지학의 이념도 격물치지의 정신도 설 자리를 잃고 만다. 500년전의 고려와 닮아 있었다.
주자의 이상은 우리 생활 곳곳에 일상의 예법, 제사 등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지만, 서구의 합리성이 세계의 표준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 실학, 주자학의 대안에서 초라한 몰락까지
16,7세기의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조선 지도층의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유학의 이념인 군사부일체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같다는 뜻이지만, 임금이라는 부모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백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쳐 버렸다. 자식을 버렸던 부모가 돌아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병자호란은 이념이 만든 인재였다. 당연히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으나, 조선 사대부는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명분에 집착하여 전쟁을 초래했다.
국가 이념으로 성리학의 한계는 분명해졌지만, 집권 계층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을 불신하기 시작한 백성을 예법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 몰아붙였고, 예학이 본격화된 것인 이때부터다.
복잡한 예법을 모르는 상놈은 예의를 제대로 아는 양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예학이 강조된 데는 이런 논리가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사회는 변하고 있다. 이모작, 이양법이 도입되어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고, 농민 중에도 부농이 탄생한다.
성리학적 신분 질서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든 사상은 한 시대의 절실한 필요 속에서 탄생하곤 한다. 17세기 조선은 성리학을 대신할 새로운 사상을 요청하고 있었다. 실학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17세기 이후 서양의 발전한 학문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수입되었고,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이들이 가르쳐준 역학이나 천문은 농사와 직접 연관되는 지식이었다. 더구나 과학 기술은 호기심 차원을 넘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한 사항이다.
권력과 거리가 멀었던 실학자들은 대부분 향토에 머무르며 백성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체험하였기에, 이들은 토지 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토지는 점점 부유한 자에게 집중되고, 땅을 잃은 농민은 노비로 전락해, 세금과 군역에 종사할 장정이 줄고, 국력이 약해졌다.
가진 자들은 군역과 조세를 교묘히 빠져나간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현실과 꼭 닮은 꼴이다.
그러나 실학자의 현실 개혁은 상상에 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를 변혁할만한 힘이 없다.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이들은 모두 성리학 신봉자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구태여 나서서 현실을 개혁할 이유가 있을까...
실학은 사악한 학문으로 규정되어 실학자는 정치일선에서 제거된다. 실학은 현실의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현실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었던 몽상가들의 대안으로 그치고 말았다.

10. 17세기, 이성의 빅뱅 시대를 열다―데카르트
아주 유능하고 교활한 기만자가 있어 나를 철저하게 속인다고 해보자. 그가 마음껏 나를 속이게 해보자. 그러나 내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 <성찰>-

-데카르트, 신앙을 밀어내고 이성을 세우다-
논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재판관이다. 정답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때면 가장 논리적인 쪽이 승리를 거둔다.
합리성은 현대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누군가 공자의 가르침을 ？육？ 있는 훈장에게 ’그건 아닙니다. 이치로 따져 보자면...’하고 반박하면 예의도 모르는 무례한 놈이라며 단박에 회초리가 날아왔을 터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몇백 년 전만해도 기독교가 지배하는 서양에도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은 항상 교회에 있었다. 아무리 이치에 맞아도 성경과 다르면 곧 틀린 주장이었다.
데카르트는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영웅은 항상 혼란 속에서 태어난다. 사상의 영웅도 그렇다. 옛 질서가 무너졌지만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황 가운데,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갈 이념을 제시하는 사람.
데카르트 당시 1000년을 지배한 기독교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진영으로 나누어진 기독교는 급기야 30년 전쟁(1618~1648)이란 비극을 일으켜 사람들을 혼란과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다.
계속되는 탐험과 지리상의 발견은 성경의 권위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다.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세계의 모습이 성경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계속 확인시켜 주었다.
진리의 나무가 바뀐다. 학문의 목적은 천국이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을 이용한 풍요로운 생활과 품위 있는 삶에 있음을 확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637년 방법서설. 학문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을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되는 것에 있다.
데카르트는 확실한게 나놀 때까지 무조건 의심하는 방법을 썼다. 방법적 회의다.
데카르트의 방식은 지금은 널리 이용된다. 999가지를 설명할 수 있어도 한 가지를 해명할 수 없으면 완전한 학설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학을 학문의 모델로 삼았다. 어떤 편겨도 존재할 수 없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학문인 수학에서 확실하고 엄밀한 학문의 모델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참인 것만 받아 들일 것. 문제를 다루기 쉽도록 가능한 작은 부부능로 나누어 검토할 것. 분석으로 밝혀진 단순한 진리에서 순서를 좇아 복잡한 것에 이를 것. 혹시 빠뜨린 것이 없는지 검토할 것.
한 마디로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해 가장 확실한 것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하자는 뜻.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지식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이것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러면 적어도 생각하는 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함, 곧 인간의 이성이 확실성의 근거가 되었다. 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기준이 더 이상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신이 독점했던 지혜의 권위를 인간이 빼앗은 것이다.
인간은 성경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릴 수 있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는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발표했다 곤욕을 치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방법 서설 처럼 자신의 주된 사상이 담겨 있는 책을 모두 이름을 감추고 출간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도 채 안되어 유럽을 평정했다. 문학과 역사보다 수학을, 시나 사상보다 과학 교육을 중시하기 시작한 현상.
