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의 건강이 많이 안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거짓말처럼 그렇게 쉽게 가버리실줄은 정말 몰랐다. 십년 전의 일인데도 문득 그즈음의 일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괸다. 아빠가 떠나고 한 석달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전철에 앉아있다가도. 칼질을 하다가도. 작업을 하다가도. 회의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이유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렇게 쉽게 아빠를 보내버린 내가 미웠으며 몹시도 후회스러웠다. 더 다정하게 굴지 못한 것과 더 자주 아빠를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것과 입원하는 날 마지막으로 피우던 담배를 만류하던 것, 밤새 고통으로 괴로워하실 때 나는 잠에 취해 있었던 것 등.....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별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일들을 오래도록 후회했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하는 일을 완전하게 멈춘 것은 아니다. 하고싶었던 말, 묻고 싶었던 말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서 문득문득 눈물이 괸다.

좋은 이별, 나는 말 그대로 좋은 이별을 하지 못한 것이다. 저자 김형경의 말대로라면 나는 아빠를 보내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못해 아직도 이모양인거다. 아빠가 가시고 그 후로 시어머니를, 그리고 최근엔 시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시어머님이 떠나신 후에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시아버지가 가셨을 때는 슬픔보다는 현실감 없음으로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다행이라면 세분을 떠나보내는 동안 한번도 죽음의 현장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닐까 나혼자 생각해 본다. 그 자리에 제정신으로 앉아있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 김형경은 사별이든, 그저 헤어짐이든 하다못해 아끼는 물건과의 결별일지라도 헤어짐에는 제대로 된 절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억눌린 감정, 표현되지 못한 슬픔은 저 밑바닥에 고여서 끝끝내 나를 괴롭히는 고통의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해 표현되는 집착과도 같은 것으로 무엇보다 그 피해는 내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의식하는 고통의 이별을 죽음으로만 기억하고 있을뿐 지금껏 살면서 안타까운 이별을 한 것이 위의 세 어른을 떠나보낸 일만은 아닐것이다. 더 어려서는 할머니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으며 더 어려서의 기억은 내 무의식 속에 침잠해 내가 기억하는 그것만이 고통은 아닐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또, 오랜시간 공들여 연애한 연인과 헤어진 기억은 없으나 여러차례의 짧은 연애에 대한 헤어짐의 기억은 숱하다. 그런데 연인과의 헤어짐은 연애 기간과 비례하는 것인지 그다지 고통스럽게 기억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천성적으로 회피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형경의 말대로라면 절대 천성일수가 없지만.....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정신분석의 후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에 이은 세번째 심리에세이로 읽는이가 자신의 애도 상태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나 역시 항상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늘 문제있는 정신세계를 갖은 한 사람으로 나를 들어다보는 작업을 하고픈 내게 유용한 책이었다. 저자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챕터마다 권해주는 책들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나 스스로 내 정신을 분석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