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단 횡단 특급과 대리전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듀나의 작품집이다. 이번에도 단편들이 함께 실리기는 했지만, <용의 이>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제법 분량이 많다.

영혼과 소통하고 유령들을 부린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점은 어린 소녀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것이다. 미지의 행성에서 모험을 떠나고 유령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때로는 영악하고 때로는 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파괴된 세계, 죽은 세계, 유령들이 떠다니는 세계에서 여왕으로 군림하는 이야기는 듀나답다는 생각이다.

함께 실린 <너네 아빠 어딨니>나 <천국의 왕>도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능력이나 거창한 배경도 없는 주인공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좀비 소설이 되어버리는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세계는 또한번 멸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설정과 그것을 대하는 한 인간의 담담한 모습을 그린 <천국의 왕>에서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듀나의 작품을 세계 몰락, 세계 전복 등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몰락한 세계 위에서 인간들이 처절하고 궁상맞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몰락이면서 동시에 시작이기도 하다. 뒤집힌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또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그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독자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어찌보면 그 모습이 참 기괴하고 비정상인데도 이야기속 인물들은 하루하루를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살아간다. 그들의 고민거리라고는 "이제 뭐 하고 놀까?"일 정도로 말이다.

듀나는 대표적인 SF작가로 불리곤 하지만, 정작 SF독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을 - 굳이 장르를 따져가며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 그냥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 쯤으로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