한 시대를 풍미하는 히트 상품은 시대 경향을 정확하게 읽었을 때 탄생하는 법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그 뒤 스피노자(1632~1677), 라이프니츠(1646~1716(로 이어지는 대륙 합리론이란 학파를 낳았다.
합리론이란 모든 중심에 인간의 이성을 두고 논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학파.
영국의 베이컨(1561~1626)을 중심으로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영국 경험론과 함께 17세기 이후 서양의 근대를 지배한 양대 철학이었다.
두 학파는 경험과 이성을 지지하여 과학기술이 성서의 굴레를 벗고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데카르트 이후 서양 300년은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성과 논리는 또다시 비판을 받고 있다. 세상일은 이성만 갖고 냉철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 선언했다.(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
데카르트가 추구한 이성은 뼈와 살이 없다. 수학처럼 엄밀하고 정확하나 일말의 동정도 감정도 없는 차디찬 이성이다.
21세기 문명은 이성을 넘어 감성이 대접받는 시대로 다시금 가고 있다.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데카르트는 모더니즘의 시조격이다. 모더니즘은 합리적, 이성적, 인간 중심의 생각. 서양 근대 문명은 그 자체가 모더니즘의 구현이다.
합리적인 과학이 모든 풍습과 미신을 대신했고,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말 그대로 모더니즘의 특징을 뒤로하고 나타난 사조다. 모더니즘이 소홀히 한 감성을 부활시켰다. 인간 중심의 해석을 거부한다. 탈 중심, 탈 이성적 사고..

11. 자유와 평등으로 치룬 인류의 성인식―프랑스 혁명
누가 가장 위대한 인물인가에 대해 논쟁을 한다면... 아이작 뉴튼이라고 대답하겠다. 우리는 진리의 힘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만 폭력으로 우리의 정신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볼테르 영국 체류 중 뉴턴을 평하며-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믿음은 아주 희한한 견해에 속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왕, 귀족,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프랑스 혁명은 이런 상식을 뒤집어 놓은 대사건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
인간은 모두 존엄하며, 누구의 자유도 부당하게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천 년 간 이어져 왔던 신분에 따른 차별을 뒤엎는 작업이 결코 평탄했을 리 없다.
18세기, 전체 유럽 인구의 1/5는 프랑스에 있다. 경제 선진국=민주 국가라는 등식처럼 민주주의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싹트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혁명 당시 서유럽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졌다.(영국은 이미 권리 청원, 권리 장전, 명예 혁명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취하고, 경제가 급속 성장했다.)
경제 성장으로 공업 생산과 시장 규모도 크게 확대. 부를 쌓은 상인과 법률가 등 이른바 평민 부르주아 역시 많이 늘어났다.
실력과 재산을 갖춘 이들이 귀족의 오만을 감당하기란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앙시에 레짐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모순된 사회. 생산자 계층인 3계급이 1,2 계급을 떠받치는 사회
20,30대가 많은 인구 구조는 혁명이 닐어날 확률이 높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은 프랑스 지식인의 저항 정신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왕권 신수설 vs 사회 계약설-
그러나 아무리 시대 여건이 뒷받침해준다 해도 철학이 없으면 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 철학은 폭동과 혁명을 구분시켜주는 중요한 잣대다. 이념없이 폭발한 시위와 반발은 그 순간이 지나면 이내 잠잠해지지만, 철학은 불만에 차 들고 일어난 시민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로드 맵을 제공한다.
당시 권력자들은 왕권 신수설을 (필머) 받아 들인다.
하지만 존 로크(1632~1704)는 사회 계약설을 제시한다. 왕이 될 권리는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왕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로크는 국왕도 정부도 없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여 권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로크는 단호하게 말한다. 개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폭력을 써서라도 몰아내야 한다고. 곧 혁명을 일으켜서라도 국민의 뜻을 살릴 수 있는 통치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
게다가 당시는 과학의 발달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왕권신수설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권위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볼테르 같은 인기 작가도 귀족과 성직자를 비꼬는 글로 큰 반응을 얻고 있던 시대였다. 대중 사이에 특권층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혁명은 그 시대의 가장 민감한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 프랑스 왕정은 수많은 전쟁과 낭비벽, 미국 독립 전쟁의 지원 등으로 재정 적자에 빠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이 16세(1754~1793)는 100년 이상 열리지 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한다. 1 신분인 성직자, 2신분인 귀족, 3신분인 평민. 1,2 신분은 힘을 합쳐 3신분을 억누르려 하지만, 세력이 커진 3신분은 더 이상 성직자와 귀족들에게 순순히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
1789년 5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테니스 코트에서 국민 의회를 결성한다.
1789년 7월 14일 혼란스런 정세와 치솟는 빵값에 분노한 파리 민중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3신분을 길들이기 위해 왕과 귀족들이 비밀 회의를 열어 빵값을 일부러 올렸다는 뜬 소문이 거리에 퍼져 있었다.
국민 의회는 1789년 8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는 인권 선언을 발표한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주권으 원천은 국민에게 있다. 자유의 제약은 오직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사상과 의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의 하나다. 소유권은 그 무엇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혁명은 이성적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막으려는 주변국과 프랑스와의 전쟁.
