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 등 대중 소설 전 장르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다는 소설가, 이상하게 그동안 그녀를 접해 볼 기회가 없었었다. 그녀의 책을 읽고 올린 칭찬 일색의 서평들을 보면서도 그저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일본 소설 붐 중의 하나이겠거니 할 뿐 별로 궁금하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초창기 작품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북폴리오, 2006년 3월)”을 읽고서는 왜 그녀를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까지 살짝 들 정도로 생각이 싹 바뀌어 버렸다.  

  위키 백과로 그녀를 검색해보니 “삼월은~”은 “밤의 피크닉”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된 책인데 “밤의 피크닉”은 청춘 소설이라고 하니 본격 미스터리 소설로는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하면 60 건이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어서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 씩은 들어봤을 그런 작품이다. 책은 일종의 액자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이 책 속에 등장한다. 책 속의 책인 “삼월은~”은 정식으로 출간된 소설이 아니라 개인 사비를 들여 200부만 발간하여 작가가 아는 사람에게만 보낸 책으로, 책 소유자는 오직 한사람에게 하루 동안만 빌려줄 수 있다는 제약조건이 있는, 그마저도 작가가 회수를 해가서 이제는 누가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걸작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그런 수상한(?) 책이다 -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이 두 책을 구분하기 위해 “바깥”의 삼월과 “안쪽”의 삼월로 부른다 -. 1장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책으로 등장하며, 2장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책으로 베일에 가려 있는 작가를 찾아 나서고, 3장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작가가 앞으로 쓰기로 결심하는 책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가장 백미로 꼽기도 하며 “삼월”이라는 연작시리즈의 출발점이기도 한 제4장 “회전목마”는 원고지를 앞에 두고 이 책의 4장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 까 고민하는 작가 온다 리쿠 본인과 2장을 쓰기 위해 취재 여행을 떠나는 작가 “그녀”, 기묘한 기숙사제 학원에 입학한 여학생의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바깥”의 삼월과 “안쪽”의 삼월의 경계가 허물어져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미스터리로만 본다면 사실 기막힌 플롯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없는 평범할 수 도 있는 내용이지만 책을 한번 잡게 되면 도대체 그 결말이 궁금해서 계속 뒷장을 펼쳐보게 만드는, 그렇다고 해서 맨 뒷장의 결말만 봐서는 금새 짐작이 되지 않는, 이야기 흐름에 따라 다 읽어야 결말에 다다르게 되는 그런 책이다.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님에도 쉼 없이 내처 읽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안”의 “삼월의 제 1장인 “흑과 다의 환상”으로 이어지는데 마치 4장의 제목인 회전목마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하게 되는 “삼월”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별로 독특하지 않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단숨에 책을 읽어내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와 읽고 나서도 어디까지나 실제이고 허구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그녀의 글솜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말처럼 책속의 책인 “삼월은”이 사실은 실제로 있는 책이기를, 그래서 비록 하루 밖에 시간이 없더라도 꼭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강렬해진다. 아마도 삼월의 연작 시리즈라는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를 다 읽어보고 난 후에야 그 책의 실제여부를 제대로 인정할 것 같다. 

 이제 처음 이 책을 통해서 그녀를 읽었다. 그녀 작품의 출간 목록을 보니 그녀 또한 여느 일본 작가들처럼 많은 작품을 발표한 다작(多作) 작가여서 작품에 따라 만족과 실망의 편차가 제법 클 수 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책들은 책 중반까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다가 막판의 결말 부분에서는 맥이 빠질 정도로 허망하게 끝난다는 리뷰들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 해도 적어도 삼월시리즈만은 놓치지 않고 찾아 읽게 될 나에게 그녀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당분간은 계속 좋아하게 될 그런 작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