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구성은, 그야말로 '단상 모음'이다. "걸작은 이러하다" 라는 그의 한 문장 의견이 '제목'이 되어서 각 단상들을 대표하고 있다. 모든 표현이 비유적이다. 그의 비유 자체는 흥미롭지만, 못 알아 듣겠다. 무엇보다도 "걸작은 이러하다"하는 각 하나의 이야기들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 정말로 '단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이건 그가 연구한 "걸작의 조건"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걸작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누구나 모두 그 형식에 맞춰서 걸작을 찍어냈을 수 있을지 모른다. 걸작은 갑자기 느닷없이 '걸작'이 된다. 그리고 그 걸작을 걸작으로 만들어주는 면모를 샤를 단치를 찾아내고 있다. 천차만별의 걸작이 있으니, 천차만별의 '특징'이 튀어나온다. 그러니 그의 감상들은 귀납적이다. 걸작은 이러하기도 하고 저러하기도 하고 그러하기도 한데, 그래서 걸작은 대체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말인가.

나는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을 봤을 때, 좀 더 학술적인 글을 기대했다. 대학 문학 수업시간에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보다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뭐 그런 해석의 시도를 기대했는데. 이 글은 '나는 평론계의 이단아'라고 자칭하는 문제아가 자기 기분에 취해서 끄적여낸 문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이 작자가 쓰는 말 버릇 중에 하나가 "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람?" 그래. 난 지금 당신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정신차리고 알아들을 수 있는 문단들에는 이해하기 쉽고, 공감되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꽤나 있다.

"어떤 작가는 유머와 환상, 괴기함이 가득한 책을 쓰지만 결과는 반대로 지루하고 피곤한 글이 된다. 어떤 작가는 절제, 실어증, 철칙함을 내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웃음을 참다가 던져버리고 춤추러 간다. 서정성으로 승부를 보는 작가도 있따. 놀라운 작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듯 수많은 형용사를 소란스럽게 쓰지만 조잡함에 짜증이 날 뿐이다. 이들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다. 글은 의지로 써지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과 글을쓰고 싶어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기적을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읽는 걸작을 반대한다.그렇다고 나만을 위한 걸작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p.124)"

어쩌면 그는 넘쳐나는 텍스트물들을 경계하고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편이다. 인터넷,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산업들이 해체됐고, 제작과 판매의 기회가 많은 일반인들에게 확산된 것을 계기로 더 많은 서적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점점 더 '무가치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들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나만을 위한 걸작'이 되기는 할테지.

적어도 나는 아무개의 XX작품은 이러이러한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러이러한 면모도 재평가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어쩌구 저쩌구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호소해올 줄 알았는데. 그의 일부 평가 기준은 '내 감정'이다. '아니 어떻게 이 장면이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요? 다시 생각해보란 말입니다.' 너무나도 감정적이어서 '아니, 네 말엔 호소성은 있지만, 진정성은 없어.' 하게 되는 느낌.

"걸작에는 형식이 없다" 라고 이미 처음부터 걸고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 뭐라고 반박하겠어. 어딘가 내 구미에 조금 모자란 듯한 편집과 구성을, 처음부터 그렇게 딱 장벽을 치고 나오면 더이상 비판하고 들어갈 부분이 없단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튼, 그러니까 결국은 기존의 '걸작'들을 새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는 데 그나마 흥미를 느꼈다고나 할까.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그런 건 난 모르겠고, 그냥 나는 이 부분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아무도 신경 안 쓸지라도요. 그 점에서 이 책은 내게 걸작이란 말입니다." 하고 당당히 말할 여유는 생겼단 말이다. 

 
하도 많은 단상들이 등장하니까 기억 나는 것 몇 개만 갖고 나도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일단,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많은 '걸작'들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 제목만 알지. 이것도 샤를 단치가 말하는 걸작의 특징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걸작을 읽지도 않고 그걸 걸작이라고 논한다. 그리고 그 제목을 알지 못하면 '상식이 없는 무식한 인간'이 되고 만다. 그만큼 걸작은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대신에 어떤 철학적, 사상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걸작이 되는 듯하다.

그런데 샤를 단치는 문학에 대한 비문학적인 해석 자체를 경계하기도 한다.

"문학에 대한 비문학적 해석은 언제나 있었다. 단지 해석하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도덕적 해석이 우리를 짓누르기 전에는 정치적 해석이 있었다. (p.172)"

이런 의미에서는 나도 흥미 위주로 나오는 라이트노벨을 경계하게 된다. 문학적인 표현은 거의 찾앚볼 수 없고 그저 트릭을 어떻게 세워야하는가에만 치중하고 있는 본격 추리 소설에 대해 내가 갖는 경계심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걸작은 그 문학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걸작들은 시대가 지나면 쇠퇴한다. 체제가 바뀌면 더이상 걸작이 아니라 '문제작'이 되기도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일 것이다. 루머인진 모르겠는데, 그 사상이 문제가 돼서 우리나라 군대에 보급되는 게 금지된 적이 있다던가.

또 하나의 단상은 "걸작은 왕국이다" 라는 것인데.

"왕은 웃음과 겸손한 손짓으로 우리의 찬양을 막으며 반긴다. 스물다섯에 화려하게 등장한 젊은 작가가 그 후 완전히 마비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봤다. 젊은 작가는 경솔하게 세상에 너무 빨리 나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걸작의 작가는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싸우는 왕국을 건설한다. (p.185)"

미나토 가나에를 떠올렸다. 미나토는 천재적인 작품 <고백> 이후로 그에 대적할만한 차기작을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쩌면 그냥 그저그런 소설을 주구장창 줄기차게 내놓아서 그럭저럭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게 무난히 먹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몇 작품은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대개 큰 별점을 주기는 좀 주저하게 되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만이 아니라도.

지극히 개인적인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수의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은 그만큼 가치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일부 걸작은 대중에게는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독자는 미개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차피 그런 것들 전부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지 않을까. 다수의 대숭이 높은 별점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걸작이 아닌 건 아닐테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아아... 알겠다. 샤를 단치가 그렇게나 왔다 갔다 정신 없이 글을 써댄 이유를. 걸작에는 '형태'가 없다. 정해진 '공식'도 없다. 이미 평론가 샤를 단치의 시선과 나 같은 독자의 시선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하는 사실만 알았으면 된 거 아닐까 하고 그냥 납득.

왜 책을 읽는가. 어차피 형체 없는 그것을 '잃게 되는 것'아닐까. 샤를 단치는 단호히 "일단 문학을 얻게 되면 절대 다시 잃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뭔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문학은 죽음에 대한 강한 저항이라고 하는데. 그건 나는 모르겠고(ㅎㅎㅎ). 정말 샤를 단치에게 물어본 친구가 생각하는 것 처럼 "텍스트는 사라지고, 머릿 속에서도 지워질 뿐인데." 라고 한다면. 그러한 '현상'자체에 대한 저항이 '글쓰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쓰고, 또 읽지. 영원한 걸작의 반열에 들기를 원하기도 하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작가의 입장이고. 적어도 내가 읽는 이유는.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언제부턴가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기도 했으니까. 뭐, 각자 이유는 남다르지 않겠는가. 각자 이유가 있으면 됐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꼭 '왜 읽는가' 라고 묻는 거 같다.

역시 프랑스 지성.
읽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