내부적으로 이런 혼란을 틈타 왕이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는 음모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
혼란한 상황에서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안건보다 가장 극단적인 선동이 호응을 얻기 쉽다.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살해를 혁명의 수단으로 삼는 끔찍한 공포 정치를 단행한다.
1793년 루이 16세 마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혁명의 이상은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지만, 혁명의 현실은 잔혹하고 처참했다.
-자유를 향한 인류의 성인식-
결과만 보면 프랑스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1815년 프랑스는 루이 16세으 동생인 루이 18세(1755~1824)가 다스르는 왕정 체제로 돌아간다.
혁명의 잔인함과 피로감은 과거 질서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의 다른 왕국에 맞설 힘이 없었다.
그러나 혁명 당시 일어났던 평등을 향한 개혁 정책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와 법 앞에서의 평등은 이미 시대의 대세였기 때문이다.
성숙한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혁명 이후 서양 사상이 성년의 철학으로 커 나가는 데 18세기 산업 혁명으로 경제가 급성장했다는 사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산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절대 권력자 밑에서 욕구의 절제를 강요하던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혁명은 개인의 가능성이 억눌려 있던 세상에서, 자유를 마음껏 펼치는 성숙한 개인들이 평등한 사회로 넘어가는 인류의 성인식이라 할 수 있다.

*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준 사상들
루소의 사회 계약론
국가 권력은 국민 개개인이 국가에 복종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성립한다. 개개인이 가진 의지와 자유, 즉 개별 의지.
개별 의지 하나하나가 모이면 국가 전체의 의지, 즉 일반 의지
그러나 국가의 뜻은 곧 국민의 뜻은 아니다. 그는 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를 구분한다.
전체 의지란 다수으 힘만 ？굅？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말한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뜻을 대표하고 있음을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권력을 빌려 개별 의지를 마치 일반 의지인 양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루소는 지배 계층이 그들만의 전체 의지를 마치 일반 의지인 양 왜곡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체 국구 성원을 착취하고 있다면, 국민은 당연히 그들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소의 일반 의지는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던 부르봉 절대 왕정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발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철학적 상징을 제공해 주었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
과학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개혁하려고 했다. 계몽 사상가 중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사람은 볼테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귀족과 교회의 불합리한 권력에 대해 수많은 풍자를 남겼다. 인간 이성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확신했으며, 이에 기초해서 신분과 종교적 믿음으로 왜곡되어 있던 당시의 사회 질서를 바로잡으려 했다.

12. 자본의 멱살을 거머쥔 공산주의라는 유령―마르크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수치스럽게 감추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모든 사회적 제약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 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마르크스, 앵겔스 <공산당 선언>-

-세상을 떠도는 공산주의 유령-
20세기. 칼 마르크스의 시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나라와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나라의 대립을 보면 분명하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세상의 1/3은 그의 사상이 진리인 세상에서, 그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종교나 사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다.
결국 실패로 끝난 정치 실험.
그런데 마르크스는 여전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상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 떨칠수록 그가 지적한 자본의 문제들은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산 사회는 인류의 오랜 꿈을 담고 있다.
공산 사회는 차별이나 억압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말한다. 플라톤의 국가나 토머스 모어(1477~1535)의 유토피아도 모두 공산 사회라는 꿈을 담고 있는 책이다.
산업 혁명은 역사상 최초로 사람들에게 계급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계급이란 일종의 패거라.
뿔뿔이 흗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동질감이 생기기 어렵다. 따라서 계급이란 패거리가 생기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여 있어야 한다.
증기 기관의 등장, 이를 이용한 대규모 모직공장의 출현은 노동자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결과.
원료인 양털을 얻기 위한 인클로져 운동으로 농민은 도시로 몰려난다. 이들이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 계급을 형성했다.
19세기 도시 노동자의 생활은 지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혹했다. 그 당시 소설을 보면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나온다.
자본가들은 쾌적한 교외로 나가 살고, 도시에는 가난한 빈민, 프롤레타리아가 산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대립과 갈등도 점점 심해졌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삶이 고단할수록 사람들은 평등하고 억압없는 세상을 꿈꾸게 마련이다.
자본가들도 점차 거세지는 저항에 맞서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세우기 시작한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경제적 문제의 책임과 권리는 각자에게 있다는 경제적 개인주의, 정부의 간섭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자유방임주의. 자유 경쟁, 자유 무역..
극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못 가진 자들이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으로 치닫을수록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위태로운 갈등을 해소해줄 사상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였지만,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면밀히 분석 후 자본주의는 내적인 결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 결론내렸다.
마르크스는 물질의 발전이 인류 역사를 이뤄간다는 사적 유물론(역사 발전의 근본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1인당 국민 소득 1만 달러인 나라와 2만 달러의 나라 사이에는 가치관과 문화 등에서 꼭 그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약육 강식의 논리에서 강자만 살아남는 현실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불황이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에.
하지만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다.
지도는 모르는 길을 찾아가라고 만든 것이지 길을 지도처럼 바꾸라고 만든 것은 아니다.
역사상 공산주의 나라들이 범했던 오류는 이와 같았다.
역사 발전의 경로를 따라 가기보다, 인위적으로 자본주의를 붕괴시켜 공산 사회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는 문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예언은 자본주의의 백신이었다.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가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자본주의를 더욱 강하고 건전하게 만들었다.
