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은 주인공 미쓰다 신조와 그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가 작자 미상의 『미궁초자(迷宮草子)』라는 책을 읽은 후 겪는 괴현상을 해결나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로. <작자미상 上>에서는 『미궁초자』에 실린 7가지 이야기 중 4개, 「안개 저택」, 「자식귀의 유래」, 「오락으로서의 살인」, 「음화 속의 독살자」각 단편과 그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각 이야기는 모두 작가가 경험한(혹은 창작한?) 미해결 사건록 처럼 구성돼 있어서,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읽은 사람은 괴현상을 겪다가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리는' 구조로 되어있다. 아스카는 사건을 푸는 탐정으로, 미쓰다는 조수로 그 역할을 해나가는데.

<작자미상 下>에서는 나머지 3가지 이야기, 「슈자쿠의 괴물」, 「시계탑의 수수께끼」, 「목 저택」이 실려있고. 『미궁초자』라는 책 자체가 갖고 있는 수수께끼의 정체에 대해서도 보다 면밀히 파헤쳐지기 시작한다. 각 이야기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슈자쿠 지방, 가가구시 촌 등 동일한 지역이 배경이 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마지막 이야기 「목 저택」은, 「목 저택」을 포함한 총 7가지 단편의 작가들이 등장하고 이 『미궁초자』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슈자쿠의 괴물」은 엽기 호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살인에 대한 잔인하고 선정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 「슈자쿠의 괴물」은 그 참상을 겪는 주인공들이 모두 십대 청소년이란 점이 무섭다. 십대들이 그렇게 잔혹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광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몸서리 쳐진다. 잔인한 묘사가 앞의 다섯 이야기와는 너무 차이가 나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싶었는데. 그 엽기의 수준은 「시계탑의 수수께끼」를 건너 뛰고 「목 저택」에서도 이어진다. 두 이야기가 갖고 있는 트릭, 완성도에 비하면 「시계탑의 수수께끼」의 수준은 조금 떨어지는 듯 하지만. 그렇기 때문인가, 나름대로 정서적인 부분이 보다 세밀히 묘사돼있는 느낌이 든다.

「목 저택」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멈추지 않는 괴이현상.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히 『미궁초자』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술술 풀어놓는 신이치로. 그에 비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동요하는 미쓰다 신조. 이런 장면들이 상당히 조마조마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마지막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는 데 한 몫한 것이, 책 속의 공포를 현실로 승화시킨 점이다. 예전에 흥미 위주로 모여진 신변잡기 같은 공포 콜렉션 등(문학 컬렉션이 아니라)에 보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독자에게 말을 걸거나, 이야기 속 세계가 실제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등의 기법을 통해 공포를 실체화시키는 걸 많이 본 적이 있는데. 당시엔 그런 것들이 상당히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문학 속에서 다시 보게 되니 실로 그 공포의 수준이란 상당하구나 싶었다. 이런 식의 기법은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것은 책 속의 세계와 나라고 하는 이중 세계였는데. 미쓰다는 여기에 작가로서의 '자신'을 한 번 더 집어넣는다. <작가 시리즈> 안에서 미쓰다가 쓴(혹은 읽은) 책, 그 책을 보는 미쓰다. 이 이중세계에 또 미쓰다 신조를 보는 우리의 현실 세계가 겹치면서 삼중 세계가 완성된다. <작자 미상>에서는 '단 한 문장'만으로 이 이중세계를 우리 현실 세계로 끌어올려내고 있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하다. 유치한데 재기발랄하다. 『미궁초자』가 갖는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함에 상당히 동화되지 않으면 이 트릭에 감탄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덧붙여서. 이번 <작자미상 下>에서도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눈에 띤다. 「슈자쿠의 괴물」을 풀 때 등장하는 '열 꼬마 인디언형 미스터리' 라는 개념과 그것이 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 4가지에 대한 서술이 그러한데. 「목 저택」은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아무튼 「슈자쿠의 괴물」과 「목 저택」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무대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범인이 나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나는 본격 추리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껏 등장했던 사람들 중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추리 소설의 공식도 너무 진부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열 꼬마 인디언형 미스터리'는 상당히 재미있는 개념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가 열 꼬마 인디언형 미스터리 소설 중 하나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샤를 단치가 <걸작에 관하여> 라는 책에서 말한 게 생각난다. 걸작은 다른 걸작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작자미상>에서 등장하는 기존 소설들에 대한 해설을 들어보면, 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지게 된다. 특히 「목 저택」에서는 등장인물들과 관련하여 7권의 소설이 나온다. <비숍 살인사건>, <빅 클락>, <흑사관 살인사건>, <샴쌍둥이 미스터리>, <시간을 새기는 해류>, <외딴 섬 악마>, <산이 보고 있었다>. 이 책들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흑사관 살인사건>은 그 난해함의 정도가 상당해서 일본 3대 기서 중 하나라고까지 한다. 미쓰다가 이 책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트릭을 위해 그냥 소재를 갖고 온 것에 불과한지는 모르겠다.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에서는 미쓰다가 특별히 렌조 미키히코의 <회귀천 정사>에 대한 찬사를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튼 본격 추리 소설은 별로 읽어보고 싶지 않지만, 한 번 쯤 기회가 되면 이것들도 언젠가는...........

 

<작가 시리즈>의 세번째는 <사관장>과 <백사당>이다. 그 호러의 수준은 이 두 책이 <작자미상>보다도 우위라고 한다.

<작자 미상>에는 친절하게 역지 후기도 있고, 가사이 기요시라는 사람의 해설도 붙어있다(그 내용은 좀 이해가 안되지만). 上권과 下권이 붙어서 하나의 일러스트가 되는 표지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표지 속 두 소녀의 정체도 상당히 기이하고(누굴까).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체적인 편집과 구성에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멋져. 라이트하지만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고 만든 거란 생각이 든다. 작가가 원래 편집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하게 호러에 대한 애정도 샘솟게 해주고. 역시 나는 라이트하고, 굴곡이 많다지만 미쓰다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작가 시리즈>는.

호러, 미스터리,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