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편

 

함께 살아가는 행복에 대하여

가죽장아찌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먹을거리가 워낙 없어 그랬는지 몰라도 아버지는 가죽나무를 유독 아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입맛이 습관이 되어 아버지 떠나신 지금도 나는 가죽장아찌를 좋아합니다.
가죽나무 밑둥치가 어른 허벅지만큼 되었을 때, 빈 마당에 방 한 칸 세놓으려고 나무를 베어냈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나무가 베어 없어지는 것이 참 서운했습니다. 말없이 밑동을 톱질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린 나보다 더 미어졌을 겁니다. 주인에게 봄마다 새순을 바쳤던 그 나무는 제재소로 가더니 베이고 다듬어져 우리 집 대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었다면 충신 중의 충신이요, 효자 중의 효자라 할 만 합니다. 지금도 밥상에 가죽장아찌가 오르면 마당에서 가죽나무와 순을 따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 허정도가 아내에게 읽어준 책 3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

내일의 도시를 가다

오래전 박용남 선생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고 적잖이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낯선 브라질의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는 책의 내용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도시를 주제로 오랫동안 공부해 온 터라 관심이 많았지만, 이 도시의 시장인 자이메 레르네르(Jaime Rerner)가 건축가였다는 경력 또한 나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그 뒤 창원에 온 박용남 선생을 직접 만나 꾸리찌바(Curitiba)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고, 꾸리찌바를 소재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책이 발간된 뒤 전국의 공직자들이 꾸리찌바를 심심찮게 방문했고 도시문제와 관련한 심포지엄이나 토론회에서 도시개발의 성공사례로도 종종 소개되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2004년 벽두였습니다.
미국의 까다로운 외국인 지문검사가 싫어 김해, 인천, 런던, 상파울루를 거쳐 꾸리찌바로 날아갔습니다. 장장 37시간이나 걸린 데다 혼자 떠난 길이라 참 지루했습니다.
꾸리찌바는 인구가 270여 만 명(광역도시권 인구)이나 되는 큰 도시로 내가 사는 마산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1월 겨울이 그곳에서는 한여름이었습니다.
원래는 문제가 많은 도시였습니다. 허구한 날 하천이 범람하는 등 자연재해가 심각했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이농으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자 주거문제는 물론 각종 도시기반 시설과 교통사정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도시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도시적 위기 상황이 자이메 레르네르의 출현으로 1962년부터 역전되기 시작했고, 이윽고 1998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뉴스앤월드리포트(News & World Report)’에서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Smart Cities)’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위즈덤하우스 『책 읽어주는 남편』 도서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