(이는 로마인 이야기의 한니발과 같다. 그는 로마를 증오하여 멸망시키려 했지만, 결국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지중해를 제패하게 된다. )

* 혁명가 마르크스의 생애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이해력으로 여러 학문 분야의 책을 미친 듯이 읽어 나간다.
1841년 예나 대학으로 옮긴 그는 한 번도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박사 학위를 따낸다.
혁명가를 좋아할 정부는 없다.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며, 딸이 죽었을 때 관을 살 돈이 없을 정도였다.
극도로 빈곤한 생활 속에서 자본론을 썼다.

13.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주다―공리주의
전쟁과 폭풍우는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 소재이기는 하다. 그러나 삶에서 평화와 정적이 훨씬 견디기 좋다. -제레미 벤담-
공상적 사회주의가 퍼지게 되면 문명사회는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저항을 포기할 정도로 엄청난 반달족의 침입보다 더 엄청난 재앙일 것입니다. -J. S 밀-

세계의 기준은 미국이다. 미국식 자유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시장을 바탕으로 한 미국식 자유 경쟁은 공정함의 기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자 보호 의무 같은 인류의 덕목도 비난받을 수 있다.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불공정 행위로 세계 무역기구의 지탄을 받듯이.
패권을 쥔 국가는 한 시대의 가치관을 결정한다. 그뿐 아니라 나라가 몰락한 뒤에도 인류 사상의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로마 제국의 세계 시민주의와 한 나라의 유교 사상을 들 수 있다.
영국은 현대 자본주의의 어머니다. 18세기 산업 혁명은 공업 생산량을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그에 따라 원료 수입과 상품 수출을 위한 상업이 발달했다.
많은 식민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영국적 가치관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철학이다.
당시 영국을 사로잡은 철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utiltarianism)이다.
칸트(1724~1804)나 헤겔 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한 독일 철학자들은 대학 교수로 평생 동안 철학만 했던 사람이다. 반면 영국은 직업 철학자가 드물다. 로크나 흄(1711~1776)같은 영국의 대표적 철학자들은 사업이나 정치, 외교에 더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공리주의 창시자인 벤담(1748~1832) 또한 정치가로서, 제자인 밀(1806~1873)은 평생 동안 동인도 회사의 간부를 지냈다.
사업과 정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이 공허한 이상에만 매달리고 있을 리는 없을 터. 이들은 현실 논리에 대단히 밝았으며, 경험에 바탕을 둔 실용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철학사가들은 이 시대의 영국 사상을 흔히 영국 경험론이라 부른다.
벤담은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고 했다.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란 자신 뿐 아니라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행동이다.
악한 행동이란 결과적으로 자신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벤담의 주장은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영국은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고, 세상은 여전히 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은 신의 명령에 따르는 게 선이고, 욕구는 관습에 따라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쾌락이 선이고,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주는 게 올바른 행위라는 벤담의 주장은 세상을 뒤엎을 만큼 획기적이고 과감한 발상이었다.
귀족 성직자에 대한 특혜가 당연했던 시절, 누구나 쾌락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 모두의 행복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신분 질서를 뒤집는 혁명적인 발언이었던 것.
정치가로서도 보통 선거와 비밀 선거 같은 파격적인 개혁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 주다-
그러나 벤담은 결코 혁명가가 아니다. 이미 빈사 상태에 있는 종교와 금욕적 관습에 사망 선고를 내린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벤담은 박해를 받기보다 오히려 인기가 치솟았다. 새로운 경제 상황은 벤담식의 사고방식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벤담의 생각은 자본주의의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대 다수고 꼭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도 최대 행복 역시 반드시 모든 이에게 쾌락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벤담은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부터 걱정하지 마라. 파이 자체를 키우면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는 지금의 대기업 논리와 일치한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이익만 위해 다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 부가 커져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는 논리아.
쾌락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제 멋대로 풀어 놓아도 결국 인간은 정의나 선, 도덕 같은 인간다운 가치를 스스로 추구하게 된다는 것.
이런 성황에서라면 국가나 교회가 나설 자리가 없다. 자본가들의 의지에 따라 경제 활동을 북돋아 준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풀릴테니까.
-타인 위해의 원칙-
정부가 개인의 생활에 간섭할 수 있는 경우는,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곧 명확하게 상대를 해치는 경우가 아니면, 국가는 개인의 재산이나 권리를 절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지만, 타인 위해의 원칙에 따르면, 설사 다수가 결정한 사안이라 해도 소수의 권리를 함부로 제약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원칙은 소수자를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밀은 여성 차별이 당연한 시대에 남녀평등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노동자 계층의 권리를 당차게 내세웠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자유론(1859)에서 아웃사이더 이론을 펼친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이들은 주어전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체제에 대해 반론을 펼 수 있는 사람. 상식을 깨뜨리는 이들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밀은 관습이나 상식에 반하는 의견도 자유롭게 제기하고 토론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는 자본가의 권리를 옹호하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대게 사회에서 가진 자는 소수고, 못 가진 자는 다수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리인 다수결에 충실히 따른다면 대다수 빈곤층이 부유층을 억누를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역설적으로 타인 위해의 원칙은 이 경우에도 소수를 보호하는 훌륭한 방어막이 된다.
