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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시 뉴욕에 스민 땀 냄새와 소음과 마이너리티의 기억을 찾아서

사회의 부품으로 분주하게 종종걸음 치던 서른 살 여자가 마감을 마친 어느 날,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간 무수히 반복했던 출장도, 휴가도 아닌 자신도 알 수 없는 형태의 출발. 길어야 두 달이면 충전하고 돌아와 다시 생활인으로 살아가겠지 짐작했던 이 여행은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해를 넘기도록 이어졌다. 이 책은 그녀를 뜻밖의 장기여행자로 만들어버린 도시, 뉴욕에 대한 이야기다. 가슴 설레는 여행자의 시선과 조금 더 깊숙하게 한 발을 담근 생활인의 관점을 더해 바라본 뉴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내가 사랑한 뉴욕, 나를 사랑한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뉴욕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그 속에 스민 땀 냄새와 소음과 다름에 대한 기억이다.

커다란 커피를 양손으로 쥐고 홀짝이면서 크림치즈가 듬뿍 발라진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며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그래,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 낯선 도시에 홀로 도착해 있는 거잖아. 이제 그렇게 원하던 충전을 시작해 보는 거라고!' 오늘은 어느 구역 어느 골목을 헤집고 다녀볼까나. 물 한 병과 책 한 권, 지도와 메트로 카드, 수첩과 카메라면 오늘도 구경 준비 완성이다. 무언가 이루려 급급해하지 않고 속도를 가만히 놓아버리자, 행복이 단짝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뉴욕 사람들은 공원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커피숍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펼쳐든다.
이때만 해도 길어야 한 달쯤의 여행을 예상하던 중이라, 원하는 만큼 책을 담아갈 수 있던 25달러짜리 가방을 덥석 집어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발급받은 도서관 회원증은 나의 장기여행 기간 내내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오른쪽이 나의 첫 기착지가 된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을 타고 날아오르면 이스트 리버를 중심으로왼쪽에 맨해튼 동부가, 오른쪽에
루즈벨트 아일랜드가 찬란하게 펼쳐진다.

뉴욕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를 몇 등분해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증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공연 관람과 골목 뒤지기, 뮤지엄과 맛집 탐방을 매주 일정표에 끼워넣으면서 나는 이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우리는 매일 뉴욕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뉴욕엔 고작 얼마간 스쳐가는 이방인도 만끽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뉴요커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재래시장 ‘유니온 스퀘어 그린마켓'. 장이 서는 날이면 광장 안은 갓 수확된 농산물이 뿜어내는 싱싱한 에너지와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남쪽에는 그린마켓과 별도로 각종 그림과 사진, 수공예품 같은 기념품을 파는 장터가 이어진다.
뉴욕에 온 누구에게나 머스트 고우 시리즈로 손꼽히는 4대 미술관을 필두로, 프릭 컬렉션, 국제 사진 센터 등 백 개를 훌쩍 넘는 중소규모 박물관, 그리고 무려 천 개가 넘는 갤러리까지. 이들을 통해 뉴욕의 문화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게 된다.

가난한 예술가와 술집 바텐더, 은행원과 불법체류자, NGO 직원과 거리 노숙자, 대학 교수와 유학생....... 뉴욕은 다양한 청춘들로 인해 늘 새로워지고, 그 수많은 청춘들은 뉴욕으로 인해 영감을 얻으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조화를 만들어 낸다. 도시는 그들의 꿈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제 나는 안다. 진짜 뉴욕의 온기를 만드는 사람은 월스트리트의 백만장자도 아니고, 드라마 속 지미추 구두의 주인도 아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이란 걸.

	분주한 일상에 바쁜 드미트리오가 곧 돌아갈 일본 친구 카오리를 위해 롱아일랜드 와이너리 투어를 기획했다. 날씨 끝내주던 이날 우리는 아이들처럼 푸른 녹지를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서른 개가 넘는 공개 수업 스케줄을 조정하고, 매주 펼쳐지는 각종 이벤트에 매달 나오는 센터 소식지도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니 센터 회원들 사이에선 그를 만나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농담이 오간다. 분주한 그의 책상 뒤편으로 그와 아내의 다정한 사진이 걸려 있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 뉴욕을 떠올리며 전형적인 백인을 상상한다면 그 확률은 1/3 이하다. 그 도시를 이루는 사람들의 2/3 이상은 라티노와 흑인과 아시안. 지하철 한 칸에서 적어도 스무 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한 카페에서 동시에 5개 국어를 들을 수 있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뉴요커들은 뉴욕에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뉴욕을 알지 못한 채 화려하게 치장한 뉴욕만을 향한 구애를 비웃는다. 과연 진짜 뉴욕은 무얼까?

7번가에는 소설 속에서 등장한 장소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네이슨이 아침마다 베이글을 사기 위해 찾았던 ‘라 바젤'은 이름까지 그대로 차용했으며, 그의 단골 점심 식당 코즈믹 다이너를 연상시키는 ‘퓨리티 다이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브라이트먼 헌책방은 해체된 것으로 끝나지만 저 ‘파크슬로프' 책방이 있는 자리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뉴욕에선 그 어떤 무리에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다양한 인종이 한데 섞여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에 노출되면서 나와 다른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는 것은 뉴욕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혜택이다.

- 예담 『내가 사랑한 뉴욕 나를 사랑한 뉴욕』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