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작가이자 편집자인 미쓰다 신조로, 소설은 그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호러 재패니스크 총서>라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던 미쓰다는 지인으로부터 다쓰미 미노부라고 하는 중년 신사를 소개 받는다. 다쓰미는 어린 시절과 성년이 되어서 체험한 괴현상을 토대로 쓴 소설 <사관장>의 출판을 위해 미쓰다에게 상의하러 온 것인데. 미쓰다는 이 <사관장>을 읽고 단번에 사로잡힌다. 이후 미쓰다의 권유로 이 소설의 복사본을 읽은 주변인들은 물론 다쓰미 본인에게도 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미쓰다와 그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 소후에 고스케는 일련의 괴현상을 '추리'하게 된다.

 

이번에도 작가가 지향하는대로 호러와 미스터리가 섞인 '호러미스터리'형식을 잘 드러내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햐쿠미 가의 장송백의례, 마모우돈(マモウドン) 이라는 마물, 도도야마산의 무서운 저주 등, 미쓰다 신조 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향토적 성격의 괴담이 마찬가지로 등장하고. 거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 <붉은눈>이나 <노조키메>와도 같이 '글자만으로' 등골 오싹해질 정도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가하면 이번에도 미쓰다의 친구들(소후에 고스케, 아스카 신이치로)이 탐정역할을 하며 괴담 현상을 해석하고 있어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도 따라가고 있다.

 

사실 나는 미쓰다가 선사하는 호러는 정말 좋아하지만(그 민속학적인 요소도),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복선도 철저하게 여기저기 잘 깔아놓고(심지어 알아차리기도 상당히 어려울 듯한) 있고 추리의 논리도 꽤 그럴 듯하다. 근데 뭐가 맘에 안 드냐면, 추리하는 인물의 단호하지 못한 성격이랄까. '작가 시리즈'에서 탐정 역할을 맡고 있는 아스카 신이치로는 주의력이 상당히 높고 앞뒤 분간도 잘 하지만, 그의 추리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 라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의해서만 추리한다. 이른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작가 시리즈'는 보다 명쾌하고 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도조 마사야'는 짧은 시간 안에 계속해서 추리 내용을 번복한다. "아 그게 아니면, 음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와 '작가 시리즈'의 차이점으로, 호러와 미스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시리즈 모두 소설 내에서 호러와 미스터리가 혼합되어 있지만, '작가 시리즈'는 호러적 바탕이 더 강하고, 도조 겐야 시리즈는 미스테리적 바탕이 더 강하다. 추리 방식 자체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도조 마사야는 있을 수 없는 괴현상도 결국은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고 해석해낸다(물론 그 와중에도 해석되지 않는 부분은 괴현상 자체로 남겨둔다). 하지만 작가 시리즈는 괴현상의 주범이 '괴현상 그 자체'이다. 영화 <링>이나 <분신사바>같이 초자연적인 그 무언가. 어느 쪽이든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이런 초자연적인 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다만 후폭풍은 '작가 시리즈'가 훨씬 크지만.

'작가 시리즈'의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본인을 작품 속에 등장시킨 것을 통해서 책 속에 있는 괴현상을 '현실'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면 알겠지만(특히 <작자미상>) 미쓰다는 "책을 읽은 사람에게 괴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라는 설정을 좋아한다. '작가 시리즈' 안에서 미쓰다나 그의 친구들은 어떤 책을 읽은 것을 통해서 실제로 괴현상과 맞닥들이게 되는데 이런 법칙이 그 '작가 시리즈'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고 있어서 무서워진다. (내가 예민한 건가, <백사당>을 읽고 나서는 왠지 새벽잠도 설치는 기분. 문을 열고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문을 쳐다보고 있게 되는 기이한 기분이 들기도 했더랬다.) 역자 후기에도 나와있듯이 <사관장 + 백사당> 시리즈는 작가 미쓰다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간격을 두고 출간됐다고 한다. 전작 <작자미상>에서 '미궁초자'라고 하는 호러 동인지를 읽음으로 인해 괴현상에 맞닥들였던 것 처럼. 괴현상의 원인이 되는 책 <사관장>을 먼저 세상에 내놓은 몇개월 후에 <백사당>을 출간하여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것이다. 아무튼 편집이나 기획이나 세심하게 신경쓴 티가 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번 작품에는 그간 미쓰다가 단편을 통해 선보여왔던 공포분위기 조성 효과가 또 잘 버무려져 있다. 특히 <백사당>을 읽어 보면, 의성어를 통해 어떤 분위기를 내는지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면역이 생기면 "아, 또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처음에는 상당히 임팩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안에서 그런 방법을 쓰는 게 '문학적으로 형용할 가치가 있나 없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지만. 그런가하면 <백사당> 본문의 어느 부분에서부터는 미쓰다 신조 시점의 독백 서술 부분이 느닷없이 글씨체가 바뀌는 등의 효과를 볼 수가 있는데, 이 부분은 미쓰다 신조의 독백과 <사관장>의 본문 내용이 겹쳐지고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효과를 굳이 사용한 이유가 뭔지도 결말 부분에서 수습이 되니, 상당히 기발한 효과였다. 덧붙이자면, <백사당>의 결말은 작가의 의도를 고려했을 때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도착의 론도>보다 훨씬 매끄럽다.

역자후기를 읽어보니, 아마도 이 <사관장 + 백사당> 이 작가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닐까 (아니면 현재까지 나온 작가 시리즈 번역이 완료됐다는 의미였을까). 그렇게 생각하고서 보면, <백사당>의 결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전작인 <작자미상>의 '결말'을 생각하면 <사관장 + 백사당>도 차기작의 가능성을 완전히 버리진 못하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열린결말'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