다수라 할지라도 절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 자본가의 재산 상속, 시장 독점 등에 국가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이유를 밀은 훌륭하게 제시해준 것이다.
-상식이 되어 버린 철학-
공리주의는 지금도 시대를 주름잡는 철학이다. 쾌락은 선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쾌락을 줄수록 올바른 행위라는 공리주의 생각. 이는 상식이다.
공기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지만, 일상에서 공기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러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에 대한 반성은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다.

* 밀의 자유론
생각에 대한 억압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그런 행위가 지금 세대뿐 아니라 미래 인류에게까지 강도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견이 옳다면 억압하는 행위는 오류를 밝히고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았는 것. 설령 잘못된 견해라 해도 의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잘못된 견해와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잃는 것이기 ？？문이다.
천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다. 천재는 다른 이들보다 더 개인적이기 때문에 사회가 쳐놓은 작은 그물 안으로 들어가기를 유독 두려워한다. 만일 그들이 감수해야 할 처벌이 두려워 그 작은 틀 속으로 억지로 들어가 살기로 결심한다면, 그래서 그런 억압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사장시킨다면 사회는 천재들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14. 절대정신이 지배한 철학자―헤겔
시대의 주류가 되는 철학은 히트 상품과 유사한 데가 있다. 경기가 좋을 때 잘 나가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불황기에 잘 나가는 제품도 있듯, 혼란기와 번영기에 유행하는 철학이 서로 다르다.
혼란기에는 주로 강력한 변혁 의지로 가득찬 카리스마 넘치는 철학이, 번영기에는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이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19세기. 식민지 쟁탈과 서구 열강들의 전쟁, 2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으로 불안했던 20세기를 주름잡은 철학자는..
헤겔이다.
히틀러 같은 국가 사회주의자(기존의 자본주의 체제 않아 국가의 간섭으로 사회주의를 실현시키려는 사람들)들, 마르크스 같은 공산주의자들 역시 헤겔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1960년대 실존 철학의 여러 갈래도 헤겔 사상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헤겔의 철학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을까.. 독일은 보통 문학, 음악, 철학의 나라로 통한다.(강력한 통일 국가가 없어서 권력의 틈 사이에서 이런 분야가 발전했다고 한다)
워낙 힘이 없는 지역이다보니, 아무나 끼어들어 급기야는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싸움터가 되어 버렸다.
독실한 신재는 삶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 중에서 많이 나오는 법이다. 나의 고생이 단순한 고생일 뿐이라면 삶은 고달픈 여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고난이 신이 나를 일깨우기 위해 예정해 놓은 과정이라면... 가난과 고통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약소국의 젊은이 헤겔이 품은 생각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인류 역사를 자유가 실현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역사의 중심은 오직 한 사람의 전제 군주만이 자유로웠던 동방제국(중국의 진나라 시황제)에서 소수가 자유로웠던 그리스-로마 문명, 다시 모두가 자유로운 독일 사회로 옮겨 간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혼란은 더 큰 자유를 낳기 위한 역사 진통의 과정일 뿐. 조국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위대한 국가로 거듭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니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청년 헤겔은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유의 확대 과정의 실현. 이를 기념하여 튀빙겐 숲에 자유의 나무를 심기까지 했다.
-나는 절대 정신을 보았다.-
헤겔의 사상은 난해하다.
수학이 어려운 것과 똑같은 이치다. 수학은 복답한 듯하지만, 실은 세상의 여러 움직임을 가장 일관되고 명쾌하게 풀어 보여줄 수 있는 학문이다. 헤겔 철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사고, 역사, 사회 등 모든 면을 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거대하면서 완결된 철학 체계를 만들려고 했다.
모든 것을 적용할 수 있으려면 이론은 구체적인 몇몇 사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되도록 추상적이어야 세상의 여러 측면에 고루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만물을 끌어안으려고 뼈와 살을 버리고 정신의 영역으로 치솟아 올라가는 헤겔의 철학이 결코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헤겔 철학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헤겔의 주장은 한 마디로 '역사란 절대 정신의 자기 실현 과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조각 작품을 예로 보자. 처음 조각 작품은 예술가의 머릿속에만 있다. 그러다 예술가가 돌덩이에 정을 대눈 순간부터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작품은 점점 눈에 보이는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절대정신의 자기 실현도 이와 똑같다. 절대정신이란 신의 섭리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를 통해 점점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추상적인 이상이 역사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된 사례였다.
절대 정신은 마침내 변화와 투쟁의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완성시킬 터이다.
어떤 이는 카이사르나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영웅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이성의 간교한 지혜가 작용한 결과다. 월급쟁이는 먹고 살기 위한 자신의 고단한 일이 세계 경제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그래도 변화는 이런 세세한 작업들이 모여서 이루어 진다. 마찬가지로 때가 맞지 않으면 결코 영웅이 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절대정신은 개개인과 구체적인 사건들로 실현되고 있다는 의미다.
말년에 헤겔은 안정을 찾는다. 20세 연하의 처녀와 결혼하고.. 젊었을 때 투사였던 사람이 말년에 보수 논객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헤겔 역시 그랬다.
