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 한구절 때문이었다.

어느 시대건 도덕적 정당성이나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권력은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해 체제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명랑화'에 골몰한 것이 신군부 정권만은 아니었으리라.

어느 시대건, 권력은 자신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민중에게 강압을 행사하기 마련이라는.
1930년대의 경성은 당연, 정당성도 권위도 확보하지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1930년대 경성의 '강요된 명랑'이 부당해서만은 아니였다. 식민도시 경성이 명랑해 봤자 그 명랑의 질이며 농도가 어떠할 것인가는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였으나 이 책을 통해 나는 바로 오늘, 현 시점의 '강요된 명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짓된, 강요된, 포장된 감정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그 속의 인간은 불안정하기 마련이고, 부자유스럽기 마련이다. 1930년 대의 경성의 강요된 명랑은 식민도시라는 불완전성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경성은 이제막 조선을 벗고, 자본주의의 요람이 되기 위한 신도시로 거듭나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불편했고, 모든 것이 과정되 있던, 감정마저도 포장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을 주려면 거북살스러운 외국어 한 두마디쯤은 섞어주어야 했던 시절. 근본적인 개선은 더디고 불가능하게 보이기까지 할 때 남에게 보여질 외관은 부끄러움이었던 시절. 결국 경성의 명랑화란 부끄러움 가리개 정도의 역할이었다고 할까.
그러니까 경성의 명랑화란 보기 싫은 것, 구린 것, 권력에 의해 건전하다고 판단되어 지지 않는 모든 것을 뒤로 치우는 작업이었던 거다. 세계적인 무슨무슨 대회를 치룰 때마다 노숙자와 포장마차부터 걷어치우고 보는 지금의 서울처럼. 그러나 그 작업은 눈에 보이는 포장마차 따위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 머릿속부터의 명랑화를 꾀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오늘날의 '명랑화'는 다름아닌 전국민의 '행복화'가 아닐까 하고 이야기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모두가 행복해지지 못해 안달이고, 모두가 행복해지길 도와주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누군가에 의해 재단되어 강요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곳곳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떠들지만 도대체 내 꿈이 무엇이었나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한 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되어질 <시크릿>이란 책에 매료되었었다. 나 역시 강요된 행복을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차츰 내가 꿈꾸는 행복의 모습이 나 아닌 다른 모두의 행복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체험하고 있는 듯한 공포였다. 국민을 계도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권력의 오만은 1930년의 식민도시 경성과 비교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시점에서 되돌아본 '명랑화'를 강요하는 1930년대는 저자의 말처럼 한마디로 '이상한 시대'였다. 그러나 훗날, 몇십 년이 지난 후, 되돌아 볼 오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이상한 시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