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에서부터 여지껏 기다린 보람이 있다.

스피드에서 다소간의 이유로 약간 실망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가네시로 가즈키는 역시 가네시로 가즈키다.  내겐 작가 가네시로가즈키의 세계는 늘 호기심에 차 있는 나라였다.

있는 것은 국적일 뿐, 우리는 나라를 가져본 적 없다는 <GO>에서의 정일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영화 <GO>를 보고, 주인공 스기하라가 그랬듯이 나 역시 그 말이 그렇게 인상깊었다. 내가 발 붙일 ’나라’와 국적을 모두 가진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결핍이다.

이번 8월에 우리말 번역판이 발행된 <영화처럼>.

이 책에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평소 사랑해 온 것들이 풍기는 향기가 묻어난다.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가네시로 가즈키는 음반 수집을 상당히 즐기는데다 영화 역시도 좋아하고 또 많이 보는 듯 하다. 이에 가네시로 가즈키는 자신의 작품 전반에서 많은 책과 영화의 한 장면을 오마주함으로써 그런 관심사를 끊임없이 표출해 왔다.

소설 <GO>에서는 이번 <영화처럼>에서 장하는 소설 중 하나인 이소룡의 <드래곤 분노의 철권>(한 일본독자의 리뷰를 보고 무슨 영화인지 고민했다)-한국에서는 <정무문>이라는 제목인 영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스기하라가 사쿠라기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장면에서다.

그 이후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대표작인 <더 좀비즈 시리즈>에서도 책 중 한 장면에 영화 장면을 흉내내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네시로 가즈키가 아니라 책 속의 '박순신'을 통해서지만.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서는 영화 ’용쟁호투’와 ’재와 다이아몬드’가 반복해서 등장하기도 한다. 그 뒤, 나는 용쟁호투를 몇 번이나 봐야 했다.

<영화처럼>의 일본원제는 <영화편>이다.

우리말로는 <연애소설>로 발간되었던 첫 번째 단편집의 일본원제가 <대화편>이었음을 감안하면 단순히 두 번째 단편집-이라고만 하기는 뭔가 아쉽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가네시로 가즈키는 이 둘을 하나의 연장선상에 두려고 했을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가네시로 가즈키 식의 두 번째 단편집에는 영화에 대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애정과 나름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가장 애정을 담아 바라보고 싶은 단편은 단연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인 느낌이 적잖이 살아있는 <태양은 가득히>다.

장편소설 <GO>에서부터 가네시로 가즈키는 주인공인 스기하라에게 많은 자기이입을 시도했다. 그의 출신성분이라고 해야 할까... 국적에 관한 부분 외에도 다사다난한 젊은 날의 굴곡이 가네시로 가즈키가 자신의 경험을 글에 녹아들게 하는 방법을 통해 글을 농익게 한다.

다섯 가지 이야기는 모두 한 편의 영화를 하나씩 껴안고 있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쩐지 ’그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을 쥐어줄 수도 있다. 그런 의무감을 느꼈다면, 말리지 않는다. 봐라. 어떻게든.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복수도 있고, 웃음, 감동 혹은 정의와 용기가 있다. 이것은 각 이야기에 하나씩 배분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는 쳇바퀴와 닮았다.

2007년 여름부터 기다려왔던 <영화처럼>의 발간.

그리고 이제는 한층 더 욕심을 내서, 새로운 더 좀비즈-혹은 또 하나의 더 좀비즈 이야기를 갖고 돌아오기를 조심스럽게 바래본다.