당시 독일은 점점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상업을 중시하고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넓혔다. 하지만 덩치가 크다고 모두 위대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가 안정될수록 국가의 머리가 될 만한 사상과 철학, 곧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이념의 구심점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법이다.
분열되기 쉬운 시민 사회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좀 더 고차원의 공동체. 그것을 국가로 보았고, 국가를 인간의 도리 자체라고 불렀다. 그리고 헤겔에게 국가는 프로이센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국가에 절대 복종해야 개개인의 신상에도 좋고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상업의 발달은 자유로운 인간관계와 개인 중심의 가치관을, 군사력으로 주변 국가와 영토 싸움을 하는 것은 집단 중심의 사고와 개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이 모순된 요구를 헤겔은 국가를 역사 벌전의 최고 단계에 놓음으로써 간단히 해결했던 것이다. 그 뒤 헤겔은 프로이센 철학의 대변자로 이름을 날렸다.
-헤겔이 역사에 남긴 것-
헤겔 이후의 시대는 이념 과잉의 시대나 다름없다.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마르크스 공산주의 등.
히틀러의 생각은 헤겔 사상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나치의 지배를 제 3제국이라 불렀다. 게르만이 만든 제 1 제국은 신성로마 제국이고, 제 2제국은 헤겔이 기반을 닦고 비스마르크(1815~1898)가 완성시킨 프로이센이다. 그리고 히틀러의 제국은 마침내 고난을 완전히 털고 일어선 제 3제국이라는 것.
역사를 절대 정신의 실현이라고 보는 헤겔의 관점이 히틀러에게 암암리에 뭍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헤겔 사상에 기반을 둔 철학은 하나같이 거대하고 고상한 이념을 위해 개인이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일본 제국주의에도 영향을 끼쳤다. 베끼기 천재 일본이 독일에서 수입한 것은 군대 규율과 헤겔 철학이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는 가미카제 정신..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 21세기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1952~ )의 말처럼 역사의 종말 시대다.
이제 거창한 이념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거꾸로 개개인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념을 찾아내야 한다.
안타깝게도 21세기에는 이런 필요를 충족해줄 만한 철학의 거장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민족, 이념, 국가라는 거대 이념의 틀을 벗어 버리지 못한 채 죄없는 사람을 수없이 희생시키는 테러리스트를 보며, 철학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 헤겔의 변증법
헤겔은 <논리학>에서 모든 현실과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변증법으로 파악했다. 변증법은 참과 거짓이 서로 분명히 구분되는 논리의 세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하나의 주장이 참이면 다른 주장은 거짓인가? 둘 다 옳을 수 있다.
이 컵은 둥글다가 참이면, 이 컵은 둥글지 않다는 반드시 거짓이다. 나중에 시간을 두고 여러 관점에서 보면 컵은 둥글뿐 아니라 원통형이다라는 사실이 보인다. 둘다 옳다.
이와 같이 헤겔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 안에 모순을 담고 있으며, 그 모순은 진보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세상의 발전 과정을 그는 변증법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변증법은 正反合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것이 모순을 지닌 채로 있는 것을 正, 이 정을 부정하여 모순을 털어낸 상태를 反, 반이 모순을 털어버렸다고 하지만, 그것도 세상 안에 있다면 약점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의 상태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한 단계 높아진 결과인 合으로 나아간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진리에 가깝게 나아간다.

15. 히틀러를 위한 철학자?―니체
-허무주의 그리고 신의 죽음-
지금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왕의 식탁 위에나 오를 법한 각종 농수산물을 우리는 일사으이 음식으로 먹고 있다. 식당에는 후추가 그냥 있다. 한 겨울에 따뜻한 물로 매일 목욕하는 것도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명이 더 발전하게 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1960~70년대는 정의 사회 건설이라는 큰 포부와 이상을 품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지금 젊은이의 책상에는 취업을 위한 영어 교재만 있다. 여가시간에도 컴퓨터 게임과 만화보기로 소일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작아진다. 원대한 꿈과 이상은 스러져 가고 문화는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타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삶은 더 권태로워진다. 경제는 발전하고 문명은 진보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아질수록 더 불행해진다. 문명의 역설은 어디에서 생긴 걸까..
니체는 명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그는 현대 문명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니체는 외친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초인 중심의 새로운 도덕이 필요하다. 이것의 의미는...
-인간 사회는 가축 떼가 되어 버렸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는 발전과 혼란이 함께하던 시기로, 한편에는 자본주의가 맹렬한 속도로 나아가고, 산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돈의 위력은 하루가 다르게 사회 곳곳을 지배해 갔다.
자유주의 사상.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국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삶에 쓸데없이 끼어들면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소외된 자들이 힘을 모았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착취당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평등한 사회를 꿈꿨다. 노동하는 다수가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그것이 진정 제대로 된 세상일 터이다. 1848년 마르크스/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한다. 사회주의는 바로 노동자들의 생각이 담긴 이념이다.
니체의 조국 독일은 부흥한 국가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지도아래 약골 국가 독일은 유럽의 강국으로 발전한다.
발전이 도드라진 나라일수록 문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니체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쪽을 모두 버렸다.
그는 전형적인 수재 청년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을 공부했다. 고대 그리스의 모습에 비추어 그의 시대를 진단한다.
