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5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가가 터키 사람이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단어나 표현이 간간이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 자체는 그닥 어렵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말이 "뭐야!"일 거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묘한 기분.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지 배드엔딩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결말.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잠시 책을 덮게 만드는 끈적한 여운까지.

최근에 <파우스트>를 다시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50년 전의 이야기, 200년 전의 이야기가 이미 21세기인 현재에도 현실을 비추며 읽힐 수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아지즈 네신이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아마 PC같은 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일까. 그의 책을 읽으며 지금 키보드를 누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사회의 규율과 관습으로 억압되어 있던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실상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스타를 닮고 싶은 원숭이"는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유행과 조회수만을 좇으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키보드 앞의 원숭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꼬리 밑 선구자"처럼 자신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하면서 그저 남의 공을 깎아 내리고 가로채기에만 바쁜 악플러들은 또 어떻고.

그런가 하면, 자신을 비꼬는 농담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 하고 남의 얘기로 넘겨버리는 "아주 무서운 농담"이나 "늑대가 된 아기양" 이야기는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섬뜩해 지기까지 한다. 지금의 우리 현실을 너무도 닮아 있기에.

요즘은 어딜 가나 소위 ’지도층’을 탓하며 사회 현실을 한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을 선출한 죄"나 "내 잘못이 아니야"를 읽다 보면 과연 그것이 남탓만 할 일인가... 라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진다.

그래서 이 책은 그저 웃어 넘길 수 있는 풍자 이야기는 아닌 듯 보인다. ’남탓’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비추랄지.

그저 표지가 귀여워서 집어 들었던 책인데, 뭔가 묘한 뒷맛을 남기고 말았다. 책 자체는 얇고 가볍지만 들어 있는 내용은 부담스러울 만큼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