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하노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로 시작되는 <스토리텔링 하노이>를 처음 받아든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노트만한 책의 크기도 평범하진 않았지만, 종이 질이며, 표지며,

일반적인 여행서적과는 다른 것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과 아시아문화네트워크의 공동기획으로 출판된 책이라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책머리에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자'는 기획에서 출간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를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책이 대도시인 베이징도, 도쿄도 아닌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가장 먼저 그 점이 궁금했으나, 책 어디에서도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노이 이후로 어떤 도시들을 소개하겠다는 예견도 없었다.

다만,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자'는 의도에서 출판했다는 이 책이 그 시작이라고만 짐작할 뿐이다.

 

 

작년 여름, 하노이를 여행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놀랐던 것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는 한창 재개발 중이라는 것이였다.

파헤쳐진 도심 곳곳에서 낯익은 우리나라의 건설회사 마크를 볼 수 있었는데 반가움보다는 '여기서도..'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다음으로 놀란 것은 오토바이떼였다. 가히 '떼'라고 표현할 만큼 무더기로 물결치며 빛나는 오토바이들과 헬멧은

큰고기로 부터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내고자 몰려다니는 멸치떼처럼 빛났다.

 

여행하기 전 서경석 교수의 <언어의 감옥에서>을 읽었다.

제일조선인인 서경석 교수는 현재의 일본이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집단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반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썼다.

쌀국수와 월남쌈,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노동자 정도로만 베트남을 알고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내용이였다.

그랬음에도 하노이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마음 속에서 묘한 감정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안해지는, 혹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그런 기분이였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조심스러웠던 나의 하노이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고른 책이다.

일반적인 여행서적과 달라 의아스러웠던 기분은 책을 읽으며 점점 '하노이'로 빠져드는 매력으로 바뀌었다.

책은 직접적으로 현재의 하노이를 펼치는 대신 하노이의 신화와 역사, 하노이의 문인들과 작품으로 애돌아 하노이를 조명한다.

특히 하노이의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전과 하노이를 한꺼번에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페이지마다 전쟁의 상처와 슬픔이 가득차 독자들의 가슴을 휩쓸었다는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그러나 전쟁 소설이기 보다는 연애소설이며, 하노이를 이해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급하게 책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절판되었고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도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바오 닌이 <스토리텔링 하노이>를 통해 처음 안 인물이라면, 호찌민은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것들이 미국적 시각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여행 서적을 읽는 이유는 여행할 곳을 미리 익히거나, 가고싶은 마음을 대신할 때 탐독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다녀온 곳을 추억하기 위해 읽는 여행서적도 있다.

<스토리텔링 하노이>의 경우는 두가지가 다 충족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직접적인 여행지의 안내, 혹은 소개 대신 '하노이'에 관한 호기심과 함께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물결로 해가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며 '명품도시 하노이'를 향해 달려가느라 정신없게 기억되던 나의 하노이는

이 책으로 인해 그 깊이가 더해진 느낌인데, 그랬기 때문에 멋모르고 찾았던 하노이가 아닌,

이제는 추억할 꺼리가 있는 하노이를 다시 찾고 싶다.

그 전에 먼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을 찾아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