당시는 정치가 위축된 시대로 규정하다. 정치란 원래 사회의 가치와 이념, 목표를 만드는 행위다. 그러나 이제 정치는 타협 행위일 뿐. 미래상과 꿈을 제시해 주기는 커녕,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잇속 다툼이나 조정해 주는 역할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유주의는 사람들 개개인의 욕망을 그 자체로 자유로 인정한다. 그러자 우월과 열등의 구분은 사라져 버렸다. 뛰어난 사람의 욕구와 저열한 자의 욕망을 똑같이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탓이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의 큰 가치는 평등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사회를 발전시킬 새롭고도 뛰어난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다수와 똑같이 대접받을 뿐이다.
그 결과 인간 사회는 가축 떼같이 되어 버렸다. 사회 전체가 미래를 낳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나머지. 새로운 이상과 가치에 도전하기보다 고만고만해져 버린 사람들 사이의 사소한 잇속 다툼속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 일상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밖에 남은 게 없다.
-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
그렇다면 문명은 왜 이렇게 타락하고 말았을까.. 니체는 그 원인을 인류가 이미 수명이 다한 낡은 가치관에 여전히 목매달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겸손, 순종, 친절, 동정 등 우리가 품고 있는 선함의 기준은 실은 노예의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다. 노예는 항상 주인에게 겸손하고 순종해야 하며, 친절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주인은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주인의 도덕은 그의 고결한 정신에 따라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은 밝고 당당하며 거침없고 냉혹하다. 주인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도 지금은 노예의 도덕을 따르고 있다. 자신의 힘을 감추고 겸손해하지 않는 인간은 도덕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평가 받는다. 도덕은 강자를 약자처럼 만들어 버렸다. 겸손, 순종 등의 약한 자의 품성과 덕목이 강한 자의 도덕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렇듯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버린 주범은 바로 기독교다. 기독교는 불구자, 악한, 부끄러운 병을 앓는 자, 구제할 길 없는 범죄자를 모두 주인가 같은 인간으로 보고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열등한 인간의 기준에 인류 전체를 맞추어 버렸다.
그래서 니체는 외친다.
신은 죽었다.
이제는 그런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인류에게 중요한 과제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뛰어나고 강한 사람을 길러 내는 데 있다. 인류의 도덕은 가장 뛰어난 자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
감수성이 뛰어나고 아이디어도 많은 직원이 주변에 무능하고 평범한 사람만 존재한다면 이를 발현하지 못하고 묵살당하기 쉽다. 오히려 위계질서를 모르는 사람, 되바라진 사람으로 매도 당하고, 침묵하며 조직의 질서를 지키라고 강요받을지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현대 문명은 다수가 문명을 이끌어갈 소수를 약자라는 이유로 억누르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사상가 니체, 행동가 히틀러-
최후의 이간과 초인을 대비시킨다. 최후의 인간은 쾌락과 만족에 빠진 나머지 모든 창조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생각없이 일하고 시간 나면 텔레비젼 등으로 소일하는 현대인들 대부분.
반면 지성과 긍지로 가득찬 초인은 넘치는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며 더 높은 곳으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소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위대함을 갈망한다.
주인의 도덕을 따르는 그는 낡은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세우며 인류를 이끌어 나간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히틀러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된다. 1889년 45세의 나이에 미쳐버린 니체는 56세에 죽을 때까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를 숭배했던 여동생 엘리자베스에 의해 니체 신화로 거듭난다.
엘리자베스는 니체 문서 보관서를 열었고, 지독한 유대인 혐오주의자였던 그녀는 니체의 메모지를 모아 자기 입맛대로 세상에 내 놓는다.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바로 당신이라고까지 말한다.
니체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일선의 독일 병사에게 보낸 것도 이 무렵이다.
나치는 유대인이나 슬라브 인들같은 하위인간을 우월한 아리안 족, 곧 독일 민족이 지배민족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문명을 이끌어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1961년 니체를 출간하면서 나치 철학자라는 누명도 거의다 벗었다. 그것은 동생 엘리자베스가 해석한 니체였지, 결코 그 자신의 사상은 아니었따. 니체는 사실 나치가 내세우는 어설픈 민족주의나 유대인 혐오 사상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수의 욕구를 맹목적으로 쫓는다면 인류는 발전할 수 없다. 창조적인 뛰어난 소수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하는 것처럼 낡은 관습을 부수고 새롭게 인류를 진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가졌던 것이다.

* 니체. 철학하는 의사
니체의 철학은 유럽의 3등 시민에 지나지 않았던 독일인을 순식간에 제3제국을 이끄는 위대한 아리안 족의 후예로 거듭나게 할 만큼 강렬한 자극제였다.
니체를 통해 구원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거리에 즐비한 낙타형 인간이다. 낙타는 불평을 모른다. 주어진 먹이를 먹고 가라는 길을 갈 뿐이다. 삶을 고난이라고 여기며 지난한 생활에 탈출구란 없다고 믿는다. 남이 하는 말에 전전긍긍하고 자기 머리로 무엇이 가치 있고 올바른지 생각하기보다 자기보다 우월한 자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한다.
