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2012.2.26~2012.2.27

 

 

스파이소설의 대가로 유명한 존 르카레의 작품을 읽는 건 두번째다. 먼저는 영화 개봉으로 유명해진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스파이소설이라는 건 읽어 본 적이 없으니 도대체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책 읽는 동안 진을 뺐던 게 생각난다. 이 책은 그에 비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오는 책이다. 존 르카레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특유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 방식이 더욱 발전해서 <팅커>와 같이 썰을 풀게 된 거 아닌가 생각해봤다.

<팅커>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의 마지막에도 조지 스마일리에 대한 인물 설명이 나온다. 분명히 조지 스마일리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졌는진 잘 모르겠지만) 허구의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진짜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나도 허구의 인물 이상으로 '조지'라는 인물에게 빠져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팅커> 의 '개리 올드만'에 대한 애착 때문에 조지가 자연스럽게 좋아졌다고 해야 맞다. 작중의 피터 길럼에게 애착을 갖는 것도 배우 베네딕트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영화 <팅커>를 보지 않았다면 존 르카레의 소설을 열심히 읽지 않았을 거고 조지와 피터의 종적(!)을 지금처럼 열심히 쫓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동기야 어떻든 간에 존 르카레의 소설을 읽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세계 전쟁과 냉전을 거친 유럽사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고, 스파이와 관련된 다른 영화들("스파이게임" 같은)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이 책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상'을 쫓아가는 것은 상당히 즐거웠다. <팅커>에서 조지 스마일리가 노련하게 보여주었던 관찰력, 추리력 등이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어서 읽는 동안 "역시 조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어. 젊었을 때 부터 대단했던 거였어." 라고 생각하게 했다. 작고 뚱뚱한 땅딸보로 묘사되는 조지(심지어 그의 별명은 '두꺼비')가 그렇게 냉철하고 노련한 인물일 거라고는 언뜻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에서도 초반에는 다소 서투른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뒤로 갈 수록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만다.

한 편 <팅커>에서도 조지의 속을 썩였던 아내 '앤'은 여전히 이 책에서도 조지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바람 같은 여자인 앤은 <팅커>에 가서는 냉전 시대의 위태한 영국의 이미지를 반영한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앤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불행한 조지가 되려 일에 몰두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해설에서 밝히는 것 처럼 정보부는 조지에게 그가 갈망하는 사랑과 비슷한 어떠한 따스함도 주지 않았다. 냉전 시대가 되면서 영국 정보부에도 변화가 생겼고 윗선에서는 감정 없이 오로지 결과만을 요구하고 실리에 따라서 부하들에게 임무를 내린다. 조지는 이런 정보부에게 회의감과 혐오를 느끼게 되고 결국 사표를 쓰며, 고문관이 직접 다시 돌아와줄 것을 요청하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은퇴한다. 냉전시대의 정보부 요원이 느끼는 정부, 국가,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은 비록 100%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못할 만한 것은 아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무기력하고 희망이 없이 그저 굴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소설의 마지막에 앤은 뻔뻔스럽게도 조지에게 돌아오고 싶다고 연락을 하지만 결코 비굴해 보이지 않는다. 은퇴한 조지에게 남은 것(돌아온 것)은 찾아 헤매던 사랑이었다. 고귀하진 않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회의감을 느낄 때 무엇을 찾아야할까. 마지막에 돌아와주는 게 무얼까.

<팅커>는 한층 성숙해진, 게다가 더욱 음울해진 조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이 작품은 조지의 과거 이야기인만큼 그 보다는 더 활기찬 분위기라고나 할까. 분명 KGB의 카를라와의 대결을 거듭할수록 조지는 엄청난 거물이 되어갈 거라 기대된다. 물론 그 음울한 내면은 '앤'하고 완전히 이별하고 나서 더욱 심각해지겠지만. 아마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더욱 카를라와의 결전에 최선을 다하는 조지가 되어있을 거라 기대된다. 그래서 조지 스마일리 3부작(1. 팅커테일러솔져스파이, 2.영예로운 학생, 3.스마일리의 사람들) 중 2, 3편을 전부 읽고 싶은데 아쉽게 아직 국내에는 번역본이 없다. 안 그래도 한글로 읽어도 어려운 스파이소설을 원서로 본다는 건 굉장한 도전이 될 거 같아서 지금은 차마 시도하지 않는데;; 소설 원서 읽는 데에 익숙해지면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다; 차라리 그 전에 번역본이 나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존르카레, 조지스마일리, 스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