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으론 60대처럼 보이는 평범한 노부인이지만 방역(청부살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방역업계에서는 활동하기 쉽지 않은 나이와 성별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시작했던 조각은 그 실력과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주는 삶의 변화로 '방역'이라는 업계에서 더이상 활동하기 힘든 조건들이 생겨나고

마지막까지 활동하려고 하지만 방역활동에 치명적인 약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고, 그런 과정중에 만나게 되는 강박사.

뜻밖에, 태어나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것만 같던 몽글, 애뜻한 감정이 강박사를 마주하면서 찾아오고, 무슨 인연에서인지 젊은 방역업자로서 날카로운 실력을 지니고

있던 투우는 조각의 뒤를 쫓으며 웬지 모를 시비를 걸게 된다. 그런 환경속에서 묵묵히 조각의 곁의 나무처럼 지키고 있는 한 생명인 무용, 그런 처절하리만치 차갑고

냉담스런 환경에 내맡겨진 조각에게는 특별하고 따뜻한 감정을 선물해준 류를 통해 '나이가 들어간다는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을 알고 살아간다는것.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조금 빠르다고 손해랄수도 없고 조금 느리다고 이익이랄것도 없는, 한 인생의 시작과 끝을 향해 걸어가는 묵묵한 발걸음을 옮기는 조각의 뒤를 쫓아 걸어가보는 그 길이 지루하지 않고, 마음의 잔잔한 파동을 일게 한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이. P-102

 

 

구병모, 그녀만의 문장을 곱씹어 보게 만드는 재미를 품고 있는 책. 과하지 않게 현실적이며 확실한.

구병모, 파과, 자음과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