사자형 인간. 이들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안다. 순종을 강요하는 권위에 맞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줄 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반항일 뿐, 자립은 아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참담하기에 거부할 뿐이다. 대안은 늘 없거나 비현실적이다. 사자들은 결국 독기를 잃고 개처럼 쇠사슬에 묶여 동물원에 끌려 갈 신세다.
세상은 부조리하여 혁명을 꿈꾸지만 정작 이루어야 할 이상이 사라진 인간, 이들이 바로 니체가 측은해하는 사자들이다.
니체는 낙타와 사자들을 어떻게 치유할까.. 우선 신부터 죽이다. 신은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심약함이다.
낙타에게 말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라.
사자에도 말한다. 인상쓰는 자들에게 웃으라고 한다.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특히 공격적인 용기는. 무력감과 패배의식은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밑으로 끌어내린다. 그때마다 니체는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타인과 사회가 맞추어 놓은 틀에 무작정 순응하여 사는 삶은 아무리 인정받아도 결국에는 박수치는 부모 없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아이와 같다.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라. 나만의 나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나는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초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자유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16. 검증할 수 없다면 예술도 윤리도 무의미하다―논리 실증주의
과학의 시녀가 된 철학.
철학의 문제는 시대의 고민에 따라 달라진다.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철학자는 신의 존재를 놓고 심각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이성이 트이기 시작한 서양 근세에는 어떻게 해야 오류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가 철학자의 주된 고민이었다.
갈릴레이의 예에서 보듯이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수록 기독교 성경과 과학은 끊임없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둘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철학자의 과제였다.
19세기에 과학의 승리는 분명해졌다.
과학적 접근과 해결은 가장 논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여겨졌다.
논리 실증주의도 이런 분위에에서 태어났다.
-왈츠와 정신 분석과 이성의 도시-
논리 실증주의의 고향은 빈학파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비은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빈은 소크라테스 시절의 아테네와 유사한 점이 있다. 문화와 철학이 왕성한 곳.
그러나 문화 절정기의 아테네는 사실 정치, 경제적으로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술의 토양이 도는 진한 감정과 깊은 사색은 삶의 고뇌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이 시기 아테네의 예술과 철학의 찬란함은 사실 신산스러운 삶의 반증이기도 했다.
19세기 말의 빈도 유사하다. 왈츠의 고향, 혁명가, 지성인, 의학의 중심지,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곳이다.
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명백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실 발달한 까페 문화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 구질구질한 집을 피해 까페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이 태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심리적 불안이 컸다는 반증이다.
아름다운 왈츠는 냉혹하고 처절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서였다.(제국의 군대가 프로이센 군에게 패해한 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작곡되었다.)
흥겨운 왈츠 뒷면에는 위안 받고 싶어하는 불안한 시민들이 있었다. 명료한 이성은 혼란한 시대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분명하고 명쾌한 진단가 해법을 바라기 때문이다.
빈 학파로 불리는 모임. 대부분 철학은 과학을 통해 더욱 엄밀해지고 내용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절대정신, 정의, 선의지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언어로 넘쳐나던 당시 학문을 철학의 명료함으로 다듬으려고 했다.
주장의 검증 가능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문장은 검증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신은 죽었다, 역사는 절대 정신의 자기 실현 과정이다 같은 말은 아무리 노력해도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할 수 없다.
이처럼 검증할 수 없는 말은 학문의 영역에서 모두 버려져야 한다.
분명하게 검증할 수 있는 인공 언어를 만들어 쓸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완벽해질 터이다.
-의미를 빼앗긴 영혼의 응징...-
그러나 빈학파 자체는 오래가지 못했다. 모임을 이끌던 슐리크 교수가 미치광이 제자에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살인자는 당시 권력을 잡았던 나치 정권에 의해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들의 눈에 슐리크는 형이상학에 적대적일 뿐더러 유대인, 공산주의자, 프리메이슨 단원처럼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철학의 주창자였다.
논리 실증주의는 신의 존재뿐 아니라 인간 정신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철학이었다. 따라서 그를 처단한 총탄은 개인의 원한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빼았긴 영혼의 논리였던 것이다.
이런 기묘한 논리는 당시 세계가 얼마나 심각한 광기에 휩싸여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궁핍한 경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참한 현실앞에 사람은 증오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히틀러의 주장에 열광할 수밖에...
그렇지만 아리안 족의 제 3제국을 외치며 유대인드에 대한 증오를 곱씹던 히틀러의 믿음을 논리적으로 파헤친다면 그 허구는 금방 드러날 터이다. 편견은 논리를 싫어한다. 모든 것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보려는 논리 실증주의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한 히틀러에게 이념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빈학파의 사상은 그 후 논리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20세기 전반의 철학계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제 철학은 면밀한 언어 분석을 통해 오류와 편견을 없애는 작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과학은 인간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만큼이나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반드시 무익한 것은 아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성경처럼 여겼던 <논리 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도덕이나 예술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후에 한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증명할 수 없으니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구태여 증명하려고 함으로써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시나 신앙은 증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본래의 읨이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20세기 후반 내내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철학자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제시한 검증 가능성의 원리가 그들의 시대에는 전쟁의 광기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철학적 치료제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약도 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약을 독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논리 실증주의는 근거 없는 광신에 휩싸여 자신과 이웃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이성의 치료제다.

역사와 철학에 대해 시야를 넓혀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